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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는 중력의 영향을 받는 환경에서 무거운 물체를 단단한 지면 위에서 옮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너무나도 단순하고 명백한 개념이라 그것이 발명품이라는 사실을 잊곤 한다. 바퀴는 문명에도 혁명적인 영향을 끼쳤다. 1950년 시작된 F1도 예외는 아니었다.
60년대 전반에 파이어스톤이 잠시 활동했으나 던롭 원메이크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후반으로 들어서 굿이어의 등장과 파이어스톤 재진입으로 장기집권이 깨졌다. 1966년 엔진이 1.5ℓ에서 3.0ℓ로 바뀌자 엔진 파워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타이어가 급격히 뚱뚱해지고, 앞바퀴와 뒷바퀴의 크기도 달라졌다.
80년대 들어 페라리와 르노를 앞세운 미쉐린은 무한질주를 펼쳤다. 한데 85년에 미쉐린이 예고 없이 F1에서 철수해 굿이어의 독주시대가 계속되었다. 89년부터 3년간 다시 뛴 피렐리를 누르기 위해 굿이어는 예선전용 타이어를 만들게 된다. 이에 피렐리는 한 번 사용해 트레드가 벗겨지면 안쪽 트레드로 다시 한 번 쓸 수 있는 전법으로 맞섰다. 이런 노력에도 피렐리는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F1에서 철수했다. 이후 90년대 중반까지는 굿이어 원메이크 시대였다.
하지만 2001년에 미쉐린이 참여해 바퀴 싸움은 다시 2체제가 되었다. 최강팀 페라리의 파트너인 브리지스톤이 약간 우위에 있었지만 미쉐린은 복귀 첫해 윌리엄즈를 파트너로 4승을 올리면서 주목을 받았다. 미쉐린은 빠른 속도로 F1 무대에 적응해 나갔고 성적도 상승세를 보였다. 이후 두 회사는 치열한 자존심 대결을 펼쳤다. 그 결과, 2005년 시즌까지 브리지스톤이 95승, 미쉐린은 93승을 거두었다.
르노가 개막 3연승을 거둬 미쉐린은 전세를 역전시켰다. M. 슈마허의 앞세운 페라리의 추격도 만만치 않았다. 산마리노와 유럽 그랑프리를 휘어잡아 브리지스톤이 97승으로 다시 앞서 나갔다.
2007년부터 F1에서는 타이어 경쟁이 없었다. 미쉐린이 철수해서 브리지스톤이 독점했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은 이로써 드라이버들 간의 경쟁에 또 다른 기술적 불균형이 없어졌다며 잘된 일이라 했다. 다른 이들은 이를 다르게 바라보았다. 공학적 우수성을 자랑으로 여기던 스포츠계에서 또 하나의 기술적 도전 부문이 빠지게 되었다는 의미에서다.
그랑프리 승자나 패자 모두 브리지스톤을 사용했다. 따라서 승리에 대한 브리지스톤의 공헌이 보도대상이 될 경우는 거의 없었다. 반면 타이어에 문제라도 생기면 경기 관계자들의 검토대상이 됐고, 이내 매스컴을 탔다. 예컨대 미쉐린과의 타이어 경쟁에서 승리했을 때 타이어 공급업체로서 절정에 도달했었다. 그 뒤 내리막길에 들어선 것이다.
한편 금호와 한국타이어도 중요한 글로벌 마케팅 기회로 F1 공식 타이어 입성을 노릴 가능성이 있다. 전남 영암에서 F1 그랑프리가 개최된 상황으로 볼 때, F1과 계약을 맺는 것은 두 회사 모두에게 필연적인 단계가 될 전망이다. 다만 전반적인 현실을 고려할 때 금호와 한국타이어의 F1 진출은 다소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60년대 전반에 파이어스톤이 잠시 활동했으나 던롭 원메이크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후반으로 들어서 굿이어의 등장과 파이어스톤 재진입으로 장기집권이 깨졌다. 1966년 엔진이 1.5ℓ에서 3.0ℓ로 바뀌자 엔진 파워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타이어가 급격히 뚱뚱해지고, 앞바퀴와 뒷바퀴의 크기도 달라졌다.
80년대 들어 페라리와 르노를 앞세운 미쉐린은 무한질주를 펼쳤다. 한데 85년에 미쉐린이 예고 없이 F1에서 철수해 굿이어의 독주시대가 계속되었다. 89년부터 3년간 다시 뛴 피렐리를 누르기 위해 굿이어는 예선전용 타이어를 만들게 된다. 이에 피렐리는 한 번 사용해 트레드가 벗겨지면 안쪽 트레드로 다시 한 번 쓸 수 있는 전법으로 맞섰다. 이런 노력에도 피렐리는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F1에서 철수했다. 이후 90년대 중반까지는 굿이어 원메이크 시대였다.
하지만 2001년에 미쉐린이 참여해 바퀴 싸움은 다시 2체제가 되었다. 최강팀 페라리의 파트너인 브리지스톤이 약간 우위에 있었지만 미쉐린은 복귀 첫해 윌리엄즈를 파트너로 4승을 올리면서 주목을 받았다. 미쉐린은 빠른 속도로 F1 무대에 적응해 나갔고 성적도 상승세를 보였다. 이후 두 회사는 치열한 자존심 대결을 펼쳤다. 그 결과, 2005년 시즌까지 브리지스톤이 95승, 미쉐린은 93승을 거두었다.
르노가 개막 3연승을 거둬 미쉐린은 전세를 역전시켰다. M. 슈마허의 앞세운 페라리의 추격도 만만치 않았다. 산마리노와 유럽 그랑프리를 휘어잡아 브리지스톤이 97승으로 다시 앞서 나갔다.
2007년부터 F1에서는 타이어 경쟁이 없었다. 미쉐린이 철수해서 브리지스톤이 독점했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은 이로써 드라이버들 간의 경쟁에 또 다른 기술적 불균형이 없어졌다며 잘된 일이라 했다. 다른 이들은 이를 다르게 바라보았다. 공학적 우수성을 자랑으로 여기던 스포츠계에서 또 하나의 기술적 도전 부문이 빠지게 되었다는 의미에서다.
그랑프리 승자나 패자 모두 브리지스톤을 사용했다. 따라서 승리에 대한 브리지스톤의 공헌이 보도대상이 될 경우는 거의 없었다. 반면 타이어에 문제라도 생기면 경기 관계자들의 검토대상이 됐고, 이내 매스컴을 탔다. 예컨대 미쉐린과의 타이어 경쟁에서 승리했을 때 타이어 공급업체로서 절정에 도달했었다. 그 뒤 내리막길에 들어선 것이다.
한편 금호와 한국타이어도 중요한 글로벌 마케팅 기회로 F1 공식 타이어 입성을 노릴 가능성이 있다. 전남 영암에서 F1 그랑프리가 개최된 상황으로 볼 때, F1과 계약을 맺는 것은 두 회사 모두에게 필연적인 단계가 될 전망이다. 다만 전반적인 현실을 고려할 때 금호와 한국타이어의 F1 진출은 다소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