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1년 반만에 글을 올립니다.

새로운 사업을 진행하며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다 보니 글을 적을 짬이 좀처럼 나지 않은 것도 있었고... 

더 진솔하게 말하자면 시시때때로 바뀌는 차들에 대해서 부끄러운 것도 있었구요.

한 대 한 대를 만날 때마다 끝까지 함께 하려 정성(=돈과 시간)을 쏟아가며 곁에 두지만, 인내가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거짓말처럼 마음이 식어가고 투자한 것 생각 없이 좋은 주인을 만나게 해 주는데에 집중하게 되더군요.

지금 말할 차들은 소유하며 애정이 흘러넘쳐 1년 넘게 소유하고 있는 것도 있고, 또 현실적인 이유에서 대체재가 없어 마음이 떠버릴 겨를이 없는 차량도 있습니다.

각설하고...


KakaoTalk_20250120_124407580_21.jpg

항상 구매할 때마다 (N-1)대를 유지하려고 하며 고르다 보니 GT 하나, 스포츠 SUV 하나로 통일하고 있었습니다만... 

결국 내가 욕망이 넘쳐흐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스스로 정했던 최저수량을 완화하니 마음이 편해지네요.  

개별적으로 게시글 남기기 전 간단히 소감을 남겨봅니다.

들어온 순서대로...

1) 닛산 큐브 (Z11) (소유기간 1년 2개월)

KakaoTalk_20250120_124407580_02.jpg

카이엔을 타며 도심에서의 스트레스가 생기고, 이것저것 가볍게 꾸미면서 탈만한 작고 귀여운 차에 대한 열망이 커지고 있었습니다. 

미니는 타 봤고, 비틀도 타 봤고. 친퀘첸토는 너무 작고. 아무래도 쓰레빠처럼 쓰려면 문은 네 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이리저리 뒤져보던 중 급 현타가 옵니다.

아니 작은 차를 타면서 유지비도 생각해야하는데 당연히 수입차 코너를 들어가 찾는 것이 맞는가? 그래 이번에는 국산을 타 보자. 라며 아베오 .4T 수동을 찾으며 혼자 스스로에 대해 뿌듯해하고 있었는데요. 정신을 차리고 나니 오래된 우핸들을 가져왔네요.

엔카를 지워야 사람이 정상인이 되는데...

KakaoTalk_20250120_124407580_03.jpg

 

가져오고 9개월차 정도. 1만키로를 탄 기념으로 다 터져버린 댐퍼 대신 테인 일체형을, 순정 깡통휠 대신 브릿지스톤 RAP038 휠을 끼웠습니다. 차고는 순정 대비 1인치만, 휠은 인치업 없이 경량으로... 파워트레인과 실내는 순정 그대로.

오래 전의 제가 봤다면 뭔 재미없게 차를 타냐고 말할만한 세팅입니다. 웬만한 16인치 정품 휠보다 비싸게 주고 산 경량 휠인데 남들이 보기에는 깡통휠처럼 보인다는 게 이제는 더 즐겁네요. 이 차의 목적은 주로 혼자 타며 매력이 톡톡 튀는 편한 시티 카이고, 그에 필요한 만큼의 세팅을 해 두었습니다. 타다 보니 100마력짜리도, CVT와 엮여서 그런지 제법 탈 만 합니다.

소유중인 다른 차들이랑 섞어타다 보면 가끔 깜빡이 대신에 와이퍼를 킨다는게 고민이라면 고민입니다마는.


2) 카마로 SS (소유기간 10개월)

KakaoTalk_20250120_124407580_11.jpg

기존의 빠른 차량을 담당하던 CL63은 너무나 좋은 차였습니다. 우아하고 여유롭게 다니는 바디에 달린 평화로운 엔진을 뜯어내고 연쇄살인마의 심장을 이식한다면, 저라도 앞 차를 찢어 죽일듯이 가속할 것 같긴 합니다. 

단점은 너무 빠르다는 것... 언제나 편합니다. Y를 벗어나려는 시점에서도 너무나 편합니다. 

조금 더 셔츠의 단추를 풀어헤치고, 차를 믿고 던지기보다는 나를 시험하며 즐길 수 있는 차가 필요한 때입니다.

KakaoTalk_20250120_124407580_13.jpg

차를 사고 내려오는 길, 고속도로에서 슬며시 추월가속을 하는데 2000rpm부터 엉덩이가 방정맞게 흔들립니다. 딜러는 대체 어떤 중국제 타이어를 끼워둔거야 투덜대며 휴게소에서 보니 피제로네요.
드라이브 모드에 T가 떠 있길래 트랙 모드인 줄 알았습니다. 투어 모드 - 가장 유순한 - 인 것을 안 뒤부터 식은땀과 함께 웃음이 배어나왔습니다.
너 독일차 아닌거 잘 알겠다. 앞으로 함께 뒷타이어를 잘 태워보자꾸나. 하면서요.

완전 순정 상태의 것을 가져왔고, 앞으로도 아마 그렇게 둘 것입니다. 열정이 한 풀 꺾인 제 오감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한 세팅입니다. 순정의 서스 또한 충분한 세팅이고, 순정 배기 또한 남의 눈치를 보며 잠을 깨워야 할 세팅입니다.

