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rage
거듭 말하지만 세상 참 좋다.
서재에서 자판 몇번 두들겨서 정보를 찾고
서재에서 자판 몇번 두들겨서 부품을 결제하니
부품들이 태평양을 건너 집앞에 대령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사실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님은 분명하지만
집에 아름드리 쌓여있는 물건들을 보니 이러한 현대 문명의 이기가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이거 개러지가 딸린 집과 공구만 갖춰진다면 어지간한 정비는 뚝딱뚝딱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
필자의 오랜 꿈이기도 하다. 아니, 여러 차쟁이들의 꿈일 것이다.
사실 부품을 서치하다가 자연스럽게 차고 딸린 집을 찾아보게 되었는데...(당시 주택을 구하고 있기도 했다.)
이런거...
어후...964까지...
저 964 밑에는 리프트가 숨겨져 있더라..ㅎㄷㄷ
솔직히 저 정도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저 수북히 쌓인 타이어들
약간은 어수선하지만 나름 자신의 좌표는 뚜렷한 공구들
구석에 작은 냉장고와 의자 몇개, 폐차장에서 크랭크케이스 하나 줏어와서 멋진 테이블을 만들고
저녁이면 차쟁이들 모아서 오일도 갈고,
맥주 한병(정도는 괜찮죠???;;;)씩 손에 들고 도란도란 앉아서 유치한 차부심 퍼레이드도 하고,
기계치 동호회회원이 있으면 직접 자신의 차량을 마루타 삼아 교육도 시켜주고
이 얼마나 윤택한 개러지 라이프란 말인가
그.러.나...
이런 미친 대한민국 집값
저런 개러지는 고사하고 주차장 딸린 주택하나 장만하기가 왜 이렇게 힘든 것인가.
이건 머 좀 괜찮다 싶으면 뒷목잡아야 하는 수준이니
차라리 다시 태어나는게 빠른건가 싶기도 하다.
아...
잡설이 좀 길었다.
어디까지 했더라.
아 현대 문명의 이기. 그 좋은 문명의 이기로 집값은 어떻게 좀 안되겠니
자 어쨌든 마음을 추스리고 침착하게 모듈조립을 해보자.
위 사진은 전편에서 보셨을 터이고...
콘덴서는 덴소社
인터쿨러는 BEHR社
라지에이터 역시 BEHR社의 것으로 구매하였었다.
조립하면 요렇게 각이 나온다.
제조국들이 모두 개도국인지라 조립 공차를 우려했었으나 메이커에서 품질관리를 잘했나보다.
다행히 브라켓들이 딱딱 잘 맞다.
역시...샤방샤방 새것이 좋다.
5세대 골프로 네이년이나 구글을 검색해보면 저 녀석들이 정비 단골 메뉴다.
쿨하게 예방정비한 셈친다고 하기엔 좀 많이 오긴 했다.
자 모듈을 조립했으니 이제 차에 올릴 시간이다.
조립은 분해의 역순.
허리만 좀 아픈것 빼고는 그리 어려운 점은 없었다.
국산차와는 달리 호스류 체결이 모두 퀵커플링 방식이라 분해조립이 매우 수월했다.
(저 헝그리한 배경만 좀 어찌하고 싶다;;;)
전판넬 윗부분은 표면이 워낙 거칠어서 물사포질 후 무광그레이를 뿌려줬더니 제법 봐줄만 하다
커넥터가 깨진 흡기온도센서도 교체해준다.
1:1로 희석한 냉각수를 보충하고
(여기서 팁. 냉각수는 유카로에서 정품으로 구했는데 G12는 단종되고 G13으로 대체되었으며 혼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단, G13이 적용된 엔진은 G12와의 혼용은 안된다고 하니 참고하시길.)
자 드디어 엔진을 시동할 차례.
한달 반만의 시동인지라 매우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필자가 명의냐 장돌뱅이냐가 판가름 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건강했던 녀석이 사고 직후 심하게 부조했던 가쁜 숨결이 지금까지 생생하다.
물론 노이즈파이프 파손으로 진단했었고 정품으로 교체되었지만, 자동차란 것이 2만여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유기적인 집합체이지 않던가.
떨리는 손으로 키를 돌린다.
키리릭~
부르릉~
아...걸렸다. 것두 일발 시동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건강한 모습으로 힘차게 돌고 있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코끝이 찡해진다.
계속 엔진을 돌리며 에어빼기 작업을 1시간 정도 했나...
근데... 엔진을 공회전한지 1시간이 지나도록 팬이 안돈다.
