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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조건이 좋은 쪽으로만 흘렀다.
누구나 선망하는 유럽에, 자동차 매니아들이 침 흘리는 독일에서 이탈리안 레드의 붉은 빛을 장렬하는 귀여운 녀석을 가졌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고 형용할 수 있겠다. 정확한 색상 명칭은 pasodoble red


내겐 첫 차.. 차 이름도 500이니 그냥 오백이라 칭하겠다.
전장에서 칼을 휘두르지도 않는 내게 애마라는 표현은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혹자는 촌스럽게 그게 뭐냐며 말했지만 누구도 가지지 않은 이름이기에 더 마음에 든다.


1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약 1만 5천km를 주행했다 (2010년 6월 19일 현재 14950km)
이 글을 보는 사람 중에 '내 생에 첫 차'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면 누구나 공감하듯이 그에 대한 정이 남다르다.

더욱이 1년 동안의 희노애락을 항상 같이 했기에 오백이에 대한 애틋함은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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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래쉬를 무선으로 6군데쯤 터뜨려서 찍어봤던 사진. 그 이후로 힘들어서 포기했다

 

 


지구상에서 fun car의 요소를 갖추면서도 역사적 계보를 잇는 차 중에 현재로써는 MINI가 가장 대중적으로 잘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bmw MINI로 알려져있지만 MINI는 자동차 이름이 브랜드가 되어버린 드문 케이스에 속할 정도로 그들이 쏟는 마케팅은 실로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피아트 500은 출시된지 2년 남짓 되었지만 아직도 멈춰져 있는 차 유리창 너머로 실내를 두리번거리는 사람들을 보면 신선함이 꽤 유지되는 것 같다. 10년 전에 VW 뉴 비틀 안에 앉아있으면 많은 이들이 쳐다봤던 그 시선과 느낌이 비슷하다. 물론 MINI와 같을 수는 없다.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피아트에서는 abarth라는 고성능 모델을 내놓으면서 MINI가 갖고 있는 DNA를 부여했지만, MINI는 시크한 이미지를 내포하고 500은 귀여움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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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붕 꽃향기를 맡으면 힘(69hp)이 솟는 꼬마자동차

 


피아트 500은 지난 2004년에 출시된 panda를 기초로 만들어졌다.
대쉬보드만 보아도 중앙의 에어컨 송풍구 위치만 다를뿐, 기타 조작 버튼 등의 위치가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실내에 앉아서 육안으로 확인할 때 껍데기의 디자인이 다를 뿐이다. panda보다 크기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기본 가격이 1.5배가 비싼 것은 디자인이 갖는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이쁘니까 다 용서가 된다'는 말이 어디서나 통용되는가보다. 폴란드에서 생산되는 500은 포드 카(ka)와 같은 플랫폼을 쓰며, 역시 동일한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 그 때문에 기본적인 틀은 같지만 전혀 다른 느낌을 내포한다. 현재 포드는 도회적인 이미지를 자아내려 하지만 현대자동차와 비슷한 곤충룩을 지향하기 때문에  왠지 친근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피아트 500은 기본 모델인 pop,

크롬장식과 문루프 등 편의 사양을 기본으로 갖춘 패키지 lounge,
최소한의 장식과 시트 등의 차별화를 둔 sport,
컨버스탑이지만 오픈 에어링을 만끽할 500c,

에디션 모델로는 Diesel과 핑크색 Barbie, 

그리고 고성능 버젼인 abarth가 있다.
엔진은 1200cc(69hp), 1400cc(100hp) 휘발유와 1300cc 디젤(75, 95hp)이 있는데
abarth 버젼은 1400cc 엔진에 터보차저를 달아 147 마력을 낸다.


