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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중미산 계측소 앞은 고요했다.

요즘은 계측소가 폐쇄된 뒤 가로등 조명을 줄여서 더욱 어둡고 적막하다.

길가에 잠시 정차후 허리를 펴는겸 타이어 상태를 점검한다.

일주일전 후륜의 피렐리 피제로 로소가 마모한계선에 가까워져서 창고에 있던

여벌의 네오바로 교체했다. 그래서 앞은 피렐리, 뒤는 네오바다.

별로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다.

게다가 포르쉐에 앞뒤가 다른건 처음이다.

네오바야 수십개를 써온 터라 익숙한 느낌이지만

피렐리는 아직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타이어다. 이것이 스포츠인지 럭셔리인지

모르겠다.

혹자는 럭셔리 스포츠라 하는데 금으로 만든것도 아닐진데 과연 그런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처럼 첫 등정은 80%다. 노면 상태나 사고 유무등을 파악 하고 회피할 수 있어야 한다.

천천히 2단을 으로 언덕을 오르며 두개의 불쾌한 범프를 지난다.

다른차가 이 두개의 불규칙한 범프를 지나는 모습을 보면 스타일을 알 수 있다.

그냥 마구 밟고 지나가는 차량이라면, 이곳을 몇번 안와본 차량이거나,

차를 아끼지 않고 마구 잡아돌리는 스타일이거나 둘 중의 하나다.

둘다 기피 대상이다.

이곳에서의 주행은 목숨을 담보로 한다. 함께 달리는 것은 자존심의 문제도 있지만

그에 앞서 안전이 중요한 곳이다.  모르는 사람과 앞, 혹은 뒤에서게 되면 긴장하게 마련이다.

긴장하면 평소의 주행이 나오지 않고 자세와 라인이 망가진다. 그런 와중에서 상대차량과

재미있게 즐기는것은 항상 두번째 문제다. 첫째는 안전.

그래서 이곳에서의 베틀시 브레이킹 포인트는 평소의 3미터 전방. 쉬프트 업은 1000rpm

언더다.



두개의 범프를 지나고 우측으로 완만하에 굽어진 길. 3단으로 악셀레이터를 압박한다.

4000rpm이 넘어서며 베리오캠의 작동, 배기음이 시원하게 오른쪽 암벽을 울린다.

업힐은 우측 창을 약간 내리고 다운힐은 좌측 창을 약간 내리는것.

그것은 속도만큼이나 즐거운 사운드를 즐기기 위한 최소사양이다.

4단변속. 처음에는 80%이므로 4단에서 더이상 가속은 없다.

노면은 그립이 충분히 나올 조건이었고 움직임도 이상없다.

구불 구불 구불 세번의 기분좋은 연속코너 후 첫 브레이킹. 완만한좌회전.

이곳은 매우 고속으로 통과 할수도 있는곳이지만 컨디션에 따라서 혹은 드라이버에

따라서 탈출속도가 매우 다른 곳이다. 이곳을 지나는 속도를 보면 실력이 대개

드러난다.

3단 힐엔토와 함께 다시 우회전.  두개의 연속된 우회전을 준비한다.

이 두개의 우회전은 의욕만 앞선 이들이 대부분 중앙선을 넘는 곳이다.

시야가 나빠서 운이 좋으면 무사히 복귀하겠지만 대항차가 있는 날에는

끔찍한 결과가 나올수 있는 곳이다.  이유는 지금까지 지나온 몇개의 코너에 비해

갑작스레 노폭이 좁아지며 진입속도를 못맞춰서 자세가 흐트러지면

곧바로 이어지는 똑같은 우회전 진입에 곤란을 격을 수 있다.

이것은 이 두 코너가 사실은 한개의 거대한 우측 헤어핀인데 인위적으로 잘라낸것

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잘라낸 곳 너머가 벼랑이라는 사실이다. -.-


문득 두번째 좌회전을 하며 앞뒤 타이어 차이를 느낀다. 사이드월강성이 네오바가

더 좋아서 그런지 좌측 전륜이 생각보다 쉽게 넘어간다.

