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하루하루 추워지면서 달릴 수 있는 시간도 얼마 안남아가면서 살짝 서글퍼지네요. 이번에도 나름 재미있는 주제라 생각되는 서킷과 공도 주행에 대해서 끄적여봤습니다. 저번 글과 마찬가지로 어느 무엇이 우위에 있느냐가 아닌 각각이 가지는 특징과 선호의 문제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원문 : http://blog.naver.com/che137/60173161694

 

 

  스포츠 주행에 먼저 입문한 선배는 입문자에게 스포츠 주행을 익히려면 서킷을 가보라고 조언한다. 맞는 말이다. 서킷만큼 안전한 곳이 없다. 넓은 도로 폭과 도로를 벗어나도 차를 받아주는 안전지대, 일정한 노면 상태, 대항차가 없는 일방통행 덕분에 공공도로에서 시도하기 어려운 차의 다양한 움직임을 시도해 볼 수 있고 실패하더라도 마진이 커서 사고의 위험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차의 한계를 넘어가는 순간을 자주 경험함으로써 차의 한계를 파악하기 좋다. 또한 과속과 난폭 운전이라는 법의 잣대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있을 뿐 아니라 되려 빠를수록 인정받는 곳이다. 게다가 티비나 관중석에서 보던 레이싱카가 달리던 코스를 직접 내 차로 달릴 때의 스릴은 마치 레이싱 선수가 된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한다. 랩타임과 주행영상을 기록하거나 드리프트 박스와 같은 장비를 통해 주행을 비교, 분석하여 실력향상을 도모할 수도 있다.  

 

  반면에 공공도로는 서킷과 비교하면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다. 서킷처럼 항상 동일한 코스를 달리는 것도 아니요, 도로폭이 넓지도 않으며, 달리는 도로의 모든 노면 상황을 미리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인적이 드문 산길을 달려도 가끔씩 신호등도 나타나고, 사람이나 동물이 횡단하기도 하고, 심지어 예측하지 못한 대항차의 평범하지 않은 주행에 깜짝 놀랄 수도 있다. 공공질서에 대한 도의적 책임감을 가지고서 일반 차량에 피해를 안주려면 결국 교통량이 드문 시간대인 아침 일찍, 혹은 저녁 늦게 달릴 수 밖에 없다. 모처럼 주말에 늦잠 자고픈 피곤한 현대인에게 새벽 주행은 가혹한 조건일수도 있고, 도시인은 밝은 조명의 도로에 익숙해서 가로등마저 없는 산길이 한치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는 답답하고 무서울 곳일 수도 있다. 어쩌다 사고라고 나게 되면 서킷에 쓸 돈 몇 푼 아끼려고 와인딩 했다가 더 큰 손해를 본 것 같은 생각마저 들게 된다.  

 

  이런 이유로 서킷에서 충분히 기본기를 다지고서 후에 와인딩을 즐겨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운전자가 꽤 많다. 하지만 서킷 주행이 반복될수록 어느샌가 공공도로는 스포츠 주행을 하기에 위험천만한 장소로 보여 서킷이 아니면 달리지 못하는 운전자가 되어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사실 그런 운전자들이 서킷에서 수없이 달리면서 쌓은 기량은 서킷에서만 통하는 운전기술을 키우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처음 서킷을 들어섰을 때의 목표는 운전실력을 키우는 것이었다. 서킷에서만 빠른 운전자이고픈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많은 자동차 광고에서 어필하듯이 아름다운 경치가 있는 공공도로에서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모습이 사람들의 가슴 속에 깊이 색인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스피드나 차의 한계를 넘나드는 주행 그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만족한다면 서킷으로 충분할지 모른다. 하지만 필자는 많은 운전자가 열심히 쌓은 기량을 실생활에서 활용하지 못하고 서킷에 갇혀 있는 것이 아깝다고 느낀다. 서킷에서 쌓은 기본기를 바탕으로 공공도로에 필요한 부분을 좀더 보충하면 어디를 가던지 능숙하게 달릴 수 있는 운전자가 되어 생활 속의 스포츠 주행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미국이나 호주, 캐나다와는 달리 한국은 국토의 70%가 산이라 와인딩하기 좋은 산길이 전국에 있다. 소소하게는 뒷동산같은 작은 코스에서부터 크게는 십여분 이상 달릴 수 있는 코스도 있다. 이러한 도로는 아름다운 경치와 맑은 공기를 자랑하며, 계절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드러낸다. 각 지역마다 다양한 모습의 코스가 존재하며, 고속도로를 고집하지 않고 국도를 이용한다면 특정 코스로 가는 여정 또한 서킷과는 달리 훌륭한 드라이빙 코스가 된다. 한마디로 도시를 벗어나면 (서울로 치면 경기도를 벗어나면) 그 때부터 드라이빙이 시작되는 것이다. 황량한 서킷을 오가는 길이 지루한 것(태백의 경우 국도를 이용하면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지만 서킷과 와인딩을 모두 즐기기엔 체력적인 부담도 만만치 않다)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게다가 대회, 행사 등의 스케쥴에 제약을 받는 서킷과는 달리 이용시각에 대한 구애를 받지 않아 교통량이 드문 시각이라면 언제든지 즐길 수 있다.

