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운전대를 잡아보고, 고등학교 1학년 때 부모님께서 출타하신 틈을 타서 일주일간 무면허로 겁도 없이 운전하고 다녀봤고.. 그리고 96년 처음 운전면허를 딴 후 어언 14년이 흘렀습니다.

차를 좋아했으니 당연히 운전도 좋아했지요. 그래서 아마 저도 "나는 보통보다 운전을 잘하는 편"이라는 착각에 살고 있었습니다. 뭐 옛날 '위닝런'이라는 오락실용 자동차 시뮬레이션도 그런대로 잘 했고, 그랜 투리스모 시리즈도 그렇게 꿀리는 실력은 아닌지라 더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생각해보면 오락에 불과한데 말이죠.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내가 운전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자신의 운전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받아야 하겠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죠. 그래서 드라이빙 스쿨에 다녀오기로 결정했습니다. 트랙마스터, 스킵바버, 짐러셀, 밥 본두란트 등등 여러군데 중에 그나마 필라델피아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커네티컷주 Lime Rock Park에서 열리는 (그래도 편도 4시간.. ㅜ.ㅜ) 스킵바버 레이싱스쿨의 하루짜리 하이퍼포먼스 드라이빙 스쿨을 선택했습니다. 스킵바버는 가격은 좀 세지만 여러가지 차량 아작날 정도로 몰아볼 수 있는 것이 장점입니다.  

                   출발 전 한 컷..

 

일단 하기로 맘 먹었으니 일사천리로 예약도 끝내고.. 드디어 7월 8일 Lime Rock Park로 출발합니다. 세션은 9일에 열리지만 200마일에 달하는 거리를 달려가 바로 빡센 운전을 할 수 는 없기에 트랙 근처에서 1박을 하려고 마음 먹었습니다. 드디어 9일 금요일 아침.. Lime Rock Park로 입장!

                  웰깜 뚜 라임 롹!

 

Lime Rock Park는 존 스킵 바버가 소유하고 있는 레이스트랙입니다. 1957년인가에 지어졌고 지금보다는 과거에 더 유명했던 트랙인 듯 합니다만, 요즈음은 ALMS (아메리칸 르망 시리즈) 등 쟁쟁한 시리즈도 개최되는 곳입니다. 길이는 약 1.5마일로 상당히 짧은 축에 속하고, 가장 많이 쓰는 트랙 레이아웃은 좌코너가 하나, 우코너가 일곱인 거의 다각형에 가까운 구조입니다.

 

 

오전 8시반에 5명의 인스트럭터 소개와 합께 시작됩니다. 오늘 클래스는 모두 13명이 참가하는군요. 참가하는 사람은 19세 소년(?)부터 50대까지 천차만별입니다. 대부분 스포츠세단을 가지고 있고.. 스포츠카는 911터보 한 명, 928 한 명, 재규어 XK 한 명, IS-F(이것도 스포츠카에 끼워주나?) 한 명이었습니다. 인스트럭터들은 모두 최소한 15년이상의 레이싱 경력이 있고, 또 대다수는 현역 드라이버이기도 합니다. 일정을 간략하게 보면..

 

오전

In-class session

스키드패드 (언더스티어 / 오버스티어 조작법)

Threshold braking

 

오후

Lane change

스키드패드 (젖은 노면 코너링 강습)

오토크로스 (미니트랙)

Lead-follow 트랙타임

 

으로 하루가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오늘 세션에 사용되는 차량은 BMW M3 쿱과 세단, 렉서스 IS-F, 포르쉐 케이먼, 로터스 일리스, 마즈다 RX8였습니다.

 

In-class세션에서는 차의 하중이동과 운전자의 시선, 그리고 shuffle steering에 관해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특히 하중이동과 운전자의 시선처리는 하루일과가 끝나는 순간까지 강조되는 부분이었습니다. 트랙의 front straight가 보이는 곳에 위치한 교실에서 코벳 Z06의 "우롸롸롸롸~!"하는 배기음을 들으며 강의를 듣고 있으니 여기가 천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만..