주행거리가 많지 않을꺼라 생각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세금과 보험 등을 감안해서 1200cc 모델로 결정했으나 썬루프 뚫을까? 오디오를 고급 사양으로 적용해볼까? 이러다가 편의 사양은 자꾸만 추가되어 결국 세세한 몇 가지가 빠진 거의 풀 옵션 상태로 손에 넣게 되었다. 비상시에 쓰려고 쟁여놨던 비용까지 고스란히 넣어버린 것은 많은 이들이 공감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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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루프의 개방감은 생각보다 좋다

 


큰 도어그립은 손쉽게 문을 열 수 있고 생각보다 묵직함이 느껴지는 그 기분은 흡사 중형급 세단의 것과 비슷한 품질이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도어가 큰 탓인지 나약한 힘으로 닫으면 재차 문과 씨름해야 하니 정도껏 당겨주는 센스가 필요하다.
실내의 도어 그립 역시 500을 위해서만 금형이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는데 패키징 부품들은 다른 차종과 공용으로 쓰는 것이 없는 것 같다. 문득 기아 쏘울이 떠오른다. 많이 익숙한 실내 도어 그립.. 사이드미러를 푼토(punto)와 공용하는데 도리어 500을 위해서 디자인 된 제품이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운전석의 시트만 높이 조절이 미흡하게나마 가능한데 여성 운전자가 많을 것을 고려한 탓인지 시트 포지션이 조금 높은 편이다. 하지만 운전석 선바이져에 별도의 조명과 거울이 없다는 것은 가장 큰 실수였다. 애스턴 마틴의 그것보다는 선바이져가 큰 편이지만 그래도 햇빛이 강렬할 때면 2cm만 더 컸으면 좋겠다하는 간절함이 생긴다.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선바이져의 탈착이 너무 손쉬워서 때로는 허무하다. 그것보다는 선바이져 사이에 위치한 유일한 실내 조명부터 바꿔줬으면 한다. 쓰임새는 편하나 발열이 쉽고 야간 주행 중에는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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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썬루프의 끝부분이 B필러와 맞닿아있어 디자인 완성도를 높여준다.

 


썬루프가 장착된 차량은 180이 넘는 운전자의 머리가 닿는다는 불편함이 있지만 그런 장신의 운전자는 500과 어울리지 않는다. 애석하지만 나에게도 해당사항이 없다. smart처럼 lounge 모델에는 유리로 된 지붕이 있으니 이왕이면 썬루프까지 뚫어버리는게 낫다. 한국 차의 옵션 장난에 질려버렸지만, 이 차도 별반 다를 게 없다. 기본형 pop 모델은 시트 색상이 매우 다양하지만 앞좌석 뒤편에 포켓이 없었다. 게다가 트렁크 조명도 없다. 없는 걸 모른 채 살면 편한데, '이건 뭐야?'라는 사실을 인지해버리면 그 때부터 인생이 피곤해지는거다. 아..


도어 트림을 비롯한 실내 플라스틱 재질은 흠집에 매우 취약하여 신경을 곤두세우지만 근래에 유럽산 자동차들 대부분이 피차일반이라 어쩔 수 없다. 경차급의 차량에 더 많이 바라면 욕심많은 돼지. 그래도 다행인건 본네트 안쪽에 인슐레이션 패드가 붙여있다는거다. 100km/h를 넘어가면 '바람을 가르며 달린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몸소 확인할만큼의 소음이 유입되지만..


사실 대쉬보드 디자인이 차량 구매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운전자의 입장에서는 차 앞, 뒷 모양은 일상에서 중요하지 않다. 매번 앉아서 보는 그 곳에 보기 좋고 쓰임새가 편해야 적격이라는 입장이다. 좌우 대칭형 대쉬보드는 예전 피아트 쿠페처럼 차체 색상을 그대로 적용시킨 패널이 있고 간결한 디자인이 좋았다. 센터페시아의 에어벤트마저 동그랗게 했더라면 유치할 뻔 했는데 차분하게 사각형 형태로 안정감을 잡아주고 있다. 스티어링휠과 센터페시아 색상은 흰색과 검은색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데 시각적으로는 흰색이 적격이지만 실용적으로는 너무 피곤해서 무게감있는 검은색으로 선택했다. 검은색과 빨간색의 조합이 가장 섹시하다는 개인적인 의견과 완전히 부합하는터라 주저할 것 없이 v표를 쳤다.


