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1997년 대전에 있는 한 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대학 입학하기 전에는 바이크 시동 걸어본 적도 없었죠.
지금도 그렇지만 바이크는 왠지 모를 두려움 때문에 타고 다니는 것이 꺼려지더군요.

그런데 그 당시 최고의 히트영화 "비트"에 출연한 정우성!!
그가 영화속에서 몰고 돌아다니던 CBR 650F는 제임스딘의 포르쉐 그 이상으로 제 마음을 흔들어 놓았죠.

대전에 엑스포 공원앞을 흐르는 갑천이라는 하천이 있습니다.
아시는 분도 많겠지만, 갑천 양안을 따라 서울의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 규모는 아니어도 짧은 구간이지만 시원하게 달릴만한 도로가 있지요.
또한 도로에서 물이 흐르는 곳 까지는 둔치가 꽤 넓게 조성되어 있지요.

더운 여름날 밤 강바람 쐬러 한번씩 나갔을 때 한번씩 운좋게 들을 수 있는 바이크 배기음..
그때만 해도 대전에 고배기량 바이크가 드물었죠.
대충 3Km되는 구간을 누군가 "땡기기" 시작합니다.
"우우웅~우! 우~우~웅~"
변속할 때마다 중저음에서 고음까지 매끄럽고 세차게 치고 올라가는 적나라한 소리.
1분여 남짓 강바람을 타고 멀리 갑천 너머의 아파트숲에 메아리치며 긴 여운을 남깁니다.
바이크를 타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살아가는 동안 나는 그 소리를 흉내낼 수 없을 것이라는 안타까움, 공허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소리는 그 자체로 설레임, 동경 그리고 갈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이 친구는 속도에 대한 자신감과 적응력, 순발력이 제가 만나온 사람들 중에 단연 최고였습니다.
그 친구가 몰고 다니던 스쿠프를 졸음 운전으로 논바닥에 쳐박고 난 후 하루는 오토바이를 한대 양수해죠.
캠퍼스를 평정했던 Exiv를 제쳐두고 간택된 녀석은 이태리산 종마 Aprilia RS-125.
돈이 모자라서 250은 못 사고 고 녀석도 어렵게 구입했다고 하더군요.
전투적으로 생긴 전면부, 가운데 옅은 광채를 내뿜는 굵직한 금속 뼈대 하며 수평으로 날카롭게 끝처리된 탠덤 시트.
고놈 참 생긴건 꼭 이태리 남자들 같았습니다.

배기량은 얼마 되지 않지만 범상치 않게 생긴 것이 더군다나 친구의 보물덩어리라 혼자 시승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친구 뒷자리에 타고서 달려보기로 했습니다.
근데 요넘 시동 걸고 아이들링 배기음이 참 당황스럽습니다.
"컹컹 킁크긍 ㅋㄷㅋ크ㅡㅡㅓ~"
게다가 시동까지 꺼지곤 합니다.
고장난 거 아니냐고 물으니 2행정 기관이라 원래 그렇다더군요.
아무튼 2행정 스쿠터 택트 엔진도 부드럽던데 요건 영 아니다 싶더군요.

드디어 갑천 도로에 올리고 나서 "땡기기" 시작했습니다.
RPM이 높아질수록 전혀 다른 소리가 납니다.
"따따따따따~"
주변에 차가 한대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친구가 쓰로틀을 완전히 엽니다.
RPM이 상승하면서 요넘 생긴대로 엄청 몰아부칩니다.
친구 허리춤을 붙잡던 손가락 마디마디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대략 7000rpm이 되는  그 순간...
뒤에서 큰 트럭이 꽝!하고 받아버리는 것처럼 차체가 앞으로 튀어 나갑니다.
친구 허리춤에 있던 손이 움찔하며 콰아악 힘이 들어가고 싸구려 헬멧 투명커버가 안경을 사정없이 짓누릅니다.
몇초 동안이었나 호흡이 안되더군요.
그러한 가속은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변속한 것도 아닌데 특정 회전수 이상에서 급격한 토크상승의 원인이 V-tec같은 가변타이밍밸브의 효과인지 순간적인 과급장치의 효과인지 바이크에 별 애착이 없던 터라 지금까지도 정확히 알고 있지는 않지만(검색해보니 에탁이라는 시스템이라는군요) 적지않게 놀랐지요.

첫 시승후 그놈의 배기음도 달리 들리더군요..
125cc라는 가냘픈 심장에서 아주 거칠게 쥐어짜내는 모양이 흡사 초원의 치타같은..
2행정이라는 매력이 왠지 모르게 RX-7의 로터리 엔진이 생각나게 합니다.

그 후로 그 친구랑 거의 1년동안 고놈 참 많이 타고 다니고 추억도 많이 생겼지요.

자동차나 오토바이 배기음..
커다란 금속덩어리에서 필연적으로 배출되는 소리이지만 거기에 쏟아붓는 정성이나 그것을 사용하는 자의 태도에 따라 단아하고 경쾌한 단풍나무로 만든 현악기 소리가 나는가 하면 감아버리면 되는 눈처럼 틀어막으면 안들리는 귀를 만들어주시지 않은 조물주를 원망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요즘엔 그렇게 갈망하던 오토바이 배기음이 몹시 위협적인 퀵서비스 400cc 오토바이에서 나오는 소리 때문인지는 몰라도 의미가 많이 퇴색한 것 같습니다.

고유가 시대, 에너지 고갈 위기로 가솔린 차량들이 전기자동차나 수소자동차로 대체될 미래를 생각하면 가솔린 차량의 배기음에 대한 하나의 로망이 사라지는 것 같아 성급하게도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할리 데이비슨 같은 아메리칸 스타일 바이크 배기음은 왜 그런지요?
충격음같은 배기음이 들리는 빈도가 RPM보다 훨씬 떨어지는 것으로 봐서는 배기음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군요.
검색을 하는 것이 예의지만 글 올리는 김에 질문 하나 끼워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