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황유석 입니다. 포스팅 재개가 예정보다 한달이나 늦어져 버렸습니다. 그동안 여행은 잘 다녀 왔고, 샴페인 동생집으로 거처를 옮겨 약 한달간의 방학도 잘 쉬며 지냈습니다. 동생집에 지내는 동안 인터넷이 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는데 다시 시카고로 옮겨오면서 그 문제도 해결되었고, 8월 이사 이후 다시 여행을 갈 예정인지라 독일 여행기를 서두를 예정입니다. 메르세데스 벤츠 박물관은 이 글을 포함하여 앞으로 4개의 글로 마무리 지을 예정입니다. 그럼 즐거운 관람 되시기 바랍니다.:)


-녹아버린 엔진의 부속. 이 동상은 1903년도 아일랜드의 고든 베네트 컵 레이스에 출전 예정이던 3대의 다임러 90마력 레이스카의 엔진 부속 중 하나가 녹아버리면서 자연적으로 생긴 것이다. 당장 3주 뒤 레이스가 예정되어 있어서 곤란을 겪고 있었으나 자동차 광이었던 G. Dinsmore가 자신의 메르세데스를 빌려준 덕으로 문제가 된 부속을 대체하여 우승할 수 있었고, 그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그에게 선물되었던 것이라고 한다.


-1903년 발생한 공장 화재. 다임러의 첫 공장이었던 Seelburg의 공장은 1903년 6월에 원인불명의 화재에 휩싸인다. 이 화재로 공장이 전소되었으며, 다임러 공장은 이후 Unterturkheim으로 예정을 앞당겨 이전하게 된다.


-1905년부터 1920년까지의 Unterturkheim의 모습. 1900년에 공장부지가 예정되었으나 1903년도 화재로 예정보다 서둘러 공장이 들어서게되었고, 1904년에는 다임러 본사까지 이전하게되었다.


-사유권보호. 19세기의 트레이드마크의 의미는 품질을 보증하는 것 정도였으나 1894년 독일 제국에서 상표권보호가 시작된 이후 1910년까지 이미 135,000여개의 상표권이 등록되었다.


-트레이드마크. 20세기 초반 벤츠와 다임러가 자사 차량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한 장식물 들이다. 현재 우리가 알고있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상징인 삼꼭지 별은 원래 1909년부터 다임러에서 사용하던 것으로 다임러의 아들이 고안해내었다고 한다. 세계최초로 육, 해, 공을 가솔린엔진으로 정복한 자부심을 상징한다. 두 회사는 이들 마크를 주로 차량의 라디에이타 그릴 위에 부착하였다.


-다임러의 상징물들. 맨 왼쪽의 칠꼭지 별은 1909년 삼꼭지별을 고안해내기 전까지 사용되었다.


-벤츠의 상징물들. 벤츠라는 사명을 월계수잎으로 둘러싼 형상이다.














-급료와 직원 복지. 오른편의 색바랜 종이들은 1912년부터 1920년까지 벤츠에서 발행된 공장 근로자들의 급여증서이고 왼쪽은 다임러에서 1905년부터 근로자들에게 판매했던 레모네이드 병이다. 근로자들의 과실주 외부 구입에 대한 비용 절감을 위해 하루에 5000~6000병의 생수와 레모네이드, 라즈베리 주스를 자체 생산하게 되었으며, 특히 과실주 원료의 흉작이 들었던 해에는 수요가 컸다고한다. 수익금은 근로자들의 퇴직금으로 활용되었다.


-병 측면에 다임러라는 음각이 되어있다.


-사원번호 2539, Miller의 이름으로 발행된 급여 증서. 1912년 45 stund : 21.25, 1913년 54 stund : 66.65라고 되어있다.





-자세히 보면 모두 Miller라는 사원 한 사람의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아직도 보관되고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문득 오래된 자사 노트북을 기증하면 대신 새 노트북을 주겠다는 몇 해 전 우리나라의 신문광고가 떠올랐다. 벤츠는 박물관을 처음으로 열었다는 1923년에 이미 세계최초의 자동차 메이커로서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관계상 둘러보지 못한 층에 전시된 1차 세계대전 이후의 벤츠 모델들이 보인다. 오른쪽 앞의 흰색 차량은 35대만 생산되었다는 슈퍼차져 장착 스포츠카 SSK, 붉은 차량은 500K 스페셜 로드스터.


-천장에 매달려 전시된 다임러의 L20B1형 경량 항공기 D-1433. 원래 ‘동지’라는 뜻의 Kamerad라고 명명되었던 것을 파일럿이었던 Koenig가 독일 항공 선구자의 이름을 따 Huenefeld라고 개명하였다고 한다. 목재로 구성된 몸체는 다임러의 2기통 20마력 엔진을 장착하고도 450kg에 불과하였고 연비는 리터당 약 20Km, 최대 시속은 105Km/h였다. 항공기 위쪽으로 살짝 보이는 ‘E MC’는 박물관의 특이한 구조에 따른 층별 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E=MC2’이라는 아인슈타인의 공식에서 따왔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북미 횡단 비행 직전의 Koenig. 기체 앞부분의 ‘Huenefeld’라는 기체명이 보인다. L20B1형은 2인승 이었지만 그는 1929년 8월 9일 베를린 출발부터 1930년 11월 23일 하노버 귀환까지 1년 2개월간 홀로 비행하였으며 이것은 세계최초의 단독 세계 일주 비행이자 성공한 비행이었다. 그전까지의 세계 일주 비행에는 하인이나 동료가 대동되었다고 한다. 우측 사진은 여행 중 최초의 인도 도시였던 Karatschi로 비행 중인 사진.


