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와 B가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은, A가 B를 혹은 B가 A를 틀렸다고 할 이유가 못 됩니다.

모든 지리멸렬한 논의가 '다름'을 '틀렸음'이라 예단하는 편견에서 오는 것은 아니었는지요?

아래 필자가 쓴 내용은 주관과 객관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 하고 있는 듯해서 퍼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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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을 초월할 만큼 깊숙한 911의 세계... 포르쉐 911 GT3 (87점)

글/ S.Kumakura



  어느 스포츠카를 선택할까 하는 것은, 지갑의 사정이나 세상에 대한 체면이 아니라, 제작자의 생각이나 주장에 동의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로 정해진다. 그 전형이 포르쉐, 그것도 911다.

  911 앞에서 무엇보다 마음을 박혀드는 것은 그 독선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의 ‘고집’일 것이다. 지금의 상식으로는 어떻게 생각해도 불합리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RR 방식을 지금까지 관철하여 온 그것인데, 이는 기술자의 고집이라기 보다는 그냥 옹고집이라고 밖에 해석할 수 없다. 그 뒷배경에는 이미 완성된 911에의 이미지를 고집하는 팬의 목소리도 있어서, 이제 와서 방침을 바꿀 수 없었던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뿌리부터 결점투성이라고 말해지는 이 방식으로 세계를 납득시킬만한 물건을 내놓으면 되지 않는가. 다만, 그것을 관철하면 관철할수록, 다음 세대로 진화하면서 큰 변신을 하기란 어려운 것이 아마 포르쉐에게 있어서 최대의 고민거리임에 틀림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911의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잘도 여기까지 조율해냈구나 라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고성능 모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스태빌리티지만, 이토록 짧은 휠베이스와 뒤쪽 오버행에 큰 중량물을 짊어진 기본 구성으로, 새로운 모델을 내놓을 때마다 안정성을 더하는 것이 놀랍다.

  특히 997 GT3는 재가속의 트랙션 뿐만 아니라, 코너에 진입할 때의 거친 조작에 대해서 적절한 트랙션을 유지하는 제어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인가. 어디서든 예측한 그대로의 온더레일 감각으로 돌아나간다. 공도에서 약간만 상식을 벗어난 범위로 달리는 경우에는 스핀할 리가 없으며, 슬라롬에서도 상당히 의식적으로 거칠게 다루지 않는 이상 오히려 둔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구동륜이 묵직해서 안정적이다.

  GT3에는 지금까지 축적해온 스포츠카 만들기의 소스가 잘 버무려져 있다. 확실한 기본기를 가지면서, 어느 지점에서는 드라이버에게 적확한 판단력과 자제심, 그리고 기량을 요구하는 면에서 GT3가 갖는 퓨어스포츠적인 맛이 있다. 모든 조작에 대한 반응과 거동이 솔리드해서, 어떤 장면에서도 드라이버의 기분과 연동되므로, 어디까지나 인간이 주인공으로서 모든 것을 조종하고 있다는 감각이다. 포르쉐를 타면 포르쉐만의 조종하는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니까 잘못하면 실패를 겪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조심해야 하는 것은 스티어링을 꺾는 타이밍에 프론트에 적당한 하중을 실어두는 것. 이전에 비해서 놀라울 정도로 반듯한 자세를 유지하는 997이지만, 뒤쪽 차축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시소 같은 움직임이 남아있기 때문에 노면이 매끈하지 않은 길에서 제동할 때는 턴인에서 앞머리가 위아래로 지나치게 까딱거린다. 여기서는 신중하게 브레이킹을 마치고 불안하지 않게 밟을 수 있는 방향으로 바뀌기를 ‘기다리는 것’이 철칙이다. 이러한 기다림에 초조해하지 않아도, 후륜의 축하중이 크기 때문에 출구의 재가속에서 모든 것을 만회할 수 있다.

  어쨌든 GT3의 그런 맛보다 911 자체에 경탄하는 것은 그 다양한 라인업 때문이다. 베이식 카레라는 (특히 GT3와 비교해서) 완전한 실용차여서 초보운전자의 쇼핑 카트로도 불편하지 않게 사용할 수 있다. 고성능 자동차의 세계에서 더 이상의 만능차는 없다. 그런 관점에서 AWD를 고안하고 터보 모델을 갖추고 서스펜션 지오메트리 등 세부적으로 변경한 GT3 혹은 GT2로 발전시키거나 카브리올레나 타르가 등의 다양한 사양을 제시하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서킷을 즐길 수 있는 GT3 RS를 비롯해서 여력에 따라서는 FIA-GT에 참전할 수 있는 진짜 레이싱카까지 몰 수 있다는데 911의 진짜 가치가 있다. 911에 얽힌 고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고도 깊은 것이다.



