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중순 즈음 6년간 함께했던 뉴프라이드 1.6 CVVT 모델을 불의의 사고로 폐차하게 되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드물다는 뉴프라이드 가솔린 모델, 그것도 매뉴얼...... . 그래도 6년 동안 저에게는 행복과 즐거움, 그리고 이름처럼 자존심같은 존재 였습니다만, 그런 애마를 한 순간의 사고로 폐차하고 났더니 가슴에 큰 구멍이 뚫린 듯 했습니다. 밥맛도 없고, 의욕상실에, 심지어 자다가도 벌떡 깨고, 지나가는 뉴프라이드만 봐도 가슴이 시리고 그러더군요. 마치 많이 사랑한 애인과 결별하고 난 사람같은 마음 이었습니다.

 

사고 나면서 앞, 뒤로 대파가 나는 과정에서도 에어백은 터지지도 않고, 심지어 운전석 시트벨트까지 풀려버렸지만, 6년간 제 몸보다 더 신경쓰고 아껴줬던 정성 탓인지 어디 한 군데 긁힌 곳도 없이 운전석 문을 열고 걸어 나왔습니다. 하필 문까지 딱 운전석 문만 열리더군요.

 

그리고 어쨌거나 차는 다시 장만해야 할 듯 해서 이번에는 와이프가 그 동안 애타게 바랬던 것과 같이 준중형 이상, 편안한 승차감, 오토매틱, 유모차를 한 번에 넣을 수 있는 트렁크 공간을 가진 차를 찾기 시작 했습니다. 참 여러가지 다양한 차종, 중고차 부터 신차, 심지어 국산차부터 외제차까지 별의 별 차를 다 봐도 딱 마음에 와닿는 차가 없더군요. 그래서 적당한 가격선에 나온 SM5나 SM7 중고차가 있으면 그걸 타야겠다 하고 생각을 마무리 하던 중에 뜬금없이(?) 그간 후보에 올리지도 않았던 차를 덥썩 계약해 버렸습니다. 바로 30~40대 유부남들의 슈퍼세단이라 하는 K5 2.0 T-GDI 였습니다.

 

사실 기아자동차 전시장에 간 것도 다름아닌 스포티지 R 디젤 모델의 견적을 받으러 간 것인데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자 스포티지는 보지도 않고 K5 전시차만 여기저기 들여다 보다가, 막상 계약서는 T-GDI로 쓰고 있는 제 모습이 스스로도 황당할 정도 였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계약 당시가  2012년 2월 말 정도 였는데 당장 판매하고 있는 차량은 2013년형 모델이더군요. 그나마 딱 연식이 변경되는 시점이었던 탓인지 영업사원분도 처음에 2012년 모델을 가지고 설명하시다가 계약서 쓸 즈음에서야 2013년 가격표를 황급히 다시 가져오셔서 다시 설명을 시작 하셨습니다. 보아하니 2013년형은 오히려 제가 하고 싶은 옵션을 프레스티지 등급에서는 넣을 수가 없게끔 되어 있더군요. 그래서 재고이긴 하지만 2012년식 프레스티지 모델에 순정 내비게이션만 빼고 다 넣은 모델로 선택 했습니다. 디멘젼 오디오 시스템, 그리고 전자식 파킹 브레이크, 동승석 통풍시트 옵션 때문에 상위 모델인 노블레스를 할까도 생각 했습니다만, 스티어링휠에 우드 트림이 들어간다는 점 때문에 포기 했습니다. 안그래도 우드 그레인 싫어하는데 말이죠...... .

 

그리고 역시 뭔가에 홀린 듯 정신없이 이것저것 준비해서 일사천리로 이번 주 월요일 차를 인도 받았습니다. 원래 인도 받을 때 여기저기 이상 없는지 매의 눈으로 살펴봐야 하는데 말 그대로 '덥석' 차를 받아서 그 길로 선팅업체로 차를 넣었습니다. 네비게이션 매립, 후방카메라, 블랙박스, 선팅...... . 매번 고객 출고차에만 비싼 선팅을 해드리다가 이번에는 제 차도 선팅 좀 좋은 것으로 제대로 넣었습니다. 그리고 선팅 작업 맏기면서 색다른 주문을 하나 했습니다. '뒤에 엠블렘들 꼭 떼주세요' 라고요. 선팅업체에서도 의아해 하더군요. K5 엠블렘이야 그렇다 하지만, T-GDI 엠블렘은 남들은 사서도 붙이는데 왜 떼어 내는지요. 겉으로는 왁스칠 할 때 걸리적 거린다는 핑계였지만, 핑계는 말 그대로 핑계일 뿐 이죠. 이참에 뒷범퍼도 2.0 처럼 바꾸고 싱글로 돌려놓고, 트렁크 리드의 스포일러까지 제거하면 완벽한 2.0 모델의 뒷태로 바뀔테지만 그건 좀 아니다 싶어서 엠블렘만 없앴습니다.

 

그렇게 하루 저녁을 또 업체에 맏겨 놓으니 다음 날 오전까지 일이 손에 잡히지가 않더군요. 빨리 받아서 타보고 싶은데 뭘 해도 마음은 콩밭이고, 넋이 반 쯤 나간 것 처럼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 출근도장 찍고, 조회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선팅업체로 달려가서 차를 받아왔습니다.