3)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ESV (소유기간 5개월)

KakaoTalk_20250120_124407580_08.jpg

한참 일을 하며 차에 대한 집착이 많이 떨어지던 시기였습니다.
타 볼 차는 다 타봤고, 마침 카이엔도 팔렸고. 주변인들은 나이 서른 초반에 무슨 경차같은 큐브냐, 그냥 남들 타는 대로 제네시스나 5/E/6 뽑아서 타고 다니라 하고...
딜러십 몇 군데를 다니며 낸 결론은, 나에게 몇천짜리 신차는 과분하다 였습니다. 그 돈이면 할 수 있는게 너무 많아요.  그리고 요즘 신차의 품질에 대해서도 썩 마음이 가지 않았습니다. 

남에게 보이는 것이 뭐가 중요하냐, 그냥 데일리로 큐브만 타고 다니자. 라 생각을 하던 도중... 스티커를 붙인 어떤 국산 세단의 어설픈 칼치기로 큰 사고가 날 뻔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차가 명함이라는 말을 애써 무시하며 작고 소중한 큐브를 아끼며 타고 있었는데... 동승하고 계시던 어머니의 '너 포르새 탈 때에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라는 말을 들으니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 많이 슬프네요.


KakaoTalk_20250120_124407580_24.jpg

카이엔보다 큰 차는 몇 있지 않습니다. 마침 카마로를 타며 미제의 느낌에 만족하기도 했구요.
에스컬레이드 중 매물 중 가장 좋은 상태의 것을 찾아(어차피 ESV는 몇 대 있지도 않더군요) 빠르게 탁송을 내립니다.

이 차로는 지금까지 시비가 붙은 적이 없습니다. 제 앞에 무리하게 끼어들지도 않구요. 몇 번 정도 얌체같은 운전자와 정지선에서 대화를 나누려 시도했는데 창문을 열지 않거나, 애초에 제 옆으로 오지 않으신 분들은 계셨네요.

차의 한계에 사람을 맞추고, 알아서 양보운전 배려운전 하려는 제 성향과 아주 잘 맞아 떨어집니다.

악천후/장거리 주행 혹은 동승자가 있을 때에 타려고 산 차이고 그 상황에서는 대체 불가능한 매력을 선사한다는 점만으로도 쏟아붓는 연비에 대한 정당화가 가능합니다. (도심 일반유 3km/l 이하, 고속 정속 약 9km/l)


4) W124 E200 (소유기간 2개월)

KakaoTalk_20250120_124407580_22.jpg

차가 3대정도 되면서, 업무와 휴일의 경계가 없어지다 보니 용도별로 차를 탄다기보다는 오늘 하루의 내 기분에 따라 바꿔타게 되었습니다.
캐주얼을 입을 때에는 큐브, 가죽자켓이나 무스탕을 입을 때에는 카마로. 정장에 코트를 입을 때에는 에스컬레이드.

비록 차는 3대지만 차에 대한 관심을 의도적으로 줄이려 하는(?) 시점에서... 오랫동안 놓고 있던 바이올린을 손에 다시 쥐게 되구요. 퇴근하고 나서 드라이브를 하는 대신 연습실에 가는 것이 일과가 되었습니다.
아 그런데 연습실 주차장이 썩 한산하지가 않네요. 주차 스트레스 없이 탈만한 차가 큐브 한 대밖에 없어 차를 한 대 더 사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저도 살 때에는 굉장히 합리적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글로 풀어내고 나니 중환자의 마인드네요. 

 

KakaoTalk_20250120_125750820.jpg

어릴 적부터 저는 벤츠를 좋아했습니다. 단순한 '고급차' 의 상징 이상이지요.

어릴 적 발음을 못 하면서도 '메르메르 벤쯔'라 하며 미니카를 가지고 놀았고 
잡지로만 보던 외제차를 처음 타본 것도 벤츠였습니다.
지금은 먼저 귀천한 친구들과 함께 새벽에 만나면서도 우린 커서 흰색 벤츠 타자 하였고
그래서 남보다 이른 나이에 돈을 만질 때에도 벤츠를 탔습니다.
몸과 마음이 망가져 고향에 내려올 때에도 구닥다리 벤츠를 한 대 샀었고
역시 벤쓰는 8기통이지 하며 AMG만을 고집한 때가 엊그제입니다.

지금요? 제 손에 담은 벤츠에게 기대하는 것은 예전보다 많이 줄었습니다. 빠른 차, 편한 차, 실용적인 차 모두 가지고 있는데 굳이 중복될 필요는 없죠. 오직 로맨스를 기대하며 탈 뿐입니다.

오래된 스피커에서 나오는 바이올린의 선율을 들으며, 유리 렌즈 너머로 밝히는 침침한 전구빛 조명을 등대 삼아 기계식 4단의 투박한 변속감을 느끼며 주행하는 기분은 각별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이런 차량은 만나볼 수 없을 거라는 확신과 함께, 잘 닦고 유지하면 앞으로도 내 곁에 꾸준히 있을 거라는 신뢰감은 21세기 차량에서는 쉽사리 느낄 수 없는 감정입니다.


KakaoTalk_20250120_124407580_20.jpg


한 대씩, 풀어나가 보겠습니다. 차계부 형식이 될 수도 있고, 저번처럼 이야기 방식이 될 수도 있고...

자동차, 참 애증의 취미네요. 돈도 많이 들고 빠져나오기도 힘들구요.

그나마도 차에 맞춰 제 라이프스타일을 변화하기보다는, 제 생활에 맞춰 카 라이프를 누리는 점이라도 다행이라 생각하며. 가능할 때까지 마저 이어나가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