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제 차가 아닌, 다른 차량을 3일 간 주행할 일이 있었습니다.
기분이 남다르더군요. 같은 해치백 차량이라 큰 차이가 없을꺼라 착각했던 제 모습이 잠시 우스웠습니다.

물론 모든 자동차가 저마다의 특색이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지만 어느샌가 그걸 잠시 잊고 살았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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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상에 보이는 두 차량..
한국에서 보신다면 둘 다 흔치 않은 차종일텐데요..

메르체데스 벤츠 A 160이었습니다.
10개월 남짓된 나름 신차였지만 이미 2년 3개월에 3만km를 넘은 제 차와 주행거리가 비슷했습니다.
숱하게 자동 세차기에 들어갔다왔는지 검은색 차체 위에는 스크래치가 소용돌이를 치며 돌아가고 있더군요.
차량용 실내 세정 티슈로 앞좌석 및 대쉬보드를 아무리 닦아내어도 느낌상으로는 5년쯤 된, 말 그대로 중고차의 느낌이었습니다.

 

솔직히 실망감이 너무 컸습니다.

렌터카 업체에 특별 주문으로 인해 bmw 120d가 잡혀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담당자의 착오로 제 앞 사람이 가져가버리는 바람에 엄한 차가 손에 들어왔던거죠. ㅎ

 

스티어링 휠과 대쉬보드의 재질은 제 차의 그것보다 못한 품질이어서 투덜투덜,

조금만 볼륨을 높이면 귀를 찌르는 사운드에 짜증도 한웅큼 늘어나고..

하지만 뒷좌석에 사람을 태워야만 했기에 상대적으로 넓은 공간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습니다.


제 차와 비교하자면 뒷좌석에 손쉽게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별도로 있고,
의외로 공간이 넓어서 상대적으로 작은 세단보다 2열 레그룸의 공간여유가 있었죠.

이것저것 짐을 넣다보니 트렁크 공간도 넉넉한 편입니다.

하긴.. 경사져서 떨어지는 제 차의 그것보다는 훨씬 실용적인 부분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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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뭉치일 뿐인데, 엠블럼 하나 때문에 괜히 기분 좋은 걸 보면 저도 사람인가봅니다

 


다만 운전석 뒤로 펼쳐지는 공간이 조금이나마 길다보니 센서도 없이 일렬 주차하려면 보통 힘이 드는 게 아닙니다.
물론 익숙해지면 해결될 일이지요. 제 차에도 그런 대중화된 최첨단(?) 편의장비는 없었습니다.

지나가다가도 '저 공간이면 들어가겠는데' 싶어서 엉덩이를 들이밀던 제 습관이 들어맞지 않습니다.
습관이라는 것이 그래서 무서운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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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자 주차공간이라 '무조건 주차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만들어낸, 일상의 폐해입니다 ㅋ

 


제 차를 다루듯이 다운 쉬프트를 해도 쉽사리 속도가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속도로에 올라가니 상황은 달라집니다.
힘겹게 올려놓은 속도가 120km/h가 넘어가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풍절음이 들려야 하는데

그런건 온데간데 없고 부지불식간에 180이라는 숫자에 속도계가 닿습니다.
방음재의 효과라기보단 공기역학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생각이 듭니다.

차량이 낼 수 있는 최고속으로 달려도 불안한 마음은 없더군요.
기존의 제 차는 악셀을 비벼밟아서 160으로 달릴 때면 내심 불안불안했습니다.


검은색이고 휠 캡까지 장착한 아주 무난한 모델이다보니 눈에 띄는 상황도 없습니다.
제 차를 몰고 다닐 때면 갑자기 지인이 핸드폰을 울리며 '나 지금 너 지나가는 거 봤다'라던
평상시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현실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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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색 계열만 제외하면 흑백 사진이라고 해도 믿겠습니다

 


그렇게 3일을 보낸 후 차량을 반납하고 다시금 제 차에 올라탔습니다.

미약하게나마 흘러나오는 새 차 냄새가 괜시리 포근했습니다. 기분이 그냥 좋았던거죠..
하지만.. 솔직히 불편했습니다. 시트 포지션도 신문지를 들고 바닥에 쭈그려 앉은 마냥 뭔가 어색했고

기어 변속 시에 동력 부분의 매칭이 부드럽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익숙함이 좋았습니다.

지름은 작지만 상대적으로 두꺼운 스티어링 휠의 림이 손에 착 감겼고
마치 교습용 카트 차량을 타듯이 제 마음대로 솔직하게 움직여주는 차가 고마웠습니다.
ESP도 없는터라 조금만 무리하면 뒷부분이 휙휙 돌고 언덕 밀림 방지도 없어서
급경사 정차시에는 가끔 긴장도 해야 하지만 그런 솔직함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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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후, 간밤에 주차하면서 제 차를 보며 헉! 하고 놀랐습니다. (내가 몰고 있던 차는 뭐지? 라는 생각이랄까요 ㅎ)


볼륨을 조금만 키우면 귀가 찢어질 듯이 나오는 스피커 소리에
저음 +7, 고음 -7로 오디오 세팅을 하고 다니던 다른 차량과는 달리
제가 원하는 음악의 CD를 넣을 때 베이스가 마음껏 울려퍼지는 이 차가 너무 좋았습니다.


한 편으로는 현재의 제 분수에 딱 맞는 차가 있어서 고마웠습니다.
결혼을 하게 되면 무난하고 지상고가 상대적으로 높은 차를 사겠노라 생각했었습니다.
며칠간 몰고 다녔던 A 160이 딱 그런 차였습니다. 하지만 너무 특색없이 살아가야만 할 것 같아 왠지 서글펐습니다.

그 이유 때문이라도 현재의 삶과, 자동차에 만족하며 이 순간을 즐겨야만 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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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라 하지만, 저는 이런 환경이 이미 많이도 익숙한가봅니다.

 


어떤 기분인지 공감하실 분들이 꽤 있으실꺼라 짐작만 해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