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소원하던 997 CarreraS 수동을 시승했습니다.
997 CarreraS 팁트로닉 시승기를 올린 후 30분이 지나 쪽지가 도착했습니다.
‘997 수동 언제든지 시승 가능하다는…’


제가 팁트로닉 시승기 마지막에 남긴 이제 997 수동을 타보는 것만 남았다는 멘트에 송영상님께서 곧바로 시승을 의뢰하신 것입니다.
아무튼 어제 저녁 강남에서 만나 멋진 시승을 했습니다.


왼손으로 시동을 걸고 앉으니 시트 포지션이 얼추 제포지션과 맞습니다.
도로에 올려놓자마자 1단 풀쓰로틀 곧바로 2단 변속, 911을 타면서 적응에 대한 시간을 낭비할 이유도 명분도 없습니다.


911이 뿜는 355마력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아는 제게 올라타자마자 풀쓰로틀을 하는 것은 당연할 정도입니다.
스포츠 모드를 선택하면 가속패달의 초기 반응이 좋아지며, 자동으로 서스펜션이 단단하게 바뀝니다. 물론 스위치로 다시 Auto로 바꿀 수 있습니다.


손에 착착 붙는 수동변속기의 질감은 FR구성의 수동변속기의 직결감은 아니지만 리모트 방식으로 전달되는 특성상 이 이상의 질감은 기대하기 힘든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탄성이 강한 클러치는 이 정도면 신체 건강한 남성이 시내에서 타고 다녀도 하나도 힘들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만약 이 정도의 무게가 힘들다면 여러분의 드림카일지도 모르는 993터보나 993 GT2 같은 차를 구입하는 것은 꿈도 꾸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동 느낌이 초기 답력이 많이 좋아져 993을 포함해 이전 911의 돌덩이 같은 묵직한 패달의 반발력은 없고, 996보다도 확실히 일반인이 다루기 쉽고 가벼워졌습니다.
바로 여기까지가 시대를 지나 신형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한 차에서 포르쉐 전통에 관한 것 중 양보한 부분입니다.


이 이후에 언급하는 주행성격에 대한 것은 양보가 아니라 오히려 진보라고 표현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노면이 완벽한 조건에서 150km/h턴을 돌 때의 안정성은 911을 가지고 맘껏 즐겨야하는 구간입니다.
노면이 불규칙한 곳에서 상당히 취약한 911의 특성상 자기가 달리는 도로의 특성을 완전히 머리속에 넣어두지 않으면 911은 결코 고분고분하지 않습니다.


본선에 올려 풀가속을 때립니다.
4단 200km/h부근에서 5단에 넣고 250km/h에 살짝 못미칠 때 6단으로 넣습니다.
이때 6단에서 시작하는 회전수는 5800rpm입니다.


3단 고정으로 회전수를 상승시켜보면 5800rpm부근에서 다시한번 힘이 살아나는 느낌을 받습니다.


카레라S와 그냥 카레라의 출력의 차이는 바로 이 부분에서 차이가 날 것으로 판단됩니다.
바리오캠의 튜닝만으로 수십마력의 차별을 두는 것은 너무나 쉬운일이니까요.
아무튼 레드존에 닿는 순간까지 리니어한 특성을 잃지 않고 확실하게 레드존까지 찍어줍니다.


속도계는 쉬지 않고 상승해 약간 오르막에서 288km/h 그리고 약간 내리막에서 298km/h를 마크하는데 이때의 회전수는 6단 7200rpm 입니다.


회전수 제한이 7300rpm에서 걸리는 특성상 계기판상으로 305km/h정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머리가 가벼운 느낌은 여전하지만 993과 비교하면 정말 안정감이 좋아졌습니다.
고속코너에서의 느낌은 훌륭하지만 범프에는 여전히 상당히 취약합니다.


911이 일반 스포츠 세단과 달리 서스펜션의 상하 스트록이 상당히 짧은 세팅이라는 점과 전장이 짧고 전후 무게차이가 많이 난다는 태생적 특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범프를 칠 때 무거운 꽁무니로 인해 Yaw축을 중심으로 좌우로 흔들리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때문에 독일제 고성능 세단이 도는 속도로 동일한 구간을 도전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위험하게 느껴집니다.


911은 고속코너에서 범프를 반드시 조심해야 합니다.
10년전 993 팁트로닉을 시승할 때 통일동산 주변에서 한성 관계자가 운전하던 993이 170km/h로 완만한 코너를 도는데, 가속패달을 놓았다 밟았다하는 거친 액셀링만으로 제 눈앞에서 3바퀴 반을 돌다가 멈춘 장면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속도가 얼마이건 간에 911을 다루는 손길과 발동작은 최대한 예민해야하며, Yaw축을 중심으로 좌우로 움직이는 현상이 감지되면 과감하게 속도를 줄이는 것이 현명한 운전입니다.
997의 핸들링 특성이 철저히 과거지향적이라는 것은 여러가지 상황에서 증명할 수 있습니다.


