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제가 구입하고 타왔던 차는

Saab 9-3 2.0T automatic, 2008년형 (소유기간: 3일, 사고로 폐차)

Volvo S70 non-turbo, automatic, 2000년형 (소유기간: 아마 몇 개월... 현재 친구가 운전)

Volvo S60R, automatic, 2005년형 (소유기간: 아마 7개월. 실험실 동료에게 판매)

Saab 9-3 SE, manual, 2002년형 (지난 토요일에 구입. 소유기간 일주일)


볼보 S60R은 처음 구입할 때 오래 오래 타서 폐차할 때까지 타고 싶었고, 정말 마음에 드는 차였습니다. 정말 모든 면에서 완벽에 가까운 차였습니다.... 다만, 메뉴얼 모드에서 RPM을 가지고 놀기 시작하면서 점점 실제로 기어를 손으로 집어넣고 클러치 패달로 동력을 연결해주는 진정한 메뉴얼에 대한 갈증이 점점 커져갔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유튜브에서 보게 된 완간미드나이트 영화에서 닛산 240z나 구형 포르쉐, GT-R등을 멋지게 컨트롤하는 모습들을 보고 반한 것도 컸습니다. 결국 올해 중반이나 올해 말에 볼보 S60R 수동변속기 모델을 구입해야지 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다 제 실험실 동료가 차를 구하는 것을 도와주게 되었습니다. 남편이랑 아기랑 같이 가다가 사고가 나서 새로운 차를 구해야 했고, 제 권유로 볼보차를 찾게 되었습니다. 제 동료는 05년식 이상의 볼보 S60나 볼보 S80를 찾으려고 열심히 찾아 다녔습니다. 유승민님의 도움으로 많은 차량을 실제로 조회해보고 최적가격을 알아내 딜을 시도했고요. 그러나 딜은 쉽지 않았습니다. 일리노이의 Peoria도 가고 (이때는 저도 동행) Chicago도 가봤지만 결국 딜을 성사시키지 못하고 2008년식의 볼보 S60 2.5T가 마지막 남은 차라 그것을 사려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13,000이 넘는 가격에 올라온 차였는데 그것도 딜이 쉬워보이진 않았지만, 정말 그게 마지막 남은 차였습니다.


그걸 보자니 너무 안타까워서(T5도 아닌데 그 가격을 주고 사다니!) 차라리 제 차를 팔고 저는수동 변속기 차로 가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퍼득 났습니다. 그 전날, Chicago 크레이그리스트에 올라온 저 Saab 9-3를 보고는, 정말 별 생각 없이 심심한 마음에 (사겠다는 마음 < 10%) 전화를 했는데, 마침 이 사브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그 이틀 후엔가 차를 팔았습니다.

차를 파는 동기의 발생 --> 판매

까지가 거의 2일 만에 이뤄졌으니, 초고속으로 결정이 난 것입니다.  충동판매라 하겠습니다.

어차피 제 동료는 제가 제 차를 어떻게 관리했는지 알고 있었고, 차 상태가 얼마나 좋은지도 알았습니다. (시카고에 동료 부부가 차 보러 갈 때 제 차를 빌려줬거든요. 이틀동안 시카고에서 차를 보았습니다.)

제 동료는 참 많이도 놀랐습니다만 (제가 차를 팔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을 것이고...저도 사실 생각도 못 하던 일이라)

제 가 제시한 가격에서 흥정조차 시도하지 않고 차를 사가는 것을 보면서, 제가 갖고 있던 여러 악세사리도 같이 주었습니다. 어차피 제가 딜러가 아니니 제가 들은 비용에 비하면 많은 손해를 보고 파는 것이긴 한데... 감가상각을 고려하면 저나 동료에게도 fair한 딜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제가 제 차를 작년 중반에 9200달러에 구입했고, 여기서 감가상각과 여러가지를 합쳐 1400달러를 깎았습니다. 그리고 제 주요 정비/교체 비용(타이밍벨트, 휠 4개 등)의 50%를 부담시키는 것으로 하여
$9200 - $1400 + 0.5*$3748.52 = $9680

에 팔았습니다.


그리고는 약 1주일 후 시카고에서 저 사브를 구입해왔습니다. 고작 $3000에 구입했습니다.


구입할 때 보니 역시 온갖 음해...가 아니고 문제에 시달리는 차이기는 했습니다만, 다행이

-->엔진 슬러지는 심각해보이지 않았고, 엔진오일도 깨끗

-->check engine 등의 이상 신호는 전혀 없고

-->수동변속기 상태 매우 좋음

-->외관상 깔끔하고 바닥 녹도 별로 없어 (나중에 알고보니 전혀 지장없는 부분들)


구입해았습니다.


물론 문제들은 많았습니다.

-->타이어 4개 조만간 교체해야 하고, 앞 브레이크 로터들도 교체해야 하며

-->왼쪽 뒷 유리창 안 내려가고

-->컵 홀더 작동 안 하고

-->온도 센서에서 소음

-->SID 일부 픽셀 나가 있고 (그 조그만 LCD창)

-->직진시 스티어링 휠에 중앙에서 약간 틀어짐(얼라이먼트 잡을 때 수리예정)


등등입니다만, 이 문제들 다들 해결방법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시 카고에서 샴페인까지 사브를 가져오기 전 수동운전이라곤 학교 선배에게서 주차장에서 배운 것이 거의 전부인데다, 그 마저도 아마 3단 기어 이상으로 기어를 안 올려봤습니다. 이 상황에서 덜컥 차를 구입하고 가져오려니 걱정에 태산같았습니다. 가뜩이나 마침 두 사람이나 더 픽업하고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라, 돌아오는 길에 차가 퍼지면 큰일날 상황이었습니다.


