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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중반쯤이었습니다. 후배 박진수님과 전화통화를 하던중 2월 말경에 트랙데이가 있는데
아는 사람들끼리 등록을 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시승차 스켸쥴이 계속 잡혀있는
상태였고 다른 시승차도 신청하려던 참에 트랙에 어울리는 차를 수배하기로 했습니다.
A&M (시승차 관리대행사. 아주 큰 규모로 LA 지부에서는 GM, 벤츠, 닛산, 재규어, 포르쉐등
많은 회사의 시승차를 관리하고 있습니다)에 알아보니 마침 스바루 임프레자 WRX STi가
그 시기에 시승이 가능하더군요. 그래서 STi를 예약해 두었습니다.
원래는 토요일 새벽에 출발하여 트랙으로 곧바로 가려 했으나 모텔비가 그리 비싸지 않고
또 새벽 서너시부터 일어나 움직이는 것보다는 가까운 곳에서 전날밤을 보내는 것이
이래저래 나을 것 같아 후배 신원석님과 함께 금요일 오후에 출발을 했습니다.
바퀴벌레가 출몰하는 모텔 6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버튼윌로우 스피드웨이로
향했습니다. 여느 트랙데이와 마찬가지로 등록과 드라이버즈 미팅으로 시작되었습니다.
Red, Blue, White, Yellow의 네 그룹으로 나뉘어졌고 저를 비롯해 저희와 함께 트랙데이에
참석한많은 분들이 White 그룹에 편성되었습니다.

첫 세션에서는 무리하지 않고 차의 느낌을 살펴보는 수준에서 달려보았습니다.
제 차도 아니고 코스 또한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어떤 분이 트랙주행은 차에 무리가
많이 가니 자기 차로 달리는 것보다 남의 차로 타야 제 맛이라고 하신 적이 있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트랙 주행에 차에 부담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웬만한 차들은
그정도 부담은 충분히 이겨내도록 만들어져 있으며 자신의 차로 달려야 차와의 일체감이
더욱 강해지지요. 게다가 시승차의 경우 다음 저널리스트가 탈 수 있도록 차를 보존하며
손상 없이 타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심리적 부담이 더 컸습니다.
게다가 제 성격상 오너가 있는 남의 차라면 아마 맛배기 주행 이상으로 차를 밀어붙이지는
못할겁니다. 이래저래 트랙은 자기차로 달려야 여러모로 좋지요.
이번에 참석하신 분중에는 자신의 란에보가 수리중이어서 렌터카인 쏘나타로 참가하신
분도 계셨는데 트랙 오기 전 손수 오일교환을 하셨다고 합니다. 빌려타는 차지만 세심하게
마음 쓰시는 자세가 참 보기 좋더군요. 트랙에 어울리는 차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처음 두
세션에서는 훨씬 경쟁력 있는 차를 몰고 오신 다른 일행들보다 좋은 랩타임을 기록하시기도
했습니다.
STi는 가속성능, 핸들링, 브레이킹 모두 흠잡을데 없이 뛰어나더군요. 강한 토크 때문에 저단
급가속시에는 엔진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며 직진성이 조금 흐뜨러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만
그 외에는 모든 주행조건에서 아주 감명 깊은 밸런스를 보여주었습니다.
예전에 04년식 STi를 시승해보았을 때 강한 언더스티어 때문에 코너 입구에서 조금
부담스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빠르게 달려들어서 강하게 브레이킹을 주어 앞쪽으로
하중을 충분히 주지 않으면 생각만큼 돌아주지 않았거든요.
2004년 11월 있었던 MPG 트랙데이때 05년식 STi를 Street of Willow 에서 몰아보았을
때에는 예전의 강한 언더스티어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패독에 들어와 차에서 내릴 때
마침 스바루 홍보담당자인 Larkin Hill 씨가 옆에 있기에 언더스티어가 많이 줄어든 것
같다고 코멘트를 했더니 얼굴이 환해지면서 서스펜션과 센터 디퍼렌셜의 세팅이 바뀌었다고
이야기해주더군요.
그때의 기억에 걸맞게 06년식 STi는 버튼윌로우 레이스트랙에서 발군의 성능을
보여주었습니다. 300마력과 41.4Kg-m라는 스펙상의 숫자가 그대로 느껴지는 가속성능과
함께 브렘보 브레이크의 제동성능, 뛰어난 밸런스의 조향특성등으로 물만난 고기처럼
달릴 수 있었죠. 가속페달을 밟고 놓는 것으로 언더스티어와 오버스티어를 컨트롤하기
무척 쉬우면서도 안정감을 잃지 않아 고속코너에서 상당히 편한 마음으로 달릴 수
있었습니다. 창밖으로 흐르는 풍경과 속도계의 바늘에 비해 심리적으로는 아주 평온하여
갑자기 운전실력이 두배는 향상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더군요.
