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눈팅만 하며 연 단위로 글을 올리는 유령회원입니다...

테드에 글을 적을 때에는 편지를 적는 느낌입니다. 몇 년이 지나도 레이아웃이 유지되는 독립 사이트라는 매력이 커서일까요. 마음이 편안합니다.


차를 몇 대를 사고 팔며 꽤나 방황(?) 을 하다 이제야 조금 정리가 되고 안착이 되어 인사 올립니다. 간략하게 올리지 않았던 차들을 소개해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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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둘 다 제 손을 떠나갔지만, 저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해줬던 두 미제 차량입니다. 

<JEEP Grand Cherokee 4.7>
지프는 인생 처음 타는 SUV였습니다.
한참 업무상 험로를 갈 차가 필요하다는 핑곗김에, 그리고 이왕 SUV를 타려면 목적에 충실한 차를 타야겠다는 마음에 고른 차량이었어요. 상시 사륜, 앞뒤 솔리드 액슬, 미제 V8... 매력이 넘치는 차였습니다. 작년 말 제가 사는 광주에 폭설이 왔을 때에도 굉장히 즐기면서 타고 다녔어요. 차...라고 부르기보다는 정말 공구같은 느낌의 차였습니다. 

<Lincoln Towncar 4.6>
2년여를 가지고 있으며, 단 한 번도 불만이 없던 차입니다. 목적 적합한 차량. 연비 좋고(정말입니다) 부품 싸고, 중후한 디자인까지. 단점이 없지는 않지만 뒤 솔리드 액슬에서 나오는 가끔 튀는 승차감이 가장 컸네요.


저 두 대 조합(+바이크)으로 가지고 있던 중 슬픈 사건으로 인해 체로키는 폐차를 하게 되고... (다치진 않았습니다) 링컨을 가지고는 있지만. 출퇴근을 하기에는 조오오금 부담스러운 차량이었기에 새로운 차량을 가져옵니다.

이번 차량의 조건은
1)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너무 부담스럽지 않은 브랜드. 겸손해 보이는 브랜드.
2) 고속 안정성이 있을 것.미제의 출렁거림도 좋지만, 그래도 가끔 답답할 때가 있어요. 습관이 무섭습니다.
3) 실용성이 있을 것. 짐을 실을 수도, 사람을 태울 수도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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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kswagen Golf V GTI 2.0T>

그래서 흰색 토끼를 구매합니다. 봉고..가 아니라 맨 오른쪽에 있는 폭스바겐 골프 GTI요.

너무나 즐거운 차량이었습니다. 남들 보기에도 겸손해 보이고, 혼자 즐겁게 심야 드라이브도 즐길 수 있고. 5도어이니 사람들을 태울만도 합니다. 그런데, 차가 너무 작습니다. 업무상 종종 무거운 짐을 실을 때도 있는데, 적재 공간이 충분하지 않아요. 조금만 더 크면 좋을 것 같은데요... 한 i40정도로...
연비는 연비대로 시내에서 한 6-7km/l정도. 이정도 되면 딱히 저배기량을 타는 의미가 없는 듯 싶었습니다.

일에 치이고 치이며 영혼이 메말라가던 도중 차라도 한 대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며 무작정 매매상을 한번 들러봅니다. 볼보 웨건이 가성비도 좋고 괜찮아 보이던데, 하며 적당히 막연한 생각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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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sche Cayenne S 4.5>

그리고 포르새를 가져옵니다. 분명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요. 

원래 가져오려던 볼보는 직접 보니 상태가 너무 안 좋았고, 그냥 내려오기에는 아쉬워서 한번 둘러나 보자~ 하던 중에 얻어걸렸습니다. 당초 책정했던 예산은 훨씬 뛰어넘었지만, 못 살 가격도 아니었습니다. 내외관의 상태를 보니 이 정도면 복원이 아닌 정비와 유지만 하며 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북미 직수입 차량이라 정식 수입품에 비하면 몇 가지 소소한 점들이 다릅니다. 쉽게 우드그레인만 달린 깡통이라 보면 됩니다. 열선핸들이라거나 후방감지기라던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에어서스펜션도 없습니다. 유지관리의 레벨이 급격히 내려간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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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실 카이엔 별로 안 좋아했습니다. 아니 911이 아닌 모든 포르쉐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특히 4도어는 길거리 지나가는 비둘기 보듯 전~~ 혀 관심이 없었어요. 이 차를 사면서도 와 포르쉐다! 라는 느낌보다는, 그래도 독일제 SUV니까 미제보단 좀 낫겠지. 하는, 기대감 제로의 마인드였습니다. 매매계약서를 쓰면서도 끊임없이 업무 전화를 받아야 하는 상황까지 합해지니 설레임보다는 피곤함이 앞섰구요.

