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stdrive
필자의 집에서 10년 전에 신차로 구입하여 현재까지 운행중인 차량이다. 운행 연수는 약 11년을 바라보고 있으나 정작 필자는 본격적으로 이 차량을 비롯하여 다양한 차량의 운전대를 잡고 자동차의 여러 측면에 대해 알아가게 된 지 채 2년도 되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코 내 성향에 부합하는 차량은 아니다.
운전의 즐거움을 찾을 수 없는 보수적인 성향의 파워트레인, 형편없는 스포츠주행 감각 등...
외관
제법 스포티하면서도 젊은 느낌을 주고자 한 흔적이 어렴풋하게나마 보이지만, 실내는 핸들을 비롯하여 대시보드까지 2000년대 중후반 준대형 세단에서나 볼 법하게 올드한 우드그레인으로 치장되어 있다. 이런 안팎의 괴리스런 디자인으로 어떠한 컨셉을 표방하고자 한 것인지 감을 잡기가 힘들어진다. FL 이후 모델처럼 차라리 안팎이 일관되게 컨셉이 확고한 편이 낫다.
승차감 & 주행성
묵직하고 차분한 승차감을 표방한 렉서스의 컨셉과 약간의 단단한 주행질감을 양립하려는 당시 셋업의 컨셉이 느껴진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차체와 서스펜션의 매치가 조화롭지는 않다는 느낌인데, 방지턱과 같은 큰 범프를 지날 시 질감은 무난하나 길고 불규칙하게 이어지는 잔요철을 중저속으로 지날 때는 차체가 잔충격을 불쾌하지 않은 정도의 그것으로 필터링을 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하이브리드 전용 4기통 엔진 또한 어지간한 2500cc 대 4기통 엔진을 탑재한 타사 차량들에 비해선 진동/소음 대책이 의외로 나쁜 편이다. 때문에 가속 시 실내로 유입되는 부밍음이 생각외로 크다. 노면소음, 풍절음 등의 방음대책이 현재 기준으로 보더라도 상당한 수준에 속하나 반대로 말하면 거칠고 시끄러운 4기통 엔진의 회전음이 이 때문에 더 크게 부각되는 감이 있다. 여유만 된다면 3.5 GR엔진이 탑재된 F/L 이후의 차량으로 대차하고 싶은 마음이 이따금씩 들기도 한다.
2톤이 넘어가는 차체에 HEV 파워트레인은 190마력과 30토크 남짓한 성능을 낸다. 60-80 가량의 속도 대역에서는 큰 부족함이 없고 저rpm에서의 토크로 잘 밀어붙이는 느낌이 나 시속 120km를 넘는 고속주행이라던가, 언덕길이 이어지는 환경에서는 힘이 부족한 것도 아닌 것이 왜 이렇게 rpm을 필요 이상으로 높게 올려다 쓰는 것인지 하는 느낌을 받게 한다. 전체적으로 전기모터의 출력을 적극적으로 가져다 쓴다는 느낌은 아니며, 엔진 가동의 빈도가 타사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에 비해 높다. 아주 중저속을 제외하고는 어지간한 가속 환경에서는 엔진의 개입이 쉽게쉽게 이뤄지는 편이다. 연비 면에서는 손해를 보는 시스템 로직이겠으나 안정적인 가속, 모터의 부하를 줄여 내구성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긍정적인 셋업이다.
제법 긴 휠베이스에 승차감 위주의 셋업을 한 차량에서 다이내믹한 주행성능을 기대하긴 힘들다. 실제로 전문 매체 The Best Lap에서 동급 국산차 모델들과 함께 랩타임을 측정한 결과 동급 최하위 수준의 성적을 거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브랜드의 표방 가치에 맞게 성능은 확실하게 버리고 승차감 하나에 완전히 집중한 셋업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전작의 ES만큼은 아니나 전체적으로 날렵한 주행과는 거리가 먼 질감이다. 굽잇길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둔중한 움직임과 고르지 못한 노면을 제대로 서포트하지 못하는 섀시강성은 와인딩 주행의 의지를 한풀 꺾는다. 시트포지션과 핸들 감각 또한 그냥 저속으로 동승자들이 편안한 운전을 하도록 일조한다.