 

자.. 이제 어서어서 밖으로 뛰쳐 나갑니다. 제가 속한 소그룹은 먼저 스키드패드로 가서 언더스티어 / 오버스티어 조작법을 시현합니다. 스키드패드에서 사용되는 차량은 마즈다 RX8 두 대입니다. 각각 매뉴얼, 오토이고 두 차를 번갈아가면서 실습을 합니다. 스키드패드에서 사용하는 RX8은 오버스티어를 위해 뒷 타이어의 사이즈를 의도적으로 줄이고, 또한 오토크로서같이 뒷쪽 서스펜션을 무진장한 토아웃으로 세팅했다고 합니다. 이 RX8은 마른노면에서도 WOT로 가속할 때 후륜이 미끄러집니다. --;

 

                  스키드패드의 RX8. 뒤쪽 휠 사이즈가 보이시나요?

 

제가 운전을 하지 않을 때에도 처음이라 의기충천에서 뒷자리에 계속 앉아 있었는데.. 어우 한 몇 번 스핀아웃하니까 도저히 앉아 있지 못하겠습니다. 나중에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네들이 운전대를 잡지 않을 때에는 슬그머니 나와서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습니다.

 

스키드패드 세션이 끝나고 threshold braking 강습으로 넘어갑니다. 여기에 사용되는 차량은 M3 쿱과 케이먼이었습니다. 제가 IS-F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아는 인스트럭터가 특별히 저만 나중에 IS-F를  타 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사실 저는 되도록이면 IS-F를 타고 연습하려 했지만, 다른 참가자들은 역시 M3나 포르쉐에 더 착착 달라 붙더군요. 덕분에 한 차로 다른 사람과 시간을 나눌 필요가 없는 저만 더 오래 연습을 할 수 있었죠.

 

                  처음에는 40mph로 시작해서 점점 속도를 올려갑니다.

 

                  이 코스는 왼쪽으로 굽은 코스입니다. 아래 콘 사이로 통과하면서 정지했어야 하는데 우리 Craig 형님은 한참을 벗어나 버렸네요. 40mph에서 시작해서 2.5mph씩 속도를 올리는데, 2.5mph 속도 증가에 따른 브레이킹 타이밍 및 성능의 변화는 정말 무지막지 했습니다. 게다가 얼마나 세게 밟아야 하는지.. 한 다섯 번 계속 했더니 오른쪽 장단지가 그냥 찌릿찌릿 하더군요.

 

                 순서를 기다리면서 한 컷. 앞에 M3 쿱이 출발합니다. 훗.. M3 그 까이꺼..

 

이렇게 빡센 오전세션이 끝나고 더 빡세고 재미있는 오후세션이 다가옵니다. 점심은 라자냐로 간단히 때우고..

오후에 제가 속한 소그룹은 Lane change 실습과 젖은노면 코너링, 그리고 오토크로스 순으로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Lane change 실습은 threshold braking 실습과 유사하나, 후자는 직선 또는 코너에서 브레이킹이었던 반면, 전자는 차선을 한 차로, 또는 두 차로 횡단한 후 급정거하는 실습입니다. 3개 차선 도로의 오른쪽 끝, 또는 왼쪽 끝차선에서 40mph 이상으로 진입하다가 돌발 신호등의 위치에 따라 1차로, 2차로, 또는 3차로로 급선회해서 정지하는.. 그런 것이 되겠습니다.

                 1차로에서 3차로로 급선회하는 모습입니다. 스틸사진이라 그런지 박진감이 없어 보이는데, 실제로는 아주 후덜덜 합니다. 지금 운전하고 계신 Danny 형님은 위의 운전 때문에 인스트럭터에게 쿠사리를 좀 먹었습니다. 선회 중에 브레이크를 걸었다는 이유에서죠. 저는 그런대로 잘 했는데 55mph까지 속도를 올릴 수 있었습니다. 저~기 도로 끝에 돌발 신호등 보이시나요?

