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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작게나마 무선모형 관련제품들의 국내수입원을 하고 있습니다. 주된 제품은
온/오프로드 4륜차와 바이크, 공구나 악세사리 뭐 이런쪽인데...
일년에 한두번 정도는 뜬금없는 전화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도 아주 앳된 여학생(거의 8~9살인줄 알았네요)이 전화를 걸어와선
"거기 RC차 바퀴 파나요?"
"네, 팔긴 하는데... 업체는 어디시고(저희는 도매가 기본이니까요), 스케일과 차종은..."
"꺄앍~ 여기 있데~ 철커덕 뚜- 뚜-"
"???"
[한 30분 뒤]
퇴근시간 다 되어, 다시 전화가 와서는 아까 바퀴물어본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젠 어느정도 이력이 붙어서
비교적 인근에 있는, K대 자동차학과 학생들인지, 근처 항공전문학교의 교육생들인지 아니면
고등학교 특활반인지 대충 감이 오는데, 대부분 4~5명 그룹으로 옵니다.
오면 대뜸 RC카 바퀴있나요, 베어링있나요 혹은 기어를 달라고 합니다(노량진가서 생선!을 달라고 하지요...)
다분히 경계하는 내색도 있고, 반항적이며 치기어린 20대 초반의 모습들입니다.
과제때문에 오는게 대부분인데, 대부분 와서 하는 몇마디만 들으면 뻔히 압니다. 설계가 어느정도
진행된 건지 예산이나 제한사항은 무엇이고 리더가 누군지...
대뜸 RC차 바퀴를 찾길래, 아무거나 주고 돈받으면 끝이지만, 학생들 같은 경우를 많이 보니까 괜히 엉뚱한거
들고가지 말고, 어디에 쓸건지부터 말을 해봐라 하면 주저주저 하면서 털어놓습니다.
작년엔 고무동력차더니 올해는 물로켓차네요
대충 몇 가지 이것저것을 얘기해주며 이런 저런게 필요한거냐? 하면 깜짝 놀라며 어떻게 알았느냐고...
학부 2년생 때 하는게 뻔하지 무슨... 얘네가 저를 동네 문방구아저씨로 아나 봅니다...
뭐 여튼 조별회의도 안하고 온 기색이 역력한데, 뭘 사갈려고 들것이 아니라 기초적인 컨셉하고 디멘젼부터
잡아야 필요한게 정확해진다고 하면 자기들끼리 얼굴만 마주보다가 '도와주셈' 하면서 징징거리고...
솔직히 말해서... 저도 그 나이 땐 마찬가지였지만, 준비와 능력은 부족해도 치기와 자존심은 높게 마련입니다.
그런 걸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알아듣게 얘기해서 좋은 기억을 만들어 주는것은 반드시 교육관계자가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일이겠지요.
아마 한 이틀 있다가 또 올거 뻔한데... (작년에 어떤 팀은 4번 온 경우도 있었네요, 다행히 클래스에서 1등을
했다곤 합니다만...)
저는 문과공부만 했지만, 제 시각으로 보아도 2학년 생들이 할만한 과제는 아니었습니다.
기본적인 무게중심. 관성획득과 유지, 공력과 추력의 양,방향조절만 알면 되는건데...
저 스스로 참 이과적이지 못한 인간인걸 잘 아는데... 아마도 직장생활이랑, RC 하면서 아무래도 이것저것
익혔나 봅니다.
요즘 사회적으로 어른들이 잘못해서 어린친구들이 피해보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 거창한 차원까지는 아니라도, 그저 제가 바라는 것은 기대하지 않고 갔던 어떤 장소에서든지 열심히
일하는 어른들이 있고, 자신들의 지식과 형편을 잘 이해해주며 도와주어, 뒤돌아 나올 때, 좋은 기분이 들게 해주고
싶은 생각은 있습니다.
다들 화이팅 했으면 좋겠네요.

