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노 레이이치로의 '세계 자동차 전쟁론' 을 읽다가 보니 우리는 어쩌면 R35 GT-R의 등장을, 그리고 GT-R의 세계화를 쌍수들고 반겨야 할 상황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R35는 차가격 자체는 동급의(?) 포르쉐나 페라리 등에 비하면 훨씬 더 싸게 보이지만, 결국 그 안에는 X랄맞은(!) 메인터넌스를 위한 가격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예를 들어 GT-R의 브렘보 브레이크는 매번 패드 교환시 로터를 함께 교환해야 하며, 1대분의 교환가격은 약 40만엔 정도라고 합니다. (물론 포르쉐의 PCCB도 만만찮은 가격표가 달려있긴 하죠)

하지만 이런 것들은 다 제외하고라도 우리가 R35 GT-R에 만세를 부를 수 없는 진짜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GT-R이 제로센(零戰)의 부활' 이라고 불리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본이 자칭 대일본제국이라는 어줍잖은 이름을 걸고 아시아의 평화를 운운하며 벌였던 '대동아전쟁' 이라는 같잖은 침략전쟁 당시 활약하며 일본의 자부심의 상징이라 불리웠던 그 전투기가 바로 제로센 전투기였죠.

사실 GT-R이 일본의 자동차 매니아들에게 가지는 의미는 단순히 고성능의 자동차를 뛰어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제 일본인 친구 중 BNR34 GT-R을 타는 친구는 'GT-R은 단순히 성능이 좋은 차를 넘어서서, 일본인들의 정신적인 면과 혼(魂)에 어필하는 자동차다.' 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스카이라인, 특히 GT-R은 일본의 자동차 매니아들에게 있어서 일본의 기술로 세계에 맹위를 떨치는 자부심인 것 입니다.

그 태생부터 레이스의 승리를 위하여, 그리고 포르쉐의 타도를 위하여 탄생했던 자동차인만큼, 또한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여 양의 탈을 쓴 늑대라 불리웠던 S54B 프린스 스카이라인 2000 GT-B를 시작으로 각종 레이스 무대에서 무수한 경쟁자들을 물리치며 이어져 내려온 전설은 패망으로 얼룩지고 자신감을 잃어버렸던 일본인들에게 커다란 희망이자 자존심의 부활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자국 내에서 실력을 갈고 닦은 GT-R을 세계화라는 명목을 내세워 전 세계에 팔려고 합니다. 한 마디로 GT-R의 침공이 시작된 것이죠.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GT-R이라는 차는 나는 나다. 불만 있으면 가라. 하고 말할 수 있는 차다.' 라고 말합니다. 그 만큼 대단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지고 침공의 깃발을 내세우는 것 입니다. 마치 제로센이 진주만을 폭격했던 그 때 처럼 말 입니다.

R35 GT-R이 완성도 높은 무서운 머신이라는 것은 이제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섣불리 맞서려고 해봤자 우리에겐 대항할 수 있는 방패도, 무기도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뭐, 간단하게 안사면 그만이고, 사려고 해도 일단 손가락 빨면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적어도 '우워우워' 하면서 넋놓고 끌려갈 상황은 아니지 않는가 하는 것 입니다.

어쨌든 자동차 하나에도 이처럼 무시무시한 야심을 불어넣는 일본인들이 갑자기 소름끼치도록 무섭게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