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테드회원님 여러분,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이 글은 제가 활동하고 있는 동호회에도 같이 올린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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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이하여 와이프와 아들 그리고 중3짜리 조카를 데리고 하이원리조트에 눈썰매도 탈겸해서 1월1일아침에 출발하여 하루종일 놀고, 가지고간 닌텐도위로 숙소에서 밤늦게까지 스키점프를 하느라 진이 다 빠진상태였습니다.

 

아침6시반, 와이프에게 함백산 정상에서 해돋이를 보여주겠다며 졸린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아들과 조카는 방에 재우고 빨리 돌아오겠다는 심산으로, 차에서 내리지 않을것이라는 생각에 입고잤던 츄리닝바지와 조끼정도를 입고 차를 타고 함백산으로 출발했습니다.

 

폭스바겐 패밀리데이때나 다른 때 그쪽에 가보신 분들은 보신적이 있으실겁니다. 함백산정상에 보면 KT와 MBC의 중계소가 있습니다.

도로사정이 좋을 때도 민간인의 출입이 항시 허락되는곳은 아닙니다.

 

해가 떠버릴까봐. 걱정되어서 급한마음에 아무준비없이 그냥 정상으로 향했습니다.

길은 얼어붙은 눈들로 조금 미끄러웠지만, 개의치 않고 달려서 올라갔습니다. 정상에 오르기 전, 해돋이를 볼 수 있게

해놓은 지점에 도착하였습니다. 그곳에는 몇대의 차들이 이미도착하여 해돋이를 보기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시간은 아침7시가 조금 넘었었고 하늘은 밝아왔지만, 아직 해는 먼산밑에서 올라오지 않았었습니다.

 

'해가 떠오르려면 십오분쯤은 걸리겠구나..' 라는 생각에 저는 와이프에게 더 멋진곳에서 해돋이를 보여주겠노라며

차를 돌려 정상으로 올라가는길로 들어섰습니다.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합니다" 라고 써있는 간판을 무시한 채.. 설마 무슨일이 있겠냐..라는 어리석은생각에..

그리고 '내차는 4륜구동이니까 괜찮을꺼야' (이날은 티구안을 가지고 갔었습니다) 라는 만용을 부리며 눈이 쌓여있는길을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몇미터 올라가기도 전에 위에서 내려오는 차 두대를 만났습니다. 중간에 차를 돌리려는지 낑낑대고있는 차들.

조금만 옆으로 비켜주면 두대 다 충분히 지나갈 넓이가 되는데도 올라가는 제게 길을 비켜달라고 하는지 움직이지도 않는 앞차를 보며 짜증을 내면서 저는 더욱 신경질적으로 운전하며 발길을 재촉했습니다.

 

길은 완전히 눈길로 변했습니다. 심한 오르막이 아니여서 제 차는 그럭저럭 잘 올라가 주었습니다. 가끔 ESP가 깜빡거리며 뒤뚱대긴했지만 4륜구동이라 그런지 어느정도는 잘 올라가 주더군요. 5분쯤 올라갔습니다.

 

좁은길로 변했습니다. 왼쪽은 약간의 낭떠러지. 노란색 경계석이 촘촘히 박혀있었고. 제 차는 2~30킬로의 속도를 유지하며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런생각이 들었습니다. '안되겠구나.. 더이상은 못올라갈것같다. 내려올때 위험할 수도 있겠네..'...

하고 생각한 바로 그. 바로 그 순간, 차가 요동치기 시작하며 ESP는 그대로 불이 들어온 상태에서 오르막에서 차가 멈춰섰습니다

 

멈춘 바로 그순간, 0.1초도 지나지 않은 순간부터 브레이크를 밟은것과는 아무상관없이 ABS가 요동을 치며 차는 뒤로 미끄러져 내려오기시작합니다. 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 차라리 ABS가 안먹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차는 뒤로 미끄러져 내려갑니다. 스티어링조작도 아무소용없습니다. 차는 뒤로 내려가면서 점점 가속이 붙기 시작합니다.. 평소에 연습하던 브레이크여러번 나눠밟기와 카운터스티어링.. 모두다 아무소용없습니다.

