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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들을 가지고 올 때마다 가급적 공통점이 없는 차들을 고르려 합니다. 차량간의 차이가 클 수록 차를 탈 때의 낯선 즐거움과 설레임이 늘어난다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현재 제 차들 중 항상 나란히 붙여서 주차하는 차들 두 대가 있습니다. 브랜드부터 생김새까지 겉보기에 전혀 공통점은 없어 보이지만, 둘 모두 같은 핏줄의 엔진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 큰 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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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dillac Escalade ESV MY2008
~1. 구매까지~
1년이 넘게 애정을 쏟으며 탔던 스투트가르드의 캐시카우를 판매한 지 약 4개월이 되던 차였습니다.
이런저런 차들을 보며 새로운 데일리를 고르면서도 골머리를 감싸쥐던 중.
'삼지창을 타 볼까? 아냐... 지금 타기엔 내가 너무 젊어. 너무 유명해진 브랜드를 감당할 수 없어'
'영국제 신발브랜드를 타 볼까? 아 이거 괜찮은데... 근데 옆그레이드 아닌가? 유지보수는 더 어려울건데.'
'SUV 꼭 필요없잖아. 그냥 별표 중짜 타자. 친한 형님들이랑도 적당히 급도 맞고. 헉 풀체인지 나왔네? 좀 무리해봐?
(타본 후)
'와 진짜 이따구로 만ㄷ(이하생략) 안 사... 특별함이 없어. 신형인 것 말고는 나에게 장점이 없는 차.'
예상보다 너무 큰 만족도의 일제 씨티카를 꾸준히 타고 있으니 급할 것 없다 생각하며 틈틈히 사무실에서 엔카를 뒤진 지가 어느새 몇 개월이 지났고. 이제는 새로운 차량에 대한 설렘보다는 스트레스가 오르고 있엇습니다. 데일리로 타는 저배기량 해치백 하나에 장거리&고속용 스포츠카 하나. 이 정도의 조합만 타도 충분히 행복하다 생각하며 마음을 거의 접던 도중. 대낮에 6차선 도로에서 큰 사고를 겨우 피하게 되었고... 이하 상황 해결 후 동승자(어머니)와의 대화.
"운전을 왜 그렇게 했대?"
"빠져나갈 수 있을 줄 알았대. 미안하대."
"그래도 안 싸워서 다행이네. 왜 이 차는 이상한 일이 많냐."
"어차피 느린 차라 흐름에 맞춰서만 타는데 가끔 저런 차들이 있어. 괜찮아."
"나도 천천히 다니는데 저런 차는 없더라."
"..."
"아들, 이 차 귀엽다고 좋아하는건 알겠는데, 참을 일이 없게 하는게 더 좋은거다. 좀 큰 거 찾아봐라. 돈 부족하면 말하고"
오, 마지막 말에 혹시나 해 날으는 B의 SUV를 보여드렸으나 돌아오는 건 차가운 눈초리 뿐. 씨알도 안 먹힐 소리긴 했지
차량 선택의 우선순위가 정해지니 선택지가 확 좁혀집니다. 크고, 편안한 차. 애초에 타던 차도 작은 사이즈가 아니었기에 풀사이즈 SUV로. 그리고 꼭 스포티할 필요 없는, 아니 스포티하지 않으면 더 좋을... 바로 그런 차, 에스컬레이드. 롱바디는 더 크다고? 그럼 롱바디 사야죠.
안심번호로 전화를 겁니다. "네 여보세요. 엔카 보고 연락드립니다... 탁송도 가능하시지요?
~2. 키를 손에 쥐고~

퇴근 후 늦은 시간 차를 아파트 앞에서 받아 봅니다. 첫인상은 큽니다. 정말 큽니다.
예전 타운카를 탈 때에도 느꼈지만, 미국 내수용으로 설계한 차들은 원근감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크게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이 아닌, 그냥 그들의 세상에 맞춰서 만들다 보니 사이즈가 커진 느낌이랄까요.
