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중 아버지 어코드의 엔진오일 교환을 위해 혼다 딜러를 찾았습니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시간도 때울 겸 해서 시승을 요구했더니 CR-V 4WD를 시승차로 준비해 주었습니다.
시승예약이 되어 있다고 해서 20km 남짓 밖에는 시승을 하지 못해서 차에 대해서 많이 파악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이제는 제법 우리나라에서도 흔해진 차라 너무 익숙하게 외관이 다가왔습니다.
그래도 컴팩트한 외관은 괜챦은 듯 싶습니다.
1세대에 비해서 많이 커진 2세대는 멀리서 봐도 CR-V임을 알 수 있을만큼 디자인은 무난하면서도 독창적인 듯 싶습니다.

내부로 들어가서 좌석 조정을 한 후 실내에 앉아 보았습니다.
첫느낌은 SM3가 연상되더군요.
한마디로 오래된 듯 하면서 싸 보이는 느낌..
사실 CR-V는 데뷔한 지 그리 오래된 차가 아님에도 실내는 좀 실망스럽습니다.
재질은 그다지 싸구려티가 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뭐 저처럼 실용성에만 신경쓰고 편의장비에 신경을 별로 안 쓰는 사람에게는 큰 무리는 없겠지만, 어코드에 비해서도 확실히 싼 차를 탄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습니다.
투박한 오디오, 수동 에어컨..
단지 이 것이 문제가 아니라 너무나 단촐한 인테리어는 확실히 좀 부족해 보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레인센서 와이퍼, 오토라이트 컨트롤 등의 장비를 더 넣고 가격을 올리는 것보단 이러한 것이 더 낫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의외로 실내가 제법 넓은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앞좌석을 제 키(179cm)에 맞게 조정해도 뒷좌석의 레그룸은 제법 여유가 있습니다.
실내가 특별히 커진 쏘나타에 비할 바는 아니어도 쏘렌토보다 레그룸은 오히려 넓은 듯 싶습니다.
물론 폭은 그리 넓지 않아 5명이 타면 불편할 것 같지만, 사실 대부분의 차들이 4명이 타면 여유롭고 5명이 타면 좀 좁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내 크기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는 없을 듯 싶습니다.
운전석에 앉아서는 왼발의 풋레스트가 좁다는 불만이 생기더군요.
왼쪽에 휠 하우스가 있는 관계로 풋레스트는 제법 오른 쪽으로 밀려 있는데 다리를 오므리고 운전하는 자세가 제겐 좀 불편했습니다.

운전하면서 엔진브레이크를 자주 사용하는 제게는 컬럼 쉬프트는 역시 맘에 안 들었습니다.
조작감은 문제가 없었지만 상당히 낯설었습니다.
글을 쓰고 보니 CR-V의 쉬프트도 컬럼타입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좀 의문스럽군요.
스티어링 휠 뒤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센터페시아 옆에 붙어 있는 것이니까요.
카투사로 복무하던 시절 컬럼시프트였던 플리머스 어클레임을 제법 많이 몰아봐서 낯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CR-V의 쉬프트는 일단은 낯선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익숙해지면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파킹 브레이크도 제법 독특한 모양이었는데, 마치 비행기의 조정간을 연상시키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조작할 때는 살짝 당겼다가 밀어줘야 하는 것이 생소하더군요.

시동을 걸고 무척 놀랐던 부분은 진동이 제법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디젤 엔진을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소음이 아니라 진동 때문입니다.
5500km 가량 주행된 시승차는 길들이기가 잘못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P레인지에 기어를 두고 있더라도 스티어링휠에서는 진동이 제법 있었습니다.

엑셀러레이터의 반응성은 어코드와는 달리 아주 민감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둔하다고는 할 수 없는 수준으로 무난한 편이었습니다.
저rpm에서 엔진의 토크는 무난한 수준이었습니다.
결코 잘 나가는 느낌은 아니고 국산 중형자 2.0리터 급에서 보여주는 정도의 주행성능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분명 힘은 중속 이상에서도 그다지 뻗는 느낌은 아닙니다.
답답한 정도도 아니어서 한마디로 무난한 수준이라고 밖에 요약할 수가 없습니다.

주행 중에는 꽤 실망스러운 면이 눈에 띄었습니다.
NVH 측면에서는 CR-V에 어떤 면에서도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울 듯 싶습니다.
우선 타이어는 제법 노면을 많이 타는지 소음이 꽤 심한 편이었습니다.
더운 날씨에 에어컨 소리에 묻힐 만도 한데 제가 최근 타 본 차 중 가장 노면 소음이 심한 수준이었습니다.
제가 타 본 차 중 가장 노면 소음이 심한 차가 카렌스였는데, 그보다 그다지 낫다고 말할 수도 없겠습니다.
엔진소음 역시 시끄러운 편이었습니다.
쏘나타나 SM5의 경우는 방음처리를 잘 해서 외부에서는 엔진이 조용하게 들리지 않더라도 대략 3000rpm 근방까지는 실내에서는 소음이 두드러지지 않는데 CR-V는 방음재를 제한적으로 썼는지 전영역에서 소음이 느껴졌습니다.
다만 고rpm영역에서 대개의 국산차의 엔진들이 거친 소음을 내뱉는데 비하여 고회전으로 가더라도 일정하게 증가하는 엔진음은 혼다답다고 느겼습니다.

의외로 실망스러웠던 면은 브레이크 성능이었습니다.
약간은 밀리는 듯한 느낌으로 신뢰감이 와 닿지 않았습니다.
순정 브리지스톤 타이어는 노면 소음도 크고 제동력도 받쳐주지 못하는 느낌이었는데, 어코드도 그렇고 왜 혼다는 타이어를 제대로 선택하지 못하는지 의문이 생기더군요.
키가 높은 SUV임에도 불구하고 핸들링은 제법 괜챦은 듯 싶었습니다.
90km/h로 일원터널의 커브를 돌아나가는 부분에서도 차는 제 예상보다 상당히 안정적인 거동을 보여주었습니다.
트립미터는 주행상태에 따라 실시간으로 막대그래프 형식으로 연비를 표시해 주는데 만약 정확하다면 상당히 연비는 좋은 듯 싶습니다.
제법 힘차게 가속을 하는데도 연비는 많이 떨어지지 않고 정속주행시에는 15km/l이상을 찍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결론을 내리자면 저는 그다지 큰 구매가치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국내에는 투싼과 스포티지의 휘발유 차량이 나오기 전엔 적당한 가격대에서 살 수 있는 개솔린 SUV가 없었습니다.
디젤의 메리트가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경제적인 것은 사실이고.

시승 전에 CR-V에 고급스러움과 호쾌한 주행성능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별달리 국산차에 비해서 낫다는 생각은 안 들더군요.
완벽에 가까워 보이는 끝마무리와 국산차보다 약간 더 나은 핸들링을 위해서 3천만원 이상을 들여 구입하기는 좀 꺼려진다는 느낌입니다.
어코드는 국내 중형차, 중대형차 대비 스포티한 측면에서 틈새시장에서 우위를 확실히 점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구매가치를 느낄 수 있었는데 반하여 CR-V는 그런 가치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내년에 들여온다는 S2000, 레전드, 씨빅이 기다려지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