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라인의 산실인 프린스는 워낙 곡절이 많은 회사이고, 그런 이유로 일본 자동차 역사에서는 무척 눈여겨 볼 만한 회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GT-R이나 프린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기억나는 이야기들을 몇 가지 적어봅니다. 관련된 이야기들은 인터넷을 통해 어렵지 않게 찾아보실 수 있는 것들이지만, 개인적인 의견도 섞여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952년에 타마자동차와 후지정밀공업이 합병하면서 회사 이름을 '프린스'로 정한 것은, 현재 일본 국왕인 아키히토 당시 왕세자의 출생을 기념하는 뜻에서 지어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회사명을 제안한 것은 당시 타마자동차 회장이었던 이시바시 쇼지로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이시바시 쇼지로는 브릿지스톤 타이어의 창업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타마자동차에 이어 프린스 자동차의 대주주이기도 했지요. 나중에 어린 아키히토 왕세자는 프린스 자동차를 방문해 둘러보기도 했는데, 일본 왕족의 자동차 회사 방문은 무척 드문 일이었다고 합니다. 왕실업무를 관장하는 궁내청의 의도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왕세자 스스로 자신과 관련이 있는 회사를 방문하고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었겠지요.

1966년에 있었던 프린스와 닛산의 합병은 일본 통산성이 주도했지만, 배경에는 이시바시 회장의 영향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프린스가 작은 회사이기는 해도 이시바시 회장이 일본 산업계에서 꽤 영향력이 있었던 만큼 독자노선을 걸을 수도 있었겠지만 포기하고 만 것이죠. 다른 회사에 타이어를 납품하는 것이 어려워질까봐 그랬다는 이야기가 있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설득력 있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통산성의 압력이 있었던 것도 같습니다.

프린스와 닛산의 합병 이전에 프린스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몇 개 있었는데, 동영상으로 올라온 '프로젝트 X'에서 다룬 R380의 후속차 프로젝트들과 함께 일본 왕실 전용차 프로젝트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일본 왕실에서는 그간 외제차를 주로 썼는데(현재 슈투트가르트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그로서 메르세데스'가 대표적이죠) 경제부흥 시기의 일본에서는 국산차를 왕실 전용차로 써야 하지 않겠나는 의견이 나와, 프린스에서 개발을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고 합니다. 소규모 메이커인 프린스가 왕실 전용차 개발을 하게 된 데에는 궁내청과 프린스가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하네요. 당시 아키히토 왕세자 역시 프린스 차를 애용하고 있었다고 하구요. 그래서 개발이 시작되었고, 닛산과 프린스가 합병된 이후에 완성되어 납품되었습니다. 닛산 프린스 로얄이라는 이름의 이 차는 이후로 40년 가까이 쓰이다가 낡은 탓에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어 2004년에 토요타가 센추리를 바탕으로 만든 센추리 로얄에 자리를 넘겨주었습니다.

저는 포르쉐 박사의 경우도 있고 해서 '기술에 정치나 국경이 무슨 소용'이라는 생각도 하고, 기술자들의 열정이 멋있게 느껴졌기 때문에 프린스라는 메이커에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밑바닥 어딘가에서는 일본인들의 저변에 깔린 왕조체제에 대한 숭배의식('복종'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듯 하고), 군국주의의 잔영 같은 것들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뒷맛이 개운치만은 않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