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HD 타고다니는 대학원생입니다.
Album 란의 화이트 GT3 정말 예쁘네요.

한동안 사실 차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지려 했었는데 (어차피 좋아하는 포르쉐는 향후 몇년동안 살 능력이 생길 계획이 없으므로), 이노무 닛산 애들이 사나이 가슴에 불을 질러놓아버렸습니다.

한 2년쯤 전이었나요? 닛산의 카를로스 곤 회장이 포르쉐 91 터보를 몰다가 교통사고를 내서, 언론에 그 사건이 소개된 일이 있었죠. 그당시 일부에서 '닛산 회장이 왜 포르쉐를 타고다니냐'고 의아해 했었는데, 당시 닛산측에서 911 터보의 경쟁모델을 개발하고 있기 때문에 연구 차원에서 회장도 그걸 타고다녔다고 해명한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만 해도 그냥 그러려니, 훗, 지들이 그래봤자 911 터보를 이기겠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저도 어쩔 수 없는 속물인지 뭔가 대단해 보이고 있어 보이는 간판에 끌리고, 내가 좋아하는 간판이 항상 우월할 수 밖에 없다는 근거없는 오만함이 있나 봅니다. 괜히, 사실은 포르쉐든 뭐든 타본 적도 없으면서 일본 스포츠카들을 무시하곤 했죠. 사실 저랑 포르쉐는 '내가 쟤를 좋아한다'라는 관계밖에 없는데 말이죠.

그런데 요즘 정말 기분이 다운됩니다. 드디어 닛산의 GT-R이 나오고...여보란듯이 모터쇼에서 대빵만한 화면에다가 뉘르부르크링 7분 38초 찍는 영상 틀어버리고 말이죠(그것도 노면이 wet이었다죠)...베스트 모터링 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 자료들이나 동영사을 봐도 911 터보와 GT3가 너무도 허망하게 져버리고...솔직히 숭례문 불탔을 때, 울면서 땅에 엎드려서 절하는 아저씨들을 뉴스 화면에서 보고서는, 아무리 안타까워도 그렇지 이 첨단을 달리고 인류 인식 범위의 혁명이 계속되는 21세기에 저게 웬 우상 숭배인가 싶었는데, 저도 다를 바 없나봅니다. 나의 우상이 새로이 나타난 악당(?)에게 져버려 초라해진 모습을 너무 받아들이기가 싫습니다. 어릴적에, 씨름판에 갑자기 나타나서 이만기를 넘겨버리던 강호동을 싫어했던게 생각이 나네요.

'그래도 닛산은 닛산일 뿐, 포르쉐같은 역사나 영혼이 없다'는 것도 너무 구차하고 궁색한 자기 변명일 뿐인듯 합니다. 아시다시피, GT-R도 911만큼은 아니지만, 스카이라인 시절부터 이어져오는 나름대로의 자랑할만한 역사를 갖고 있죠. 車神이라는 별명도 있구요. 닛산도 열과 성을 다하여 만들었을 겁니다. 명품이죠. 일단 그것을 떠나서, 공도에서도 빠르고 트랙에서도 빠르다. 포르쉐는 빠르다 - 라는 이미지를 생명으로 해온 포르쉐로서도, 그 '빠르기'에서 져버린 상태에선 다른 모든 부차적인 장점들을 내세워도 빛이 바랠 뿐이겠죠.

더군다나 포르쉐가 창사 때부터 '실용적인 스포츠카'를 표방해온 입장에서도, 상대적으로 넓은 GT-R의 뒷좌석만으로도 할말을 많이 잃어버리게 됩니다. 페라리나 람보르기니같은 슈퍼카보다 훨씬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점도, GT-R 앞에서는 포르쉐가 페라리같은 입장이 되어버리죠. 997 터보를 런칭하면서 VGT와 다판 클러치를 통한 AWD등의 기술을 자랑스러워하던 것도, 같은 트윈 터보와 AWD로 무장한 GT-R에게 무참해 패해 버리고 나서는 오히려 초라해 보일 뿐입니다.

