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글쟁이 류청희입니다.


서울경기 지역에 폭설이 쏟아진 12월 27일~28일,

혼절하기 직전까지 일에 에너지를 쏟고는 거의 24시간 시체처럼 자느라

그날 밤 있었던 개고생 얘기를 어제서야 뒤늦게 제 블로그에 올렸더랬습니다.

아직 후유증이 남아 있는 상태라... 그냥 블로그 포스트를 퍼다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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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중순 이후 포스트가 없었죠?
올해 마지막 회사 프로젝트를 진행하느라 그랬습니다.
안그래도 힘들었던 연말, 정말 대미를 장식하는 최악의 프로젝트였죠.
그 최악의 프로젝트, 마지막도 최악이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12월 28일 오전에 예정된 PT 발표로 올해 스케줄을 일단락 짓는 것이었습니다.
PT 준비라는 게 늘 변수가 있기 마련인데,
이번 PT는 준비과정에 PT 주최측 내부의 여러 정치적인 요소들이 끝까지 개입하는 바람에
막판까지 엎고 뒤집는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28일 발표인데 최종 수정 자료가 27일 다 저녁때 넘어왔죠.
그나마 다행인 것은 1차 정리가 끝났을 때 100p 분량이었던 것이
최종수정 때에는 90p 정도로 줄었다는 것.
그것도 좋아할 일만은 아니었다는 것은 발표용 PT 자료 정리가 끝난 뒤에 확인됩니다.

어쨌거나... 27일 점심때부터 내린 눈으로 서울 교통은 초대박 대란상태였습니다.
이 때 저와 저희 팀에게 주어진 임무는
1) PT 수정완료된 최종본 완성해 PT장 합류 팀에게 전달
2) 발표장에서 생길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PT장에 미리 도착, 발표환경 체크 및 시연
3) 발표시간 동안 발표장에서 대기 --> 정장입어야 함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2)와 3)이었습니다.
작업이 이루어지는 합동사무실은 도곡동이지만,
정장을 준비하지 못한 저는 어떻게든 작업이 끝나는 대로 파주 교하의 집에 갔다 와야 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PT 작업을 일찍 끝내보고자 애썼지만,
발표용 PT 제작이 끝난 시점이 28일 오전 2시 30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상은 했지만 사전 언질이 없었던 별도보고자료 제작과 인쇄용 파일 작업이 끝난 것이
28일 오전 4시...

이제 괴괴적적한 강남 한복판을 떠나 집에 갔다가
오전 8시까지 안국동 부근의 발표장까지 정장을 입고 가야 하는 미션이 남았습니다.
문제는...
이미 대중교통은 택시를 제외하고는 모두 끊어진 상태.
어차피 대중교통으로는 시간 내에 모든 미션을 수행할 수 없으니 포기할 수 밖에 없었죠.
결론은 사실 하나 밖에 없습니다.
제 차로 움직이는 것.
그런데 회사 사정상 제 차는 다른 PT 작업 중인 팀장이 끌고 다니고 있었습니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빠른 판단과 행동만이 살 길이었습니다.

일단 팀장이 갖고 있는 제 차를 넘겨받기 위해서는 송파구청 앞까지 이동해야 하는 상황.
택시 교대시간이 가까와지는데다 길마저 엉망진창이니 택시 잡기도 쉽지 않습니다.
몇 대인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기사 양반들을 보내고 어렵사리 잡은 택시 편으로
송파구청 앞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도착하니 4시 30분입니다.
마찬가지로 같은 날 발표하는 PT 작업 때문에 밤새고 있는 팀장에게서 차 키를 받아
차가 세워진 곳으로 가 보니 온통 눈에 뒤덮여 있습니다.
우선 시동부터 걸고 먼지 털이개로 대충 눈을 치운 뒤 출발한 것이 4시 45분 쯤...

어느 정도 제설작업이 되었으리라 생각했던 올림픽대로는
영하 10도를 밑도는 기온에 엉망진창인 상태였습니다.
서울 도로가 이 지경인 모습을 언제 또 봤었나 싶을 정도로 말이죠.
그런데 올림픽대로의 상태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습니다.
행주대교를 넘어 자유로에 오르니... 이건 길이 아니라 스키장입니다.
스티어링 휠을 똑바로 잡고 있어도 차의 네 바퀴는 각자 제 갈길을 가려고 합니다.
3일 동안 2시간 밖에 못 잤지만, 길 상태는 졸음을 불러올 여유를 주지 않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없습니다.
차가 그나마 조금 적은 편이라, 최대한 급제동할 가능성을 낮게 유지하면서
최대한 속도를 내어 달립니다.
그래도 도무지 시속 100km를 넘길 수 없습니다.
네바퀴굴림 차도 아니고...
어쨌든 어렵사리 집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5시 40분.
사흘 동안 감지 못한 머리, 깎지 못한 수염부터 먼저 해결하고
정장으로 갈아만 입고 사흘 동안 얼굴 한 번 못 보고
크리스마스에도 함께 하지 못한 가족들을 뒤로한 채 집을 나섭니다.
오전 6시 15분의 일입니다.

눈은 그쳤지만 파주는 안개가 짙게 몰려드는 상태.
가장 빠르고 안전한 교통수단인 지하철을 이용하면 좋겠지만,
지하철을 타러 나가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또 다시 차를 몰고 나섭니다.
안개를 뚫고 자유로로 들어서 조금 달렸을까.
예상치도 못한 일산 장항 IC 부근에서 온통 빨간 불빛이 가득한 광경을 맞닥뜨립니다.
이건 아니다 싶어 순간적인 판단에 의해 차를 일산시내 쪽으로 돌렸습니다.
그리고는 능곡, 행신, 화전, 수색을 거쳐
안국동쪽 발표장 부근 주차장에 차를 세운 것이 오전 8시.
드디어 미션 성공했습니다...
부족한 것은 많았지만 발표는 제 시간에 제대로 발표가 이루어졌고,
이로써 이번 프로젝트 전체의 3/4이 무사히 완료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무사히 발표가 끝나고 집으로 오는 길...
긴장은 풀리고, 졸음은 몰려 옵니다.
발표장에서 만난 팀장에게 운전을 맡기고,
반쯤 잠이 든 채로 집에 돌아오고 나서야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1년에 몇 번씩 겪는 일이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이렇게 힘든 PT 마감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