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인사도 안한 눈팅회원입니다만 게시판에 처음 글을 남겨봅니다.

몇몇 자동차 관련 게시판에서 고속도로 1차로 정속주행 문제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을 봐왔는데요, 주로 논쟁의 초점이 차로이용에 대한 규정이나 제한속도 규정의 우선순위에 대한 문제로 맞추어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도로교통법의 어느 조항이 우선이냐의 관점보다는 왜 우리나라의 고속도로에서 많은 사람들이 추월차선에서 정속주행하(려는 경향을 보이)는지에 대해서 우리나라와 유럽의 차이점을 가지고 얘기해볼까 합니다.

참고로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제 일과 관련하여 운전자가 도로를 이용(또는 도로위를 주행)하는 행태에 관심을 가지고 보았던 자료들, 몇 번의 유럽출장시 고속도로 운전경험에서 관찰한 것들, 독일에서 장기거주한 사람으로부터 아우토반에 대해 들은 것들입니다. 

- 우측 추월 단속여부

독일을 비롯한 유럽국가에서는 우측추월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고, 주행하는 차량의 오른쪽으로 추월하다 단속에 걸리면 어김없이 범칙금이나 벌점 등을 부과받게 됩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주행하는 차량의 우측추월을 단속하는 고속도로 순찰대를 볼 수 없습니다. 유럽에서는 1차로에서 정속주행하다 전방에서 더 느리게 주행하는 차를 만나면 추월할 방법도 공간도 없는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운전자의 입장에서 1차로 정속주행이 2차로 정속주행보다 리스크가 크다고 보면 됩니다. 어찌보면 1차로로 주행하는 차량이 후행하는 더 빠른 차량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의무를 정하는 것이 쉬울 수 있겠지만, 법에서는 기본적으로 1차로를 달리고 있는 차를 오른쪽 하위차로의 차량을 추월하고 있는 차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규정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1차로에서 더 빠르게 주행하는 후행차량에게 양보한다는 개념보다 1차로에서 달리는 차는 신속하게 추월을 마치고 주행차로로 들어가야 한다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 차로변경중 사고시 과실판정

독일에서는 대부분의 차로변경시 사고원인을 주행차로(2차로)의 차량보다 추월중인(1차로에서 2차로로 변경하는) 차량의 과실로 본다고 합니다. 왼쪽에서 추월중인 차량이 오른쪽 차로로 진입할 때 주행차로의 차량으로부터 안전거리를 충분하게 확보해야 하는 의무는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차로변경중 사고시 대부분 쌍방과실로 판정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유럽에서는 추월중인 차량의 과실로 판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 차선그리기 방식

차로를 이용하는 규칙은 대체로 비슷하지만 유럽의 고속도로에서는 차선을 그리는 방식이 우리나라와 다릅니다. 예를 들어 편도 2차로에서 1차로로 줄어드는 구간이 있다고 하면 우리나라는 오른쪽의 차로부터 없어지는 형태로 차선을 그리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렇지만 유럽에서는 추월차로인 왼쪽의 1차로가 없어집니다. 또 다시 1차로에서 2차로로 늘어날 때에도 우리나라처럼 오른쪽에 2차로가 생기는 것이 아니고 왼쪽에 1차로가 생깁니다. 2차로 이상의 도로에서도 마찬가지이고 경사가 있는 구간이 길어질 때 생기는 오르막 차선이나 공사구간으로 차선 수가 바뀔 때에도 동일한 원칙이 적용됩니다.  저는 이런 차선그리기 방식이 우리나라의 많은 운전자들이 여러 가지 도로상황에서도 불확실성이 적은 1차로 주행을 고수하도록 조장하지 않았나 추측합니다. 여담으로 최근에 도로공사에서는 고속도로의 오르막 경사구간 초입부분에서 왼쪽의 차로를 추가하고 경사구간 끝부분에서 오른쪽의 차로를 없애는 방식으로 차선을 그려놓는데, 이것도 역시 애매한 방식인 것 같습니다.

쓰다보니 장문이 되었는데, 결국 우리나라 고속도로의 1차로에서 정속주행하는 운전자들이 많은 이유는 차로이용에 대한 규정을 적용하는 공권력이 실제적으로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물리적인 도로환경도 추월차로에서의 정속주행에 대한 운전자의 책임이나 위험부담을 크게 인식하지 못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1차로에서 정속주행하는 운전자들뿐만 아니라 도로교통법을 느슨하게 아니면 무책임하게 적용하는 경찰, 법규의 논리와 맞지 않는 모호한 방식으로 도로를 그리는 공공기관도 답답한 고속도로를 만드는 이들에 포함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