신세대와 구세대의 대립을 공론화... 닛산 GT-R (86.5점)

글/ S. Kumakura



  닛산자동차는 보기 좋게 여기까지 도달했다. 새로운 GT-R의 등장은 자동차의 역사에 남을 쾌거다. 이것이 진짜 수퍼카인가 하는 것은 지금 마니아들 사이에 해석론이 분분하지만, 그런 논의를 일단락 지을 만한 힘이 GT-R에는 있다. “시끄러워 바보야, 맛보다 영양 아니야?” 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 그 포인트다.

  GT-R은 빠르다. 어떻게 했는지 이렇게나 빠르다. 만약 번호판을 붙인 채로 일반도로 레이스를 하면, 틀림없이 세계 제일이다. 왜냐하면 너무나 간단하게 빠르기 때문이다. 드라이버의 근성도 솜씨도 거의 따지지 않고, 누구라도 도로의 왕자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상대 역시 GT-R인 경우 뿐이다.

  그 열쇠는 치밀한 전방위 제어에 있다. 원래 스카이라인 GT-R(R32) 시대부터, 후륜구동을 기본으로 하되 적당히 프론트에도 파워를 보내는 스포츠 AWD로서 발군의 안정성을 자랑해왔지만, 어쨌든 파워를 뽑아낼 때의 적확한 트랙션은 정말 굉장하다. 600마력을 노면에 전달할 수 없어 트랙션 컨트롤에 의존하는 것보다, GT-R의 480마력으로 확실하게 차고 나가는 것이 빠른 것은 자명한 이치일 것이다. 게다가 철저한 안정유지장비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예상 밖으로 자세가 흐트러져도 순간적으로 자동차가 스스로 수정하여 드라이버가 노린 라인으로 달려나갈 수 있어서 더욱 더 빠르게 갈 수 있다. 순간적으로 “그게 아니라, 이렇게 하는 거죠”라고 GT-R에게 훈수를 듣는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악기에 비유한다면, 최신 신디사이저에 해당한다. 그만큼 어쿠스틱한 깊은 맛이 배어나오는 묘미를 바랄 수 없지만, 살아 있는 인간 그 자체로는 불가능한 기법으로도 연주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인간 소외를 야기시키는지도 모르지만, 20세기적인 선율의 규범에서 탈피하여 21세기의 새로운 지평과 그 가치를 찾아낸 것도 사실이다. 자동차도 과학의 유산인 이상, 이렇게 되는 것도 당연한 흐름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먼 옛날에 확립한 가치관을 재생산함으로써 자신의 상품 가치를 호소하고 있는 유럽 브랜드와는 근저에 흐르는 가치관이 완전히 다르다. 예상하지 못했던 각도에서 어프로치하는 것이 세대를 거듭해가는 GT-R이 표방하는 가치이며, 개발진이 가진 모티베이션의 근원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GT-R의 디자인에도 확실한 이유가 있다. 분명히 첫인상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는 수퍼카의 분위기는 아니다. 고전적인 페라리를 좋다고 여기는 심미안이라면, 이쪽은 단지 평범한 물건일 뿐인지도 모른다. 분명히 세세하게 트집 잡힐 여지가 있는 것은 아직 전체적인 아우라가 처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세계의 후발주자로서 잘난 선배들을 꺾어놓겠다는 각오를 펼친 이상, 고전적인 수퍼카와 선을 긋는 디자인 역시 하나의 회답으로서 이해할 수 있다. 여기까지 도달하면 호불호를 넘어선 문제가 된다.

  한층 더 중요한 일로 지적해야 할 것은, 단지 수퍼카 카테고리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해도, 이미 <일본 대 유럽> 혹은 <국산차 대 외제차>라는 구별이 의미를 상실한 것이다. R35 GT-R의 등장은, 자동차 문화 전반에서 구세대와 신세대 간의 추구하는 가치의 절연을 표면화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기존에 존재한 가치관에 비추어, 단지 “일본도 여기까지 왔네” 라고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큰 흐름을 놓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