오늘은 95% 주행도 쉽지않겠다.


백여미터를 지나면 어수룩한 포장마차가 있는 좌회전이다.

이곳은 코너의 70%지점에 위험한 범프가 있다. 그것을 의식하지 않고 진입하면

매우 놀라기 쉽다.  그지점은 아직은 재가속을 할 지점이 아니라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지만 차가 뜬것에 놀래서 당황하면 바로 렉카를 불러야 한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뚜껑조차 없는 도랑이 파져 있기 때문이다.


좌회전후 산등성이를 우측으로 돌면 내리막처럼 보이는 직진로가 펼쳐진다.

이곳이 내리막인지 아닌지는 실제로 걸어봐야 겠지만 살짝 내리막인듯 하다.

풀악셀. 시원하게 산허리를 돌아서 들려오는 배기음을 즐길수 있는 시간이다.

아직까지 대항차가 하나도 없는것을 보면 아마 오늘은 산타는 차가

한대도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런날은 혼자서 차를 느끼는게 더 좋다.


내리막 직진에 얕은 좌회전을 지나면 첫번째 헤어핀이 나온다. 좌회전.

이곳까지 악셀에서 발을 떼지 않았다면 4단에 5천을 넘게 된다.

깊고 과감하게 힐엔토를 건다. 소심한 힐엔토는 얕은 브레이킹을 피할 수 없다.

미끄러지듯 3단이 들어간다. 오늘은 컨디션이 아주 좋은듯 하다.


중미산의 묘미는 이 헤어핀에 있다. 꼭 비슷한 헤어핀이 한개 더 있는데 그 두곳을

지나는데는 자고 있는 집사람과 아기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길고, 깊으며, 짜릿하다.

(와인딩중에 집생각이 나면 짜릿하다. 마치 학원을 땡땡이치고 오락실갈때 기분이다)

이곳은 정석대로 브레이킹후 턴인 하는것이 라인을 잡는데는 좋지만

FF라면 브레이킹을 길게 끌고 들어가 밀면서 타는것도 재미있다. 그렇게 해도 충분한

노폭이고, 실수를 해도 바로 악셀 오프하면 된다. 쉽고 재미있는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포르쉐다. RR. 이 무거운 엔진을 끌고 들어가긴 아직 부담스럽다.

예상했던 정확한 라인으로 상쾌하게 돌아나간다.


비슷한 두개의 헤어핀중에 첫번째가 더 좋은것은 바로 이어지는 엄청난 우코너 때문이다.

한계속도였다라면 자세를 잡자마자 진입해야하는  이곳은 실은 굉장한 언덕이다.

인으로 붙을수록 그 기울기가 가파르게 변해서 인으로 많이 붙는다고 그닥 빠를 수 없다.

또한 이곳의 안쪽 노면은 상태가 엉망이라 자칫해서는 그립을 잃기 십상이다.

내가 이곳을 다니기 시작할때도 그런 노면이었는데... 경기도는 돈이 없어서 그런지

정말 노면 보수에 인색한것 같다.


우코너를 돌았나 싶을때쯤 바로 좌코너로 이어진다. 이쯤 오면 가슴이 팍 트이는 기분이든다.

산에 오르는 기분도 들고...  낮에오면 이곳 우 코너와 함께 파란 하늘을 볼수 있다.

바로 좌, 우, 코너가 숨쉴틈 없이 나타난다. 숨쉴틈 없다는것은 내가 숨쉬는것이 아니라

차가 숨을 돌릴 여유가 없다는 뜻이다. 13kg과 10kg짜리 TRD서스펜션을 달고 있던

엘리사는 이곳을 가뿐하게 잽날리듯 통과해 갔지만 엉덩이가 무거운 이놈은 아니다.