다만 고속 항속주행 시 만족감이 의외로 상당한 편이다. 긴 휠베이스와 우수한 노면/풍절음 방음대책으로 편안한 주행감을 꽤 높은 속력대에서도 이어가는 것이 가능하다. 가장 편안하게 달릴 수 있는 속도대역은 100~120km/h대. 그 이상의 영역에서도 독일차의 그것은 아니나 나름대로 헐겁지 않은 느낌으로 풍족하고 안정적인 주행을 이어간다. 전체적으로 고속 항속이 주를 이루는 미국 시장을 표방한 느낌의 주행질감이다.
총평
내구성이라는 부문을 강조한 마케팅이 한국시장에서 은근히 잘 먹히는 세일즈 포인트이다. 20년 전 르노삼성에서 SM520을 팔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SM5가 당시 EF쏘나타나 옵티마와 같은 경쟁상대 대비 그다지 특출나게 나은 점 없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것엔 '내구성 마케팅'이 아주 큰 역할을 한 바가 있다. 오히려 기능, 설계상으로 놓고 보면 구형 맥시마의 플랫폼을 그대로 가져다 쓴 SM5가 열세일수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자동차에 관심이 깊은 사람들을 제외한 일반인들에게 자신들이 보유할 자동차는 그저 '가고 서고 돌고'의 기초적 기능만 고장없이 제대로 해낼 수 있다면 그만인 존재로 보인다. 승차감에 대한 평가, 주행성능 등의 부차적인 것들은 적응의 영역이지 장단점을 따질 문제로 인식되지도 않는다. 방음이 소형차 수준도 안된다고 리뷰어들에게 그렇게 혹평받던 로체나 YF쏘나타도 일반인들은 귀만 적응되면 별 말 없이 탄다. 시끄러운 줄도 모르는 소비자들도 꽤 있다. 시속 110만 넘어가면 휘청거리는 아반떼 MD의 토션빔도 사실 차를 잘 모르는 소비자들은 느껴지지 않는 영역이다. 어지간해선 소형차는 원래 불안한가보다 하고 수긍할 뿐이지.
결국 일반 대중 소비자들에게 와닿는 상품성은 '말썽만 안 부리면 그만인'이라는 형용사가 차지할 포션이 상당히 큰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내가 굳이 자동차에 신경을 쏟지 않더라도 알아서 잘 굴러가기만 한다면 그만. 렉서스와 토요타는 이런 한국 소비자들의 니즈를 정확히 꿰뚫는 상품성으로 승부를 본 브랜드이다.
ES300h는 제조사의 우수한 기술력으로 특출나게 좋은 만듦새나 성능 따위를 기대하고 접근한다면 경우에 따라선 다소 실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된다. 조금 더 승차감이 좋고 조용한 차를 찾아보라면 찾을 수 있고, 다른 부문에서도 더 우수한 성능을 보이는 선택지들이 다수 존재한다. 차를 조금 좋아한다는 사람들은 렉서스보다는 다른 선택지를 더 끌려하는 경우도 많다. 다만 준수한 성능과 상품성을 두루두루 부족하지 않게 지님과 동시에 말해 뭐한 내구성을 지닌 도요타-렉서스 계열의 명성은 차를 잘 모르나 오래타기 좋은 선택지를 찾는 중장년층 소비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선택지로 다가올 수 있다.
차량가액이 1000만원대 초반으로 많이 낮아진 지금은 꽤 진입장벽이 낮아 저렴한 가격으로 럭셔리한 품질을 느낄 수 있는 합리적인 기회이다. 신차로 출고하여 운행한 소비층들의 주행 성향이 차량의 내구도에 유리한 편인지라 중고시장에서 어렵지 않게 상태가 우수하고 합리적인 매물을 찾을 수 있다.
엔진 계통의 정숙성과 성능까지 중요시한다면 6기통 엔진이 탑재된 ES350을 더 권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