계기판 상 냉각수 온도는 90도를 가리키고 있지만 안돈다.
간섭 확인 차 블레이드를 손으로 돌려봤지만 이상없다.
퓨즈도 이상없다.
에어컨을 틀어도 팬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당연하지...냉매가 없는데 작동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니 돌리가 있나
아...역시 싼게 비지팬이었나 싶은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진다.
일단 이날은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주변을 정리하고 집으로 들어와서 곰곰히 생각해본다.
팬이 왜 안돌까.
필자에게 엔진커버를 판매했던 세르게이는 써모스탯이 의심된단다.
써모스탯이 열린채로 고착되어서 냉각수가 계속 순환하고 있고, 온도가 오르지 않으니 팬이 돌지 않는다 이거지.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달랐다. 수온계가 90도에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엔진의 작동온도는 수백도에 육박할텐데 냉각수 온도가 90도에서 고정되어 있다는 것은 온도가 제어 되고 있다는 거다.
제어가 되고 있다는 것은 써모스탯이 일을 잘하고 있다는 거지.
즉, 날씨가 추우니까 써모스탯의 개폐만으로도 냉각이 제어되고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었다.
범퍼가 달려있지 않아 개방되어 있는 점도 한몫하는 것 같고,
무엇보다 써모스탯을 교체하려면 일이 너무 많아 절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ㅠㅠ
그렇게 며칠을 고뇌하던 중 세르게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VCDS 케이블이 있으면 팬을 돌릴 수 있는지 시험해 보라는 것이었다.
오오오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예전에 하이패스를 설치하다가 에어백 퓨즈를 잘못 건드려서 폴트를 지우느라 구입해둔 중국산 짝퉁 케이블이 있었다.
이게 이렇게 요긴하게 사용될 줄이야.
내친김에 그날 바로 시험해보니
돈다
잘 돈다
바람도 엄청 강력하고 기존의 팬보다 훨씬 조용하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엔진 첫시동보다 팬 첫시동이 훨씬 기뻤던 것 같다.)
그 날 이후 작업속도는 급물살을 탔다.
그 주 후라이데이 나잇에 조립 완료 후 시운전을 성공리에 마치고
(검은색 보닛이 의외로 잘 어울려 잠시 고민에 빠졌으나 후지와라 두부가게 스타일은 필자의 취향이 아닌 걸로 결론)
다음 날 바로 도장 공장으로 흰둥이를 보냈다.
사실 도장업체는 부품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제법 신중하게 찾았었는데,
여지껏 도장을 맡겨서 제대로 만족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첫째는 저렴한 곳위주로, 둘째로는 입소문이 잘 나있는 곳을 찾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실례로 현재 운용중인 SUV의 휀다를 도색한 적이 있었는데, 3년이 지난 지금 광택이 죽어 여간 거슬리는게 아니다.
나름 블로그에서 나 엄청 잘해요 하면서 홍보를 많이 하던 곳이었는데 알고보니 전처리만 샤샤삭해서 정작 도장은 외주를 주는 곳이더라.
결국 도장업체와 소비자와의 중간자라는 얘긴데 이런 시스템에 같은 가격이라면 사후 처리나 퀄리티는... 글쎄...
물론 시공 당시에는 정말 깔끔하게 잘 되었었고 필자도 매우 만족했었지...그럼 뭐하나... 시간이 현실을 말해주는데.
그래서 이번에는 무조건 나 잘해요하고 홍보하는 중간 업체는 모두 배제하고
좋은 자재를 사용하고 도장실이 있는 업체로 선정하였다.
서페는 듀폰, 퍼티는 레지골드, RM 조색, 클리어는 프랑스제 스타탑... 이라고는 하시던데
그냥 좋은 거겠지 하고 이해하였다.
여튼 시간이 지나도 쉽게 변하지 않는 중급 이상의 자재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운전석 아래의 5cm가량 찢어진 범퍼는 뒷면에 FRP를 덧대어 붙여서 작은 충격에도 견디도록 시공하였다.
대충 퍼티만 펴바르면 100% 다시 갈라진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범퍼값은 굳었고...
조수석 헤드라이트의 부러진 다리는 플라스틱 용접으로 붙여주셨다.
이렇게 해서 조수석 헤드라이트 값도 굳었다.
이제 좀 자동차 같구나. 오랜만이다.
물론 뭐... 워낙에 돋보기를 들이대는 필자 성격에 100%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광택 및 유리막 코팅을 시공해주었다.