911은 몇 단에 들어가 있건간에 완만한 중,고속 코너에서 가속패달을 밟으면 언더스티어가 발생합니다.


즉 회전반경이 커지려는 특성이 큽니다. 여기에 가속패달을 놓으면 머리가 갑자기 안쪽으로 들어오는 턱인 현상도 큽니다.
즉 가속패달을 on, off할 때 발생하는 차의 각도변화가 상당히 큽니다.


운전자가 911을 다룰 때 연출할 수 있는 운전의 기량차이도 바로 이 각도차를 어떻게 요리하고 활용하느냐에 맞춰질 정도로 911의 이러한 현상에 대한 이해와 적응이 없으면 911은 결코 안전한 스포츠카가 아닙니다.


고속화도로에 접어들어선 초반에 풀가속을 할 때 5단 245km/h정도에서 6단에 꽂아넣을 때는 아주 완만한 좌측 코너였습니다.


풀쓰로틀로 5단 레드존에 붙었을 때 6단에 넣기 위해 가속패달을 놓고 클러치를 끊는 과정에서 911은 반차선 정도 급격히 왼쪽차선으로 옮겨갑니다.
변속을 위해 한손으로 스티어링을 잡는 손이 반사적으로 살짝 풀어주는 동작이 없이는 250km/h의 속도에서도 가속패달의 개도에 따라 여전히 심한 각도변화를 보여줍니다.


후륜에 실린 무게가 액셀 off할 때 앞쪽으로 옮겨오면서 슬립앵글이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에 짧은 차체의 911의 머리의 움직임이 상당히 민감하게 움직이는 것입니다.
참고로 요즘 독일 고성능 스포츠 세단은 고속에서 턱인이 거의 발생하지 않습니다.


이는 독일차의 고속안정성에 대한 철학에 근거하며, 바로 이 대목이 프랑스차와 구별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수동변속기와 엔진과의 상관관계는 일단 3단 이후의 풀rpm을 사용해서 시프트업을 할 때에는 파워시프트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빠른 동작을 하는 것이 997을 즐기는 노하우가 됩니다.


워낙 클러치를 끊었을 때 회전 하강이 빠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클러치를 연결할 때 살짝 울컥이게 됩니다.


아주 급하면서도 절도있게 체인지레버를 꽂아넣고 클러치를 떼면 클러치가 전혀 마찰없이 서로 붙음과 동시에 가속패달을 깊게 눌렀을 때 엔진에 다시 부하가 걸리면서 흡기음이 순간적으로 굵어지는 순간을 체험하게 되는데, 이게 완전 마약입니다.


시승기를 쓰고 있는 이 순간도 귓가에 맴도는 911의 사운드는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환각제와도 같습니다.


변속충격없이 완벽하게 시프트업과 액셀링이 이루어졌을 때 들을 수 있는 완벽한 하모니의 결과물인 이 짧고 굵은 흡기음은 저를 완전히 미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997은 정말 뜨거운 녀석이었습니다.


독보적인 주행특성 그 독특한 영역의 지배자로서 911을 대체할 수 있는 스포츠카는 지구상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911만큼 혹은 그보다 빠른 스포츠카는 많지만 911처럼 오랫동안 일정한 주행패턴을 간직한 스포츠카는 없습니다.


포르쉐가 십수년전까지만해도 경영이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96년 복스터를 소개하고 판매가 급신장해 폭스바겐 투아렉과 형제차 카이엔은 포르쉐 입장에서는 돈벌어주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습니다.


카이엔은 엔진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폭스바겐에서 만들어준 차이기 때문에 개발비가 거의 들지 않고 대당 판매수익을 극도로 높여준 포르쉐 입장에서는 아주 중요한 cash maker이지요.


이제 은행 잔고도 빵빵하겠다. 여유자본으로 폭스바겐 주식을 왕창사들여 최대주주가 되었겠다, 여기에 앞으로 폭스바겐에서 플랫폼과 각종 요긴한 하드웨어를 공급받아 포르쉐 배지를 단 세단이나 SUV의 개발 및 판매에 엄청난 청신호가 켜진 상태에서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 911을 팔아야하는 시대는 최소한 현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여유로운 사정으로 인해 좀 더 자유로운 사고방식으로 항상 포르쉐가 제시했던 스포츠카로서의 기준을 다시한번 되새겨보고 911이라는 세계 스포츠카의 상징에 자신들이 오래전부터 믿고 신봉했던 신념을 반영시킬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제 가슴속에 911은 최고의 차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너무나 기억에 남는 시승기회를 제공해주신 송영상 원장님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test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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