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ad Impression
86수동은 이번이 3번째 만남이다.
출시되자마자 타본 기억에 새로 리메이크된 86은 나에겐 그리 자극적인 차는 아니었다.
스바루의 박서엔진을 탑재했다는 구성이 재미있고, 6단 수동변속기를 장착한 수입차라는 것 이외에 파워에 대한 갈증은 어떻게 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느낀 점이었다.
하지만 오리지널 86과의 만남은 조금 다른 스토리이다.
캐나다에서 오리지널 86 DOHC사양을 타본 적이 있는데, 그게 2001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렇게 86이라는 이름으로 리메이크 될 줄 몰랐는데, 당시 시승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자동차 잡지에 기고를 했을 정도니 나와 이니셜디의 주인공 86의 만남은 상당히 오랜 여운을 남겼고, 파워가 높지 않아도 운전의 즐거움이 극대화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한 몇 안되는 차였다.
이번에 경험한 86터보는 타보기 전부터 기대와 궁금증에 대한 레벨이 사뭇 달랐다.
테드 회원이신 정승엽님께서 테스트를 의뢰하셨고, 다양한 조건에서 테스트를 한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차량이 특별한 이유는 정승엽님이 직접 튜닝에 대한 모든 기획은 물론 직접 실차 매핑까지 완성한 것으로 차에 대한 높은 이해와 정확한 목표설정 그리고 장시간 지속적인 테스트를 통해 안정성을 확보했다는데 있다.
일반인이 접근하기 극도로 까다로운 분야가 바로 실차 매핑인데, 현재의 터보차져를 장착하기 이전 수퍼차져 때부터 하면 150회 이상 맵을 변경하며 테스트를 했다고 한다.
나에게 전달된 터보 86은 그야말로 철저한 검증의 목적이 있었고, 이렇게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차를 시승할 수 있음에 먼저 감사한 맘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차를 몰고 나갈 때 느껴지는 클러치의 답력이 동판이나 듀얼 혹은 트리플 플레이트가 가져오는 위화감이 전혀 없다.
순정보다 약간 더 높은 탄성의 오구라 클러치는 일상 주행 시 매우 편하고 마모도가 매우 낮아 만족도가 매우 크다.
만만한 클러치 패달 느낌과 순정 수동 체인지레버는 늘어난 파워와 비교하면 긴장감을 전혀 느끼게 하지 않는다.
86은 북미에서 터보로 튜닝을 엄청 많이 하고 볼트온 터보킷이 많다. 이 의미는 다양한 데이터와 엔진이 사양별로 버틸 수 있는 한계치에 대한 경험치가 충분히 있다는 부분이다.
대만의 터보 회사인 ZAGE에서 SBD라는 회사와 같이 내놓은 SBD500x 터보킷은 TD05하우징과 가레트 GT3076R CHRA를 조합한 특이한 구성으로 북미에서는 3000키트 이상 판매되어 터보의 신뢰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휠에서 345마력을 발휘하는 출력이니 엔진출력으로 400마력을 상회하는데, 고출력을 대응하기 위해 북미의 스바루 전문샵인 Outfront에서 11:1 커스텀 압축비 블럭 주문 장착하여 순정 12.5:1의 압축비를 11:1로 낮춰 1.2바의 부스트압을 발휘할 수 있는 하드웨어적 보강을 했다.
여기에 일본 AVO turbo사의 2.5인치 오버파이프와 200셀 High flow 촉매 장착으로 배기를 원활하게 했는데, 커스텀 3인치 캣백에 배기음 조절위해 레조네이터 3개를 추가하였다.
서스펜션은 테인 모노 스포츠 + EDFC로 16단계중 현재 앞뒤 다 12 세팅 (soft 쪽) 인데, 놀랍게도 이 터보 86은 데일리 드라이버로 매일 출퇴근에 이용되고, 주말 최소 주1회 와인딩을 달릴 정도로 매일 배차가 되는 차이다.
브레이크는 전륜 STI용 브렘보 4p 캘리퍼 + 앞뒤 스탑텍 패드가 장착되어 있는데, 오너의 말에 의하면 일년에 3~4세트 교환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가격이 매우 저렴해서 만족한다고 한다.
모두 외우기 벅찰 정도의 리스트 이지만 주요한 리스트에 대한 것과 가장 중요한 최대 부스트 압력과 배기온 상승에 따른 제어로직 등에 대한 정보만 있으면 정작 테스트를 할 때는 차량에 가해진 각 부분의 튜닝이 조화로운지에 집중하게 된다.
튜닝 후에도 1300kg도 안되는 가벼운 몸무게를 생각하면 400마력 이상의 2리터 터보 엔진은 가속력이 상상을 확실히 추월한다.
