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다 불현듯 예전의 F1에 대한 열정이 떠올라 목요일 티켓을 구매하고 일요일 새벽 5시 반에 경기장을 향해 친구 한명과 떠났습니다.

 

그랜드메인스탠드 실버석 중 Virgin Racing 앞쪽에 자리를 잡고 오후 한시부터 흥분과 기대감이 섞인 마음으로 행사를 관람하였습니다.

 

좋았던 점

1. F1을 실제로 처음 겪어본 경험은 정말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감동이었습니다.  가져갔던 귀마개는 과감히 빼고 17000rpm X 24대에서 나오는 사운드를 그대로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정말 TV시청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감동이었습니다.

 

2. 빗물로 인하여 F1머신이 달릴 때 생기는 에어로 형상이 눈에 보였습니다.  물방울의 움직임으로 얼마나 잘 다듬어진 에어로인지를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3. 제 눈 바로 앞에서 알론소가 베텔을 추월하는 장면을 목격하였습니다! 아.마.도. 장내 50%는 페라리를 응원하였을 텐데 알론소가 팬들의 기대에 부응해준 듯 합니다.  베텔은 알론소에게 추월을 허용한 직후에 머신에 불이 붙은 것으로 보아 아마 머신의 이상으로 추월을 허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경기 내내 베텔이 근소하지만 지속적으로 알론소와의 거리를 벌리며 안정적으로 주행한 것에 비해 좀 아쉬운 탈락입니다.

 

4. Safety Car인 SLS의 주행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원래 페이스메이킹 할 때도 상당한 속도로 달린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SC의 드라이버도 보통 솜씨 아니면 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카리스마 있는 주행을 보여줬습니다. 

 

5. GM대우 레이싱팀이 제 앞쪽에 앉아 있어서 이재우 감독, 김진표, 유건 선수를 보았습니다. 유건 씨는 정말 잘 생겼더군요, 김진표 씨는... 해밀턴 코스프레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모자와 자켓을 해밀턴의 그것들과 일치시키고 헤어스타일과 피부까지 비슷한 톤으로... 처음에 김진표 씨인지 모르고 친구에게 "옆모습이 해밀턴과 싱크로 100%다" 라고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분이었습니다 ㅎㅎ

 

6. 경기가 재개되기 전까지의 지루한 기간 동안 카메라맨들이 관람객들을 찍는데 어쩌면 다들 귀여운 아이들과 재밌는 분들만 골라서 찍는지.. 외국 카메라맨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런 모습들이 한국 관람객의 이미지로 외국에 중계될꺼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나빴던 점

1. 비로 인하여 경기가 지연되었는데 사실 제 생각에는 비 때문에 중단할 정도의 양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트랙위의 유막으로 인해 배수가 잘 되지 않아서인듯 싶은데 만일 트랙공사가 몇달 전쯤에만 끝났더라는 아는 아쉬움을 가져봤습니다.  그 동안의 비로 인해 기름기가 많이 씻겨졌을테고 원래 예정되어 있었던 경기를 한두번 정도 해 줌으로서 트랙을 어느정도 안정화 시켜줬으면 경기지연이 이정도까지 되지는 않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공기지연이 올 여름 비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래저래 영암경기장은 비 때문에 정말 울고웃고 하게 되네요.

 

2. 경기장 주변의 인프라 미숙에 대해서 이미 많은 분들이 얘기를 하셔서 되풀이할 건 아니지만 진행요원들은 정말 아연실색할 정도로 아마추어같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경기장 내 셔틀을 타고 메인 스탠드로 이동 후에 내릴 때 버스기사에게 경기 끝나고 이따 다시 이 자리에서 타냐고 물었을 때의 답변이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죠~ (잘 모르니 묻지 말라는 어투)"였고 포디움 시상식 때 하필 전화기 밧데리가 방전된 상태에서 친구를 잃어버렸는데 안내방송을 좀 해달라는 얘기를 두 명의 관계자에게는 자기 주관이 아니라는 소리를 들었고 세번째 관계자로부터는 그런 시스템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행사장 입구의 경찰은 경기장 위치를 물었을 때 (경기장의) 반대방향으로 가라고 길을 안내해 주었고 입구의 요원들부터 경기장 내의 요원까지 하나같이 뭔가를 질문했을 때 답변이 "모르겠다" 뿐이었습니다.  

 

여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10 Korea GP를 드디어 개최했네요.  잘한 점도 많고 고칠 부분도 많지만 그래도 F1 개최국의 하나로 대한민국이 들어간 점에 대해 자부심이 생깁니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 앞으로 자주 가겠다는 말을 하기에는 엄두가 좀 안 나지만 그래도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했다는 생각에 뿌듯합니다.  아직도 머신들의 거친 숨결이 느껴지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