 

그 다음 스키드패드로 다시 이동해서 젖은 노면 코너링 실습을 하는데.. 오전 스키드패드는 원형으로 주행한 반면, 이번에는 이등변 삼각형 코스를 만들어 주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운전을 잘 못해서 그런가 코너 진입에서는 무지막지한 언더스티어, 탈출하면서는 심각한 오버스티어를 만들어내더군요.

 

스키드패드가 끝나고 오토크로스로 넘어갑니다. 보통 오토크로스는 짐카나를 말하지만, 여기서는 미니트랙 세션입니다. 2-3단을 사용하고 빡세게 몰아봐야 50mph가 될까말까한 작은 트랙이지만 시케인, decreasing radius 턴 등이 있는 상당히 까다로운 트랙이었습니다. 사용된 차량은 M3 세단, 포르쉐 케이먼, 로터스 일리스, 렉서스 IS-F 였습니다. 모든 차를 다 타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여러 차량의 핸들링 특성의 차이를 느껴 볼 수 있는 좋은 자리였습니다.

                 미니트랙의 마지막 코너인 decreasing radius 턴.. 저기 보이는 일리스 처럼 오른쪽끝으로 붙어야 랩타입이 잘나옵니다.

 

저에게 순위를 매겨보라하시면.. 꼴찌는 케이먼, 3위는 일리스, 2위는 M3, 1등은 IS-F --;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운동성능은 일리스가 발군이었습니다만.. 운전하는 내내 "이건 차가 아니야.. 장난감이지" 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M3와 IS-F를 비교하자면, 평상시 운전상황을 생각하면 M3보다 IS-F의 서스펜션이 너무 무리하게 단단합니다. 그런데 트랙에서 고속으로 차를 날리다 보니 그런 상황에서는 M3가 도리어 단단하게 느껴지더군요. 반면 IS-F는 고속에서 오히려 노면 충격을 더 잘 흡수해 줍니다. 저에게는 그런 IS-F가 더 좋은 것이 미니트랙 시케인을 탈출하면 저는 어김없이 오른쪽 커브를 치고 지나갔는데, M3는 그것 때문에 자세가 상당히 불안해 지는 반면, IS-F는 부드럽게 커브를 타고넘어 시케인을 탈출 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또한, 마지막 decreasing radius 턴에서 M3는 언제나 언더스티어 성향을 나타냈지만, IS-F는 뉴트럴또는 약간의 오버스티어 성향을 나타냈기 때문에 저의 운전스타일에는 오히려 IS-F가 났지 않았나 합니다.

 

                타임 어택 준비 중..

세션이 끝난 후 참가자들끼리 미니트랙에서 M3 세단으로 타임어택을 했는데 제가 20.4초로 일등 먹었습니다. ^^V  2등은 20.8초, 3등은 20.9초, 꼴지는 23.2초 였습니다.

 

                  누가 오픈 디퍼렌셜로 파워슬라이드를 할 수 없다고 했는가!!  .. 사실 08-09년형 IS-F는 오픈 디퍼렌셜이지만 ABS가 LSD 역할을 하는 전자식 디프입니다. 10년형 IS-F는 토센 기계식 LSD가 장비되지요. 지금 파워슬라이드 중인 분은 인스트럭터 중의 한 명인 Dean이라는 분입니다. 운전 성향이 저러신지 포뮬러 드리프트 저리가라 할 정도 (...는 아닐지도)로 트랙 전체를 저러고 다니시더군요. 옆에 타고 돌아봤는데 정말 예~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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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던 오토크로스가 끝나고 대망의 트랙주행 시간이 가다왔습니다. 두 그룹으로 나뉘어 한 그룹은 트랙주행, 다른 한 그룹은 그 동안 선도차를 타고 트랙을 도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제가 속한 그룹이 먼저 주행을 하게되어서 차를 고르라길래.. 당연히 저는 IS-F를 골랐습니다.

 

                 제가 속한 그룹의 선도차량은 마즈다스피드3입니다.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될 훌륭한 차이지요. 선도하시는 인스트럭터는 역시 Dean. 아.. 난생 처음 트랙주행. 너의 마음 나의 마음 울렁울렁 두근두근 쿵쿵.

