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토반 속도 제한'

독일 정치권이 속도 제한이 없었던 아우토반(Autobahn·독일 고속도로)에 최고 속도를 정하려고 함에 따라 독일 자동차 회사들이 고민에 빠졌습니다. 독일 자동차 메이커들은 그동안 아우토반에서 단련된 고성능 차임을 광고 문구로 강조해 왔는데, 마음껏 달릴 곳이 없어지면 판매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독일 연립내각의 핵심인 사민당(SPD)은 지난 3일 의원 찬반투표를 거쳐 독일 내 모든 아우토반의 주행속도를 시속 130km 이내로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키로 결정했습니다. 물론 이번 발의가 독일 의회에서 통과될지는 미지수지만, 아우토반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속도 무제한 구간을 모두 없애자는 이번 사민당 결의는 독일사회에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속도를 제한해야 한다는 이유는 환경오염 때문입니다. 자동차는 같은 거리를 달려도 빨리 달릴수록 훨씬 많은 연료를 소모하게 됩니다.



공기저항을 이겨내는 데 많은 에너지가 쓰이기 때문이지요. 연료를 많이 쓰면 그만큼 CO₂(이산화탄소)가 많이 배출되고, EU(유럽연합)의 국가별 CO₂배출량 규제를 지킬 수 없게 됩니다.

중도좌파로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민당은 ‘독일도 속도 제한을 통해 EU 환경정책에 따라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연립내각 내 보수세력 기민당(CDU)의 당수인 메르켈 총리는 이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나치정권 이래 시작된 아우토반은 독일 국민에게 일종의 신성한 권리처럼 여겨져 왔는데요. 속도 제한 조치가 국민의 권리를 빼앗는 것으로 인식돼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지요. 독일 자동차산업의 이미지 약화도 걱정입니다.

그러나 전 유럽이 CO₂ 감축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독일만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한 독일 여론조사에서도 국민 60%가 속도 제한에 찬성했다고 합니다. 달리는 즐거움보다는 환경 보호가 먼저라는 생각이겠지요.

[최원석 기자 ws-choi@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