휠만 하더라도 다른 SUV가 19인치를 소화하듯 22인치를 소화해냅니다. SUV에 사이드 스텝 달려있는 모습을 별로 안 좋아해서 제거를 생각했지만 차 문을 열고 올라가려니 사이드스텝이 필수입니다. 제가 작은 키가 아닌데요.
키박스에 키를 꼽아(허 참) 시동을 거니 글자 그대로 '크르렁' 소리를 내며 시동이 걸립니다. 실외에서 시동을 걸어도 동굴을 울리는듯한 멋진 소리 이후에는 박자를 맞추는 낮은 아이들링 소리가 뒤따릅니다. 이 소리는 창문을 닫으면 전혀 들리지 않지만, 주행 중 1000rpm을 넘어가면서부터는 낮게 그릉거리는 소리가 실내에 흩뿌려집니다.
이렇게 낮은 음역대를, 이정도 음량으로 부밍음 하나 없이 전달해주는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유럽제라면 이런 설계였겠구나 싶었겠지만 미제에 그런 섬세함을 기대하지는 않고... 줄인다고 줄였는데 이정도겠거니 생각하는 중입니다.
칼럼시프트를 D레인지에 두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니 생각보다 사뿐하게 움직여줍니다. 과속 방지턱을 한번 넘어보니 이게 승차감이 좋다 해야할지... 고속도로 빨래판이라거나 거친 노면을 지날 때에는 잔진동이 꽤나 들어옵니다.
그런데 자잘한 단발적인 충격은 큰 타이어(285/45/22)과 무거운 무게(공차 2.6톤), 긴 휠베이스(3.3미터)로 무시합니다.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에도 앞바퀴가 온전히 넘고 난 뒤 뒷바퀴가 밟다 보니 차가 흔들릴 일이 적구요.
절대 정교한 세팅이 아닌데 승차감이 묘하게 좋아서 짜증납니다. 승용차나 SUV보다는 시내버스의 승차감에 더 가깝지 않은가 싶네요. 덜 출렁이고 더 조용한 버스.
타다 보면 이 차량의 뿌리가 생각납니다. 캐딜락이라는 브랜드와, 번쩍이는 크롬에 가려질 수 있지만 이 차는 GMT900(제네럴 모터스 트럭 900) 뼈대를 기반으로 합니다. 포드로 치면 F150 샤시입니다.
절대 고급차가 아니지요. 이걸 생각하고 타 보면 납득이 갑니다. 정치인들이 타고 셀럽들이 타서 고급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외관만 멋진 트럭입니다. 하긴 예전에 잠시 동승해본 4세대(숏바디)도 캐딜락이라는 잣대를 대기에는 고개를 갸우뚱했던 기억이 났는데, 새삼 이 차를 타며 다시금 뇌리를 스치네요. 아 그래서 그따ㄱ... 크흠.
밟으라고 생긴 차는 아닙니다만 400마력 SUV답게 달려주긴 합니다. 가끔 빈 도로에서 5천rpm까지 써 보면서 쭉쭉 가속하면 V8 SUV 타는 맛이 납니다. 기름게이지는 보면 안 되구요.
~3. 실생활에서~

일단 연비는 의외로(?) 좋습니다. 시내에서는 보통 4키로정도, 고속에서는 한 9키로정도. 출퇴근시간 도심은 2.5키로정도. 출퇴근시간은 가급적 안 타려고 합니다. 그나마 연료탱크가 120리터라서 자주 주유 안 하는건 좋네요.
셀프주유소에서 가득(15만원 선결제)넣으려 해도 가득이 아닌 차라서 저는 그냥 적당히 비어간다 싶으면 미리 가서 주유해둡니다. 아, 그 전 SUV는 고급유 세팅이었는데 이건 일반유 넣어도 되서 오히려 유류비는 줄었습니다. 럭키.
