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운전하고 나서 처음으로 사고다운(?) 사고를 한번 냈습니다.

와이프가 주차장 기둥에 옆구리를 살짝 문질러준다던가 주차장에서 슬며시 받힌다던가 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주행중에 브레이크 한번 못밟아보고 다른 차에 충돌해보긴 처음입니다.

 

2주전 일요일,  일찍 일어난터라 집안 청소며 밀린 빨래를 다하고 크리스마스 트리까지 꺼내 설치하고

한참을 뒹굴거렸는데도 서머타임 해제로 인해 겨우 오후 1시이길래 와이프와 아들녀석을 재워놓고

사무실에 가서 하던 일이나 좀 마무리해볼까 하는 생각에 집을 나섰습니다. 

뭘 타고 갈까 잠시 고민하다 오랫만에 아들 녀석없이  혼자 드라이브 하는거니 좀 밟아줘야겠다 싶어

 g35에 올라 집 앞의 하이웨이에 올라섰지요. 이 도로가 이름은 하이웨이인데 왕복 6차선에 제한 속도가 35마일,

게다가 군데군데 신호등도 있는 그런 곳입니다. 올라서자마자 신호를 받아 좌회전을 해서 내리막 램프를 타야

다운타운으로 향하는 진짜 하이웨이로 연결되기에 어슬렁거리며 신호등으로 가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렸습니다. 

앞에는 새로 뽑은듯 반짝거리는 A5와 몇몇 어코드, 작은 트럭 등이 있었구요.

 

좀 기다리다 좌회전을 위한 신호등이 들어오고 평소 늘 다니던 곳이라 아무 생각없이 출발해서 

한 30마일 정도 가속했을까 갑자기 쾅 소리가 나더군요. 정말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르는 시커먼 차 하나가

제 조수석쪽 범퍼에 부딪혀 잠시 서는가 싶더니 계속 굴러 길 옆 잔디밭으로 서서히 올라가는게 보이고...

머릿속으론 ' 아 ㅅㅂ...차 많이 망가졌겠다...'하는 생각만이 들더군요.  어디 아픈데 없나 확인할 생각도 없이 

그냥 벨트를 풀고 밖으로 나가 차 먼저 살폈습니다. 조수석쪽 헤드램프는 대파되어 보이지도 않고 범퍼와 펜더는

너덜너덜 찢기고 구겨진데다 후드의 끝부분도 뭉그러진게 보이더군요. 

그걸 보면서도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어리벙벙한데 사람들이 우르르 상대방 차로 달려가는게 보이길래

저도 따라가서 살펴보니..한 75-80세는 되어보이시는 할아버지가 목 뒷부분에서 피를 흘리고 나오시더군요. 

누군가가 911에 전화는 한것 같은데 혹시나 해서 다시 911에 전화를 걸어 위치를 설명하고 앰뷸런스를 요청하고는

기다렸습니다. 한 5분쯤 후에 경찰차와 구급차, 소방차가 달려와서 패러메딕들이 그 할아버지에게 응급조치를 취하는 동안

경찰관들과 차를 둘러보면서 사고 리포트를 남겼습니다. 소방관과 경찰관들이 정말 기민하게 움직이면서 도로 바닥에

혹시 오일이나 연료가 흐르지않았나 살펴보고  현장 주변과  교통을 통제,  정리를 하는것을 보니 상황대응 훈련이

참 잘되어있네 싶더군요. 제 차 상태는 그냥  몰고 가서 정비소로 가도 될 정도였는데 그래도 위험하다며 토잉트럭을

이용하라는 경찰관의 말에 20-30분 같이 서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일단 상대방이 그 쪽 도로의 양보 표지를 준수하지않았고 우회전시 3초간 정지도 안한것으로 보여 제 잘못은 없다고 하더군요.  

경찰 리포트도 누구의 잘못인지를 가리기보다는 객관적으로 사고를  기술하는게 목적이라면서 수리비나 치료비 등등은

보험회사들이 알아서 산정할거라고 어디 아픈데는 없는지 잘 살피고 차 수리 잘 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일단 차를 집에서 가까운 정비소로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그저께 말끔히 수리된 차를 찾아오고 청구된 내역서를 보니 후드와 조수석쪽 헤드램프, 펜더와  라디에이터의 지지대,

와이퍼액 탱크, 휘어진 서스펜션 3개 등등를 교체하고 연석에 긁힌 휠 표면을 수리하는 비용이 거의 8000달러네요.

무사고 상태로 팔아도 한 16000불 정도 받을까 싶은데 차 가격의 반이라니...흠.

   

그리고 방금, 상대방 보험회사 조정담당자와 통화를 했습니다. 사실 확인을 위해 진술을 남기고 상대운전자는 어떻게 되셨는지 

또 그분 입장에선 뭐라고 진술했는지 궁금해 물어봤는데,  조금은 기가 막힌 답을 들었습니다. 

그 할아버지께서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으셔서 진술을 못 남긴답니다..그래서 경찰 리포트와 저와, 증인들의 이야기를 취합,

사고를 판단하는데 사고의 원인이 그 할아버지의 잘못으로 보인다며 사고처리에 들어간 모든 비용의 청구서를 모아서

보내달라고 하네요. 일단 연로하신 할아버지가  무사하시다니 다행이긴한데 한편으론  연세많으신 분들이 빠른 판단이

어려우시면 운전은 자제하시는게 공공 도로에서의 안전을 위해 좋지않나 싶습니다. 법적으로 일정 연령 이상이 되면

운전에 제한을 두는 방법도 생각해볼수있구요. 

 

 

아무튼 ,  사고에 연루되신  분이 - 제 입장에선 사고의 원인을  제공하신 분이 - 사고를 기억조차 못한다는게 참 황당하네요.     

 

다들 늘 안전 운전 하세요. 

 

 

p.s.

- 경찰 스쿼드카로 쓰이는 닷지 차저, 가까이서 보니 꽤 멋지네요.

- 불꽃내며 타오르는 그 플레어 연기 원없이 맡아봤는데, 그 옆에 서 있는 것은 고역이더군요.

- 미국은 역시 서비스에 따르는 인건비 정말 비싸네요. 약 15킬로미터 거리에서 토잉카가 와서는 한 2킬로 정도 떨어진 

  바디샵에 어부바 해갔는데 비용이 280달러, 우리돈으로 30만원이군요.제가 낼건 아니지만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