실린더형 계기판은 1개로만 구성되었는데 그 안에 모든 정보가 빼곡히 입력되다보니 시인성은 굉장히 떨어지는 편이다. 가운데 자리잡은 화면에는 너무 많은 정보가 있다보니 일일이 넘겨보기에도, 하나씩 작동시키기에도 번거로워서 구간 거리계같은 것은 한 번도 쓰질 못했다. 엔진 온도계가 있어서 다행이지만 연료 게이지까지 디지털 방식이다보니 쉽게 잔량이 가늠되지 않는다. 이런 것마저도 바늘이 있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표기했더라면 더 좋았을것을.. 트립 컴퓨터 상으로 총 주행가능거리가 130km일 경우에 주유 경고등이 점등하고 50km 미만일 경우에는 경고음이 들린다. 가득 주유를 한 후에 707km를 주행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런걸 믿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최고 기록을 세워본 적은 약 630km 정도 였던 것 같은데 그 이후로 600km를 넘게 달려본 기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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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행거리가 500km가 되었을 때, 무작정 차를 세우고 기록으로 남겨놔야 했었다

 


솔직하게 연비는 잘 모르겠다. 연료 탱크는 35L인데 가득 채웠을 때 최대 600km 정도 주행하는 것 같다. 허나 시내 위주로 다니는 나로써는 어림도 없는 소리고.. 굳이 영수증과 계산기 들고 숫자놀이 한다는게 썩 즐거운 일이 아니라, 수중에 돈이 있으면 주유해서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이고 없으면 그냥 세워두고 걸어다니는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고속도로에서 구간에 따라 속도 제한없이 달릴 수 있는 독일이지만 이 차를 타고 다니면 그저 그림의 떡이다. 주변 흐름에 맞추면서 주행하다보면 120-150km/h 정도로 달리게 되는데 그러다보면 연료 소모량이 엄청나다. 되려 이럴때는 2000cc 디젤 승용차의 연비가 훨씬 더 좋다. 사실 계기판에 내장된 트립 컴퓨터의 수치도 잘 안 믿는 편이다. 몸으로 느낄 때에는 시내에서 10-12km/L 정도 나오고 자동차 전용도로에서는 15-18km/L 가량 연비가 나온다. 생각보다 시내 연비가 좋지 않아서 아쉽지만 별 다른 방법이 없다. 차 열쇠를 가급적이면 집에 두고 나올 수 밖에.. ㅎㅎ