제 차는 이미 제 컨트롤영역을 떠났습니다. 이제 운명에 맞기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옆에 있던 와이프는 저에게 "여보 장난치지마.." 라고 말했지만, 이게 장난이 아니라는것을 이미 알아챈듯합니다. 집사람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제가 놀라서 어쩔줄 모르는것을 보며 더욱 더 공포에 휩싸이고 있는것을 느꼈습니다.

 

차는 약 5초정도 뒤로 미끄러졌습니다.. 거리로는 30미터쯤..

차의 앞머리가 방향을 잃었습니다. 드디어 차가 옆으로 돌기 시작합니다. 내리막에서 후진해서 내려오면서 차가 옆으로 돈다는 것은, 잠시후 전복이 순서인것을 알고있었습니다.. 기도할 여유도 없었습니다..

 

차 앞머리가 30도쯤 우측으로 도는 순간...

 

 

저와 와이프는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조용했습니다.  제가 공중에 매달려있지 않고, 차의 시동이 아직 걸려있고 아이들상태가 유지된것으로 보아 큰 사고는 아닌것을 알았습니다.

천만다행으로 뒷범퍼가 노란색 경계석에 부딪혀서 차가 정지한것입니다..

 

너무나도 놀라서 침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았습니다. 오래전에 받아뒀던 물한병을 따서 마시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차문을 열고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stall.. 눈구덩이에 빠져서 나올 수 없게 된 그 상황이였습니다.

기어를 이리저리 바꿔가며 차를 움직이려 했지만 1cm도 움직이지 않고 헛바퀴만 돌고 있었습니다.

4륜구동도 아무소용없었습니다. 정말 막막했습니다. 옆에있는 와이프는 아직도 놀라서 숨을 헐떡이고 있고..

 

저는 속으로 '침착하자..침착하자..' 계속 되뇌이며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도움을 요청하는것이 급선무였습니다. 핸드폰을 꺼내서 보자.. 이런.. 충전하는것을 잊어버렸습니다.

평소에 항상 100%충전해놓고 다니던 내가.. 항상 와이프에게도 이럴때 대비해서 핸드폰,카메라등은 꼭 충전해 놓으라고 화까지 내던 바로 내가.. 핸드폰배터리가 단 한칸이 남아있는겁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그곳에서는 전파신호가 단 한칸만 잡힐 뿐이였고 그마저도 NO SERVICE로 바뀌다 잡히다를 반복하는 그런장소였습니다.

3G휴대전화가 이럴때 무용지물이라는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보험회사에 전화를 시도하였지만 신호가 가지 않았고

밖에 나가서 이리저리 전화기를 돌려가며 통화에 성공해도 주민등록번호를 자꾸 넣으라고 하는 멘트에 번호키를 입력해도 신호가 약해서 자꾸 잘못입력했다고 나오고 다시 걸어달라는 말과함께 끊어져 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배터리는 한칸.. 119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3G핸드폰은 수신신호가 없을때 비상전화만 CDMA방식으로 송신을 할 수 있는 기능이 있더군요. 119는 다행히 통화가 되었습니다.

이곳이 어디어디라고 말하고 지금 배터리가 다 닳아서 전화가 끊어질지도 모른다. 도움을 부탁한다. 지금 영하 15도인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없다.. 라고 말했는데도.. 119의 응답은.."어디시라구요? 어디에서 올라가셨다구요?

저희가 뭘 어떻게 해드려야 되나요.?". 등 도저히 긴급대응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그런 내용의 대답만..

"제가 내비게이션이 있는데 여기 경위도 좌표라도 알려드리면 도움이 될까요?" 라고 말씀드리자, "그러니까 어디시라구요? 어느길로 올라가셨어요?.."등.. 여전히 절망적인..

"아저씨 잘 들으세요! 저는 하이원리조트에서 정암사를 지나 해돋이을 보려 KT기지국으로 올라가는 길에 차가 눈길에 미끌어져서 조난상태입니다. 그리고 배터리가 없어서 전화를 못받을 수 도 있으니 빨리 견인차를 보내주세요!" 라고 정리해서 고함을 지른후 전화는 끊어졌습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였습니다. 차가 오르막경사에 있었기 때문에 휘발유도 빨간눈금에 더 가까이 가 있는것입니다.