제가 가는 바이크샵에도 자동차 학과 학생들이 찾아왔었는데요.
약간 다른얘기입니다. ㅎㅎ
바이크 엔진으로 자작차 만들어서 대회 나간다는 학생들이었는데...
가져온 엔진 상태와... 그들의 사연이 참 안쓰럽더군요...;;
엔진은 선배들에게서 물려받은건데...
선배들은 지원금 나오면 술마시고 노느라 유지보수(?) 할 돈 다 날리고
(선배들이 졸업할 무렵엔 대충 자작차 모양만 만들어도 대기업 취업이 됬다나 뭐래나...)
현 상태는 거의 폐급 수준...
그런 너덜한 엔진을 자기네들끼리 살려보겠다고 다 분해하고
배선은 다 풀어헤쳐서 수습 안되는 상태로 가져왔더군요.
담당교수는 사정이 이러저러하니 잘 부탁한다... 는 말도 없이
무슨 엔진부속을 소쿠리안에 던져놓고 흔들면 알아서 조립되는줄 아는 분이었습니다.
(다짜고짜 동네 센타에 와서 05년 cbr600rr 엔진케이스를 내놓으라고...
일본 동네센타도 갖고있지 않을 물건을... 참고로 대회는 다음주라고 하면 뭐 어쩌자는건지....ㅋㅋ;;)
기본적으로 담당교수는 대회에 별 관심없어 보이고
학생들은 대회에서 1위를 해야 대기업 취업과 연결되기때문에 목매는 상태인데,
자기네들끼리 있는돈 없는돈 쪼개서 십시일반하여
여기저기 잘 고친다는 샵 여기저기 찾아갔는데 눈탱이만 맞고 호구 취급받다가 왔더군요.
이래저래 쭉 훑어보니...
자기네들이 뭐 해보겠다고 이미 고쳐봤고, 딴데 돈 안쓰고 모으고 모아서 용하다는 샵을 찾아다닌건 알겠는데...
전 괴팍한 부류라서 "그럼 왜 직접 수리해서 끝을 보지않았냐?
난 중딩때 고장난 스쿠터 하나 생겼을때 돈도없고 해서 최소의 비용으로 살리겠단 일념으로
피스톤링 엔드갭 사포로 밀고 초코파이 가스켓 짤라서 시동걸었다."
를 질질 말하고 싶었지만...
얘네들 너무 지쳐보이더군요.
즉... 얘네들이 그 나이대에 할수있는 최선의 노력은 다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데 아쉬울때만 찾아오고 이내 돌변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오히려 애들이 더 약을 거라는 생각에 유도심문을 해보니
적어도 개념 (뭘 해주면 고마운줄 아는것) 을 탑재하고 있기에...
마침내... 샵 형님과 전...
얘네들 도와주고싶다!!! 는 맘이 들었고
학생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여 거의 돈을 받지않고 수리를 해주었습니다.
한달정도 후에 음료수 사들고 찾아와서 1등 했다고 하더군요.
나름 뿌듯했습니다. ㅎㅎ
(참고로 전 수리파트가 아닌...말도안되는 부속주문... 수급을 담당했습니다...ㅎㅎ)
누군가 했더니 석호님이셨군요 ^^
가슴이 따뜻해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어릴 때 뻘짓한다고 공업소나 재료상 방문했을 때 사장님이 저런 도움 주시면
무척 감사했던 추억이 있습니다...(감사의 표현은 서툴렀겠지만요 ㅠ)

하.. 어렸을때 한참을 RC 자동차에 빠져서 여기저기 공터 찾아다니며 놀았었는데.. 당시 중학생의 용돈사정으론 사고한번 나면 견적이 상당해서 ㅠ.ㅠ
사지도 못하는거 매일 타미야 카다로그 보면서 이런저런 아이쇼핑만하던 생각이 나네요. ㅎ

저런 식의 마구잡이(?) 교육을 받은 친구들이 결국은(그 친구들을 욕하는게 아닙니다.) 대기업 메이커에 취직하고 또 똑같은 일들이 반복되니 우리나라 대기업 자동차 메이커가 만드는 차들이 다 그 모양이 아닐까요?
후배 중에 남양에 근무하는 친구가 있는데 저보다도 차에 대해서 더 모릅니다. 어찌들어갔니? 했더니 학교에서 그냥 시험 잘 봤더니 채용이 됐더랍니다 ㅋ
항공기를 정비하면서 알게된 것이긴 하지만.. 기초과학과 기본물리에 대한 개념은 없고 그냥 공식 외우기식으로 자격증 주고 그러니 다 이렇게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자격증 따던 시절엔 일단 따야하니깐 닥치고 외웠던 부분들 실무에 들어가서 스트러트를 보며 엔진을 보며 분해된 엔진의 압축기 터빈, 배기 터빈을 보며 조종면을 보며 실제적으로 보니깐 왜 그렇게 되는지 그제야 이해가 되더군요.
좀 더 기본기를 깊게 닦아주고 현실에 맞는 교육을 시켜야 장차 더 발전할텐데 안타깝습니다.

무서모형에서 손 놓은지 한참되서 차종이 뭔지는 모르겠네요 ㅎㅎ
그래도 폰더/서보/변속기/BLDC모터 배치 레이아웃과 배선 정리 실력을 보니 조종 실력이 손에 잡힐 듯 보입니다!!!
08년도경 BLDC 모터 처음 나왔을 때 정말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ㅎㅎ
맘바 모터가 엔진보다 출력이 좋다고 해서 무턱대고 엔진차를 전동으로 컨버전했었죠 ㅋㅋㅋ
지금은 좋은게 굉장히 많이 나와서 저처럼 깍고 뚫을 일 없이 돈으로 해결하면 되더군요 ㅋㅋㅋ
좋은 구경하고 많은 생각하고 갑니다~

