" 고급유, 일반유, 노킹, 옥탄가, 옥탄 부스터...."
연료 품질에 대한 긴~ 이야기

오늘은 한국의 자동차용 연료의 품질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참고삼아 귀담아 두시면 자동차 운행에 약간이라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참고로, 아래 내용은 제가 전에 ‘기자 시절에 쓴 내용 + 거기서 못 다한 이야기들’을 추가해 재구성한 것입니다.

예전과 달리 요즘 큰 도시에는 고급 휘발유(이하 고급유)를 판매하는 주유소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실제로 고옥탄가를 요구하는 고급수입차나 엔진을 고성능으로 튜닝한 차의 경우 노킹 방지를 위해 고급유를 사용해야 합니다.
요즘 정유사 광고를 보면 고급유를 넣으면 굳이 고급유를 넣어야 하는 차가 아닌 일반차도 차가 훨씬 부드러워진다는 내용이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맞는 얘기일 수도 있고, 틀린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고급 휘발유라고 하면 옥탄가 95 이상을 말합니다. 고급 휘발유들이 강조하는 항목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옥탄가를 높인 가장 큰 이유는 노킹을 줄이기 위해서인데, 원래 자동차의 엔진에는 압축비나 점화시기 등에 맞게 최적화된 옥탄 요구치(RON : Research Octane Number, 독일어로 ROZ)가 있습니다.
즉 판매되는 휘발유가 엔진의 옥탄 요구치에 맞으면 적합한 성능을 낸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고급 휘발유를 넣는다고 엔진 성능이 더 향상되는 것은 아니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사용하는 연료의 옥탄가가 엔진의 옥탄 요구치보다 높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엔진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이미 해당 옥탄 요구에 맞게 설계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듣기론 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차들의 옥탄 요구치는 88~90 정도였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현대차의 경우 언젠가부터 옥탄 요구치 92를 기준으로 엔진을 만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독일 자동차회사들은 RON 91~95이 대부분이고, 고성능 모델로 가면 98을 요구하는 차들의 비율이 높아집니다.
실제로 엔진이 요구하는 옥탄가와 판매되는 휘발유의 옥탄가가 맞으면 일반 휘발유로도 자동차를 운행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고, 고급 휘발유는 옥탄 요구치가 높은 차에만 넣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실제 사용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고급 휘발유를 넣었을 때와 일반 휘발유를 넣었을 때의 차이가 많다고 합니다. 왜 그럴지 잠깐만 생각해 보세요. 결국 연료의 품질 또는 옥탄가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도 됩니다. 혹자는 “심하게 말하면 한국 사람들은 그동안 차에서 노킹을 달고 살았다”고 까지 말합니다. 원래 ‘까르르’하는 소리들이 조금씩 나는 것을 듣고도 노킹을 해결하라고 자동차 회사에 요구해봤자 연료가 좋지 않으면 그럴 수 있고, 그렇다고 이를 정유사쪽에 항의해봤자 주유소의 품질 문제로 돌려버리면 그만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휘발유 옥탄가 표시 방법
미국의 경우 동네마다 관리가 힘들 정도의 시골스러운(?) 개인 주유소들이 많은 만큼 휘발유의 품질이 떨어지는 곳이 많습니다. 따라서 어떤 미국산 자동차의 경우 옥탄가 89를 기준으로 고출력 엔진을 설계해 고옥탄 휘발유에 대한 소비자들의 경제적, 심리적인 부담을 줄이기도 했답니다.
한국과 독일의 휘발유 품질을 비교하면 독일 휘발유의 옥탄가가 더 높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시중에는 고급 휘발유는 물론 일반 휘발유의 품질을 의심하는 소비자들이 많습니다.
지금부터 한국의 휘발유 품질에 대한 한 가지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드리겠습니다. 1990년대 중반 BMW 코리아에서는 비공개로 한국에서 전국 주요 주유소의 휘발유 샘플을 채취한 적이 있었습니다. 차의 성능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일부 컴플레인과 트러블이 발생했기 때문이죠.
원래는 모든 샘플에 봉인을 하고 주유소의 직인까지 찍으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단 한곳의 주유소에서도 도장을 찍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품질에 대해 절대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얘기와 다를 바 없었던 것이죠. 하는 수 없이 날짜와 장소를 시료 채취하는 쪽에서 기록하고 이 샘플 연료들을 영국에 있는 쉘 연구소로 보내 옥탄가를 측정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옥탄가 측정 결과 당시 가장 높은 옥탄가를 기록한 것이 92.7이었는데, 서울 모 지역의 한 쌍용정유 주유소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때 BMW 코리아에서 운영하는 시승차들은 이 주유소서만 휘발유를 넣었을 정도입니다. 제도 BMW 차를 타러 갔을 때 그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보충한 다음 시승차를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그때도 고급 휘발유가 있었고, 지금도 고급 휘발유가 존재합니다. 사실 아쉬운 점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정유사들의 고급 휘발유에 대한 행동이 두 번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한번은 쌍용정유가 일반 휘발유 가격으로 고옥탄 휘발유를 판매했을 때, 시장 점유율이 높았던 다른 두 정유사를 중심으로 고옥탄 휘발유를 만들려면 값비싼 첨가제를 더 넣어야한다며 고옥탄 휘발유에 대한 제동을 걸었습니다. 또한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차의 엔진들이 굳이 고옥탄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옥탄가를 높일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었답니다.
그러다가 2000년 이후 수입차의 판매 비율이 증가하자 이번에는 프리미엄 또는 고급 이미지를 담은 브랜드를 붙여 일반 휘발유보다 비싼 고급 휘발유를 별도의 상품으로 내놓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일반차들도 고급 휘발유를 넣으면 좋다는 식으로까지 일종의 광고 마케팅을 통해 고급유에 대한 인식을 바꿔가고 있는 중입니다.
참고로 고급휘발유가 국내에 보급된 것은 지난 1992년 미군과 외교관 등 특수차량 고객의 요청에 따라 용산과 한남동 부근 5~6개 주유소에서 처음 선보였습니다. 이후 1995년경 동자부의 의견에 따라 취급주유소를 전국 100여 개소까지 확대했다가, 고급 휘발유 판매가 저조해지자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주유소가 취급을 중단했었습니다.
2000년 이후 다시 수입차와 대형 고급차의 판매가 증가하면서 고급 휘발유를 필요로 하는 소비자들이 증가하는 추세에 있습니다. 현재 한국은 고급 휘발유의 시장점유율은 1% 정도인데, 일본의 경우 17% 이상으로 향후 국내에서도 고급 휘발유 소비자의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정유업계는 내다보고 있답니다.
그런데 실제로 한국에는 프리미엄 혹은 고급 휘발유라는 단어는 있어도 옥탄가를 정확히 표시하는 곳은 아직 한 곳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것이 왜 고급인지, 옥탄가가 얼마인지를 주유소의 어디에도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주유소의 판매원이 ‘옥탄가가 높다는’이라는 말로 그칠 뿐이죠.
유럽에 다녀오신 분들이라면 주유소에 연료에 대한 표시에 어떻게 되어 있는지 잘 아실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유럽 대부분의 주유소에는 옥탄 수치가 높은 것과 낮은 것을 가격표와 함께 누가 봐도 잘 알 수 있도록 아주 큰 글씨로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습니다. 즉 자기 차의 해당 옥탄가에 맞는 휘발유를 소비자들이 골라서 넣을 수 있다는 얘기지요. 한국에도 고급유뿐만 아니라 일반유의 옥탄가까지 정확하게 얼마인지를 표시했으면 좋겠습니다.

