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한님의 글을 잘 읽었습니다. 같은 업계에서 많은 경험을 하신 분의 말씀이라 아주 이해하기 쉬웠고 동감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수입차 AS에 관한 글에서 시작한 내용이었지만, 양산차 업계의 내용도 말씀드리고 싶어 글을 올립니다. 다르게 알고계신 부분에 대한 첨언을 해주실 분들이 계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김태훈님의 소중한 차도 빠른 시일내에 매끄럽게 수리가 완료되길 빕니다.

한 개의 신규 모델을 생산할 때, 제품개발, 생산기술, 생산, A/S 등 많은 부서의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를 합니다. 여기서 생산기술측에서 일관되게 요청하는 것은 어떤 한 부품이 있다면 그 부품의 사양 수(옵션/판매지역/트림 레벨 등에 따름)를 줄여달라는 것입니다. 부품의 사양 수가 많으면 많을 수록 작업하는 사람들이 혼동을 겪을 수도 있고, 자재를 적치했다가 생산라인으로 공급하는 곳에서는 부품 사양 수대로 파트를 보관하고 있어야 하니 부품의 종류가 많아지면 그만큼 많은 공간을 배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큰 파트들은 대부분 모듈화 방식으로 생산 순서에 의해 공급을 받으니 별 해당 사항이 없겠지만, 그 모듈을 제작하는 업체 또한 어떤 부품의 사양 수가 많아질 수록 많은 고민을 하게 되겠지요. 또, 자동차 부품이 한 두개가 아니고 모든 부품을 다 모듈화 시킬 수도 없으니, 부품의 사양 수가 많아질 수록 생산과 물류 공급에는 부담이 가해지게 됩니다.

A/S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발생하겠지요. 고객들을 위해 어떤 부품을 찾는데 워낙 부품의 사양 수가 많아 조금씩밖에 보관하고 있지 못하다면 그게 바로 낭패 아니겠습니까? 부품의 사양 수가 적거나 일원화되어 있다면 한 가지 부품을 많이 가지고 있다가 필요할 때마다 즉시 쓸 수 있게 되어 참 좋을텐에 말이죠.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더 많은 시장에 더 많은 옵션을 투입해야 상품성이 좋아지는 것 또한 사실이니, 많은 사람들이 고민을 하게되는 딜레마입니다.

그래서 자동차 업계에서도 각 시장의 법규/소비자 니즈/소비자 구매력 등에 따라 사양(소비자들이 구매하는 트립 레벨/옵션보다는 광의의 개념으로 말씀드립니다)을 나누지만, 가급적이면 한 부품의 사양을 많이 나누는 일은 지양하려고 개속적으로 기술 개발 중입니다. 우리 회사에서 시행하고 있는 방법 중에는 한 모델의 차에는 동일한 ECU를 사용하고 ECU 안의 프로그램만 차종이나 사양마다 다르게 해서, 생산현장이나 정비소에서는 동일한 ECU만 보관케 하고, 경우에 따라 다른 프로그램을 로딩하는 방식을 점차 도입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엔진의 모델에 따라 서로 다른 ECU를 사용해 왔지만, 앞으론 한 모델엔 한 종류의 ECU를, 그 후에는 전 모델에 한 종류의 ECU 하드웨어를 쓰고 소프트웨어만 다르게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답니다.

일반적으로 디자인/개발/생산/판매/AS를 모두 만족시키는 부품 개발과 트림 레벨/사양 개발은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회사 정책의 일관성이 따라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P.S 제가 항상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는데, 폴크스바겐처럼 한 모델에 엄청나게 많은 트림 레벨과 옵션의 차를 만드는 회사는 어떤 조화를 부리는 걸까요? 여긴 폴크스바겐 고객분들이 많은데 국내에서 부품 수급엔 어려움이 없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