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부터 6년동안 붐을 일으켰던 고든 베네트 레이스에서 큰 자극을 받은 프랑스 모터클럽은 프랑스 고유의 모터 스포스 이벤트를 만들고 싶었다. 이방인이 프랑스에서 모터 스포츠를 열어 인기를 얻는다는 질투심도 작용하여 방해를 하는 바람에 고든 베네트 레이스에서 거둔 연속적인 프랑스의 승리는 프랑스인들에게 모터 스포츠의 무한한 가능성을 알게 해 주었다. 이런 기반을 배경삼아 세계 최초로 1900년에 조직된 프랑스 모터 클럽은 1906년 더욱 합리적인 새로운 규정을 갖춘 ‘그랑프리’ 레이스를 열였다.
제1회 그랑프리 대회는 훗날 르망 24레이스로 유명한 프랑스 중서부에 있는 도시 르망에서 프랑스 서부모터클럽 주관으로 일주거리 2.4km인 오프로드 서킷에서 총 경주거리 1천236km를 2일간에 걸쳐 열였다. 당시 경주용 도로는 오늘날처럼 아스팔트 포장이 아니라 흙길이어서 달릴 때 일어나는 먼지 때문에 자동차들이 자주 고장을 일으켰다. 따라서 먼지가 엔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배기관을 위로 향하도록 설치해야 하는 규정이 새로 생겼다. 중요한 규칙은 자동차의 무게를 1천 kg이하, 한 메이커에서 3대이하 출전, 차 한 대당 드라이버 2명, 연료소비량은 100km당 30리터이하 등이었다.
제1회 프랑스 그랑프리에느 이탈리아에서 피아트와 이탈라가, 독일에서는 벤츠가 출전했다. 모터 스포츠의 종주국 답게 프랑스에서는 드 디드릭히, 르노, 다라꾸, 브라지에, 고브롱 브리에, 파나르, 우치키스 플레망 베야르, 그레고아 등 가장 많은 경주차가 출전했다. 이 경기에서 르노, 피아트, 클레망 베야르는 휠과 분리되는 타이어를 처음 선보여 모터리스트들의 관심을 크게 끌었다. 이 타이어는 프랑스의 바퀴업자 미쉐린이 최초로 개발한 자동차 전용 타이어로서 바퀴 교환시간을 크게 단축 시켰다.
르노차를 운전한 항가리 출신의 베렌츠 사스가 평균시속 107.5km로 5시간 45분 30.4초만에 첫 우승을 차지했다. 클레망 베야르를 몬 클레망이 2위, 피차트를 몬 이탈리아의 나자로가 3위, 우치키스를 운전한 프랑스의 쉬빠르가 4위를 각각 기록했고 출전자 22명중 17명이 첫날경기에서 완주했다. 둘째날의 경기에서도 드라이버들의 순위는 첫날과 거이 다를 바 없었다. 르노의 사스는 1위자리를 그대로 지켰고, 나사로가 클레망을 제치고 2위로 골인 했다. 3위는 클레망, 4위는 브리지에를 몬 바릴리에, 5위는 피앗트를 몬 이탈리아의 란치아 였다. 이틀간의 경주에서 1등을 차지한 세렌츠 사스의 둘째날 기록은 평균시속이 101.195km, 주차시간이 12시간 14분 7초였다. 우승차인 르노는 4기통 1만 6천 286cc엔진을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