게다가 H&R로워링 스프링에 빌스타인 숏스트로크 만으로 상쾌하게 클리어하긴

힘든 움직임이다.


헉헉 거리며 통과하니  다시한번 깊은 좌코너다. 이곳이 앞서 말한 비슷한 좌코너다.

여전히 짜릿하고 재미있다. 하지만 이곳은 약간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전날 비, 혹은 며칠전에 폭우가 내렸다면.... 반드시 물이 있다.

이 코너의 정확히 중간에 비가 오면 새로운 물길이 만들어져 계곡물이 도로로 흘러내린다.

겁먹을 필요는 없다. 비온지 며칠 지났고... 많이 오지도 않았다.

역시 예상대로 물은 없었고 상쾌하게 클리어. 다음 코너는 완만한 연속 우코너다.


세번의 완만한 우코너 이후 직진 다시 우코너다.

이곳이 중미산 업힐의 최고 아드레날린 분비장소이다.

길고, 옅은, 연속된 같은 방향의 우코너는 상당한 경사의 언덕이기에 차의 가속력이

실제보다 더디게 느껴지고, 그래서 풀악셀을 하게 되지만

한번, 두번은 용서가 되어도 세번재까지 악셀에서 발을 떼지 않는다면....

패러글라이딩 하는 사람과 같이 비행할 수 있게 된다.

정말 안타까운것은. 이런 둘도 없는 아찔한 코너가 작년 낙석방지공사때 세워졌던

펜스의 파일자국으로 도로가 엉망으로 변해버린것이다.

그래서.... 이젠 더이상 그런 기분을 맛볼 수 없다.

내차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그런 자갈밭을 지나는 기분을 맛보게 하니....

어쩔수 없이 감속하고 1차로로만을 사용해야한다.

혹시나 도로 보수가 되었을라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그래도 다음 직진 후 우회전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곳은 무조건 풀악셀로 언덕 끝까지 가고 살짝 우회전후 아까의 절반 정도 크기의

좌측 헤어핀이다.  만약 누군가를 추격하고 있다면 이곳 언덕에서 언제 브레이킹을 하는지

잘 보는것이 좋다. 불이 들어오면 잡을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고수다.

오늘은 정말로 완벽한 상태의 그립을 주는 날이다.


헤어핀을 통과하면 1라운드의 끝이 보인다.

코너라고 하기 어려운 좌우 고개돌리기 후 2차선이던 길이 1차선으로 바뀌며

우회전, 마치 스키 점프대같은 길이 길게 펼쳐지고 그 끝에 살벌한 우회전이 있다.

이곳이 살벌한 이유는 내리막 직진으로 지금까지보다 빠르게 가속된다는 점과

우회전후 바로 포장마차와 길건너는 행인, 갓길 주차 차량들이 심장을 오그라들게

만들고, 제대로 감속하지 않으면 역뱅크때문에 어디있는지 보이지도 않는

중앙선을 넘게 되는 점 때문이다.

이곳은 고수와 하수를 떠나서, 간덩이가 부은놈이 앞서가게 되는 코너다.

4년전 나는 이 코너에서 잘 모르는 사람의 996컨버터블 조수석에 얻어타고 가다

중앙선을 넘는 아찔함을 경험했다. 속도가 족히 170은 되었을 상태로 그냥 돌리니

psm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지금도 끔찍하다. 게다가 오픈한 상태였으니 그 느낌은

정말 싸~~ 했다. 그때 기억때문인지 이곳은 항상 조심하게 된다.

나는 왠만하서는 이곳에서 승부를 걸지 않는다. ^^;  물론... 지금은 혼자라

더욱 그럴필요가 없다. 느즈막히 돌아나가니 포장마차에는 사람이  없는듯.

불도 켜져 있지 않다.


여기서 천문대로 내려가는 좌회전 길이 있는 포장마차 구간에서 1라운드는 끝난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