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전부터 제가 거주하고 있는 곳 근처에서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기 시작하더군요.

멀쩡한 길 바깥쪽에 안전 펜스를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초고속 구간도 아니고 폭주 위험 구간도 아닌 곳에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런 안전 펜스를 이렇게 정성들여 세우기 시작하는지 의문이 좀 있었습니다. 그런데 좀 가다 보니까 길 주변에 관람석이 만들어지고 있더군요...

그걸보면서 든 첫생각은 바로 F1 모나코와 싱가폴 GP였습니다만 뭘로봐도 F1일리는 없으니 시설물이 좀 이상하긴 해도 정부 귀빈들이 오는 행사가 있나보다 했습니다. 설마 이곳에서 자동차 경주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더군요.

그러다 이번 수요일쯤 다시 지나가게 되었는데 주변까지 공사가 확대되어 있고 펜스와 관중석이 자동차 경주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모습으로 만들어지고 있더군요. 주유소들른 김에 직원에게 지나가는 말로 물어보니 이번주에 자동차경주 시합이 있다고 하더군요. 여담으로 그 주유소는 코스에 바로 붙어 있어서 펜스사이에 난 틈으로 들어가야 했는데 주유하러 들어가는 순간 마치 서킷을 달리고 피트인하는 기분이 들더군요. :)


집에 돌아와 자료를 찾아보니 그냥 보통 경주도 아니고 무려 DTM 최종전이더군요...-.-; 오, 이 무슨 땡잡는 행운이...

금요일부터 길건너에서 심상찮은 소리가 들렸는데 (연습주행) 애기 때문에 가보진 못했고 오늘은 한층 페이스업된 소리가 들리길래 오후에 애기 재우고 혼자서 qualifying 구경하러 나섭니다. F1경기 구경갈 때 썼던 귀마개 하나 챙겨들고서요.

경기가 벌어지는 곳은 딱 한 블럭 떨어져 있으므로 설렁설렁 걸어서 5분이면 도착합니다. 첫번째 세션이 시작했는지 집앞을 나선 순간 소리가 전에 없이 우렁차더군요.


표를 안 샀으니 당연히 입장은 안되고 경기장 바로 옆에 개천이 있는데 거기 다리가 약간 높아서 코스를 내려다 볼 수 있기에 거기서 구경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당연하게도 경찰들이 출입을 통제하더군요... 속으로 툴툴대며 그나마 좀 바라볼 수 있는 다른 지역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나마 100미터 남짓 볼 수 있는 곳에 가니 약 20여명의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더군요. 그런데 지대 관계상 차의 위쪽 절반밖에 안 보여서 차량의 번호같은 것은 전혀 식별이 안되더군요. 공짜니 뭐 어떻하겠습니까... 게다가 예선이니 뭐 일단 소리와 차들 속도만 감상했습니다.


DTM은 거의 승용차 껍데기 씌워놓은 포뮬러차라는 느낌이 들더군요. 엔진소리도 거의 F1급으로 우렁찬데다 변속음도 닮았습니다. 단지 피치가 F1엔진에 비해서 조금 낮은 느낌이 들고 전체적으로 살짝 부드러운 느낌의 소리라고 해야할까요... 제가 있는 구역은 곡선 주로라서 최고 회전음을 듣기는 힘들었지만 일부 자동차는 페라리노트와 닮은 소리를 내면서 지나가더군요. 사실 차 안보고 소리만 들으면 F1경주차 소리라고 해도 될 것 같더군요. 실제 경기장내 관람석은 코스에서 5미터 수준으로 밖에 안 떨어져 있으므로 F1 경주시보다 소리가 더 크게 느껴질 겁니다. 50미터쯤 떨어진 제가 이정도로 느낀다면 안에서 경기 관람하려면 귀마개가 필수이겠더군요. 안쓰면 난청될 수준입니다.


일반 승용차로 80Km이상 넘기면 좀 밀려나가기 시작하는 길을 180Km수준 이상으로 달려나가더군요. 차가 지나가는 순간 펜스쪽에 걸어놓은 광고가 심하게 펄럭댑니다. 흡사 비행기가 지나가는 느낌입니다.


주행시 엔진음도 인상적이었지만 아이들링/저회전 소리가 더 엄청난 느낌이더군요. 마침 제 앞쪽에 피트인 통로가 있는 관계로 피트인을 하는 차량들의 소리도 들을 수 있었는데 처음엔 머리위 10미터에 헬리콥터가 와 있는 줄 알았습니다. 실제로 헬리콥터가 머리위 상공 50미터 정도 높이에 계속 떠 있었는데 비슷한 거리가 떨어져 있는 자동차에서 나는 소리가 최소한 3배쯤 소리가 큰 것 같더군요. 세션 끝나고 잠시 차량의 엔진 소리가 멈춰야만 위에 있는 헬리콥터 소리가 들립니다.


아래쪽이 잘 안 보여서 어떤 차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흰색차 하나가 다른 차들보다 확실히 빠른 느낌이 들던데 아마 폴포지션을 차지한 차가 맞나 봅니다.


내일 여유되면 또 나가서 구경해봐야 겠네요. 바로 옆 아파트 주민들은 경기 공짜로 잘 보겠더군요. 거기 들어가서 볼 방법을 좀 궁리해봐야 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