아까 올때까지만 해도 절반정도 남아있던 연료였지만 예상주행가능거리계에는 100킬로미터만 갈 수 있다고 나오더군요. 제 예상으로는 이정도 아이들링으로 두세시간 정도면 시동도 꺼질 상황이였습니다.

바깥의 온도는 영하 15도. 산꼭대기 근처라 바람또한 세게 불어댔습니다. 들이쉬는 숨만으로도 콧속이 얼어붙는 정도였습니다.

다시 차가 다니는 밑으로 내려가려면 걸어서 30분은 내려가야 할것같았습니다. 정말로 예전에 디스커버리채널같은데서 보던 무서운 상황이 바로 나와 와이프에게 닥친것 같았습니다.

 

내가 정말 어리석었구나. 오만했던 마음과 한참모자란 내 운전실력과 내 차만을 믿고 이런 만용을 부려 나와 내 가족을 이런 위험에 빠뜨리게 했구나..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눈을감고 계속 이런저런 생각을 해봐도 딱히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고.. 방에 남아있는 다섯살짜리 우리아들과 같이온 조카가 걱정될 뿐이였습니다. 잠에서 깨어나서 얼마나 놀랄까..  시간안에 가지 못하거나 이게 더 큰 사고로 변하면 이일을 어찌할까.. 하는 걱정만 커져갔습니다.

 

하이원에서 근무중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신호가 잡히지 않아 전화는 걸리지 않았습니다. 우리와이프또한 아침에 부랴부랴 일어나느라 핸드폰을 방에 두고 왔네요. 일이 꼬이려면 이렇게 꼬이나봅니다. 조카의 휴대폰에 문자를 보내려 시도했습니다. 놀라지마라. 금방가니 잘 기다리고 있어라..라고 써서 보내려 했지만.. 문자또한 송신이 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20분쯤 지났을까.. 저 위에서 무쏘 한대가 천천히 내려오고 있는게 보였습니다. 소름이 끼칠정도로 반가웠습니다.

저는 차밖으로 튀어나가서 눈길을 뛰어 올라가며 손을 마구 흔들었습니다. 그때 제 걱정은 저차가 정지하지 못해서 제차와 충돌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지!!! 정지!!'를 외치며 전력을 다해 뛰었습니다. 그 차는 미친놈처럼 뛰어오는 저를 보며 100 여미터 전방쯤에서 정지했습니다.

 

70대의 노부부가 타고계신 차였습니다. 정년퇴직하신 후 전국으로 여행을 다니시며 사진을 찍으시고 가끔 전시회도 여신다는..

 

제 차가 1차선정도밖에 안되는 좁은길을 사선으로 막고 있었기 때문에 제차를 빼기전까지는 그분들도 내려가실 수 없는 그런상황이였습니다.  너무나도 죄송스런 마음이였습니다.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사모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차가 사고가 났고 저때문에 같이 피해를 보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도움이 절실하니 먼저 도움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분들은 차에 전화기 충전기도 가지고 계셨고 월동장구를 포함한 거의 모든것을 다 갖추고 계셨습니다.  싫은내색 한번 안하시고 제가 겪고 있는 일을 마치 본인들의 일인것 처럼 같이 걱정해 주시고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분들의 전화로 다시 119로 전화를 하고 견인차를 불렀습니다. 견인차기사님께서 말씀하시길..

"그곳은 경사가 심하고 눈길이여서 견인차가 올라갈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일단 가보긴 할텐데.. 40분쯤걸리겠네요.."

어째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생각난 것이지만 사건이 해결될때까지 그 길에는 다른차가 단 한대도 지나가지 않았었습니다. 그 노부부께서 안지나가셨다면 정말 큰일로 변할 수 도 있는 사고였던거죠. 그분들도 원래는 정상에서 점심까지 드시고 내려오시려고 했었는데 갑자기 남편분이 내려가고 싶다고 마음을 바꾸셔서 마침 그 시간에 내려오시게 되었다고 하시더군요. 마치 저희에게 도움을 주려고 내려오신것 처럼말이죠.

 

너무나 긴장을 했고 놀란 탓에, 갑자기 복통이 일어났습니다.

보통 아침 그시간에 화장실을 가지 않지만, 이건 완전히 상황이 달랐습니다. 지금 해결안하면 바지에 실수 할정도로 급격하게 배가 아파왔습니다.