사실 전 주인이 여성이어서인지 표면이 그야말로 스월마크 풍년이었는데
이건 머 크레바스 뺨치는 스월마크의 깊이가 왁스 한 통을 꿀꺽 삼켜버리고도 더 달라고 떼쓰는 수준이어서
그 이후로는 사실 상 손을 놓고 있었다.
근데 이곳 광택집 사장님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가 뜻밖의 좋은 정보를 얻게 되었는데...
바로 휠얼라이먼트 장인이 이곳 창원 촌구석에도 있다는 소식이었다.
사실 얼라이먼트하면 회원님들도 잘 아시지 않는가
일반적인 타이어 샵에 가면 토우값만 조절할 수 있으며 흔히 캠버나 캐스터는 '원래' 조정이 안된다고 말한다.
(심지어 휠얼라이먼트의 기본적인 메커니즘을 모르는 곳도 허다하다.)
소소하게 틀어진 경우라면 뭐 그런 곳에서 손봐도 무방하겠으나
불행하게도 필자의 흰둥이는 노상 낙하물을 밟는 실수로 프론트 좌우 캠버가 1도 가량 틀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전문가의 제대로 된 손길이 필요했다.
대구의 한 업체가 그나마 가까운 얼라이먼트 전문 샵이라 가볼까 했는데
안타깝게도 동호회에서는 소문이 그다지 좋지 않더라.
친절-성실하지 않았다는 오너의 애티튜드가 원인인듯 한데...
필자의 좁은 경험에 의하면
바닥부터 갈고 닦아 실력으로 인정받고 난 후의 샵들이 초심을 잃는 경우가 더러 있던데
흥망성쇠야 그들의 몫이겠지만 소비자의 입장으로써는 그간의 그들의 갈고 닦은 노력과 기술이 참 아깝다는 생각이 종종 들곤 한다.
근데 아...이곳 사장님 엄청 꼼꼼하게 잘 본다.
기술자에게 칭찬이 야박한 필자이지만 감히 엄지척 내밀어본다.
두시간 가량 엄청 힘들어하시면서 손봐주셨고, 얼라이먼트는 완벽하게 맞춰졌다.
물론 가격은 그의 기술과 노하우 만큼 충분히 치뤘다. (일반 얼라이먼트의 3~4배 정도는 될 거다.)
너무 비싸다고?
맞다... 절대적인 기준에서는 맞는 표현일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 장인에게는 흥정하지 않는다.
남들이 잘 하지 못하는 그들 만의 희소성 있는 기술이라면 충분히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응당한 대우가 뒷받침 되었을때 추후에도 양질의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런 곳에 가서 다른 데는 얼마하던데요 이러면 안된다
끝판 대장은 중간보스 이후에 만나도록 하자.
어쨌든
녀석은 다시 돌아왔다.
역시 돈이 좋다.
그냥 새차다.
맞은 편의 차맹 여사원이 사고났다더니 차 새로 뽑았냐고 묻는다. (사회생활을 참 잘한다.)
이 후 부쩍 시동을 걸고 녀석의 자태를 감상하는 시간이 길어졌었다.
갈아탈까 고민하던 와중에 비가 온 후 땅이 더욱 굳어진 시추에이션이랄까
나이를 먹어가며 변덕이 심해져서 장담은 못하겠지만,
좀 더 오래오래 아껴주며 함께 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사고 발생 이후 90일간의 대장정은 이렇게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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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이후 이 녀석과의 인연은 그리 길지 못했다.
기회가 될때 다음 애마에 대한 썰을 풀어보겠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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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헬라 마크 땜시.. ㅎㅎ
수도권 인근이면 일산 킨텍스 타이어프로. 6만원에 말씀하신작업 다해주더라구요..
수리하느냐고 고생하셨습니다.
테드오랜만에 들어오니 글이있네요~
정많이 들이신차 서울에 있을거에요.
글로나마 안부 여쫍니다^^
저도 개인개러지 뽐뿌가 도져서 컨테이너 알아보고 있었습니다ㅎㅎ
그나저나 기변하신 차와는 아직 한 번도 못뵀네요ㅜㅜ
반갑습니다. ^^
집에 차량 두대 모두 여기저기서 얼라이먼트를 봐도 핸들 센터 하나 못 잡아내는지라 스트레스가 심했는데, 말씀하신 곳으로 한번 가봐야겠네요.
다음 애마의 스토리가 궁금하네요. ^^;;
근데 해피엔딩은 아닌가 봐요ㅠㅠ 후기를 꼭 듣고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