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류청희입니다.

갑작스런 수도권 폭설에 별일 없으셨는지요. 저는 어제 바보같은 짓을 한 덕분에('때문에'가 아니라) 본의 아니게 오늘 대중교통으로 출근을 했습니다.

요 며칠간 컨디션이 안좋아 매사가 귀찮은 상태였는데, 어제는 특히나 그래서 몸이라도 가볍게 한다고 가방을 집에 두고 출근을 했습니다. 자유로를 타고 동으로, 동으로 가던 중 가양대교 부근을 지날 무렵 연료경고등에 불이 들어오더군요. '회사까지 남은 거리가 대충 25~30km 정도니까 일단은 출근하고, 기름은 퇴근할 때 넣어야지~'라고 생각하며 회사에 갔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흘러 어느 덧 퇴근시간. 회사 건물 지하주차장에서 차에 올라 시동을 걸 때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차에 기름이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뒤를 이어 기억나는 사실이 있었습니다. 집에 두고 온 가방 속에 지갑이 있다는...

경제활동에 필요한 모든 수단들이 지갑에 들어있으니, 이처럼 막막한 일이 또 있겠습니까.....마는. 그렇지 않아도 우울한 기분을 더 가라앉게 만드는 것은 이런 경험을 i30 오너가 된 이후 두 번째로 겪는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전에는 근처에 사는 선배에게 전화를 해 신세를 졌지만, 똑같은 일로 다시 신세를 지기는 미안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다른 후배에게 전화를 해 보았습니다(공교롭게도 전화한 선배와 후배 모두 테드 회원이시로군요 ㅡㅡ;). 그러나 후배는 음주관계로 이동이 불가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과 즐거운 저녁시간 보내고 있는데 찾아가서 귀찮게 하는 것도 미안한 일이고...

결국 '어떻게 되겠지' 싶어 끌고 나온 차를 돌려 회사 건물로 향하면서 '어떻게 하면 집에 갈 수 있을까' 머리를 굴려보았습니다.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지하철 3호선이 유일한 해법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대중교통도 교통카드로 타 버릇 하다보니 현금이 얼마나 있어야 집까지 갈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남의 손을 빌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금전적 한계는 고속도로 통행료를 내고 거스름으로 받아 차에 놓아둔 100원짜리 동전들 뿐인데, 과연 이 동전들로 집까지 갈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던 겁니다.

어쨌든 차를 다시 회사 지하주차장에 넣으면서 차에 있는 동전을 깡그리 모아 주머니에 털어넣고 지하철 역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는 승차권 자동발매기로 향했습니다. 지하철 타면서 자동발매기에 동전을 넣어 표를 뽑아본 것도 도대체 얼마만인지. 열 여덟 개의 동전을 집어넣고 표를 받아 개찰구로 들어서면서 세어본 남은 동전의 갯수는 모두 열 한 개. 이쯤에서 다시 지하철에서 내려 집까지 가는 버스 요금이 궁금해졌지만, 일단 지하철에서 내린 다음에 고민하기로 하고 지하철 3호선 끝에서 끝까지 가는 긴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 반 가까이 흘러 열차는 종착역에 도착했습니다. 지상으로 올라와 버스정류장에서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그냥 와이프한테 전화해서 데리러 나오라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집에 놀러온 친구와 있을 와이프한테 민폐가 될 것 같아 버스요금을 확인할 때까지 전화통화를 보류하기로 했습니다. 마침내 집으로 향하는 버스가 도착해 앞문이 열리는 순간, 반가운 글귀가 저의 두 눈동자에 큼지막하게 들어왔습니다. '현금 1000원.'

'드르르륵' 소리를 내며 요금함에 떨어진 동료들을 멀리하고, 저의 손에는 한 개의 100원짜리 동전이 남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한 시간 남짓 걸릴 퇴근길은 어제 두 시간 가까운 시간을 잡아먹고 끝이 났고, 집 앞에 도착할 때까지 버스 안에서 내도록 '내가 요즘 왜 이러나, 늙었나, 바보가 다 됐구나'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와이프가 요즘 상태가 안좋아 보인다며 저녁으로 마련해 준 삼계탕이 아니었다면 무지하게 우울한 기분으로 하루를 마무리했을껍니다.