눈밭속에서 실례를 해야만 했습니다. 휴지도 다 떨어져 물티슈로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 추위에선 물티슈가 꺼내자마자얼어붙어버리네요..  어째튼..

견인차 기사님께서 노부부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셨습니다. 차가 미끄러져서 더이상 못 올라오신다고.. 저는 그분이 계신곳으로내려가기로 결심하고 뛰어내려갔습니다. 발이 얼어와서 총총총 뛰어가는 발의 느낌이 참 희안하게 느껴졌습니다. 5분쯤 내려가자 견인차 기사님이 서계셨습니다. 자초지종을 설명드리고 같이 걸어서 올라갈때 쇠사슬뭉치(?)와 삽을 가지고 올라오시더군요.. 정말 반가웠지만 그것들로 뭘 어쩌시겠다는건지는 의문이였습니다.

삽으로 눈덮힌 땅을 파봤습니다. 얼어붙은 눈은 약 20센치정도로 단단히 다져져 있었습니다. 삽으로는 해결이 안되보였습니다.

남자셋이서 아무리 끙끙대도 차를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그때 무쏘를 타고 계시던 선생님께서 자신의 차에 체인이 있으니 내차와 무쏘를 그 쇠사슬(?)로 견인고리에 걸어서 한번 끌어보자. 라고 하셔서 시도해 보았습니다. 쇠사슬의 길이가 너무 짧아 견인고리에 묶는것이 이만저만 어렵지 않았습니다. 차밑에 누워서 들어가야 견인고리가 나왔는데, 쇠사슬을 잡고 있는 제 손은 뭘 잡고 있는지도 모를정도로 얼얼했습니다. 두 차를 쇠사슬로 연결하고 끌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긴 했지만 이내 무쏘도 속수무책으로 미끌어지고 맙니다. 다행히도 제 차가 아주 조금, 앞머리를 90도에 가깝게 틀 수 있게되어 무쏘가 제 옆을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만들어졌습니다.

"선생님, 지금까지 정말 죄송하고 감사했습니다. 힘드실텐데 먼저 지나가시고 내려가세요. 정말 죄송했습니다.."

제차를 지나 밑으로 무쏘를 이동하신 노부부는 남의일같지 않다며 그분들의 차를 저밑에 세워놓으시고 다시 걸어 올라오셔서 저희곁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사모님께서는 차안에서 코펠과 버너를 꺼내 커피를 타기 시작하셨고 이것저것 먹을것을 제 와이프에게 주시며 같이 걱정해 주셨습니다.

그때까지도 방법이 없었습니다.. 아니, 뾰족한 방법이 생각나질 않았었습니다. 차에 타서 악셀을 아무리 밟아대봐도

LSD(차동제한장치)가 없는 이상, 미끄러지는 바퀴만 계속해서 헛돌았습니다, 이쪽바퀴밑에 뭘 껴넣으면 저쪽바퀴가..  저쪽바퀴밑에 나뭇가지나 어떤것을 껴넣으면 뒷쪽바퀴가.. 계속해서 헛돌기만 했습니다.

그때, '아. 저차(무쏘)의 체인을 이차 바퀴에 감아봅시다' 라고 누군가 말했습니다.

처음부터 그생각이 안난것은 아니지만 바퀴사이즈가 너무도 차이가 커서 그게 체결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때가 견인차 기사님의 실력이 발휘되는 순간이였습니다. 너무나 능숙한 솜씨로 쇠로된 체인을 척척 제차의 앞바퀴에 감고계신 그모습!  고무줄과 전선쪼가리를 이용해서 사이즈를 조절해 탄탄하게 감아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직접 운전석에 타셔서 차를 빼려고 핸들을 이리저리 조작하시면서 악셀을 밟으시더군요.

'아~ 이제 갈 수 있게 되는구나..휴...' 라고 생각했으나.. 1초도 지나지 않아서..