 

  서킷에서만 스포츠 주행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면 현실적으로 많은 제약이 뒤따른다. 일단 서킷을 이용하기 위해서 라이센스를 따야 하고 그 유지 비용이 뒤따른다. 영암이나 태백과 같은 공식적인 서킷은 당일치기로 다녀오기엔 상당히 거리가 멀다. 안산과 같은 비공식 서킷도 있지만 도로 주변이 안좋아서 트랙 이탈 시에 차가 받는 손상이 상당히 큰 편이다. 용인은 당분간 개방 여부가 불투명하고, 인제는 아직 미준공 상태다. 게다가 서킷에서는 차를 극한까지 몰기 때문에 타이어와 브레이크 등의 소모량이 상당한 편이다. 열심히 타고 오면 하루 만에 소비해 버린다. 그 밖에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차체의 강성 약화와 미션, 엔진 등의 부담도 와인딩보다 상당한 편이다.

 

  몇 개 되지도 않는 서킷인데다가 동일 코스를 2분 내에 한바퀴씩 돌다보면 반나절만 타도 몇십 바퀴를 돌게 되는데, 필자는 이런 반복 주행에 금방 지겨움을 느끼곤 한다. 처음 스포츠 주행에 입문해서 운전을 익히고 차를 알아나가면서 랩타임을 단축할 때에는 순간순간이 즐겁지만 어느 이상의 궤도에 오르면 랩타임을 줄이기가 극히 어려워지며 점점 하드코어한 주행을 견디기 위해 차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타차량과 함께 섞여서 레이싱을 벌이면 와인딩에서 맛볼 수 없는 짜릿함이 있지만, 레이싱 대회가 아닌 일반 주행에서는 이런 경우가 극히 드물다. 혹자는 '그럼 레이싱용 차를 만들어서 즐기면 되는 것 아니냐'라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레이싱카를 하나 만드는 것은 많은 노력과 시간, 그리고 돈이 요구되며, 결정적으로 오직 서킷만을 위한 차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생긴다. 물론 세팅에 따라서는 공도에서도 타기 용이한 상태도 만들 수 있겠지만, 결국 공도에서 자주 즐기기엔 다소 피곤한 차가 될 가능성이 높다. 어느샌가 평소에 부담없이 즐기기 보다는 서킷과 레이싱을 위한 하드코어한 생활로 바뀐다. 서킷용으로 차를 튜닝하다보면 공공도로에서 주행할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어, 자동차 생활이 서킷에 얽매여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고민은 차를 여러 대 두고 놀 수 있을 정도로 돈만 많으면 고민할 필요가 없는 문제다). 게다가 서킷은 차의 성능이 크게 좌우하는 곳이라 실력 뿐만이 아니라 차의 성능에 따라 빠르기도 차이가 크게 난다. 따라서 좀더 고성능 차에 대한 욕심도 생기기 마련이다. 이러다보면 과연 즐겁자고 시작한 취미가 돈에 의해서 즐거움이 좌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기도 한다.

  

  게다가 공공도로에서 주행할 때의 난해함을 기피하고 서킷 특유의 절대적 안정감에 익숙해지면 운전 실력에 맹점이 생기기 쉽다.

 