게 다가 차를 샀는데 이미 연료계에 불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기름을 넣어야 하는데 시동을 걸고 출발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시동을 수없이 많이 꺼먹고 나니 과연 주유소에(고작 1km도 안 되는 거리에 있었던) 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걱정이 홍수처럼 닥쳤습니다. 겨우 겨우 차를 출발시키고 마침내 주유소에 도착해서 고급유를 가득 주유하던 순간의 희열은 굉장했습니다...^^


그 런데 상황이 다급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이렇게 차를 몰면서 수동차를 모는 실력이 급상승했습니다. 시카고의 고속도로에서 설날 한국 차 막히듯 차 막히고 차들이 가다 섰다를 하는 상황에서도 별 문제 없이 차를 몰 수 있었습니다. 교차로에서 시동 꺼먹고 아찔한 순간들도 있었지만 나중에는 훨씬 자신있게 운전했습니다.


고속도로 운전 질감은 훌륭했습니다. 비록 사륜구동 S60R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사브는 10년이 지나도 사브다.. 싶었습니다. 미끄러지듯 달려가는 그 느낌! 고속으로 갈수록 사람을 더 부추기는 그.... 아무튼 절제력이 필요한 차였습니다.

일단 제가 사는 타운(샴페인)에 도착하고는 며칠 후 샵에 차를 맡겼습니다. 각종 문제와, 타운에 도착하고야 켜졌던 check engine도 해결하려고 말입니다. 원래는 볼보 S60R 수동 매물을 구하기가 워낙 힘들어, 썩어가는 차를 사서 수동 운전을 연습하려고 산 Saab인데, 타면 탈 수록 마음에 듭니다. 마치 입기 전엔 몰랐는데, 입고보니 몸에 잘 맞는 옷 같다고 할까요. 수수한 인테리어도 정감있게 여겨지고, 절묘한 각도로  떨어지는 해치백의 라인도 바디킷 두른 볼보 S60R의 아름답고 강인한 라인 못지 않고 멋져보입니다.


300마력의 S60R

205마력의 9-3 SE


AWD의 S60R

FWD의 9-3SE


13개 스피커가 달린 Dynaudio 의 S60R (무서워서 한 번도 최고볼륨으로 틀어보지 못한..)

아무래도 부족한 오디오의 9-3SE


거대한 브렘보 브레이크의 S60R

초라해보이는 자그만 브레이크의 9-3SE


18'' Wheel의 S60R

16'' wheel의 9-3SE


그 밖에 여러 면에서 S60R은 압도적으로 앞섭니다. ECM 룸미러, 추운 날도 잘 보이는 사이드 미러들, 에어로다이나믹스, 앞으로 젖혀지는 뒷좌석 헤드레스트... 등등


이 성적으로 생각하면, 그간 많은 노력과 돈을 들여 거의 완벽에 가깝게 관리한 볼보 S60R을 많은 손해를 감수하고 팔고, 3000달러의 수동변속기 차로 온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 아닐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가정을 갖춘 유부남은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아마도 싱글의 특권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고작 3000달러 짜리 차라고 생각하기엔 사브 9-3는 참 많은 매력을 주네요. 여전히 쌩쌩한 열선 가죽시트, 메모리 시트에 양쪽 다 전동시트고, 오디오 생각만큼 최악은 아니고, 트렁크 공간 광활하고... 하지만 뭣보다 수동 변속기 정말 재미있습니다!! 이런 재미있는 세상이 있었나 싶어 며칠간 웃음이 떠나질 않았네요. 앞으로 차를 바꾸더라도 자동변속기 차로는 다시 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말입니다. 기어 변속하는 그 손맛... 클러치를 미트 시킬 때의 긴장감 (속도 0의 영역의 긴장감이 과거 S0R로 고속도로 풀가속할 때 긴장감에 맞먹는) 


그래서 다시 한 번! 이전 S60R에 쏟았던 만큼의 정성을 쏟아 보려 합니다. 가능한 고칠 수 있는 것은 다 고치고, 최적의 상태로 회복을 시켜 보려 합니다.


참 그러고 보면 한국에서 사브 타시는 분들의 처지가 안타깝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 재미있는 수동변속기 차를 구입할 수 없다니 말입니다. 물론 사브의 그 직빨도 좋고, 고속 안정성과 코너링 성능도 좋지만.... RPM을 원하는 시점에 "즉각적으로" 통제하여 차와 대화한다는 것은 자동 변속기 차로는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Rev Matching을 완벽하게 했을 때 차가 튀어나가는 느낌 등도 그렇고 말이죠... 이것은 제가 미국에 있는 동안 누릴 수 있는 한 특권인 것 같습니다. 


사브가 사정이 많이 안 좋은데, 부디 스웨덴 트롤하탄의 공장이 다시 힘차게 가동하여 많은 사브 차들이 다시 나왔으면 하네요. 그 중에는 제 드림카인 사브 9-3의 신형 수동모델도 있도록 말이죠... 


참, 제 S60R은 여전히 자주 봅니다. 제 동료에게 이 차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자세히 알려줬고,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도와주겠다고 했으니까 말이죠. 뒷좌석에 항시 설치되어있는 카시트를 보면서 참 묘한 느낌도 납니다. S60R과 카시트... 이 왠지 잘 안 어울리는 느낌이랄까요^^


한편 제 동료 남편은 좀 낫지만 제 동료는 아직 운전 실력이 김여사 수준인데, 차 긁지 않고 조심히 타되, 연습 많이 하도록 조언을 주었습니다. S60R이 긁히면 제 마음도 긁힐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