MS社와 합작으로 개발된 Blue & Me는 피아트와 란치아의 양산 차량에 쓰이고 있는데 usb를 꽂아 음악을 듣거나, 핸드폰 블루투스 기능을 지원하는 하드&소프트웨어이다. 필자의 차량에 이것 또한 적용을 했고 interscope라는 보강된 사운드 시스템도 추가했다 (약간 개선된 트위터와 조수석 아래 자리잡은 작은 우퍼 정도?) 블루투스 신호를 잡기 위함인지 열쇠를 on에 놓으면 아주 미세하게 지이잉~하는 소리가 계속 울려퍼진다. 처음 차를 받고 3달 정도는 이 소리가 거슬렸는데 이제는 무뎌졌는지 들리지도 않는다.
usb 스틱은 센터 터널쪽, 컵홀더 앞편에 직각으로 꽂게 되었는데 행여나 커피라도 흘릴까 조심스럽다. 열쇠를 꽂기 전에 usb를 미리 꽂아놔야 로딩이 빠르다. 그렇지 않으면 usb 스틱 안에 있는 mp3 파일을 인식하는데 길게는 10여분이 걸릴때도 있다. 음질은 딱 아이팟을 듣는 수준이다. 노래에 따라서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고음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날카롭게 뱉어낸다. 그래서 정말 듣고 싶은 노래가 있으면 mp3를 CD로 구워서 데크에 집어넣거나, 아니면 음악 CD를 넣고 듣는 편이다. 데크를 교환하고 우퍼를 장착하는 작업이 귀찮아서 이 옵션을 넣었지만 소형차 급에서는 괜찮은 편이다. 물론 BMW 로직7의 수준을 기대하면 안된다.
USB로 음악을 들을 때에는 스티어링휠에 달린 버튼으로만 선곡이 가능한데 이 때문에 그 버튼의 페인팅이 유난히 많이 닳는 느낌이고(3년쯤 지나면 벗겨질 듯), 옆좌석에 앉은 누군가가 데크의 버튼을 아무리 눌러도 다음 곡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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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좌석 컵홀더쪽에 있는 usb는 위치가 좀 불안하고, 뒷좌석엔 왜 컵홀더를 2개나 넣어줬을까.. 여튼 고맙지..

 

 

외형에서 직감하듯이 피가 쏠리는대로 마구 다룰 차는 아니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 흡족할 뿐, 허들을 넘으라하면 이내 곧 쓰러져버릴 것 같다. 무게 배분을 크게 고려하지 않아 앞쪽에 거의 70% 가량 쏠려있는데 이 때문인지 급하게 코너를 돌면 FF방식임을 감안해도 뒷부분이 아슬아슬하게 밀려나간다.  물론 이 차를 운전할 사람들 중에 abarth 모델을 제외하면 이렇게 몰아제낄 사람은 없겠지만 사고란게 원래 한 순간이라 ESP를 장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유럽의 주택가에는 아스팔트 포장이 아닌, 돌로 박아놓은 길이 대부분인데 중세시대에 말이나 마차가 지나갈 때 떨어지는 변을 쉽게 치우기 위함이라고 어떤 이는 말했다. 이 돌이 아직도 유지가 되는데 차체의 진동과 소음은 어쩔 수 없지만  주택가에서 차량이 빨리 달리지 못하는 명분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굉장히 좋다고 생각된다. 이런 길에서 코너를 돌면 약 30km/h 이상만 되어도 뒷부분이 획획 돈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가 싶었는데, 뒤 차축에 스태빌라이져 역할을 하는 부품 하나가 빠져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벨기에에서는 2009년 연말까지 생산된 피아트 500 1200cc의 중고 거래를 금지했다고 한다.  1400cc모델이나 오픈탑은 이 스태빌라이져가 다 장착되었는데 가장 많은 판매를 차지하는 1200cc 일반형 모델에 이걸 뺐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듣기로는 2010년형부터 전 모델에 장착된다고는 하지만, 왜 그 전에 판매된 모델에는 리콜을 하지 않는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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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면 비를 맞고 햇빛이 내리쬐면 광합성하지요

 

 


지난 겨울은 독일도 굉장히 추웠다. 한국보다 더 했다. 살면서 그렇게 많은 눈을 본 적도 처음이었다. 그 추웠던 첫 겨울을 지나고 나니 차가 좀 변했다. 없었던 미세한 흠집도 차체에 생겼고 앞 차축 쪽에서 뭔가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난다. 조향 축인지 차축인지 베어링 쪽인지.. 지금은 볼륨을 조금 높이고 신경끄는 편이다. 차를 구입했던 딜러를 찾아가도 '소리는 무슨 소리가 난다고 그래.. 아무 이상 없어'라는 식이다. 아닌데.. 작년까지는 아무런 소리도 안났는데.. 담당 정비사가 매번 얼굴은 웃고 있지만 내 얼굴을 마주치면 '저색히 또 왔어'라고 얼굴에 써놓는다. 이제는 귀찮기도 하고 미안해서 못 찾아가겠다.. 차를 리프트에 떠놓고 제대로 봐주기만 해도 안심하고 다닐텐데.. 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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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폭설에, 운전하겠다고 저 눈을 다 쓸고 겨우 끄집어냈던 기억이.. ㅠ.ㅠ