옥탄가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답을 한번 풀어보지요. 그러기 위해선 옥탄가에 대한 정의도 필요합니다. 옥탄가와 직결되는 단어가 바로 노킹이기 때문이기도 하죠.
한 마디로 옥탄가를 측정하는 방법을 알면 엔진에서 연료가 어떤 조건에서 노킹을 하게 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옥탄가 테스트는 샘플연료의 옥탄가를 실험용 연료(또는 ‘표준 시료’라고 함. 이런 테스트를 위해 실험실에서 제조한 가짜(?) 휘발유인 노멀 해탄은 N해탄이라는 물질과 이소옥탄이라는 화학물질을 섞어서 만든 실험용 연료)와 비교해 측정하게 됩니다.
즉 노킹을 체크하는 실험용 엔진에 샘플로 채취한 연료를 넣어서 어떤 조건에서 노킹이 일어나는지를 측정하고, 같은 조건에서 나오는 실험용 연료의 구성비를 측정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소라는 말은 화학적인 용어로는 ‘유사하다’는 뜻이고, N-해탄은 일반 해탄이라는 뜻입니다. 이때 이소 옥탄이 95%를 차지하고 있으면, 옥탄가가 95, 이소옥탄이 91%이면 옥탄가가 91이 되는 것입니다. 흔히 옥탄가를 ‘노킹 억제 수치’ 또는 ‘노킹 억제 지수’라는 식으로 표현하는데, 엄밀하게 말하면 ‘이소 옥탄의 % 값이 그 연료의 실제 옥탄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질 휘발유와 노킹에 따른 문제들
엔진의 연소실과 피스톤의 구조상 구석구석까지 퍼져나간 연료를 완벽하게 동시에 연소시키기 힘들 듯 엔진의 노킹에서 완전히 해방되기는 어렵다고 하지만, 휘발유의 옥탄가가 높을수록 노킹의 확률은 그만큼 줄어들기 마련인데, 자동차 분야의 일부 전문가들이 노킹이 많이 나는 엔진들을 오랫동안 관찰한 결과 엔진 시스템의 청결상태나 관리부실보다는 이른바 저질 휘발유로 인한 노킹의 확률이 그만큼 클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동안 유사 휘발유나 저질 휘발유의 논란은 많았습니다. 여기서 대부분의 피해자는 소비자들뿐이었다. 그리고 저질 휘발유에 대한 원인은 주유소 측의 문제로 국한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 하나의 문제는 아무리 좋은 고급 휘발유라도 저유소에서 주유소를 거쳐 소비자의 차까지 이어지는 전체적인 품질 관리가 얼마나 철저한가에도 있다고 합니다. 휘발유 자체의 품질관리가 잘 되어야 옥탄가도 잘 유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노킹에 따른 문제들은 연료 외에도 여러 변수가 있어 이번에는 여기까지만 다루고 다음에 더 자세한 사례들을 들어 알려드리겠습니다.