도로에 올려 악셀을 밟기 시작하니, 오랜만에 느끼는 독일제 V8의 꽉 찬 느낌이 납니다. 와 이것 봐라, 하며 조금씩 마음이 풀립니다. 미제 V8이 수플레 팬케이크라면 독일제 V8은 바스크 치즈 케이크같은 느낌이랄까요. 고회전을 써도 힘이 빠지지 않습니다. 음색은 벤츠보다는 아우디의 8기통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크르렁~! 하지는 않고 그와앙! 하는... 

서스펜션은 굉장히 단단합니다. 그 당시 개발팀들은 승차감이 좋으라고 만들었다기보다는 2톤 중반의 SUV로 코너를 포르쉐처럼 돌게 하고 싶었나 봅니다. 자잘한 진동은 그냥 타이어랑 시트 너희들이 해결해 하는듯한... 덕분에 코너링은 정말 사치스럽게 즐겁습니다. 와인딩에서 골프가 물개였다면 카이엔은 범고래입니다. (생긴 것도 비슷합니다) 우악스러운 파워와 넓은 타이어(4륜 275/45/19), 멋진 서스와.. 브레이크. 이 미칠듯한 브레이크.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처음으로 웃었습니다. 이 딱딱하고 담백한 느낌은 근 10년 전에 타봤던 996의 그것과 흡사합니다. 추억이 머릿속으로 물밀듯이 들어옵니다... 구간단속이 먼 세상이던 그 시절의 그 밤공기까지요.
처음으로 에어백 가운데의 로고를 쓰다듬었습니다. 그래, 너도 포르새 맞구나. 하고 읆조리면서요.

그렇게 정을 붙을 타고 다니면서, 취미용 바이크까지 처분해버리고 불현듯 드는 생각...

어, 짐차로 쓰려던 카이엔이 이정도로 실내 고급스럽고 느긋한 고속주행이 된다면... 링컨을 굳이 가지고 있어야 하나? 문 네짝이 두대가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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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cedes-Benz CL63 AMG 6.2>

링컨을 팔고 CL을 가져옵니다. 차로 따지면 6대째만에 쿠페로 다시 회귀한 셈입니다.

어릴 적 메르세데스 벤츠를 발음하지 못해 메르메르 벤쯔라고 말할 때부터, 벤츠는 저에게 특별한 존재입니다. 차를 열몇대 바꿔가면서도 벤츠가 상당 부분의 비율을 차지했고, 그 중 과반수 이상이 AMG였습니다.

10여년 전, 대치동 나무그늘 아래에서 보았던 흰색 노멀 CL을 보며 처음으로 차가 우아하다 생각했고,
그로부터 몇 년 뒤 운 좋게 6.2 AMG를 품고 또 보내며 아쉬움에 울적하기도 했고
그로부터 몇 년 뒤 뚜벅이 생활 중 새로이 나온 S63 쿠페를 보며 패밀리룩과 맞바꾼 인하우스 AMG 엔진을 아쉬워했는데...

세월이 지나며 소년은 청년이 되었고, CL은 손을 뻗으면 닿을 높이로 내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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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63은 한량같은 차입니다.

사실 차는...
V8 6.2리터 엔진이 7000rpm 이상 돌아갈 필요도 없으며
앞자리를 위해 만들어진 2도어 쿠페가 5미터가 넘을 필요도 없고
10차선 도로를 울리게 만드는 배기음과 이중접합유리, 안마시트가 공존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런 비효율적인 차, "고민하지 마. 내 위에 올라타서 느긋하게 도로를 즐겨. 어차피 우리 이길 차 많지 않아..."라고 외치는 듯한 차를 달래며 달리는 맛은 각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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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제 8기통 2기의 조합은 너무나 매력적이라 여기에서 추가할 차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짐도 싣기 편하고, 악천후에도 끄떡없으며, 점잖아 보이는 카이엔은 주중 업무용.

귀를 간지럽히는 소리에 매끈한 바디를 가진 CL은 주말 나들이용... 


서른한 살 나이에 가지기에는 과분한 차량들이지만, 저들이 있어 삶이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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