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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가 되려면 매니아가 되라'

 

교육사업을 하는동안, 제자 선생들에게 자주 했던 얘기입니다. 미대입시 실기고사에서는 사실표현력을 테스트 하는 소묘(dessin)와 전공별로 수채화를 보거나, 이미지구성, 소조, 수묵채색등의 실기 시험을 치룹니다. 보통.. 잘그리는 그림은 어느 교수가 봐도 좋게보이지만, 그림의 '스타일' 도 중요합니다. 

 

모든 면에서 경쟁이 치열한 강남의 학원가이다 보니, 매년 입시마다 그 학원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 내기 위해, 선생들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뿐 아니라 틈틈이 연구작업을 통해 새로운 스타일을 모색해야 합니다. 새로운 그림 스타일은, 아이들에게도 신선해야 하고.. 그림을 채점할 교수들에게도 뭔가 보여줄 수 있어야 하죠.

 

다른 원장들은 보통 운영에만 신경을 쓰고, 젊은 선생들에게 연구작업을 맡기지만, 제 경우는 직접 그리는걸 좋아해 늘 제자 선생들과 함께 밤을새며 작업했습니다. 사업성에만 치중하는 원장들은, 돈은 잘 벌진 모르겠지만 나이들어 무료해 하는 모습을 보면..' 돈을 벌려면 더 마진이 큰 사업을 하지 왜 미술학원을 할까..' 하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리는 즐거움이 없다면, 그 일은 이미 가치를 잃는다는 생각이였고, 그런 마인드로 아이들이 진정 그림을 즐기도록 이끌지 못하리라는 믿음이였지요.

 

그래서 늘 함께 작업하는 선생들에게, 밤을새며 하는 연구작업을 의무감으로 하지말고, 매니아가 되어 스스로 즐거운 작업이 되도록 하라고 자주 얘기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달인이 될것이고, 너네들이 내학원에서 나가 다른곳에 취직하더라도 최고의 대우를 받게 될것이다..라 강조했습니다. 다행이 하드 트레이닝 덕분인지.. 많은 제자 선생들은 실력을 인정받아, 내 학원이 문을 닫으면서 가까운 선후배의 큰 학원들로 소개를 해줬는데, 기존보다 150~200% 씩의 급여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드라이빙 클럽을 십년간 운영하면서 수없이 많은 드라이빙 모임과 관련 이벤트를 치뤘는데, 보통의 운영자들은 행사 운영에 시간과 열정을 많이 빼앗기는 반면 제경우는 스스로 열심히 함께 즐기는데 주력했습니다.  때로는 회원들과 랩어택을 하며 서로 경쟁하기도 하고, 같은 위치에서 아웅다웅 토닥거리는걸 더 즐겨했습니다.  제가 즐길 수 없으면 곧 지치게 될거고.. 제반의 드라이빙 관련 이벤트들이 일처럼 느껴져 하나도 재미없어질게 분명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07 년 스피드페스티발 시리즈를 달리면서, 당시.. 마흔 후반이 된 KMRC 박정룡 감독에게 이런말을 가끔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레이서들이 너무 일찍 늙어버리는거 같습니다. 더 오랫동안 현역으로 뛰면서 관련사업도 하고, 오래오래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 그 말이 영향을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음해부터 박정용 감독은 직접 스피라의 스티어링을 잡고 현역에 복귀했더군요. 전..그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본업이였던 미술과, 취미로 즐겨왔던 레이스에서.. 지금도 여건만 되면 승부에 관계없이 누구와도 경쟁하며 달리고 싶습니다. 어찌보면 주책스러워 보일수도 있지만, 나이에 상관없이 즐길 수 없다면 이미 그 일의 매니아가 아니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빠른 후배와 서킷에서 달린다면, 어떻게든 이기려 애를 쓰게 될것 같습니다.

 

 

 

차를 좋아하는 많은 분들이 그랬겠지만, 어린시절  프라모델 조립하는걸 매우 좋아했습니다. 중딩때까지.. 당시 어린친구들 답지않게 제 방에는, 온갖 조립식 프라모델들이 발에 채일정도로 가득 찼었죠. 나이가 들어서도 가끔 틈이나면 마음에 드는 프라모델을 구입해 조립해보곤 했지만, 어릴때만큼 흥미롭지 않았습니다.  비슷한 눈높이에서 그걸 부러워해주거나 평가해줄 친구들이 없었기 때문이겠죠.

 

어른이 되어 사고싶은 프라모델을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여건이 되었지만, 이젠..그걸 더이상 즐기지 않는 마음이 되었음에, 가슴 한켠이 짠..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프라모델을 마음껏 즐기는 것은.. 그걸 살수있는 경제력이 아니라, 즐길 수 있는 '마음' 이였던 겁니다. 아마도 후에, 예전같은 동심을 되찾는다면.. 넉넉한 공간에 디오라마를 만들어, 어릴때 해보지 못했던 멋진 프라모델 방을 만들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80 년대 후반쯤 봤던 나스타샤 킨스키가 나왔던 영화, '파리텍사스'의 내용이 종종 생각납니다. 남자 주인공 해리디스탱통은 아내인 나스타샤킨스키를 너무 사랑해, 일도 모두 그만두고..늘~ 아내의 곁에 있기로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스타샤는, 그런 남편에 지겨워져 스트립 박스 댄서로 나서게 됩니다.  여기에 충격받은 스탱통은, 정처없이 걷기 시작하게 되지요. 

