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3년간의 숙원을 풀었습니다.
차라는 것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처음으로 어떤 차를 꼭 가져야겠다는 맹목적인 의지를 갖게 해준 존재… 를 드디어 내 집 차고에 평생 세워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글쎄 드림카를 머라 정의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1. 막연히 갖고 싶은 차…
2. 갖고 싶고 실제로 맘만 먹으면 쉽게 가질 수도 있는 차…
3. 갖고 싶지만 현실적인 이유(금전적 or 시대적)들로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차…
등의 사연이 있는 차를 드림카라고 하지 않나 싶네요~

학생시절 난생처음 본 귀엽게 생긴 스포츠카가 뿜어대는 흉폭한 사운드를 듣고는 첫 눈에 반한 적이 있습니다. 그 오너가 어찌나 부럽던지… 저는 본능적으로 그 차에 대해 질문을 던졌고 상당히 귀찮은 듯한 그 오너에게  ‘포르쉐란다… 독일 스포츠카…’라는 소중한 답을 얻었고 그 후로 계속 정보를 수집해 그 차가 바로 PORSCHE의 993 carrera 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러나 엄청 고가란 사실에 절망하며 먼 훗날을 기약했습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인지 시간이 많이 지나 돈이 모였을 때에는 도무지 상태 좋은 매물을 찾을 수 없었고, 우연히 좋은 매물이 나타나면 이미 제가 다른차를 사버려서 또 돈이 없고… 그러다 해외로 수색망을 돌리니 국내보다 월등히 비싼 가격에 결국 포기.
포기와 수색을 수 없이 반복하다 ‘내 팔자가 아닌가 보다…’하며 완전포기!

그렇게 세월이 지나가던 중 생각지도 않고 있던 최근에 지인이 갖고 있던 비교적 상태가 좋은 993을 쉽게 넘겨 받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실감이 안 납니다. 한 맺힌 꿈이 이뤄질 때는 또 이리도 쉽게 이뤄지네요..^^

예전부터 “993이 생기면 집에 잘 모셔두고 날씨 좋은 날 가끔만 타야지!”라고 늘~ 생각 했는데 차를 받자마자 혼자서 이리저리 새벽까지 싸 돌아다녔습니다. 정작 출퇴근용 차는 계속 주차장에 세워져 있고, 매일 993만 타고 있네요!
요즘도 퇴근 길에 특별한 이유 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집으로 가곤 하는데, 그러고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시동 끄기가 참으로 아쉽습니다. 괜히 주차장 안에서도 한 바퀴 더 돌고 나서 주차하곤 하죠!

차량 상태는 사고경험은 없는 듯 하고, 계기판을 한번 바꾼 이력이 있는데다 제가 5번째 주인이라 현재의 정확한 총주행거리는 알 수가 없으나 엔진 컨디션이 정말 좋습니다. 체감상 최신의 997 GT3보다도 엔진 회전감이 훨씬 부드럽게 느껴지네요~ 물론 나이가 있다 보니 밸브커버와 체인커버 쪽에서 약간 누유가 있고 하체쪽 부싱들이 좀 터진거 빼고는 제가 경험한 993들 중에서 최고의 컨디션이 아닐까 합니다. 현재 문제 있는 부품들과 곧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는 부품들을 주문해 놓은 상태고 부품 도착 후 손보면 완벽한 컨디션이 되리라 기대 합니다. 원래는 993이 생기면 엔진을 3.8L로 보어업 하는 키트를 고려 했는데 지금 엔진 상태가 너무 좋아 약간만 손봐서 그냥 타려 합니다. 현재상태로도 인천공항 내리막에서 최고속이 280km을 약간 오버하는 것도 확인 했고요…

몇 주간 타보고 느낀 점은 확실히 최신의 911보다는 훨씬 RR다운 주행감이 느껴집니다.
997GT3같은 경우는 애써 느끼지 않으면 솔직히 RR인지 MR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완벽한 선회느낌을 주는 반면 993은 일반적인 좌회전, 우회전 중에도 “아~ 내가 지금 RR을 타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확실합니다. 게다가 중, 고속에서는 ‘턱인’이 정말 강해 악셀오프는 물론 미세한 악셀량 조절에도 선회라인이 확실하고 불쑥 바뀌는 느낌이 일품 입니다. 아무래도 최신997들의 선회감에 비하면 약간 불안정한 세팅일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적극적으로 운전을 하고 있는 느낌은 993이 더 강합니다.

964나 993같은 구형 공랭 모델들이 최신911들 보다는 ‘운전자를 가리고 까다로워 다루기 힘들다’는 평도 많지만 반대로 상식적인 범위 내에서만 차를 다룬다면 내가 차를 장악하고 있는 느낌 또한 정말 강합니다. 작은 손짓, 발짓에도 민감하게 반응 하는 게 내게 완벽히 조종당하여지고 있다고 느껴 지기도 합니다.
멋진 라인을 그리며 코너를 돌던 스핀을 하던 모두가 전적으로  내 손짓, 발짓의 진솔한 결과일 뿐 입니다. 나 모르게 차가 하는 일 따위는 없죠...

그리고 무엇보다 공랭엔진 특유의 사운드는 최신의 어떤 Porsche들도 절대 흉내 내지 못하지요~^^ 건조하고 공기중에서 부서져 버리는 것 같은 소리가 나다가도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하면 정말 축축하고 고운 소리가 나는데 아무튼 달려도 좋고 설렁설렁 다녀도 매력적인 사운드가 계속 들립니다.

개인적인 취향일 일지도 모르지만 993의 또 하나 매력은 바로 문 여닫는 느낌과 그 소리인거 같습니다. 도저히 고도로 계산된 연출이 아니라면 설명이 안될 정도로 기가막히게 절도감 있는 감촉과 청명한 소리가 느껴 집니다.  '내가 정말 한치의 유격도 없는 견고한 쇳덩어리를 여닫고 있구나!'라는 감탄에 취하게 만들어 버리죠~ 요새 계속 공연히 문만 열었다 닫었다 해서 힌지 나가는게 아닌가 싶어요...^^  

결론적으로 요새 차들에 비하면 993은 출력이니 랩타임이니 하는 부분에서 그저 보편적인 수준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시대에 "그 고물을 머하러 사서 고생을 하느냐?"는 친구에게 할 애기는 요런 감성적인 명분들 밖에 없네요...^^

아무튼 개인적인 애기로 게시판에 글을 써본 기억이 없는데 요새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보니 막 자랑하고 싶어서 두서 없이 이런저런 애기들 늘어 놨습니다. (염장 지르는 건가요?^^)

앞으로 시간을 두고 이런저런 단장을 하며 완벽 컨디션을 찾아 가는 993소식을 또 전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