 

 


고속 주행보다는 시내에서 가장 부합하지 않나 싶다. 작은 체구와 가벼운 몸집은 어디든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고 주차 공간을 확보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대쉬보드에는 city라는 버튼이 있는데, 저속에서 스티어링 휠이 가벼워져 주차시에 매우 용이하다. 1톤이 채 되지 않는 차에 굳이 이런게 필요있을까 싶었는데 이제는 매번 쓰는 편이다. 그만큼 편하다. sport 모델에는 그 기능이 없고 대신에 승차감과 핸들링을 딱딱하게 만들어주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
최고시속은 160km/h으로 120을 넘어가면 바늘이 아주 힘겹게 올라가는 편이다. 5단에 물려있는 기어를 재빠르게 4단으로 넣어보아도 큰 차이는 없다. 150km/h 정도가 되면 차체가 말 그대로 '후덜덜'거리면서 불안감을 안겨준다. 이 쯤되면 굉장히 궁금해진다. 윗급 모델은 180 혹은 200까지 쏘아붙일 수 있다던데 그 모델들은 어떤 반응일까.. 그래서인지 장거리 주행은 별로 내키질 않게 되었다. 가끔 의전행사 때문에 BMW 7시리즈나 S클래스를 운전하곤 하는데 평균 3000cc 디젤인 그들을 몰게 되면 그 동안 내 자신에게 묶어두었던 끈을 풀어버리곤 한다. 물론 그 습관을 다시 500에 적용시키면 굉장한 낭패다. 급한 일이 있어 신호등에서 미친듯이 rpm을 높이고 치고 나가봤자 기어 3단을 넣는 순간, 뒤에 있던 vw 골프나 아우디 a4가 여유있는 얼굴로 내 옆을 유유히 지나가기 때문이다.


처음 차를 받고나서부터 지금도 길들이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최초 1500km를 주행하기 전까지 변속은 2천 rpm 이하에서 했고 지금도 엔진이 정상적인 온도를 찾기 전까지는 그 습관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같은 날씨에는 종종 에어컨을 켜고 다니지만 가속을 해야될 때에는 나도 모르게 잠시 끄기도 한다. 출력의 절반 정도가 에어컨으로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어서 고속도로에 진입한다던지, 잽싸게 치고 나가야 할 상황이 생기면 그럴 수 밖에 없다. 3000rpm에서 최고출력을 내지만(그래봤자 토크 10.4 음..) '어? 여기가 아닌가? rpm 더 올려야되나?'라는 기분은 매번 똑같다. 흔히 말하는 제로백은 13.4초가 걸린다고 제원표에 나와있지만 체감은 25초쯤 되는 것 같다. 무엇보다 고속도로 진입할 때 가장 중요한 80-120km/h의 속도가 참.. 유감이다. 배기량이 깡패라는 옛날 옛적 그 얘기를 실감한다. 아.. 앞서 말했던 에어컨 작동은 풍량 조절 스위치를 push식으로 누르면 되는데 점등 유무를 알려주는 조명이 약한 편이라 주간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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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차로에서 유유자적 달립니다. 마음껏 추월해가세요

 

 


사실 암레스트 정도는 붙여줘야했다. 중형급 이상은 콘솔박스가 그 역할을 대신하지만 500은 그것도 없는터라 자동차 전용도로에 들어서면 오른팔의 위치가 애매해진다. 평상시에 10시 10분 방향에 손을 얹고 운전하는게 습관이긴 하지만 1시간 넘게 그러고 있으면 어깨가 조금씩 결려온다. 후속 모델에는 암레스트 시늉이라도 하는 뭐라도 붙여줄라나? 암레스트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휠 하우스가 안 쪽으로 들어온 이유로 ABC 페달이 있는 곳을 제외하면 풋레스트 공간이 상당히 안쪽으로 밀고 들어온 편이다. 가만.. 이런 부분은 왠만한 경차급이 다 그랬던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넘어가야 할 부분..

