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kaoTalk_20220913_220412485.jpg

택시를 탈 일이 은근히 많은 편인데, 직업이 자동차이다보니 차에 올라타면 자동으로 다양한 정보들이 몸전체를 통해서 쏟아져 들어옵니다.

가장먼저 습득되는 정보는 차량의 청결상태와 냄새, 운전기사분의 청결도 그리고 승객을 태우기 전에 흡연을 했는지 등등이겠고, 두번째는 차가 출발하고 첫번째 정차할 때 브레이킹을 어떻게 다루는지입니다.

제가 운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quality입니다. 운전에도 품질이 있다고 믿고, 정교하고 정확한 운전을 추구하기 때문에 거기에서 벗어나는 운전인 경우 동승하는 것이 곤욕인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택시를 타면 편안하게 어딘가에 다다른 적이 거의 없는 요즘입니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운전을 잘하시는 분인 경우에는 말을 걸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보통은 차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타이밍 벨트는 얼마마다 교환하시느냐? 변속기 오버홀은 해보신 적 있느냐? 이전 모델과 신형 모델의 차이점은 뭔가? 등등 보통 개인택시도 1년에 4만킬로 이상을 달리니 내구성에 대한 기준이 택시 기사분들에게는 훨씬 크게 다가온다는 점에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다른 경우는 운전 자체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오늘 탄 택시 기사분의 내공은 상당했습니다.

제동을 할 때 차가 정지하면서 미세하게 울컥이는 것은 앞으로 향했던 무게중심이 차가 정지하면 원래의 무게중심의 위치로 돌아가면서 생기는 충격입니다.
이를 줄이기 위해서 정차 직전에 제동량을 줄여 차가 정지하는 것에 맞춰 무게중심이 원래의 위치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면 도움이 되는데 이러한 기술은 그 충격을 0으로 만들 때 까지 연습해야 정확한 운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분이 그 정도의 수준으로 브레이크 패달을 다루는 것을 보고 말을 걸었습니다.
"택시 하시기전에도 운전관련 일을 하셨는지요?"
혹시 VIP를 모시는 기사를 하신 분들이 보통 운전의 질이 아주 높기 때문에 던진 질문이었는데요.

"신성일씨가 무스탕 탈 때부터 기사를 했지요"
"무스탕이요? 그럼 몇년도인가요?"
"71년도경 부터니 오래되었지요ㅎㅎ"

올해 80세이신 이 기사분은 신성일씨가 머스탱을 타던 시절 당시 다른 머스탱을 가진 어떤 VIP를 모셨었는데, 그 분은 김두환씨의 후예 정도 되는 그런 분이셨고, 70년대 어떤 한 분야에 나름 우두머리급의 지위에 계신 분이셨던가 봅니다.

그렇게 수행기사로 4년의 경력, 일반 VIP가 아닌 주먹계 VIP의 운전기사는 일반인 기사를 사용하는 법이 없습니다.
결국 기사와 VIP가 가장 최종적으로 남기 때문에 기사들도 주먹 꾀나 쓰는 인원을 차출하는 것이 보통이지요.

아무튼 이 기사분은 4년 동안 부동산과 해양관련 다양한 사업들을 간접경험하셨으나 VIP의 일신상의 이유로 더이상 기사일을 할 수 없어 그때부터 택시를 몰게 되었고, 올해로 개인택시만 만 30년을 하시는 경력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군대에서 운전을 배웠고, 군용차를 다루다가 승용차를 몰게 되었는데, 보통 운전경력과 운전실력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나름 부드럽고 편안한 운전을 갈고 닦을 시절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운전을 수동으로 배우신 분들은 클러치를 다뤄야하기 때문에 왼발은 물론 오른발도 가속패달을 섬세하게 다루는 것에 대한 훈련이 처음부터 오토로 운전을 배운 사람들에 비해 월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반클러치 상태에서는 가속패달을 만지듯 다뤄야 부드럽게 출발이 되는 원리에서 근거하는데, 수동을 오래 하신 분들이 모는 차를 타면 출발할 때 훨씬 차분하게 출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브레이크 패달을 다루는 것에 못지 않게 스티어링 휠을 다루는 섬세함도 일품이었습니다.
램프를 돌 때 수정없이 원턴으로 부드럽게 돌아나간다든지, 차선을 바꿀 때 미리 차의 방향을 살짝 틀어 스티어링 조타각을 최소화시킨다든지 하는 나름의 고급기술들이 몸에 배어 있으신 분이셨지요.

부드러운 운전이 몸에 배어 있으니 앞타이어를 10만킬로를 탔는데 아직도 타고 계신 점, 22만킬로를 타면서 브레이크 패드를 한번밖에 바꾸지 않은 점, 어찌보면 말이 돼? 하지만 이분이 운전하는 차를 타보면 조작의 낭비, 즉 차를 다루는 것에 있어서 과한 부분이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고 느리게 가지도 않으니 아주 이상적인 운전을 구사하고 계신 것이지요.

80세 나이에 이런 감각을 유지하신다는게 대단하시다고 칭찬을 해드렸는데, 사실 70년대 스토리를 더 듣지 못한 점이 정말 아쉬웠습니다.
아마도 영화 시나리오 2,3편은 나올 정도 분량의 사람들 날라다니던 리얼 스토리들이 잔뜩 나올 것 같았으니 말입니다.

앞에 신호등이 붉은색으로 바뀐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가속패달을 밟고 가다가 강한 제동을 걸거나 쉴 세 없이 가속패달을 밟았다 놨다를 반복하는 경우, 브레이크를 발는 힘이 초기보다 차가 정지하기 직전에 유독 더 강해지는 운전,
출발할 때 온오프 스위치 켜지듯 퉁 하고 튕기듯 출발하는 경우, 정말 차에서 토할 것 같은 그런 운전입니다.

한국의 택시 90%, 위와 같은 운전에서 벗어나는 법이 거의 없습니다.
결국은 운전자가 문제이지 차 탓을 할게 못됩니다. 거지 같이 운전하는 마이바흐 보다 22만킬로를 달린 소나타로도 이렇게 훨씬 편하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대략 30분 정도의 시간 남이 운전하는 차에 몸을 맡기는 그 순간 스티어링 휠을 잡은 사람이 내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것입니다. 안전도 결국은 편안함이라는 베이스를 갖춰야 확보할 수 있는 것이지요.
운전에 뜻을 두고 연구하지 않는 이상 스스로 실력이 느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어떤 계기를 통해 자신의 운전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그 이후 평생을 훨씬 더 뛰어난 품질의 운전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니 그 기회를 우연찮은 기회에 맡기지 말고 적극적으로 운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자신과 남의 안전을 위해 아주 의미있는 일일 것입니다.

빠르게 달리는 것을 가르치는 것 말고 이런 섬세한 운전을 가르키는 학교나 기회가 없다는 것도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 제게 훌륭한 택시 서비스를 제공해주신 기사분의 만수무강을 기원합니다.
-testk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