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용으로는 풀린지 한참 되었고, 가격으로 인해 논란이 많았던 기아의 K9 (미국 수출명 K900)을 짧게 타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약 30분 내외의 짧은 시간이었기에 시승기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착석 후기 정도로 말해봅니다. 그래서 testdrive란보다는 가벼운 보드란에 올려봅니다.


몇주 전에 LA 다운타운에 위치한 기아 딜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K900을 런칭하는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으니 와서 행사에 참석하고 시승도 해봐라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딜러쉽에서 차를 구입한 적은 없고, 동네 마실용으로 쓰는 구형 오피러스(미국명 아만티) 경정비를 한 것 밖에는 없는데 아마 그때 등록된 제 연락정보를 세일즈 부서에서 보고 연락을 한 듯 합니다. 뭐 한국 사람이고, 기아에 근무하는 자기네들도 레어탬이라 부르는 오피러스를 타고 있으니 K9에도 관심이 있을것이라 판단한듯 합니다.


그래서 한번 구경이나 가보자는 생각으로 딜러에 갔는데...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사람이 없습니다. 딜러쉽 자체에는 쏘울, K5등 보러 온 손님은 많은데 K9쪽은 썰렁... 벤츠 CLA, 아우디 A3 런칭 이벤트에 갔을때는 나름 시끌벅적 했는데 K9은 파리만 날립니다. 뭐 사람이 없으니 차를 자세히 보기에는 좋더군요. 디자인은 주관적인 부분이니 논하지 않겠습니다만, 차 자체로 봤을때는 요즘 국산차들이 그렇듯이 딱히 흠잡을 곳은 없어 보입니다.


약 10여대의 차량이 전시 및 시승준비가 되어있었는데 미국 수출형은 트림이 럭셔리 한가지 모델밖에 없고, 6천불짜리 VIP패키지의 유무로 차이가 납니다. VIP패키지가 들어간 차량은 옵션수준이 한국의 최고급형인 3.8 RVIP트림과 거의 유사하다고 보여지며, 한국형의 옵션 가격을 비교해보면 6백 몇십 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은 합당해보입니다. 이날 준비된 차량은 모두 VIP패키지 적용 차량이라 일반형과의 직접적인 비교는 불가했습니다만 홈페이지 상에서 옵션을 확인해보니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 인 것들입니다.


시승을 하기 전, 차량 구석구석 살펴보는데 "이차가 나름 신경을 쓴 차이긴 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확실히 출시 당시인 1세대 제네시스 페이스 리프트 모델 (일명 제페리) 보다는 한단계 윗급이라는게 확 와닿고, 기아에서 나온 에쿠스라 해도 될 정도였습니다. 에쿠스가 40-50대 아저씨를 겨냥한거라면 K9은 30대-40대의 전문직을 겨냥한 느낌이랄까... 뒷좌석 공간도 상당히 괜찮은 편이고, 조수석 시트 등받이가 앞으로 꺾여지는 각도, 또 헤드레스트가 접히는 부분까지 상당히 신경을 쓴 모습이 보였습니다. 따라서 뒷좌석 시야확보가 매우 좋았으며, 운전석에 앉던 VIP석에 앉던 만족감은 상당하다 라고 느꼈습니다.


달리기 성능에 대해 얘기하자면, 일상적인 주행환경에서는 충분하다고 느껴집니다. 약 30분간 밀리는 시내와 고속도로 주행을 해봤는데, 승차감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요철이나 과속방지턱을 넘는 느낌도 상당히 수준급이었구요... 액셀반응도 TG나 오피러스가 아닌 제네시스처럼 살짝 묵직한 느낌이었습니다. 벤츠나 비엠에 비하면 아직 개선의 여지는 있어보이지만 크게 거슬리는 정도는 아닙니다. 뭐 이것만 빼면 출퇴근 용으로 쓰기에는 손색 없어보입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조금 세게 몰아붙여보면 아쉬움이 남습니다. 미국형은 V8 5.0L 타우엔진이 달려 420마력을 낸다고 광고하는데, 모 자동차 기자가 말했듯이 그냥 잘만듯 V6같습니다. 에코모드를 해지하고 스포츠모드로 돌렸음에도 불구하고 V8 5L 420마력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보입니다. 동력성능은 점수를 잘 줘도 350마력 부근의 4리터 초반 엔진 정도라고 하겠습니다.