-베를린부터 싱가폴까지 유라시아 대륙을 비행으로 횡단 후 일본을 전후로 태평양과 미국과 유럽을 잇는 대서양에서는 연료 보급의 문제로 배를 이용하였다. 경로상으로 중국과 한국은 제외되었는데 아쉽지만 당시 외교관계를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었을듯하다. 실선은 비행 경로, 점선은 배를 이용한 경로로 총 450시간 동안 2만 마일(약 32,000Km) 가량 비행하였으며, 비행 도중 여러 차례 연료 부족을 겪었으나 하나의 엔진 엔진 볼트 망실과 엔진 벨브 고장 정도로 1930년에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하인덴부르그 컵을 수상하였다고한다.


-최초의 메르세데스를 위시한 1900년부터 1914년 사이의 투어링 리무진들. 레이스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연구는 초기의 자동차 발달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으며, 이는 차를 보다 빠르고 안정성 높은 진보된 탈것으로 변화 시켰다.


-박물관은 나선형으로 내려오며 둘러보게 되어 있다. 각 층간 나선형 내리막에는 벤츠의 각 시기별 소장품 들과 당대 역사적 사건을 벽을따라 시간 순으로 늘어놓았고, 내리막이 끝난 새로운 층에는 다시 자동차가 전시되어있는 식으로, 역사와 자동차를 번갈아 관람할 수 있다.


-나선형 구조에서 중간의 빈 공간을 경계로 각 층간 엇갈리며 배치된 것을 볼 수 있는 사진. 앞서 언급한 E MC라는 층 표시에서 E는 Exhibition Level을 M은 Mythosrunddgang(Legend tour), 그리고 C는 Collectionsrundgang (Collection tour)을 각각 의미한다고 한다. 이 같이 특이한 구조는 비선형적 건축으로 유명한 UN Studio가 설계하였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건축물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는 관람일 것이다.


-1904년식 메르세데스 심플렉스 투어링 리무진. 4기통 9236cc 60마력 엔진으로 최고 80Km/h를 낼 수 있었으며 1903년 당시 메르세데스 모델들 중 최고 사양이었다. 전시된 차량은 에밀 옐리넥이 1904년 구입하여 소유하던 것이다. 나란히 선 푸른색 차는 벤츠의 1909년식 35마력 랜도이며, 랜도는 뒷좌석을 덮는 접이식 지붕을 가진 마차를 뜻한다.


-라디에이터 위에 붙은 벤츠 마크보다 눈길이 가는 삼륜차 마크. 세계최초의 자동차 메이커라는 자부심을 보여주려는 듯 하다. 랜도는 4기통 5195cc 35마력 엔진으로 75Km/h를 낼 수 있었다.


-메르세데스 더블 페이튼. 다임러 최초의 6기통 엔진 장착 모델로, 1907년부터 1911년까지 생산되었으며 10180cc 75마력으로 95Km/h를 낼 수 있었다. 전시된 오픈 투어러 외에도 다양한 바디 형태가 있었고 할스펠드 영국 왕자가 소유한 차량이기도 했다. 아름다운 순백색 차체는 물론이고, 현 폭스바겐의 고급세단과 이름이 같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1905년식 벤츠 더블 페이튼. 더블 페이튼은 메르세데스 심플렉스에 대항하여 1902년 파리모터쇼에서 데뷰한 파지할 시리즈의 성공에 뒤이은 모델이었으며 4실린더 3160cc 엔진으로 18마력, 60Km/h를 낼 수 있었다.


-마흐바흐에 의해 일년을 주기로 계속 진보한 다임러의 레이싱카들.(1899년식 피닉스, 1900년식 피닉스, 1901년식 메르세데스) 기존의 마차를 베이스로한 큰 바퀴는 핸들링을 위해 앞 바퀴가 작아졌으나 휠 베이스는 고려되지 않아 무게중심이 높고 고속 코너링시 전복의 위험이 높았다. 1900년도에 등장한 신형 피닉스 레이스카는 기존에 비하여 프레임과 섀시가 낮아지고 뒷바퀴가 앞바퀴 만큼 작아졌으며 다시 일년 뒤 등장한 메르세데스 모델에서 프레임은 더 낮아지고 휠 베이스가 길어지면서 핸들링과 코너링 안정성이 증가하였다.


-4/33 시동기 : 초기의 자동차 시동은 수동 크랭크 회전으로 이루어졌다. 시동을 위해서는 100RPM 이상이 요구되었는데, 육중한 생긴새 답게 건장한 성인 남성이 양손으로 힘껏 돌려야 했으므로 시동작업을 위한 조수를 대동하고 다닐 정도였다. 이때부터 운전석 옆자리를 조수석이라고 부르기 시작 했다고 하며 조심하지 않으면 시동을 걸다가 부상을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1910년 케딜락사에서는 사장의 친구가 시동을 걸다가 튀어오른 크랭크 핸들에 맞아 숨지는 사고를 계기로 크랭크 핸들을 대신할 안전한 시동 방법을 찾게되었고, 1911년 델코사의 찰스 케터링이 전동모터를 이용한 셀프 스타터를 발명하여 캐딜락 모델 30을 시작으로 점차 고급 차량에 장착되기 시작하다. 하지만 1950년대 까지는 만일을 대비하여 기존의 수동 시동기가 같이 장착되어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시동기의 원리는 현대에도 사용되고 있으며 현재의 턴키 시동기는 1949년 크라이슬러에서 개발하였다고한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