 

기어노브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당구공 8번 모양과 흡사하다(왠지 솔리드 이준도 떠오르고 ㅎㅎ). 가죽으로 된 것도 있지만 500의 전체적인 스타일링에 부합하지 않았다. 대쉬보드 아랫쪽에 자리했고 길이가 적당히 짧아 수동 변속이 번거롭지 않아 좋다. 독일산 차량은 상대적으로 노브 길이가 짧아 절도있게 딱딱 들어가는 맛이 좋은데 그것에 미치는 수준은 아니지만 헐겁게 휘청대는 수준은 아니다. 동그란 기어노브는 조금 큰 느낌도 있지만 손이 큰 사람도 부담없이 부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생각났는데 기아 씨드나 벤가같은 유럽 현지 생산 차량은 수동 기어도 절도있게 맞아들어갔다)


뒷좌석은 생각보다 여유있는 편. 택시를 타지 않는 이상 뒷좌석에 앉을 일이 거의 없지만 미니 카브리오 뒷좌석에 1시간 여 앉아볼 일이 있었는데 불편했던 기억만 남았다.  그에 반해 500의 뒷좌석은 상대적으로 머리 공간도 높은 편이고 옆 유리가 귀에 바싹 붙을 정도로 가까운 편이 아니라 불쾌감은 덜한 편. 2인승인 뒷좌석에 누가 앉는다고 한다면 동그란 헤드레스트를 위로 뽑아줘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깨가 헤드레스트를 짓누를 것이다. 뒷좌석 지붕에 손잡이를 만들어줬더라면 참 좋았을것을.. 코너를 돌 때, 뒷좌석에 앉은 사람들은 그 무엇하나 의지할 곳이 없다. 앞좌석 의자를 꾹 붙들고 있을 수 밖에.. 손잡이가 붙어있어야 할 그 자리에는 동그란 모양으로 옷걸이 표시가 되어 있는데 아무짝에 쓸모 없다. 코너를 한바퀴 돌면 옷걸이건 옷이던 다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런데 참 신기한건.. 컵홀더가 4개나 된다. 앞좌석에 2개, 사이드브레이크 뒷편으로 2개.. 애초에 미국 시장에 판매할 생각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테스트 드라이버들이 유난히 갈증을 호소했었나.. 개발자를 만나면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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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레스트 때문에 마치 머리작은 졸라맨이 4명 앉아있는 착각을..

 


얼리어답터가 아니라서 가능하면 검증된 최신 기술을 누려보자는 생각이 강하다. 500은 ABS와 7개의 에어백(운전석 무릎 포함)이 장착되어 이런 조건을 잘 충족시킨다. 안경을 끼고 있는터라 제발 에어백이 터지는 일만은 없게 해달라고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매번 빌고 부탁을 한다.

 

1200cc 모델은 뒷 브레이크가 드럼 방식이라 아쉽다. 앞:240mm 디스크, 뒤: 180mm 드럼방식인데 1400cc모델은 앞: 257mm 뒤:240mm 모두 디스크 방식을 쓴다. 별 차이 없다 생각했지만 가끔 어디서 뜯어오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 혼자 다닐때면 문제가 없는데 묵직한 사람이 하나 더 타면 왠지 쭉쭉 밀리는 기분이다(이래서 옆에 남자보단 여자를 태워야된다 ㅡ,.ㅡ). 세차할 때마다 18 핀 타입 휠을 닦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가급적이면 브레이크를 덜 밟고 엔진브레이크를 쓰는 것에 익숙해져버렸다. 누군가가 동승하면 가끔 울컥거리는 현상 때문에 다운 쉬프트를 잘 안하는 관계로, 겸사겸사 사람들을 잘 태우지 않는 편이다. (차가 무거워져서 답답하고, 그 때문에 rpm만 조금 올려도 살살 달리라고 하고, 여기저기 발자국을 남겨주시니 썩 유쾌할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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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이 되면 다시 저 타이어와 휠을 끼워야한다. 접지력은 최곤데 소음이 영..

