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류청희입니다.

지난 1월 29일부터 31일까지 있었던 오펠 언론대상 이벤트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샌디에고와 팜 스프링즈에 다녀왔습니다. 30일에는 오펠 아스트라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31일에는 국내에 GM대우 G2X로 들어올 오펠 GT를 시승했습니다.

여느 언론대상 이벤트들이 그렇듯, 전반적인 행사는 무척 활기차게 진행되었지만, 31일 아침 오펠 GT 브리핑의 말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같은 행사에 앞서 참석한 프랑스 기자 미셸 바렐리 씨가 그 전 주말 시승에 나섰다가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는 주최측의 공식 발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뒤에 인터넷을 찾아보니 그는 산악도로를 달리다가 차가 길에서 벗어나 30m 아래 절벽으로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1년에도 여러 메이커가 세계 각국 자동차 전문기자들을 불러 수십 차례의 새차 이벤트를 펼칩니다. 물론 시승은 빼놓을 수 없는 순서입니다. 이런 이벤트가 아니라도 시승은 자동차 전문기자에게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대부분의(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동차 전문기자들은 어느 정도 검증된 운전실력을 갖고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시승을 하고 시승기를 써야 하는 기자는 그래야 합니다.

장기 시승을 하지 않는 이상 기자들은 짧은 시간 안에 차의 다양한 특징들을 알아내기 위해 여러 수단을 써서 차를 테스트해 봅니다. 지면, 전파, 화면을 통해 나가는 정보의 양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테스트로 얻어낸 정보를 다 풀어놓을 수 없지만,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얻어내야 기사를 읽고 보는 사람들이 원하는 내용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종종 기자들은 한계선을 들락날락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운전실력을 갖춘 사람이라도, 시승환경이 똑같지 않고 시승차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한계선 역시 들쭉날쭉하기 마련입니다. 시승을 하는 곳이 테스트를 위해 마련된 특별한 장소든, 서킷이든, 공도이든 간에 한계선은 결코 한결같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위험은 늘 기자들의 주변을 맴돕니다.

2000년쯤인가, '카 앤 드라이버'지에서 돈 슈레더 씨의 부고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메르세데스 벤츠 AMG 모델을 시승하다 일어난 사고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얼마 전까지 제가 기억하는 유일한 자동차 전문기자의 사망사고입니다. 다행히 무사히 회복되기는 했지만, 얼마 전에는 'BBC 톱기어'의 리처드 해먼드 역시 아주 위험한 상황을 당했습니다.

스스로 자초하는 면도 없지는 않지만, 여건이 열악한(홍콩에 비하면 훨씬 낫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 기자들은 솔직히 훨씬 더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사실 드러나지 않을 뿐, 사고도 비일비재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 제가 아는 선배나 동료, 후배기자들 중 심각한 사고를 내거나 당한 사람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위험한 일을 할까요. 꼭 기자로 시승을 하지 않더라도 교통사고의 위험은 늘 도사리고 있는데, 한계선을 드나드는 일을 업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옛날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습니다만(국내 얘깁니다), 요즘은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어쩌다 보니 이 길로 들어서서, 재미삼아 서만 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차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기자의 본분인 '정보의 전달'을 위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쉽지는 않은 일입니다.

아직까지는 현직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으로써, 그리고 한 달에도 몇 차례씩 시승을 하고 기사를 쓰는 일을 계속 해 왔던 입장에서, 이역이지만 지척에서 벌어졌던 '동료' 기자의 안타까운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혹은 저 자신에게도 언제든 생길 수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잠시 잊고 있었는데 기사를 쓰는 도중에 문득 기억이 나서 몇 자 적어봤습니다.

뒤늦게나마 삼가 바렐리 씨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