영업사원이 차에 타고있고, 시내 주행에 가까운 패턴이다 보니 최고속을 찍는다거나 와인딩에서 돌린다던가 하는 주행은 할 수 없었습니다만, 이 차의 주 고객층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주행환경에서 달려본 결과 연비 빼고는 합격점이라고 하겠습니다. 저같은 사람은 S클래스로도 다이나모미터 모드 넣어 ESP끄고 돌려댑니다만, 사실 대형차 타는 사람중 저같은 사람은 1%도 안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차 자체는 상당히 신경써서 잘 만든 차이고, 실 오너들의 만족도도 타 차량대비 높을 것이라 예상됩니다만 판매량이 낮은것은 이유가 있어보입니다. 우선은 뭐니뭐니해도 가격이겠죠... 영맨들은 이 차의 타겟을 BMW 550i, 벤츠 E550, 희안하게도 아우디 A8을 삼았습니다. 경쟁차종보다 더 크고 옵션도 많으나 싸다 뭐 이런 얘기인데요 사실 저건 깡통 가격들이고 실 경쟁상대는 옵션 좀 들어간 535나 E350입니다.


K900의 기본 가격이 59,500불이고 시승차량의 스티커 프라이스 (권장 소비자가격)가 66,400불이었는데요, 여기서 모든 점수를 까먹습니다. 우리나라에서야 K9이 고급차로 여겨집니다만, 미국시장에서는 기아는 주로 프라이드나 K3, K5를 파는 회사인데... 차는 좋은데 그 회사에서 나오는 저값 주고 살것이냐 아니면 벤츠나 비엠을 한단계 아래로 탈것이냐는 선택인데, 대부분은 후자를 선택합니다.


현대보다도 한단계 낮은 브랜드 이미지를 6만불 넘게 주고 살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거죠. 그래서일까요? 시승이 끝난 후, 구입조건이 어떻게 되는지 매니저와 얘기를 해봤습니다. 매니저 왈... "저거 진짜 살 생각 있으면 가격이야 어떻게든 맞춰 보죠. 저거 지금 결정하시면 인보이스 밑으로도 빼드릴 수 있어요." 여기서 알았다고 하고 뒤돌아섰습니다. 런칭하자마자 인보이스 이하로 차를 "날리려" 하는데, 지들도 뻔히 안팔릴거 아닌까 임자 만나면 얼른 넘기자는 속셈인거죠. 보나마나 연식 바뀔때까지 몇대 팔리지도 않을뿐더러, 그때가면 악성재고 많이 남아서 만불 이상 빼줄텐데 지금 사는건 바보짓이죠.


다만 국내 가격과 비교했을때에는, 미국 가격은 참 저렴한 것이 됩니다. 거의 8천만원에 육박하는 3.8 RVIP의 옵션이 거의 다 들어가있고, 엔진은 더 좋은 것인데도 불구하고 6천만원+택스니 저거 사서 좀 타고 다니다가 한국 가지고 들어가면 좋겠다 싶습니다. 한국에서 6천만원이면 3.3 Executive에 옵션 달린건데, 요즘 현기가 미국에서 제값받기 한다고 하는 기사 볼때마다 혀를 찹니다. 에쿠스 Ultimate도 K900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인데, "각종 세금을 비교하면 국내가 조금이라도 더 싸다"고 하는 기사를 보면 그냥 웃지요. 그나마 국내에서는 에쿠스는 브랜드 파워가 있지만, K9은 "넌 뭐냐"는 입장이니 판매가 저조하다고 보입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1. K9, 차는 괜찮다.

2. 아저씨보다는 약간 젊은 연령층이 출퇴근 용으로 쓰기에 좋다.

3. 에쿠스란 형과 제네시스라는 동생 사이에 끼인, 마음 착한 둘째이다. 근데 부모의 사랑은 별로 못받는...

4. 국내와는 달리 눈치때문에 국산차를 타야 하는 사람이 없기에, 경쟁차종은 수도 없이 많다.


미국 시장에서라면 K900을 새차로 구입하는 건 한국에 가져 갈 것 아니면 메리트는 없다고 보여집니다. 만불을 할인받던 그 이상을 받던, 어차피 3년 뒤에 반값도 안될게 눈에 보이니깐요. 그때 중고를 노려본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 같습니다.


추가적으로 K9의 가격만 너무 비싸다는 듯이 얘기한 경향이 있는데, K9이 비싸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전반적으로 현기의 고급차가 차량가치 이상으로 비싸다고 느껴집니다. 신형 제네시스도 하나 둘씩 들어오는데, 얘 역시도 에쿠스만큼은 아니겠지만 대폭 DC가  가능할것으로 보입니다. 국내에서야 특이한 시장구조로 인해 이래도 사주고 저래도 사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미국시장에서는 맥을 못추면서 제값받기 한다고 표면적으로만 비싸게 부르고 정작 구매자에게는 엄청 깎아주는건 우리 국민들 두번 놀리는거라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