참고로 여름: continental premium contact 2,  185/55R 15 / 겨울: bridgestone blizzak LM 30,  195/60R 14

 

 

 


자동차를 막연한 운송수단으로 치부하면 그저 '차'가 된다.

하지만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은 적어도 '차'의 개념은 없고 그 운송 수단이 가진 특정한 재미에 의미를 부여하는 분들이기에 피아트 500에 많은 궁금증을 갖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MINI와는 다르다. go cart 개념으로 개발된 그 차와는 다른 유전자를 갖고 있다. 시내에서 편하게 탈 수 있고 타인의 시선을 즐길 수 있는 사람에게 부합한 자동차인 것 같다. 그때그때 피가 쏠리는대로 밟고 싶은 사람은 고성능 버젼인 abarth 500으로 눈을 돌리면 그나마 성에 찰지도 모르겠다. 하다못해 글로브박스 덮개가 없다며 궁시렁대는 사람은 500의 고객이 아니다. apple 社의 제품군은 참 이쁘지만 실용성과 거리가 멀어서 싫다는 내 자신이 이 차를 구입한 건 나 역시도 의외였다. 인생의 첫 차.. 뭔가 다르고 싶었다.


panda의 기술적인 부분을 끌어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검증은 됐을꺼라 생각한 후에 차를 구입했다. 1년을 몰아본 결과, 역시나 새 차 상태로 유지하기에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엔트리 급인 이 차의 경우에는 평생 소유물로 간직하기에는 현실과 많이 부딪힌다는 생각이 들었다. 값싼 재질의 부품도 그렇고 상식을 뛰어넘는 부품 가격도 한 몫을 거들었다. 하지만 갓 나온 차 하나만 보면 그 용기와 노력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산업디자인학과에 재학 중인 내 자신이 요리조리 뜯어보아도 스타일링 하나에 심혈을 기울인 표시가 역력했다. 구형 친퀘첸토의 특징적인 부분을 현대적으로 잘 소화해냈고, 스리슬쩍 밋밋한 표면으로 처리해도 될 부분들을 모두 살려냈지만 어느 곳 하나 혼자 튀지 않고 전체적인 분위기에 잘 동조해 나간다. 그런 세세한 요소까지 잘 살려서 양산차로 출시했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고 용기였던 것이다. 이런 도전에 같이 동참하고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차의 주인이 되어도 무방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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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아바타라 칭했습니다. 저는 그 영화 보지도 못했구요..

 


세상에는 수많은 자동차가 있지만 그 모든 것이 내 소유가 될 순 없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운전하는 차는 제각각의 필요성과 특성이 모두 다를 것이라 짐작한다. 현재 디자인학과 학생이라는 신분에 딱 걸맞는 스타일링과 크기를 가진 이 차에 100%  만족한다. 때로는 그 이상의 희열을 느끼게 해주므로 어쩌면 과분할지도 모른다. 그것에 대한 보답이라면 가능하면 멋진 사진을 찍어서 젊은 날의 청춘(?)을 회고할 수 있게끔 남겨주고, 처음 차를 받았던 그 상태 그대로 유지를 한다는 내 다짐이 과도한 왁스칠에 의한 광빨로 증명되곤 한다.
언젠가는 이 차를 떠나 보낼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이 되는 그 날까지 항상 최선을 다할 것을 맹세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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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d you, love you and loving you st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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