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WBC 미국과의 경기를 보다가, 이승엽의 첫타석 홈런을 보는 순간.. 전율이 느껴지더군요. 어릴때 부터 야구를 직접 하는걸 좋아하긴 했지만, 팬이 된적은 없는데.. 이승엽이 홈런을 치던 그 장면은..충격과 전율..그 자체였습니다.  그동안 보아온 야구 경기중, 가장 놀라운 장면이였죠.

마치..볼을 고정시켜놓고 프리배팅으로 치는 듯한 순간.. 상대는 메이저리그 최다승의 세계 최고로  인정받는 투수임에도 불구.. 마치 싸움전에 강력한 선방으로 상대의 기를 꺽어놓듯이, 이승엽의 홈런은 가공할 카리스마로, 후광이 비치는 듯한 착시가 일어났습니다. 좀 부끄러운 청소년기 얘기지만, 차..드라이빙과 연관해, 자신을 정리해보는 의미에서 글을 써봤습니다.



고 1때까지 전.. 모범생과 불량학생을 넘나드는 괴이한 캐릭터였습니다.
초딩 1학년부터 10년째 반장이였지만, 중3때부터는 학교를 잡는 소위 장급의 굵직한 친구들과 매우 친했고, 술담배도 했었죠. 같은 학교애들과는 말다툼도 한적 없지만, 이웃학교 애들이 우리학교 학생을 괴롭히는 장면이 목격되면 괴물로 변했습니다.

1학년 느즈막이 미술반엘 들어갔는데, 이미 일찍 들어가 트레이닝 된 동료들의 그림수준은.. 독학(?)으로 감각만 뛰어난 내 그림에 비해 세련되어 보였습니다. 1학년말이 되어 어울리던 4명의 친구는 모두  퇴학, 전학을 하게 됩니다. 전원 유급하게 된거죠. 학교에 혼자남게된 전.. 미술실에서 매일 밤늦게까지 그림만 그렸습니다. 친구도 더이상 만들지 않았고, 무지 외로웠지만..그림에 전념했습니다. 일찍 트레이닝을 시작한 친구들을 하나씩 따라마시기 시작했죠.

고 2 중반쯤이 되며, 동기들 중에 제일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으며 미술부장이 되었습니다.제가 미술부장이 되면서, '미술부는 샌님들이다..'는 이미지는 바뀌었습니다. 학교내에서 파워좀 있었다는 농구부(한기범과 동기)와 야구부.. 밴드부(전국1위) 부장들이 애초에 제 밑의 서열이였고, 교내 음성써클의 대장들도, 아래서열 이였어서.. 미술부는 다른 모임친구들이 건드리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저와 동기들이 모든 대회를 휩쓸어, 학교장의 사랑도 독차지 했었습니다.  잡설이 길군요..하하.. 여러가지 생각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양해를..^^

고 2 말이 될 즈음.. 문교부의 예능계 입시변경안이 발표되고, 가고싶었던 홍대의 실기비중이 60%, 학력고사 비중이 15% 로 조정되었습니다. 발표가 있자마자 전..모든 교과서를 덮고, 달랑 종합장 한권만 갖고 다녔습니다. 실기로 합격할 자신이 있었던 거죠. 수업시간엔..책상을 화장실에 숨겨놓고, 담장을 넘어 개봉관의 조조영화를 보고선.. 용돈이 없는 날엔, 미술실에 내려가 문을 잠그고 오전내내 잠을 잤습니다. 점심시간에 담배피우러 내려온 친구들이 깨우면 일어나 점심을 먹고 또 잤습니다.

종례시간이 되어서야 부시시 일어나, 책상을 들고 교실에 들어가.. 담임선생의 훈화를 듣고 다시 미술실로 내려갔죠. 바로..그때부터 저만의 일과가 시작됐습니다. 교문이 잠기는 10 시까지.. 엉덩이 한번 안떼고 석고앞에 앉아 그림에 열중했습니다. 전반적인 수준은 내그림보다 못해도, 후배중에 터치감각이 새로운 친구의 그림이 있으면 편견없이 내그림에 적용해  나만의 터치로 재창조했습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날마다..새로운 기법을 내그림에 적용한다는게 늘..기대감에 부풀게 했죠. 하얀 도화지 위에 끊임없이 작은 실험들을 시도해 갔습니다.

학교를 탈출해 영화관의 조조시간에 어떤땐 혼자 가운데 앉아 수도없이 많은 영화를 봤는데, 배우의 얼굴에 드리워진 명암의 흐름과 운동감을 보고.. 그림에 적용하는 생각에, 늘..머릿속은 꽉 차있었죠. 낮잠을 자면서도 그날 오후에 그릴 그림을 생각했습니다. 어제 그렸던 그림에서 아쉬웠던 부분이나  창조의 욕구를 부추기는 새로운 기법에 대해, 항상 설레이는 마음으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엉덩이에는 종기가 나고 터져 팬티는 피로불들어도, 그림 그리는 시간엔 거의 일어서지 않았지요.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침부터..오후에 그릴 그림을 위해..종일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비축 했습니다. 저녁이 되면..머릿속은 초고속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기위해 사용되고, 연필을 든 손가락엔..굳은살이 배겼습니다.

당시 미대입시에선 석고소묘(데생) 시험을 봤는데, 홍대는 큰 화지에 대형석고를 출제했기 때문에.. 3시간에 완성만 해도 잘하는 셈이였죠. 전 혼자만의 트레이닝 법으로, 2시간만에 완성을 하고..수정까지 가능하게 되었는데..실제 입학시험때, 중간과정을 그리는 다른 수험자들 사이에서, 두시간만에 그림을 완성하고.. 밖에나가 큰일도 보고, 여유있게 산책도 하며 마무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긴장해야 할 대입시에서 말도 안되는 모습이였죠.  경쟁율이 매우 쎘어서, 당시..40 명정도 치뤘던 그 실기실에서 2위안에 점수가 들어가야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학력고사 점수는 완전 바닥이였으니까요..



때에 따라서 어떤 이는.. 하려는 일에 익숙한 경우, 아무런 준비없이 척척 해 내기도 하지만..  미리 에너지를 비축하고, 몸의 컨디션을 최대한의 레벨로 끌어올리며.. 작은 움직임 조차도 아끼면서,  전투적으로 중요한 일에 덤벼드는 일은, 이때부터 익숙했던 터인듯.. 이러한 과정을 즐기는 편입니다.  

예전의 레이스 출전 전에도 그랬었고, 클럽에서 새벽 드라이빙이 있는날에도..마치, 무슨 의식이라도 치루 듯..전날부터 경건한 마음으로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비축하려 애썼던 기억이 납니다.  트랙을 돌기전에도, 트렁크의 물품을 꺼내 정리하며 비슷한 느낌을 즐기려 애썼고.. 아침마다 출근을 위해 핸들을 잡기전에도 숨을 고르고, 몸의 상태를 최대한 차분하게 하여 시동을 겁니다.

엔진의 미세한 진동과 함께..페달밑의 으르렁거리는 기계숨결을 느끼면서,
최고는 아니여도.. 최선의 드라이빙 질감을 얻고자하는 숨고름이.. 각박한 일상에서도 가슴속에 단단히 자리잡고 있음을 느낍니다.

집중력이 주는 긴장감과 카타르시스를 즐기는..'과정'이 늘..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깜장독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