 

 어찌보면 평범한 내용이지만, 조금 깊이 생각해보면 이는.. 우리 인생과 비슷하기도 합니다.

어린시절부터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하고, 꿈꾸고  갈구하지만.. 막상 그걸 이룰 시기가 오면 우리는 달라진 현실에 의해 그걸 즐길만한 정신의 여유를 갖지 못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어릴때 외국영화나 매체, 다이캐스팅을 통해 본 람보르기니 카운타크의 엄청난 이미지에 충격 받아.. 평생을 통해 그걸 가질 수 있는 나이와 능력을 갖기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다.. 급기야 얼마든지 취할 수 있는 때가 되면, 이미 바빠진 사업과 주변에 대한 책임감, 어떤일에도 결코 감동하지않는 닳아진 정서로 인해.. 람보르기니를 갖게 되어도 그냥 담담한 마음이 되어 있을겁니다.

 

물론 어린시절..젊은 시절의 순수하고 풋풋했던 감성을 그대로 유지하고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자신의 꿈이 무엇이였는지 기억조차도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마흔 중반이 넘으면.. 이십 삼십년 만에 만나는 친구와 동기.. 벼러별 사람들이 생기는데,  실제로 얘길 나눠보면.. 어릴때 그토록 총명하고 반짝이던 모습을 잃어버리고, 기억도 못하는 채.. 그저 삶속에 묻혀사는 친구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전..그럴때 마다 가슴한켠이 짠..해지고, 친구가 안쓰러운게 아니라, 인생의 허무함에 한숨을 쉬게도 됩니다.

 

 

 

유명 패션회사의 이사로 재직중인 아직 싱글인 제자녀석이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모델들과 일을했었고, 화려한 30 대를 보낸 친구였는데.. 40 에 이사가 되긴 했지만, 그간 겪은 인생역정은 말로 다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친구의 말을 빌면.. "사회는 아주 더럽다." 라는 결론입니다. 상처뿐인 영광을 누리고 있었던 것이죠.

 

18 년 만에 저를 찾게되어 한동안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제가 레이스를 하고있다는 얘기에..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 레이스를 하는 사람들은 스피드 매니아들이니까, 굉장히 생각이나 가치관도 쿨하고, 쾌남들이겠네요. 내가 사는 세상은 너무 더러워서 그런 멋진 사람들의 세상을 알고싶어요." 했습니다. 그때마침 내가 활동하는 레이스 이벤트의 홈과 몇몇 곳의 싸이트를 알려주어, " 한번 둘러봐봐. 생각들을 알 수 있을거야." 했지요.

 

머리가 좋은 친구라, 한동안 사람들의 생각과 말을 둘러보고는.. '실망스럽다.' 란 말을 토로하듯 했습니다. 오히려 일반인들 보다 더 이기적인 면도 많고, 겉으로 보이는 굉음과 터프함, 쿨한 이미지들은 모두 연출된것 같다.. 라는 의견을 얘기하더군요.  스피드 매니아들은 결코.. 쾌남들이 아니고, 비겁하고  쫀쫀하고 집착스러우며, 이기적인것 같다. 란 얘기입니다.

 

아꼈던 제자에게서 그런 평을 들으니 참..부끄럽기도 하고, 스피드매니아란 점에 회의스럽기도 했습니다. 물론 모든일이 파고들다 보면, 섬세하고 깐깐해질 수 밖에 없지만.. 저도 항상, 차와 속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일반 취미를 가진 사람들보다 명쾌하고, 유쾌하며.. 남자다운 사람들일거라 스스로 마인드컨트롤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과연.. 꿈꾸던 남자의 세상은 없는 것일까요..?

 

 

90년대 말 불륜의 사랑을 그려 잇슈가 되었던 영화 '정사' 에서 이정재가 이미숙에게 한 대사는 참.. 잊혀지지 않습니다. 놀라운 내용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영화였지만, 충격적인 이미지들은 학교 과학실에서 이정재가 이미숙에게 한 대사로 인해, 깨끗하게 희석됩니다.

 

" 당신은 이제..사랑한다는 말도 못들을텐데.. 그렇게 늙어갈텐데.."

시각에 따라 해석이 다르겠지만, 저는 그 대사속에.. 부도덕한 사랑이 내포된게 아니라, 그냥 한인간이 다른 인간을 연민하고 사랑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상징적인 표현일 뿐이지만요..

 

 

 

세상에 다이빙 해 온몸에 진흙을 뭍히며 살지만, 끝까지 매니아로 꿈꾸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프리카의 집단자살 하는 양떼는, 우르르 무리가 위험을 피하기 위해 절벽을 향해 달리다 보면, 너도나도 서둘러 절벽으로 뛰어내린답니다.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 달리는 동안 잊어먹는다는 얘기죠.

 

가끔이라도 이런게 떠올려지고 반성하게 되는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월드컵 땜에 생활시간대가 바뀌어 아주 불편하네요. 내일부턴 다시 리듬을 찾아 봐야겠습니다. ^^

 

 

 

 

깜장독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