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아니 자정이 넘었으니 오늘이군요. 그동안 잘 타고 다녔던 유노스 로드스터를 보내고 새로운 녀석으로 갈아탑니다. 재작년 10월에 구입해서 1년하고도 3개월정도 더 탓군요.

일본도 도시가 아니면 대중 교통이 많이 불편하기 때문에 시골로 발령 받으면서 사용할 출퇴근용 차를 알아보다가 때마침 저의 가용 예산으로도 무리없이 구입가능한 저렴한 물건을 발견하고 한눈에 꼿혀서 질러버렸던 녀석입니다.

다른 편의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구입했던 녀석인지라 두번의 장거리 이사에도 운전석 이외에 나머지 공간에 가득 짐을 싣고 이사하기도 했구요.

닛코의 이로하자카, 하코네 등의 산길을 달리기도 했고 고속도로에선 180km/h 리미트가 걸릴때까지 밟아보기도 했던 나름 주인 잘못 만나 고생했던 녀석 입니다.

살때 부터 낡아서 깨져버린(?) 비닐제 소프트 탑을 '뚜껑열리는 차를 샀는데 뚜껑한번 열어봐야지' 란 생각 하나만으로 DIY로 유리가 달린 소프트 탑으로 갈기도 했구요.(소프트 탑 대신 하드탑이 달려 있었습니다.) 전주인의 야매도색(?) 탓인지 트렁크 리드의 색이 변해서 그거 맞춘다고 삽질하기도 했네요.

일본이라서 피해갈 수 없는 차량 검사와 기타 각종 DIY 질 및 정비에 들어간 돈이 차값보다 더 들어가기도 했구요.

딱 두번 있었던 고속도로의 졸음 운전 때에도 조수석 사이드 미러를 스스로 접어버려서 잠이 확 달아나게 만들어준 (설마 내가 졸음 운전에 뺑소니? 다행히 주변에 차도 없었고 사이드 미러에도 부딪히거나 긁힌 상처는 없었고 결정적으로 경찰이 수배한 적도 없으니 뺑소니는 아닌듯 합니다.ㅋㅋ) 기특한 녀석이기도 합니다. (평소에는 빡빡해서 상당히 힘을 줘야만 접히는 사이드 미러인데 그 두번의 순간은 아직도 미스테리 입니다. 180에서도 끄떡 없던 녀석이 100정도에서 접혀버리다니)

1년 넘게 몰고 다녀서 어느정도 익숙해진 탓에 주변에 차가 없는 한적한 곳에는 나름 과감하게 몰아보기도 했었는데 다시 도시로 돌아오면서 출퇴근을 대중교통으로 하다보니 차의 주된 용도가 주말의 장보기용으로 바뀐 탓에 로드스터의 빈약한 수납공간이 문제가 되었고 또 간혹 방문하는 가족이나 친구들 여행에 쓸수가 없는 등의 문제가 생겨서 결국 좀더 '실용적인' 차로 바꾸기로 결정하고 차를 구입했습니다. 어제 퇴근 길에 딜러로부터 모든 서류 처리가 끝났다고 연락이 와서 오늘 새로운 차를 받으러 갑니다. 물론 이번에 갈아타는 녀석도 7년된 중고 입니다만 운행 거리도 로드스터의 1/4 이고 제가 발품 팔아 움직인 범위내에선 가장 싸게 구한 녀석입니다.

여건이 된다면 2대를 같이 굴리고 싶지만 경차가 아닌 이상 일본에서 절대 피할수 없는 '차고지' 문제 때문에 2대를 굴리기가 현실적으로 여렵기 때문에 로드스터를 넘기게 되었습니다. 주차장 임대료도 비쌀뿐더러 제가 사는 동네가 나름 오래된 동네라서 새로운 신축 주택이 들어서기 전까진 신규 주차장이 없는 동네라 (그리고 대부분의 신규 주차장은 신축 주택 임대인들이 우선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외부인은 접근하기 힘들죠.) 예전에 시골에 살땐 회사차랑 로드스터 2대분의 주차장 임대료가 지금 빌리고 있는 1대분의 주차장 임대료의 절반 정도 였고 잘 찾아보면 2대까진 임대료 없이 무상제공 해주는곳도 있었는데 역시 도시의 인심은 야박하군요.ㅋㅋ

제일 아쉬운것은 애차를 파시는 모든 분들이 공감 하실 차량의 '가치 인정' 일겁니다. 저도 제 생각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넘기게 되었네요. 오너의 들인 정성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 딜러의 무정한 가격제시... 전 제 로드스터가 가진 핸디캡 즉 연식과 주행거리의 문제와 협상술 부족 탓에 차량 구입가격의 1/4 선으로 합의를 봤습니다. 그래봤자 자잘하게 남은 금액을 털어버려 계산하기 편하게 만드는 용도 밖에 되질 못했네요.

이제 모든 건 끝이 났고 남은건 로드스터를 잘 보내고 새로운 녀석을 무사히 데리고 오는 건데 마지막까지 로드스터가 잘 따라 줬으면 하네요. 마지막에 자길 판다고 투정부리면 대책이 없어서요. 솔직히 예전엔 자동차를 그냥 기계로만 봤었는데 이녀석을 타고 다니면서 가끔 이녀석이 보여준 행동들이 기계라기 보다는 살아 숨쉬는 생명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때가 많아서요.

그래도 마지막으로 기쁜 것은 제 손으로 폐차 시키는 일은 하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그리고 저보다 더 좋은 새 주인을 만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