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에서 오늘(12월 16일) 최저, 최고 온도는 영하3도를 예고했었고, 실제로 정오 즈음 영하 2도 정도의 기온에 매서운 바람이 부는 그런 날씨입니다.

사당역에서 고속터미널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전기 버스였습니다.
칼바람을 맞으며 정류장에서 약 4분 정도 기다리다가 버스를 탔는데, 히터를 전혀 안켜더군요.

뒷문 한칸 뒷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하차를 위해 뒷문이 열렸다 닫힐 때마다 강풍이 실내로 들이치고 바지틈 사이로 찬바람이 들어오는데, 기사에게 히터를 켜달라고 하기에 너무 먼 거리에 앉아 있기도 했지만 정말 짜증나더군요.

히터를 켜면 Range(주행가능거리)가 줄어드니 히터를 켜지 않는 것입니다.

아이오닉5를 타는 후배는 겨울에 히터를 켜는대신 220v온풍기를 사용하는 것이 Range에는 훨씬 유리하다며 조수석쪽에 온풍기를 켜면 뒷좌석까지 훈훈한 열이 전달된다고 했습니다.
차에 장착된 히터를 켜지 못하는 웃픈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동생네 패밀리 세단은 파나메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인데, 우리집에 놀러왔을 때 아파트 단지 밖에 있는 주민센터에 세워두고 충전기를 물려놓고 왔다고 하더군요.

주민센터에서 걸어서 우리집 동까지 대략 7분 정도를 걸어야하는데, 한겨울이라 따뜻한 지하주차장에 세워두고 올라오면 될 것을 그놈의 충전이 뭔지...

아시다시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이미 강력한 엔진이 있어서 전기가 없어도 완벽한 주행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배터리가 완충되어 있으면 동생집까지 대략 15km정도의 거리를 엔진가동없이 전기로만 갈 수 있으니 유류비 대략 2리터 즉 3800원 정도의 이득이 있습니다.

이 3가지 사례에 대한 반대적인 상황을 살펴본다면 
내연기관 버스를 탔을 때 겨울에 히터를 켜지 않는 경우는 없습니다. 히터에 인색할 이유 자체가 없지요.
겨울에 버스 좌석에 앉아 이동할 때는 푸근한 그런 기억들이 있습니다.

차에 이미 훌륭한 히팅 시스템이 있지만 열선시트는 커녕 히터도 켜지 않고 온풍기에 의존해 겨울주행을 하는 것은 
Range를 포기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대단히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파나메라 충전의 경우에도 최대 3800원의 이득을, 영하의 날씨에 걸어서 양손에 짐을 들고 약 3식구가 왕복 15분을 걸어서 이동해야하는 수고와 맞교환이 가능한 것일까요?

사람마다 내가 하는 행위에 대한 비용을 매겨 산수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때문에 비용 대비 가치 즉 가성비로만 모든 현상을 판단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되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삶의 질은 광범위하게 다양한 부분에서 그 향상을 목표로 열심히 일하거나 혹은 비용을 줄여 누리고 싶은 자유를 즐기고자하는 본능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입시를 준비하던 고3시절 92년도 겨울 친구의 아버지 베스타(8,90년대 기아 생산 승합차)로 학교에 갈 때면 아침에 출발해서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히터가 나오지 않아 무척 추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디젤엔진은 블럭이 두꺼워 냉각수 온도상승이 더디고 때문에 히터가 늦게 나오는데 구형 디젤엔진들은 정말 인내심을 가지고 히터가 나올때까지 기다려야했지요.

30년전 겨울 디젤엔진을 장착한 승합차를 탔던 그 시대 어쩔 수 없이 누릴 수 없었던 겨울의 온열은 30년이 지난 지금 그토록 인색하기 짝이 없는 온열이 되고 말았습니다.

눈부신 기술발전의 산물인 자동차, 그 중에서도 한번 더 고도화되어 효율을 극대화시킨 하이브리드, 그보다 더 고도화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그리고 최종 골인이 전기차라?

그것으로 인한 주행비용의 혜택이 무엇인지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선명하기 대비되는 불편성이 긍극적으로 우리의 삶의 질을 높여준다고 볼 수 있을까요?

사람들의 심리는 때론 매우 비논리적이며 비합리적인 선택을 통해 아주 작은 것을 얻지만 아주 큰 불편을 감수하길 주저하지 않습니다.

편리하고자 타는 자동차에서 Range의 손해가 주는 금전적인 부분이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겨울에 히터도 켜지 않고 운전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 편리성을 극대화시키는 기술발전의 결과물이 결국 사람들을 매우 비논리적 비이성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결국 본질을 뒤로 하고 작은 것에 집착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오늘과 같이 한파속 강풍이 부는 날씨에 전기버스를 타면 추워서 손을 비벼야하며, 카카오택시로 택시를 부르면 히터 안켜주는 전기차가 걸릴까봐 걱정해야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나 자신을 생각하면 기술발전의 혜택은 도대체 어디로 숨어버린 것인지 답답하고 한심하기 짝이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엔진이 켜질까봐 액셀을 살살 달래가면서 주행하는 하이브리드 차량들이 길을 막고 적정 속도를 내지 못하는 장면을 뒤에서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기술로 인해 혜택을 누리기는 커녕 기술의 노예가 되어버려 자동차가 주는 제1의 혜택인 편리성은 허울 뿐인 효율이라는 단어에 지배된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 전망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기차의 점유율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제가 위에 언급한 불편성은 커질 것입니다.
추워서 히터를 켜주세요라고 말하면 택시기사들이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낼 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의 심리는 바뀌지 않을 것이며, Range는 히터와의 상관관계가 변하지 않을 것이니 겨울에 히터에 인색함에 대한 부분도 바뀌지 않아 겨울에는 늘 차를 타면 푸근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야할 것 같습니다.

올겨울 대중교통을 타면 편하게 어딜 갔다는 생각은 없고 추워서 덜덜 떨었던 기억만 쌓일 것 같아 답답합니다.
-testk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