부스트 세팅은 0.8바와 1.2바로 세팅이 가능한데, 0.8바일 때 휠에서 320마력 토크 35kg, 1.2바일 때 휠에서 345마력 토크 40kg을 마크한다.
주행 전 토크 그래프를 보면서 놀랐던 이유은 최대토크가 5000rpm부근에서 발휘되는 엄청 고회전 특성을 가졌다는 점인데, 일반적으로 2리터 엔진에 커스텀 터보 튜닝하면 터보의 사이즈에 따라 다르지만 3000rpm이 도달하기 전에 최대 토크와 최대부스트가 걸리는 경우가 많아 상당히 거친 주행감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2단에서 가볍게 풀액셀을 했을 때 치고나가는 맛이 기존에 내가 탔던 너무나 평범한 가속감의 86과는 차원이 다르고 풀액셀을 유지한 체 단수를 높여 주행하다 보면 토크 그래프의 그 커브들이 몸으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1.2바 세팅일 때의 가속 스토리는 3500rpm부근에서 한번 튀어 오르는 가속감이 4500rpm에서 한번더 튀어 올라 7600rpm까지 부스트의 하강없이 그대로 밀고 나간다.
1.2바의 부스트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 이 부스트를 얼마나 끌고 갈 수 있느냐가 차의 전투력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대목이고, 높은 토크를 발휘하는 토크 밴드가 좁아 고회전에서 오히려 답답한 그런 느낌 자체가 아예 없다.
6단 240까지 가속하면서 단수가 올라가도 저단일 때와 동일한 가속감을 유지한다.
이 대목은 아주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보통 커스텀 터보가 아닌 차들도 단수가 높아져 고회전에 머무는 시간이 길면 배기온도의 상승으로 중간에 제어로직이 작동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이 터보 86의 완성도가 매우 높다고 느낀 이유는 바로 5단 6단으로 넘어가 풀부스트를 유지한체 상당한 시간 풀가속을 반복적으로 해도 엔진의 페이스가 전혀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스트가 게이지상으로 유지된다 해도 점화가 지각되어 출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고부스트 엔진의 매핑은 매우 정교해야 한다.
배기온도나 부스트가 무더운 여름 에어컨을 켠 체 달려야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너무나 안정적이고 엔진이 상당히 끈기 있게 돌았다.
고속주행 위주의 상황에서 차에 대한 신뢰성이 극도로 높아졌고, 오너가 즐기는 방식으로 차를 운전해보고 싶은 맘에 와인딩으로 방향을 틀었다.
86용 OG giken superlock 1.5way LSD는 클러치 방식임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작동 소음이나 덜컹이는 느낌이 없었다. 와인딩에서 LSD유무는 후륜구동으로 공격적인 드라이빙을 할 때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
회전수가 3000rpm이하일 때 상당히 무거운 느낌으로 돌기는 하지만 차의 무게가 워낙 가벼워 금방 부스트가 걸리는 회전수로 픽업이 가능하다.
기어비의 성격상 6000rpm이상을 유지한 체 시프트 업을 하면 회전수는 언제든 풀부스트에 걸리는 회전수에 가까운 곳에 위치 한다.
고속주행과 와인딩에서는 차를 평가하는 Criteria가 완전히 다르다. 고속주행에서는 안정성과 파워밴드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할 수 있지만 와인딩에서는 가속패달의 가감에 엔진이 반응하는 정교함을 찾아야하기 때문이다.
터보는 야생마와 같아서 죽어라 돌려고 하는 특성이 있어 파워가 일단 붙을 때는 신나지만 적정한 가속패달의 움직임에 파워의 상승과 하강이 정교하게 이루어지기 힘든 경우가 많다.
차의 크기가 작고 가벼우며 짧은 특성을 감안했을 때 휠에서 345마력이나 나오는 차로 와인딩을 달리는 것은 상당한 긴장감을 준다.
다만 그 긴장감의 부피는 차가 가진 안정된 세팅과 안정감 그리고 예측가능한 움직임 등이 받쳐줄 때 즐거움으로 바뀔 수 있다.
빠르고 짜릿하지만 위험한 차가 있고, 빠르지만 안전한 차가 있다. 튜닝의 영역에서는 빠른차를 만들기는 쉽지만 안전한차를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렵다.
현재 이차가 가진 토크나 고회전 대응력을 고려하면 짧은 턴에서 엔진의 힘을 60%도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파워가 크지만 어느회전수이건 섬세한 컨트롤이 되기 때문에 그 한계점의 경계에서 차를 즐겁게 다룰 수 있다.
정확한 운전을 목표로 할 때 코너를 빠듯하게 도는 상황을 가정하면 가속패달의 아주 작은 증가에 힘이 너무 크게 솟아오르는 상황은 튜닝된 고부스트 엔진에는 아주 흔한 일이다.