 

                 구입한지 10년이 지난 오늘 처음으로 트랙 주행에 나서게 되는 저의 불쌍한 헬멧입니다. 미안하다.. 앞으로 자주 데리고 나갈게.. 사실 IS-F는 저의 키 (185cm) 정도 되면 헤드룸이 거의 없다고 보는게 났습니다. 예전 권규혁님의 알파 GTV처럼 코너링시 머리로 헤드라이너를 부비면서 몸을 지탱할 정도니까요. 그런데 다행히 트랙주행에 사용된 IS-F는 선루프가 없는 08년형 모델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괜찮았습니다.

 

트랙 주행은 너무 짜릿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잘 따라갔는지 Dean도 계속 페이스를 올려서 상당히 빠른 속력으로 돌 수 있었습니다. 앞에 달리던 소그룹을 제치는 발군의 기량 --; 도 발휘 했다는.. 물론 운전하는데 집중한 나머지 사진은 못 찍었습니당.

 

30여 분의 짧은 트랙주행이 끝나고 선도차에 기어들어가 앉았습니다. 다들 지쳤는지 아무도 안 타길래 Dean과 단 둘이 많은 얘기를 나눌수 있었습니다.

 

                 Dean 선상님.. 약간 미스터 빈을 닮은 것 같기도..

 

Dean이 저보고 왜 IS-F를 샀냐고 물어봤습니다. 저는 사실 IS-F가 미국적인 배기음, 아마추어가 만든 차 처럼 허술한 면 (지나치게 단단한 서스펜션이라던지 공회전에서 실내를 가득 채우는 부밍음, 약간 애프터마켓 같은 외관 등), 전체적으로 아메리칸 핫로드같이 어딘가 이빨이 하나 나가있는 것 같은 점이 좋아서 샀거든요. 그리고.. M3나 C63같은 차들은 좋은 차임이 분명하고 운전해보면 감탄사가 나오지만, 입가에 웃음을 짓게 만든 차는 근래에 IS-F가 유일 했었습니다. 이런 얘기를 하니까 웃으면서 자신에게 재미있는 차가 진정 좋은 차다라고 얘기를 하더군요. 그러면서 부연설명을 하는 것이 IS-F는 정말로 잘 만든차라고 합니다. 경쟁차종보다 앞이 무거움에도 불구하고 샤시 밸런스가 아주 뛰어나고, 특히나 브레이크가 좋아서 트랙데이 때 아무리 세차게 오래 몰아도 페이드 현상을 거의 느낄 수 없는 수준이랍니다. 스킵바버 레이싱 스쿨이 미국에서 IS-F를 사용하는 최초이자 유일한 스쿨인데, 자기네 들의 선택에 전혀 후회가 없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저보고 손이 빠르다면서 (--?) 레이싱을 해보라고 권유하더군요. 뭐 진심에서 나온 말인지 다시 돈내고 레이싱 스쿨와라 이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미아타 레이싱 스쿨이나 카트 레이싱을 해보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하는 것이 사람의 간사한 마음을 마구 긁어주었습니다.

 

                  첫 코너 'Big Bend' 직전

 

                 라임 록 파크의 유명한 업힐코너입니다. 저기 보이는 크레스트에서 IS-F가 붕~  찌릿찌릿..      

 

                  한 무리의 M3들. 여기가 라임 록 파크의 유일한 좌측 코너입니다.

 

이로서 생전 첫 번째 트랙 주행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생각지도 않게 인스트럭터들에게 칭찬도 많이 받고 트랙주행 "Best of the day" 칭호까지 얻으니 기분이 참 묘합니다. 물론 요정도 했다고 아직 저의 운전실력이 훌쩍 성장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뭔가를 얻은 것 같아 정말 좋네요.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자주 나가볼까 합니다.

 

하루가 끝나니 오후 6시 30분.. 내리 주욱 필라델피아 까지 오니 밤 11시 30분... 에고에고 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