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밤...

강남쪽에는 여전히 빠른차들 , 비싼차들, 납작한 차들이

어디를 가는지 모르지만

이쪽 저쪽으로 슁슁 지나다녀 눈요기 하는 재미가 좋다.

2분전 스쳐간 오렌지색 람보르기니의 10기통 배기음의 잔향이 채 가시기도전에

휠까지 새카맣게 도색한 인피니티 g35가 건조한 하이톤의 머플러를 울리며 스친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갈지 망설이고 있다.

실은, 망설인다기 보다 방황하고 있다.

10시 30분인줄 알고 있던 테드모임이 9시 30분일걸 깨닫고 강남구청에서 강변역까지

불과 10분만에 도착했지만 이미 해산한듯.... (10시20분 도착)

'젠장 그럼 이제 뭘하지...?'

세차나 할까.... 흠. 세차하기엔 차가 너무 깨끗하다.

최근에 즐기는(?) 이 취미는 고작 지하 3층에서 일주일간 혼자 잠자고 있던 차를 깨워서

세차하기. 그러니 차는 지금 일주일간의 얇은 먼지막뿐, 충분히 반짝인다.

서킷에서... 중미산에서... 남산에서...  심심할때, 혼자 드라이브 갈때 부르라고 주고 받았던

몇몇 전화번호들에 손이 가 보지만... 역시 쉽지 않다.

중미산은 너무 멀고...

이럴땐 가까운 남산이 좋지만 시간이 너무 이르다. 게다가 오늘도 소고기 수입반대 시위대가

있을텐데... 남산과는 거리가 먼가...?

낙담한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또 한번의 배기음. 마즈다 로드스터 서너대가 범상치 않은

포스를풍기며 스친다.



집앞 편의점. 편의점 앞 도로에 주차를 시키고 캔커피와 담배를 들고 나왔다.

테이블은 두개인데 한쪽은 남녀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다른쪽은 한 남자가 비정상적으로 길죽해 보이는 맥주캔을 한개 놓고 앉아있다.

"좀 앉아도 될까요?"

흔쾌히 승낙한 남자. 그는 이내 내가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본듯 차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한다.

'저런차는 얼마나 합니까?'

이런 순간에는 분위기 파악을 잘 해야된다.

잠시 그 남자를 본다.

그는 회사원이다. 운좋게(?) 금요일날 회사 회식도 없고, 일찍 집에 왔지만 막상 할일이 없다.

회사다니며 늘상 마시는게 버릇이라 좋아하게 된건지,

아니면 원래 맥주를 좋아하는건지 스스로도 알수 없겠지만

집에서 보지도 않던 드라마를 보고 있자니 갑갑해서 나온것이다.

나이는 나보다 너댓살 어려 보인다. 하지만 그도 나를 자신보다 너댓살 어리게 보고 있다.

드라이브 할때는 모자를 빼놓지 않는 버릇때문이다.

'3년전에 중고로 *천만원을 주고 샀습니다. 이제 6년된 차고요... 새차는 아마....'

이렇게 나는 그 낯선 남자와 자동차에 대해서 15분간 이야기를 했다.

그는 내게 도대체 어떤 사람이 마이바흐를 타고 다니냐고 물었고

나는 '이건희'라고 간단히 대답했지만 실은 그가 묻고 싶었던 것은

도대체 너는 어떤사람 이길래 포르쉐를 타고 다니느냐고 묻는듯 했다.

나는 별로 부자는 아니지만 이런 금요일밤에 드라이브를 하지 않으면

계속 스트레스가 첩첩히 쌓여 심장이 오그라 들것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살짝 발그래진 그의 얼굴을 보고 잠자코 있었다.

그는 이내 작심한듯 저차를 타고 다니면 여자들이 많이 좋아하냐고 물었다.

그건 정말 내가 알 수 없는 질문이었다.

대답 대신 나는 스쿠프서부터 티뷰론, 투스카니 등등 지나온 차들을 이야기 해주며

기타를 배우면 실력도 안받쳐 주면서 펜더 스트라토캐스트를 만지작 거리다

악기점 주인눈치에 밖으로 나오는것과 같다고 말했다.

운좋게 그걸 손에 넣을 수 있을만큼 돈이 있느냐 없느냐는 별개의 문제라고 했다.

그는 믿지 않는 눈치 였고 이내 눈길을 돌려 버렸다.

그는 가만히 남은 맥주 깡통을 비우고 일어섰고 '이야기 잘했습니다'며

자리를 떳다.

2cm남은 담배를 태우며 앉아있으려니 살짝 기분이 가라앉는다.

이대로 집에 갔다간 스트레스가 더 쌓일것 같다.

혼자라도 중미산에 가야겠다.



88타고 미사리쪽으로 가니 차들이 점점 줄어든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그 시각에 주말 2박을 목표로 놀러가는 차들이 많았는데...

오늘은 차가 거의 없다.  참...  이라크에 전쟁이 나서, 쓰나미가 몰려와서

수천명이 죽어나가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것 같더니...

기름값이 오르니 세상이 달라지는 듯 하다.


-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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