그 상황을 제어하는 재미나 스릴은 나름의 의미가 분명히 있지만 정교한 엔진 세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터보 86으로 처음 접하는 와인딩에서의 체험이 비교적 쉽고, 엔진의 파워를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공격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러한 가속패달의 지휘에 엔진이 정확하게 힘의 더하고 빼기를 정확하게 해냈기 때문이다.
약간 오버스피드로 진입하는 상황이라해도 가속패달의 가감을 적당히 잘 활용하면 비교적 쉽게 극복이 가능한데, 이러한 컨트롤의 정확도는 아주 토크가 좋은 NA엔진을 다루는 느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정도였다.
터보의 크기를 생각했을 때 파워의 증감이 매우 섬세하고 이 섬세함은 차를 빠르게 운전하는데 아주 중요한 소스가 된다.
테인 서스펜션의 유연성과 큰 충격에 아주 관대한 움직임은 짧은 스트로크를 생각했을 때 대단한 완성도가 아닐 수 없다.
고속에서의 대응도 매우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이 터보 86이 와인딩 같은 한정된 상황에서만 빠른차가 아니라는 점은 이미 검증하였다.
댐핑능력의 여유는 와인딩 중 차가 바운스를 하는 상황에 풀가속을 때려도 휠스핀을 매우 짧게 발생시키고 바로 잡아 버린다. 그만큼 노면이 안좋아도 로드홀딩을 빠르게 회복하고 차가 코너에서 약간씩 튀는 상황에서도 가속패달의 전개를 구지 보수적으로 가져갈 필요가 없을 정도로 믿음을 가지고 코너를 공략하게 한다.
1300kg도 안되는 몸무게가 주는 장점은 제동에도 상당 부분 적용된다. 어쩌면 가벼운 몸무게는 가속보다 감속에 더 강점이 있다고 본다.
타이어의 한계를 한참 넘을 정도로 여유있는 캘리퍼의 용량으로 급제동에 대해서 브레이크에 대한 부담이 전혀 없다.
다양한 조건에서 엔진의 페이스에 변호가 없고 냉각도 충분하다고 생각되며, 7000rpm이 넘는 상황에서도 시종일관 최대 부스트가 1.2바를 유지하고 있는 모습은 상당히 프로 튜너가 만진 차에서 느낄 수 있는 안정감이다.
압축비를 낮춘다는 의미는 토크 밴드를 전체적으로 뒤로 이동시키는 역할을 하고 저, 중속 토크의 희생을 가져오지만 절대적으로 부스트의 한계를 높일 수 있고, 고회전에서 끈기를 가져온다.
이러한 과감한 세팅과 터보의 선택, 그리고 수도없이 반복된 테스트와 실차 매핑은 최적의 값을 찾기 위해 투여된 엄청난 노력과 열정으로 모든 것이 아주 조화롭게 작동하게 만들었다.
원래 예상했던 시승시간보다 2배에 가까운 시간을 할애해 차의 이모조모를 좀 더 심도 깊게 관찰하게 된 계기도 이 터보 86이 단순히 실험적인 성격의 튜닝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많은 튜닝카를 타봤지만 이정도 높은 수준으로 세팅된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시승하면서 궁금한 점이나 확인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질문하면 정승엽님께서 즉각적으로 답변이 가능하다는 부분도 이 차와 동거동락하면서 쌓은 수많은 데이터들이 실시간으로 튀어나오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이 차의 컨셉은 스포츠카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데일리 드라이버로서 오너의 요구에 따라 모든 주행상황을 소화해내야 함은 물론 주말에는 와인딩에서 강도높은 주행을 반복적으로 견뎌야한다.
이런 극도로 피로한 상황을 만족시키기 위해 요구되는 세팅의 깊이는 빠른 것 하나를 목표로 하는 경우에 비해 몇 배 더 심오해야 한다.
수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테스트와 매핑의 과정은 그 내용을 일일이 나열하지 않더라도 엄청나게 고독하고 지루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런 난이도 있는 매핑의 과정에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서 작업을 했다는 부분은 차의 동역학적인 이해와 좋은 엔진에 대한 기준과 철학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금액으로 환산이 불가능할 정도의 시간과 열정이 녹아 있는 차의 시승과 테스트는 내게도 너무나 소중한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차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검증을 목적으로 이미 완성된 차를 테스트하는 것은 그동안 수많은 차를 탔던 기억들을 모두 끌어와야 하기 때문에 그리 단순하지 않다.
정승엽님의 애마를 아주 냉철한 잣대로 평가할 수 있게 된 것은 그 자체가 기쁨이었고, 취미의 영역에서 시작한 도전이 전문가의 영역에서 마무리되었음을 확인하고 놀라워하며, 존경하는 마음으로 시승과 시승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test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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