다만, 생각보다 잘 나오는 연비는 어디까지나 저rpm에서 오는 부수적인 산물이라서... 스포츠카마냥 신나게 돌리면 80L/100km라는 연비도 볼 수 있습니다. 순간 아니고 평균연비로요.
부품값 매우 쌉니다. 뒤쪽이 에어서스라서 좀 걱정했는데 어느정도 검증된 부품으로 사더라도 독일차 부품의 1/5 가격이네요. 최근에 샀던 부품들 보면 에어서스 양쪽 30만원정도. 스티어링 랙 40만원정도. 알터네이터 10만원, 하체 앞쪽 부품 전체 50만원 등등... 대신 외부 몰딩이나 범퍼류는 비쌉니다.
주차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폭이야 요즘 2미터 넘는 차들 꽤 있다 치는데, 길이가 길다 보니 3포인트 턴도 안 될 때가 많아요. 구축 빌딩 갔을 때에 티켓 두 개 끊은 적도 있습니다. 주차 중인데 관리인분이 오셔서 말씀하시기를
"사장님 이거 롱바디지요? 나중에 차 더 들어오면 못 나가요... 두 칸 끊고 대각선으로 대셔요. 얼마 차이 안 납니다..."
다음에 다른 차 타고 가니 함박웃음 지으시더군요. 진작 이런거 타고 오지 그러셨냐고.
대신이라기엔 그렇지만, 도로에서 배려를 많이 받습니다. 일단 까맣고 크고 높으니 비싸보이는지(?) 세상이 참 살만한 세상이라는게 느껴져요. 골목길에서도 직진우선을 잘 지켜주시고, 애매하게 대치하는 상황에서도 먼저 후진해주시고, 합류구간에서도 순서 잘 지켜주고. 안전거리 넉넉히 유지해도 잘 안 끼어들고, 택시들도 얌전히 운전하시고. 적다 보니까 좀 화나네요. 평소에 당연하게 지켜져야 할 일들인데요. 뭐 타는 동안이라도 평화로우면 됐습니다.

또 다른 V8 OHV도 몰아서 적으려 했는데, 시간이 늦어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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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동거리는 충분하게 나옵니다. 제가 원체 안전거리를 둬서 그럴 수 있습니다. 반복되는 제동시에는 구수한 패드 냄새가 빨리 올라오기는 합니다마는... 어쩔 수 없다 생각하구요. 기름통의 크기도 좋지만 사실 일반유에서 오는 만족도가 더 큽니다. 어딜 가도 편하게 주유할 수 있으니까요 ㅎㅎ
한번 실물을 보시면 아마 더욱 좋아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SUV의 (현실적인)본질을 생각하면 딱히 생각나는 대안이 없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이 차를 판다면 아마 4세대 ESV를 또 사지 않을까 싶은데요. 언제 한 번 오셔서 커피 한 잔 대접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현우님 말씀처럼 일반유이니 어디든 편히 갈수 있는게 또한 매력이네요.
4세대도 이쁘던데 , 용돈제로 바뀐 다음에 총알이 쉽지 않습니다. ㅋ
주차할때 각이 안나와서 주차시에 힘들거 같은 생각이 듭니다.
전에 해미는 배기를 해놔서 소리는 듣기 좋은 사운드 였는데 , 이 엔진도 그리하겠네요,

검색해 봅니다. 저는 ESV는 자신이 없고 숏바디로 구입 할려고 매복중에 있습니다.
2012년식 중에서 볼려고 하는데 , 있는차를 없애에 되서 고민이 좀 됩니다.
걱정 되는건 앞 브레이크 디스크와 캘리퍼가 차에 비해 매우 작은거 같은데 아직 시승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밀리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기름통이 120리터라서 얌전히 운전하면 연비가 ??? 나오겠지요., ^^
저도 한번 ESV를 실제로 봐야 다시한번 생각해보지 않을까 합니다.
모쪼록 복원 잘 하시고 ^^ 부품값 싸다고 하시니 더 마음에 기우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