체인을 감은 바퀴조차 눈이 쌓여있는 구덩이에서 헛 돌기 시작합니다. 아까 차가 미끄러져 내려오면서 경계석에 부딪히기 전에 눈이 많이 쌓인곳에 박혔고 빠져나오려고 헛바퀴질을 하는동안 이미 눈이덮인 땅이 깊히 파여서 체인도 힘을 쓰지 못한채 앞으로 뒤로 20센치정도만 왔다갔다하는정도만 움직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저 밑에서 추위에 떨고있는 와이프를 보며. 못난 제자신이 너무 미워져 한숨만 나더군요. 젠장..

어찌할바를 몰라 모두 다 한숨만 쉬고있던중. 제가 한번 해보겠다고 차에 올라타서 벨트를 맸습니다.

눈밭에서 얇은양말 한켤레와 얇은 운동화를 신고있던 제 발은 이미 감각을 잃어서 브레이크를 밟고 있는지 느낌도 없었고 체인을 감고 삽질을 계속했던 제 손 또한 핸들을 잡고 있는건지 아닌지 모를정도로 감각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던 중, 지금 방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곤히 잠자고 있을 제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백밀러로는 저 뒤에서 발을 동동거리며 저를 지켜보고 있는 와이프가 작게 보였습니다.

그냥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카톨릭신자입니다. 나일롱신자죠. 크리스마스나 부활절때만 성당에 가는..와이프와 저는 견진성사도 받았고 아들도 성사를 받았지만 성당에는 잘 안나가는 나일롱 신자입니다.

핸들을 잡고 눈을 감고 오랫만에 기도를 했습니다.  하느님아버지.. 도와주세요.. 제가 어리석어서 많은분들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제 오만과 만용을 크게 뉘우칩니다..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저 도미니꼬사비오(제 카톨릭 본명)를 도와주세요..' 

악셀페달을 밟았습니다. 아까까지 계속해서 헛바퀴질만 하던 제 차가, 마치 누가 뒤에서 밀고 있는것 처럼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움직인다고 여기서 정지하면 안된다. 탄력을 이용해서 길 가운데까지 차를 옮겨놔야겠다' 라는 생각에 오르막길을 앞으로 10미터쯤 전진해서 도로 정 가운데까지 옮겨놨습니다. 가슴은 터질듯하게 뛰었고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과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더군요. 이토록 멍청했던 내자신에 대한 한탄의 눈물이였고, 생명을 위태롭게 했을 수 도있는 제 와이프에 대한 미안함의 눈물이였고, 나를 도와주려고 그곳을 떠나지 않으셨던 노부부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였고, 평소 기도한번 안하던 제 기도를 들어주셨던 하느님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였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내모습이 너무 창피해서 재빨리 눈물을 닦아냈습니다.

그리고 후진으로 아주 천천히 체인의 제동력을 이용해서 경사로 밑에 약간 평평한곳까지 차를 옮겨놓고 차에서 내렸습니다. 해는 이미 중천에 떠올라 있었습니다.

그때시간은 10시반.. 세시간 반동안 눈덮힌 산속에서 생에 최고의 경험을 하고 나왔던 것이였습니다.

견인차 기사님께 수고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저를 도와주신 그 노부부님께는 근처 백숙집에서 아침식사를 마련해 드리고 연락처를 받았습니다. 그 노부부께서는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하셨다며 극구 대접을 마다하셨고 연락처를 주는것조차 마다하셨지만, 절대로 그냥 보내드릴 수 가 없어서 마구 고집을 부리며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겨울이 지나기 전에 꼭 다시 연락을 드리고 찾아가서 인사를 다시 드려야 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차 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내가 얼마나 잘난척을 했는지, 예전에 했던 못난 행동들.. 많은것들을 뒤돌아 생각해보고 뉘우치고 이런 소중한 경험을 하게 해주신 하느님과, 이런 소중한 경험에 같이 있어주고 저를 믿어주고 제게 힘을 준 제 와이프에게 감사했으며, 제가 이 위험에 처했을 때 꼭 저를 도와주기 위해 나타나신것 같은 그 노부부님들께 감사했습니다.

항상 모든일에 겸손하고 철저한 준비를 하고, 또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다른사람들이 이러한일을 당한것을 보았을 때, 나도 꼭 도움을 줘야한다는 것을 깨닳았고, 꼭 실천에 옮기겠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굳게 다짐 했습니다.

고마우신 분들께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위의 일은 2009년 1월2일 이른아침에 제게 일어났던 일 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