 

네비게이션은 아이나비의 R100 알파라는 제품인데 다른 기능은 다 그럭저럭 괜찮은 듯 합니다만, 순정 오디오와의 연동 부분이 영 불편합니다. 눈뜨고 보기 불편한(?) 디자인, 오작동, 느린 반응...... . 하나씩 차종별로 개선된 펌웨어가 나오는 중이라고 하니 더 기다려 봐야 할 듯 합니다.

 

그 길로 달려간 곳은 파주 쪽에 위치한 한 업체였습니다. K5 2.0 T-GDI는 수출 모델의 경우 패들 쉬프트가 장착되어 나옵니다만, 내수 모델에는 그게 없습니다. 더욱이 일부 업체의 경우 YF소나타의 배선을 추가해 D모드에서 패들만 건드려도 바로 작동하는 반면, K5는 그렇게까지 해주는 업체가 적거나, 알아서 배선을 구입해 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다행이 제가 의뢰한 업체에서는 자체적으로 배선을 연결해서 해결하고 계시더군요. 그렇게 해서 패들 쉬프트도 깔끔하게 잘 장착 했습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서초동에 위치한 단골 타이어 전문점으로 이동, 차량 스펙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출고용 타이어를 바로 벗겨내고 요코하마 어드반 스포츠 V103으로 교체했습니다. 다행이 순정 불판휠에 사이즈 딱 맞게 잘 들어갑니다. 보통은 순정휠들이 림폭이 좁아서 UHP 타이어를 장착하는 경우 사이드월이 풍선처럼 불룩해지는 경향이 좀 있어 걱정했는데 깔끔하게 잘 장착 되었습니다.

 

이어 어제는 용인 룩손에 방문, 프론트 휀다 보강킷, 스트럿바, 리어 언더바까지 세팅하고 왔습니다. 늘 생각하는 부분이지만 룩손킷은 가격대비 성능이 정말 엄청난 제품이라 생각 합니다. 지난 번 뉴프라이드 때도 보강킷 덕을 여러모로 많이 봤고, 마지막 사고의 순간에도 보강킷을 풀세트로 했던 덕분에 그나마 잘 버텨줘서 제가 안 다치고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공업사에서도 차를 보시고 인정하셨던 부분 이고요.

 

그 외에도 흡기필터를 itg 순정형 필터로 교체했는데 배기량이 커지는 탓인지 뉴프라이드에 들어가던 사이즈의 2배 크기더군요. 다만 에어필터 박스가 완전히 분리되지 않고, 조개처럼 살짝 벌려서 필터를 넣고 빼는 구조라서 熊手가 간만에 고생 좀 했습니다.

 

이제 남은 작업은 브레이크 업그레이드인데 이것도 아마 다음 주 정도에 작업을 진행하게 될 듯 합니다. 그러고 나면 길들이기 봉인 해제 후 각종 오일 교환만 하고 '순정 그대로' 타려고 합니다. 가족을 먼저 생각해서 (과연...) 고른 차량이고, 기본적으로 이것저것 편의장비나 기본기가 마음에 드니 굳이 손을 댈 부분도 없는 것 같습니다. 2006년식 소형차를 타다가 2012년식 중형차를 타니 각종 편의장비나 실내공간이 제게는 마치 신세계 같기만 합니다. 종종 가족용으로 빌려와서 타던 2011년식 캠리와도 또 다르네요.

 

물론 와이프는 캠리의 푹신푹신한 승차감이 더 좋다고 합니다만, 저는 K5의 단단한 느낌이 딱 취향에 맞습니다. 어제 보강킷까지 해놓고 났더니 서스펜션에 대한 지름신이 정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군요. 오히려 제가 그 동안 별의 별 조합, 별의 별 제품들로 얻고자 했던 세팅의 그 느낌이 순정 서스펜션에서 해답이 나오니 허탈할 지경입니다. 물론 순정답게 주먹 하나가 들락날락하는 휠하우스와 타이어 사이의 갭은 조금 안타깝습니다만, 휠도 순정 불판휠을 유지할 생각이라 눈 딱 감고 못 본 척 하면 됩니다. 또 그걸 위해서 지금의 좋은 느낌을 망치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아무튼 여차저차해서 오늘 아침 출근길까지 400km를 탔습니다. 지금은 뭘 해도 다 이쁜 저희 딸내미들처럼 다른 부분들도 다 마음에 들지만 꾸준히 10km/L를 상회하는 연비가 당장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입니다. 예전에 타던 뉴프라이드는 정말 마음 비우고 악착같이 노력해야 평균연비를 11km/L 정도를 찍었건만, K5는 도로흐름에 잘 따라 다니면서도 연비가 저 만큼 나와주니 기특하기까지 합니다. 물론 봉인 해제 후의 연비는...... . 타기 나름이겠죠.

 

그래도 아직은 제 몸에 딱 맞는 듯 완벽하게 익숙해지지도 못했고, 주차할 때는 이전에 타던 차에 비해서 훨씬 커진 듯 해서 문콕 피하려고 최대한 옆으로 붙이고도 불안한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아마 길들이기란 것이 이런 어색함을 하나씩 몸에 익혀 나가는 과정이 더 크겠죠?

 

앞으로 오랫동안 제게 즐거움과 자부심을 주는 소중한 존재로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