그래도 아직 상처받지 않고 내세울만한 것이 있다면, 가벼운 전륜과 수준높은 섀시 기술이 가져다주는 스티어링 필링(느껴보진 못했습니다만)이 있을텐데요, 이런 장점 또한 일단 '빠르다'가 만족되고 나서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지, 빠르지 않고 그냥 져버리고 나서는 단지 공염불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이런 비교가 좀 뭐하긴 하지만, 김태희가 이쁘니까 서울대 나왔다는 사실이 부각되는 것이지, 만일 조정린이 서울대 나왔다고 김태희만한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을까 하는 겁니다. (설마 조정린씨가 보진 않겠죠-_-)


써놓고 보니까 혼자 별생각을 다 하고 있네요. 포르쉐의 CEO 비데킹 회장이 그랬다죠 - 스포츠카 브랜드는 여자같아야 한다, 항상 모든 것을 다 보여주면 안되고 조금씩만 보여주면서 신비감을 유지해야 한다. 정말 포르쉐가 저의 상상력을 자극해준 덕분에 혼자 잘 놀고 있습니다.

저도 한사람의 엔지니어로서(공대 대학원생입니다), 기계공학이 전공은 아니지만, 요즘 차몰고 출퇴근하며 '어떻게하면 911이 GT-R을 크게 따돌릴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곤 합니다. 물론 그쪽 분야의 지식이 부족하지만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죠. 더군다나 하라는 분야의 연구가 아닌 분야는 더더욱 재밌는 법입니다.

일단 들리는 풍문을 종합해보면, 포르쉐가 곧 911 라인업을 FL 하면서 직분사 기술을 도입하고, 트윈 클러치 기반의 미션도 올린다고 합니다. 아마 7단이 될 것 같다더군요. 미션은 둘째 치고, 일단 엔진으로 보면 터보가 현행 480-->500, 카레라S가 355-->370이상, GT3가 415-->435로 출력이 상승될 듯 합니다. 제가 궁금한건, 직분사 기술을 도입하면 최고출력 뿐 아니라, 전체적인 출력 곡선이나 토크 특성 또한 좋아지는가 하는 건데요, 아마 그렇겠죠? 그렇다면 랩타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라 기대합니다.

또 하나는 그놈의 전륜입니다. 베스트 모터링 시승영상 보면 자꾸 전륜이 어쩌고 하는것 같길래 '그아저씨 참 불만 많네-_-' 싶었는데, 영국 등지의 영상에서도 다들 비슷한 얘기들을 하더군요. 이제 911은 오버스티어가 문제가 아니라 언더스티어가 문제인가봅니다. 오버스티어는 후륜이 무거워서 생기는 문제였다면, 언더스티어는 전륜이 가벼워서 생기는 문제겠지요(그러고보면 911은 참 가지가지 하면서 오래도 버팁니다). 서스펜션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지만, 일단 그놈의 맥퍼슨 스트럿을 어찌 해볼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스트로크도 좀 끈적하게 가져가는게 좋겠죠. 그리고 무엇보다, 전륜 타이어를 더 넓은 걸 써야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륜에 하중이 실리지 않는 상태에서 타이어만 넓다고 접지력이 생길 것 같지는 않기에, 여러가지 더 신경을 써야하겠죠. 뒷차축 뒤에 있는 질량을 떼다 앞으로 옮기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좀 생각을 해봤지만 딱히 떠오르는게 없더군요. (포르쉐 엔지니어들은 무슨 방법을 생각해낼까요?) 서스펜션 지오메트리나 타이어 사이즈에 따른 효과에 대해서는 포르쉐가 작년 ALMS GT2 클래스에서 GT3RSR로 달리면서 얻어놓은 데이터가 있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는 경량화입니다. 터보는 AWD 시스템과 미션 등에서 경량화를 생각해볼 수 있을듯 합니다. 쓸데없이(?) 가변형인 리어 스포일러를 고정형으로 바꾸고, 재질도 가벼운 신소재를 쓸수도 있겠죠. GT3는 미션 외에는 따로 경량화할 수 있는 부분이 떠오르지 않네요. 극단적인 경량화를 위해 창문을 플라스틱으로 하는 등의 시도는 RS에게만 맡겨두는게 좋을듯 합니다. 너무 용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안타깝기에 말이죠.


전 911 라인업 중에 GT3에 대해 가장 큰 환상을 품고 있습니다. 궁극의 911은 항상 GT3였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올 하반기에 FL될거라던데, 꼭 현행 GT-R뿐만 아니라 앞으로 나온다는 V스펙도 확 제껴버려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언젠가 꼭 한번 타봤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