  마진이 큰 서킷에서는 차가 한계를 넘어서도 크게 위험해지지 않는다. 서킷 주행에만 익숙한 사람들의 대표적인 주행 습관 중 하나는 타이어 의존도가 높다는 것이다. 이들은 타이어를 혹사시키는 운전습관이 몸에 베어버렸다. 주행 중간에 타이어가 그립을 잃어 조작이 불가능한 상황을 종종 발생시키지만 어짜피 마진이 크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그립이 회복하기를 기다리면 별 문제가 안된다. 따라서 그립의 여유를 남겨두고 주행하는 것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기 어렵다. 게다가 차의 거동이 완전히 무너져 파탄나더라도 이것을 받아줄 공간이 많다. 결국 이러한 운전에 익숙해진 운전자는 마진이 적은 공공도로에서 운전에 어려움을 느끼고 당황하기 마련이다. 예측하기 어려운 순간에 대비하여 일정한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그립을 운영하는 능력은 장시간 경주하는 레이싱 선수가 아니고서는 쉽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대표적인 아마추어 레이싱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여러 운전자들이 필요 이상으로 타이어에 의존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서킷에서 길러지지 않는 또다른 부분은 다양한 순간에 직면하였을 때, 순간적으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판단력이다. 모르는 코스를 달리는 경우가 많아 다양한 라인 구사, 최대한 빠르면서도 마진을 남겨둔 코너 진입 속도의 판단, 앞에 펼쳐질 도로에 대한 예측, 주변 차량을 추월하는 방법, 다양한 노면에서의 대처 등은 서킷이 운전자에게 던지지 않는 수많은 과제다. 공공도로에서는 상당히 변칙적이고 융통성 있는 사고가 필요하다. 밤에는 라이트로만 보이는 도로의 윤곽을 보면서 코스를 이미지화하여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빛이 반사되는 사물을 십분 이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한 넓은 시야의 필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것은 밝은 조명의 도로에서 바로 앞에 있는 차 따라가는데 익숙한 도시인에게 매우 취약한 부분이다. 넓은 시야와 빠른 이미지화는 스포츠 주행에 있어 가장 기초적인 부분이다. 코스를 암기해서 탈 수 있는 서킷에서는 이러한 기초가 부족해도 코스를 암기하면 웬만큼 달릴 수 있다. 서킷에서 점점 빨라졌다면 그것은 실력 향상이 아닌 코스에 익숙해져서일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운전 양상은 항상 동일한 코스의 와인딩만 즐기는 운전자에서도 발견되는 부분이다. 따라서 다양한 코스의 풍부한 경험이 매우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겠다.

 

  공공도로의 주행은 서킷보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데 요구되는 기본 수준이 높은 편이다. 운전의 실패를 받아줄 여지가 서킷보다 훨씬 적기 때문이다. 오버 페이스로 달려서 차가 파탄날 경우, 서킷은 그것을 받아줄 여유가 어느 정도 존재하지만 공도는 곧바로 사고로 이어진다. 물론 서킷 또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절제력이 중요하지만, 공공도로는 기록의 문제를 떠나 사고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에 더욱 강한 절제심을 유지해야 한다. 서킷에서 랩타임을 단축하려던 조바심을 가지고 공공도로를 달리면 매 순간순간 사고의 위험성을 느끼게 되어 마냥 위험하고 고통스러울 뿐이다. 서킷에서 이러한 절제력을 키우면 되지 않겠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기록을 단축시키거나 주변 차와 경쟁하는 레이서가 아닌 이상 이러한 절제력이 마냥 다 받아주는 서킷에서 쉽사리 생기지 않는다.

 

  의외로 서킷에서 좋은 기록을 보이는 운전자 중에 다수가 와인딩을 기피하는 이유는 이러한 맹점을 가진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 추측한다.

 

  위에서 언급한 운전 기량 향상에 대한 3가지 면 이외에도 서킷에서 벗어나 공공도로에서도 달릴만한 가치는 또 존재한다. 바로 높은 효용가치를 실현하기 위함이다. 서킷 주행과 짐카나 등이 운전 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함이었다면 왜 그 기술을 그 곳에서만 한정시키려고 하는가? 기량의 향상은 일상 주행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니었나 묻고 싶다. 뛰어난 실력을 단지 서킷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낮은 효용가치를 가지는 셈이다. 휘트니스에서 열심히 만든 몸을 건강과 좋은 몸매에서 만족하지 않고, 축구, 농구, 테니스, 스키 등과 같은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는데 활용하면서 더욱 취미 생활이 풍부해지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공공도로 주행의 즐거움은 랩타임의 단축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느끼는 자유로움이라 생각한다. 만약에 공공도로 주행이 다소 부담스럽다면, 처음에는 가기 편하거나 익숙한 코스를 주로 타다가 점점 다양하게 넓혀보는게 좋다. 조바심을 버리고 스트레스 받지 않을 만큼의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달리다보면 어느새 점점 빨라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낯선 코스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면 가는 곳 모두가 드라이빙 코스가 된다.

 

  공공도로의 주행은 서킷만큼의 혹독한 주행에서 한걸음 벗어나 있다. 서킷만큼 차를 가혹하게 몰지 않을 뿐 아니라, 즐거움이 차빨에 좌우되는 요소가 적으며, 운전자가 주행을 운영해가면서 생기는 즐거움이 크다. 위에서 언급한 공공도로에서 요구되는 기량을 습득하는 것이 마냥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일단 적응이 되면 언제나 즐기는 풍부한 자동차 생활을 영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서킷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도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