집에 와서도 새벽까지 일을 하다가 잠들어 오늘 아침에는 조금 늦게 일어났는데, 출근하는 와이프를 배웅하려고 하다 보니 창밖이 온통 하얬습니다. 이런 걸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하나... 제설작업이 늦는 동네라서 눈만 오면 길이 엉망진창인데, 차를 갖고 나가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라 마음의 부담이 훨씬 적었습니다. 새삼 세상 일이 공평하게 느껴지는 - 무지 단순한... -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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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 얘기를 하려고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는데 쓰다보니 이렇게 되었네요. 해서 제목도 바꾸고 짤방삼아 요즘 제 차 얘기를 조금 적어봅니다.

며칠 전에 '블러디 데블'(제 i30에 붙인 별명입니다. 첫 차인 마티즈는 '실버 클라우드', 두번째 차인 라세티5는 '실버 애로'였죠) 누적주행거리가 1만km를 넘어섰습니다. 오늘까지 달린 거리가 벌써 1만8백몇십km - 몇 시간 전에 확인했는데 도대체 이놈의 메모리는... - 나 되네요. 1만km를 넘기면서 차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사장님의 주도로 ECU 매핑과 머플러 교체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다이나모에 올려 측정한 결과, 순정상태(라고는 해도 에어클리너가 K&N closed 필터로 이미 교체되어 있던)에서 94.x마력/21.x kgm을 기록한 엔진은 머플러 교체 후 매핑을 하면서 121.x마력/28.x kgm 으로 힘이 좋아졌습니다.

늘상 '순정이 최고'라 생각하면서 튜닝 쪽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으면서 살아왔는데, 야금야금 차의 성격이 바뀌어가는 것을 느끼면서 '이런 맛에 튜닝을 하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 이번에 차에 손을 대기 이전과 이후 사이의 차이가 조금 와닿는 부분이 크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액셀러레이터를 조작하면서 뭔가 '거칠고 마무리가 덜 되었다'고 느낀 부분들이 있었는데, 그렇게 느꼈던 이유가 다이나모 그래프에 고스란히 나와 있었습니다. 새로운 매핑에 따른 다이나모 그래프는 아주 매끈한 곡선을 그리고 있는데, 실제 차를 몰아보면 이전과 다르게 액셀러레이터 반응도 아주 매끄럽게 바뀌었습니다.

높아진 만큼의 출력은 차에 딱 알맞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매핑 전에는 가속이 '그럭저럭 답답하지 않지만 심심하다'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살짝 쥐어짜는 느낌이 들지만 제법 괜찮다'는 느낌입니다. 더 이상 출력을 높이는 것은 오히려 출력을 쥐어 짜내는 느낌이 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퍼포먼스 튠은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매핑 덕분에 동적인 측면에서도 한층 균형이 잡혀, 이전까지는 골프 GTI보다 30% 정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격차가 20% 정도로 줄어들었습니다. 나머지 격차는 감성적인 부분의 절대적인 차이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 더 이상 좁히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제게는 아주 만족스러운 i30가 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엔진 성능이 높아진 데 비해 연비차이는 거의 없습니다. 애당초 저희 사장님이 생각했던 매핑의 목적이 그렇게 잡혀있었던 것이고, 사장님의 의도와 작업을 맡은 업체의 의사소통이 아주 잘 이루어진 것이죠. 물론 지금의 i30이 제 의도대로 튜닝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저희 사장님이 평소에 차를 튜닝하는 스타일과도 다릅니다. 하지만 제 의도와 상관없다고는 해도 제가 아주 만족스러워하는 방향으로 튜닝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저희 사장님이 제 성향을 잘 파악하고 계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무서운 양반...

다만 요즘 들어 젖은 노면을 탈 일이 많아지면서, 타이어가 조금 고민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한국타이어 벤투스 V8 RS는 사실 처음 경험해보는 타이어인데, 드라이 그립과 웻 그립의 차이가 꽤 크게 느껴집니다. 원래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천후 UHP'라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일테니 그러려니 하고는 있습니다. 그래도 미끄럽다고 나름 살살 달리고 있는데 슬금슬금 미끄러질 의지를 보일 때가 많아 종종 가슴이 떨릴 때가 있습니다. 이번 겨울만 잘 나도 이 타이어를 다루는 법은 조금 익숙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끝까지 모두 읽으신 분들은 혹시나 지루하지 않으셨을까 모르겠습니다. 쓸데 없는 얘기가 너무 길어서 죄송합니다. 자주 쓰면 조금 덜 지루해질텐데, 십 수년 전 PC통신 시절처럼 쉽게 글이 써지지는 않네요.

주말에도 여러분 모두 사고 없이 안전운전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