벌써 15년도 더 지난 석사과정때 얘기인데..커먼레일 인젝터를 수급해야할 일이 생겼었습니다.
국내 양산 커먼레일차량이 나오기 1~2년전쯤 시기였으니 국내에서 일반적인 루트를 통해 구하기는 거의 불가능했었습니다.
그렇게 고민하다가 머리를 쓴다고 쓴게 마침 커먼레일을 양산하고 있던 MB쪽(그당시는 MBK가 아니라 아마 한성자동차에..)에서 혹 부품수급이 가능하지 않을까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죄송한데 무작정 성산센터 부품실로 전화해서 자초지종을 설명드리고 A클라스 인젝터를 주문할 수 있는지 여쭤보니 품번이 없어서 곤란하다 하시는데 간절한 부탁이 통했는지 일단 와서 부품목록을 확인해달라고 하셔서 한걸음에 내달려 부품확인 시스템에서 부품확인받고 주문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반품절대불가에 인젝터 2개의 구매가격이 300만원을 상회했던 걸로 기억됩니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 마침내 부품이 한국에 들어왔고 부품을 받기 위해 반포동 한성자동차 본사로 찾아뵈었는데, 인젝터만 받고 나올 줄 알았더니 A/S담당 상무님이 저를 찾으시더군요. 국내에 도입되지 않은 차량의 부품, 거기다가 당시 디젤 승용차는 법규상 여러가지로 난망한 시절이였기 때문에 업무상 호기심이 생기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부품이 어떤 실험에 필요한지 물으시기에 짬안되는 석사1기 나부랭이 주제에 아는 것 모르는 것 모두 동원해서 설명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한 30여분정도 대화가 있었는데 나름 맨땅에 헤딩하고 있는 제 모습이 안되보이셨는지 이런 저런 당신의 과거 경험을 말씀해주시면서 격려해주시는데 그게 참 고마웠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분을 또 뵙게 됩니다.
석사마치고 민간연구소에서 전문연구요원으로 근무하다가 복무연한을 다 마치면서 어떤길로 갈까 많이 고민하던 시기에 MBK PDI분야에 구인이 있어서 지원해서 부사장님 면접을 진행하는데 어디서 뵌 분이라는 생각이 면접내내 들었었습니다. 나중에 집에와서 긴장 풀리고 생각해보니 그때 그 상무님이셨더군요. 그 당시 좀 더 앞서서 지원했던 현대차에 합격되서 고민끝에 결국 남양행을 택했습니다만, 만약 MBK로 갔었다면 상사로 모실 수 있었겠죠.
비단 이런 경우뿐만 아니더라도 나이먹을수록 사람의 연이라는게 참 묘하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나이먹을수록 점점 조심조심 살아지는 이유랄까요...
석호님 입장에서는 작은 도움 작은 조언이라해도 그 친구들에겐 어쩌면 복음이 될지도 모른단 생각해봅니다.
본글도 그렇고 리플도 그렇고.. 상당히 훈훈해요~^^
근데 홍석호님께서는 RC샵을 하시나요? 혹시 온라인도 운영하시는지요??
재밌고 좋은 내용 잘 읽었습니다.
분명 학생들은 좋은 분을 만났고,
좋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좋은 글 고맙습니다. 댓글 통해서도 많이 배우네요. 저도 학부 시절 그리고 지금 대학원에서도 주위에서 이렇게 저렇게 많이 도와주시는 분들이 계셨죠. 그런 분들께 늘 감사드립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른사람들이 호버크레프트를 만들어오랬더니 우주선을 만들어왔냐고 하더라구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름 이름있는 공대지만ㅋㅋㅋㅋㅋㅋ저도그렇고 실전엔 약한게 공대생인거같아요...
자작차 동아리때도 그런문제때문에 대판싸우고 나오고...

전 대학4년때 계단을 올라갈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어라는 과제가 있었는데. 기계공학과 4년생들 수준이 정말 한심할정도로 만들어오더군요. (물론 저희 조는 1등 ^^.) 정말로 실전에 약한 단순 이론만 공부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듯 해요.
이론+실전응용력.. 우리나라 교육 전반적인 문제이겠지만요
저도 그 나이 땐 마찬가지였지만, 준비와 능력은 부족해도 치기와 자존심은 높게 마련입니다.
그런 걸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알아듣게 얘기해서 좋은 기억을 만들어 주는것은 반드시 교육관계자가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일이겠지요.
->정말 마음에 와닿는 말입니다.
그런게 보이고 헤아려 줄 수 있는게 어른이고 인생 선배로써 해 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비교적 인근 K대면...서울 성북구쪽이신가요? ㅎㅎㅎ 저도 거기라 반가운마음에 여쭙고 갑니다 ^^ ;;
매장 번창하세요 ~

동네 문방구 아저씨도 초등학생이 많은 지역이거나 학교 앞이면 매년 반복되는 과제준비물을 공급하다보면 척하면 쿵입니다. ^^

대학때 생각네요... ^^ 을지로와 청계천에 교수님들이 계셨지요.
졸업작품때문에 청계천가서 "사장님~ 모형과제물인데... 이게 막 움직여야되고, 그리고 막 사람손끝에 막 반응해야하고.... 또 막 지구도 구해야 하고, 외계인도 물리쳐야 하는데.....블라블라블라......."
"어.... 이거 써"
해결, 끝.
어른이라는 단어가 새삼 무겁게 느껴지는 요즘이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