고급유와 일반유의 혼합, 그리고 옥탄 부스터의 필요성
가만히 보면 고급유를 넣고 싶어도 못 넣는 경우도 있더군요. 대부분 유럽산 고급 고성능 수입차들과 고성능 튜닝카들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터보 튜닝을 하면서도 일반유와 고급유의 선택을 놓고 고민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수도권이나 대도시 지역에는 고급유를 취급하는 주유소가 많지만, 지방으로 가면 갈수록 고급유 취급 주유소 찾기가 힘들어서입니다.
특히 제 주변에도 고급유가 없어서 일반유를 조금 넣고, 다시 고급유가 있는 주유소까지 와서 고급유를 가득 채워 넣는 일을 종종 보았습니다. 시중에 떠도는 소문 가운데 고급유와 일반유는 섞이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더군요.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하시면 간단합니다. 고급유나 일반유가 물과 기름이 아닌 이상... 기름끼리 섞이지 않는다는 것은 납득이 안 되는 얘기죠.
어떤 사람들은 일반유 10%에 고급유 90%를 넣었을 때 이것이 고급유가 되는지, 일반유가 되는지를 궁금해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 정도면 고급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고급유가 제대로 고급유의 성분을 가졌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그래서 태어난 것이 옥탄 부스터(Octan Booster)입니다. 얘기가 나온 김에 추가로 옥탄 부스터가 생겨난 이유와 그 필요성에 대해서도 알려드리겠습니다. 앞서 언급한 내용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지방에 가면 고급유 취급 주유소를 찾기 힘들듯이 유럽에서도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동유럽이 개방되기 전인 90년대까지만 해도 동유럽에는 고급유가 없었답니다. 그래서 서유럽 사람들이 동유럽에 갔다가 돌아올 때면 계산을 잘 해서 거의 연료탱크를 비워서 돌아오고, 서유럽으로 돌아오자마자 고급유를 가득 채웠다는 것입니다.
즉 옥탄가가 낮은 동유럽으로 여행할 때 부족한 옥탄가를 보완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옥탄 부스터였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고급유를 넣어야 하는 차로 고급유가 없는 지역을 여행할 계획이라면 이동하기 전에 우선 고급유 취급 주유소의 위치를 파악해두고, 만약을 위해 옥탄 부스터 하나쯤은 챙겨두는 것이 조금이라도 차의 신상에 좋습니다.
옥탄 부스터도 종류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추천할 만한 브랜드의 제품이 있다면 독일서 온 ‘WU뭐뭐’ 정도가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자주 넣고 싶어도 문제는 가격이죠. 뷔뭐뭐 옥탄 부스터의 소비자가격은 2만원이 조금 넘더군요. 기껏해야 300ml 정도인 일종의 연료 첨가제를 2만원이나 주고 사야 한다는 게 조금 걸리는 부분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요즘 고급유 가격도 내렸는데 차라리 연료를 조금 더 넣겠다는 소비자들이 대부분이죠. 물론 싼 것은 1만원도 안 되는 제품도 있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아주 싼 제품은 신뢰하지 않습니다. 또 소비자들의 이런 심리를 이용해 값싼 제품을 비싸게 책정해 판매하는 제품도 있죠. 성능이 괜찮으면서도 가격은 앞서 언급한 제품보다 약간 저렴한 것도 있다고 하는데 나중에 실험도 해보고, 자세히 알아본 다음에 알려드리겠습니다.
또 하나 웃기는 것은 제대로 된 일반유라면 옥탄 부스터를 넣었을 경우 옥탄가가 2~5 정도 향상되어야 하는 것이 맞지만, 그 자체가 불량이라면 옥탄 부스터 욕만 하겠죠. 실제로 다이나모미터에서 파워를 측정하면서 제가 있는 곳 주변의 여러 주유소들에서 연료를 구입해본 결과 주유소의 연료마다 출력이 잘 나오는 곳도 있고, 이상할 정도로 출력이 안 나오는 곳이 있더군요. 그래서 그 이후로는 X주유소는 절대로 이용하지 않습니다.
조금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차를 아끼시는 만큼 주유소를 잘 선택하는 것도 자동차 현명한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 연료를 넣을 때도 기분 좋고 편한 시대, 믿고 넣을 수 있는 환경이 어서 빨리 오길 바랍니다.

* p.s : 제가 유럽 여행시 주유소 마다 옥탄가를 크게 써넣은 표지판을 보고 사진을 찍은 적이 있는데, 갖고 있는 자료를 아무리 뒤져봐도 못찾겠어요. 혹시 누가 그런 사진 있으면 올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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