제 차가 아닌 만큼 한계(차의 한계가 아니라 제 한계)까지 몰아붙이지도 않았고 충분히
여유를 두고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랩타임이 꽤 괜찮게 나와 White 그룹에서 상위에
랭크되었습니다.
첫세션에서 북가주에서 내려오신 김도균님의 GTI의 조수석쪽 앞타이어가 파손되어 새
타이어로 교체를 해야 했습니다. 트랙의 타이어샵에는 맞는 타이어가 없어 얼른 STi의
트렁크에 타이어를 싣고 버튼윌로우 읍내로 나가 타이어를 교체해왔습니다.
두번째 세션에서는 제 친구이자 뛰어난 아마추어 레이서인 정승현님이 인스트럭터로
제 차에 동승하여 라인을 일부 잡아주었습니다.
세번째와 네번째 세션에서는 다른 분들이 제차에 동승하기도 했습니다.
트랙에서 인스트럭터가 아닌 다른 사람을 태우고 달려본 것은 이번에 처음이어서 무리하지
않고 달렸는데 차의 성능이 너무 높다 보니 동승하신 입장에서는 한계 가까이까지 달린
것으로 느껴지셨었나 봅니다.
마지막 세션은 우리끼리의 타임 트라이얼로 가장 좋은 랩타임을 끊은 사람에게 작은
트로피를 주는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White 그룹을 부르기 전부터 피트 레인 맨
앞 열에 차를 세워두었습니다. 타임트라이얼인 만큼 다른 차들과 섞여 달리면 좋은 기록을
낼 수 없으니 초반에 승부를 걸어볼 생각이었죠. 그런데 시간이 되었는데도 White 그룹의
차들을 부르는 방송이 없더군요. 앞선 그룹에서 BMW M3와 코베트가 대파되는 사고가
있었기 때문에 트랙을 정리하느라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코스 정리가 끝난 후 White Group과 Yellow Group 통합 주행으로 마지막 세션을 갖게
되었습니다. 미리부터 맨 앞에 차를 세워두었던 터라 초반 3랩 정도를 다른 차의 방해 없이
달릴 수 있었습니다. 세션이 끝난 뒤 랩타임을 보니 2:16.676으로 그날 달린 제 기록중 가장
좋은 시간을 끊었습니다. 터보차인만큼 기온의 영향이 커서 낮시간의 땡볕보다 해가
기울었을 때의 조건이 더 좋았던 것도 있었을겁니다. 인터쿨러에 물을 분사하여 충전효율을
높여주는 워터 스프레이가 장착되어 있었는테 트랙을 달리는 동안에는 사용해볼 생각을
못했습니다. 잘 활용했다면 랩타임을 더 줄일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튼 이번에 트로피를 수상하게 된 영광은 제 운전실력이 아니라 STi 덕분이었습니다.
토요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나 모를만큼 즐거운 시간이었고 이벤트를 준비하느라 수고하신
박진수님, 정승현님, 음식을 준비하신 Jefferson, RV를 끌고 와 휴식장소와 클래스룸을
제공해주신 Jeff 아저씨, 그리고 함께 트랙을 달리며 좋은 추억을 공유한 많은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2007.08.06 00:16:00 (*.0.0.1)
여전히 겸손하신 말씀...물론 차도 좋지만 그만한 skill이 있어야지만 가능하지 않을까요?? 여전히 vr6 활용못하는 박찬형이었습니다
2007.08.06 00:18:00 (*.0.0.1)
급가속시에 직진성을 해하게 되는 것은 고출력 종치엔진의 숙명인가요, 아니면 STi만의 문제였을까요? 상식적인 생각으로는(+며칠전 운좋게 들여다본 같은 차종의 엔진 레이아웃이라면) 특별히 임프레자만 그런 문제가 발생할 거 같지는 않아서 초보적질문을 드립니다. ^^;
2007.08.06 00:19:00 (*.0.0.1)
헉 제가 느꼈던 그 스피드는 한계가 아니었군요. ^^ 신형 STi의 성능에 정말 놀랐습니다. 스바루와 미쯔비시가 서로 경쟁해서 더 빠른 신형을 내주는 바람에 저같은 에보 오너들도 좋은 가격에 성능이 괜찮은 차를 몰게 되는거 같습니다.
2007.08.06 00:19:00 (*.0.0.1)
규혁님 글을 자주 읽으니깐 ...^^ 옆동네에서 일어난거 같은 느낌이에요. ....바퀴벌레 하니깐 ㅠ_ㅠ 샌프란시스코의 허름한 모텔이 생각나는군요. 그 큰 미국바퀴들.
2007.08.06 00:10:00 (*.0.0.1)
일본 4wd의 단점이랄까.. 드라이버의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결국 차가 좋아서 빠르다..라는 느낌을 드라이버 마저도 느낀다는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