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이야기거리가 많은 모델이 등장했다. 독창성이 강한 탓도 있겠지만 차만들기에 대한 생각이 남다르다는 점도 중요한 포인트다. 닛산큐브는 눈에 띄는 모델이다. 새로운 컨셉의 모델이라는 얘기이다. 이런 강한 캐릭터의 모델이 처음은 아니다. BMW 미니라든가 폭스바겐뉴 비틀, 아우디 TT, 볼보 C30, 기아 쏘울, 현대 벨로스터 등 우리나라 시장에도 이제는 제법 눈에 띄는 독창성 강한 모델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 때마다 다양한 반응이 쏟아지기는 하지만 한 두 모델을 제외하고는 상품성에 비해 판매대수는 높지 않다. 쏠림 현상이 강한 우리나라 소비행태의 탓일 수 있다.

닛산큐브는 출시 이전에 이미 1,600대의 주문이 들어 올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국산차라면 큰 수치가 아니지만 수입차로서는 요즘 하는 말로 ‘대박’이라는 표현을 써도 좋을 정도로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수입물량이 턱없이 부족한 사태(?)를 초래한 것이다. 그만큼 개성 추구의 유저들이 증가했다는 긍정적인 해석도 가능하다. 쏠림 현상이 강한 것도 결국은 큰 흐름 속에서는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닐까.

큐브는타겟 마켓이 일본에서는 20대가 메인이다. 일본에서는 이들을 베이비 부머 주니어라고 한다. 소위 말하는 ‘단카이세대(団塊世代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47년에서 1949년 사이에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 붐 세대를 뜻하는 말)의 자손들을 일컫는다. 엔트리카를 구입하는 유저들을 대상으로 하는 차라는 얘기이다. 1998년 일본 내수시장 전용으로 초대 모델이 데뷔했을 당시에는 지금처럼 독창성이 강하지는 않았다.

일본 내수시장 전용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차만들기의 특성 때문이다. 일본 메이커들이 생산하는 차는 수출용과 내수용 모델에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 토요타의캠리와 크라운이 잘 말해 준다. 수출용차는에어로다이나믹이 기본이지만 내수용차는 박스형태가 더 많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봉고라는 차도 박스형의 대명사로 일본산 자동차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차가 박스형이 주를 이룬 것은 공간에 대한 효율성 때문이다. 네 바퀴가 지면에 닿는 만큼 바퀴를 지지하고 위로 올라간 차체도 그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닛산큐브는 전형적인 일본 내수용 모델로 개발됐었다. 초대 모델은 지금과 같은 컨셉이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박스형차였다.

2세대 모델부터 달라졌다. 큐브를 디자인한 히로타다쿠와하라(41세)는 2세대 디자인 때 지금의 컨셉을 제안했었다. 당연히 닛산 내부에서 많은 반대가 있었다. 쿠와하라는 그것이 받아 들여지지 않으면 회사를 그만 두겠다는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시로 나카무라는 ‘깨는’ 사고방식을 가진 그의 의견을 받아 들였고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우리의 시각에서는 무어 그리 대단하냐고 할지 모르지만 일본의 조직 문화를 아는 사람이라면 놀랄만한 일이다.

보수성이 강한 일본 시장의 유저들에게 먹힐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내수시장에서 의외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자 해외로 그 판로를 넓혀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시로 나카무라라는 디자인 수장이 닛산자동차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개인보다는 조직을 우선시하는 아시아 기업 문화에서 시로 나카무라는 그의 디자인 철학을 반영해 닛산과인피니티의 디자인 컨셉을 확고히 정립했다. 다른 메이커들도 컨셉트카를 만들어 미래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 중 닛산만이 시로 나카무라라는 개인을 내 세워 독창성을 분명히 해 왔다.

신차 발표회를 위해 서울을 찾은 쿠와하라는큐브의컨셉을 설명하면서 ‘슬로우 디자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현대적인 닛산의 ‘패스트 디자인’에 반대되는 의미이다. 그는 머그컵과 같은 부드러운 이미지를 형상화하고자 했단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일본에서는 디자인을, 미국에서는 기능성을, 한국시장에서는 넓은 공간과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강조하는 등 시장에 따라 메시지를 달리한다는 점이다.

닛산은 2002년 데뷔한 2세대 모델의 경우 베이스 모델이자 일본 경차 시장 베스트 셀러인 마치의 월 7,000대보다 많은 10,000대가 판매된 것에 고무됐다. 그래서 2003년에는 3열 시트를 갖춘 큐빅이라는미니밴 버전을 추가했다.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토요타스파시오라든가혼다모빌리오 같은 비슷한 성격의 모델도 있다.

그리고 2008년 3세대 모델부터는 북미와 유럽시장까지 겨냥한 차만들기를 했고 그 모델이 이번에 국내에도 상륙한 것이다.

큐브는 ‘찬찬히’ 뜯어 보는 재미가 있는 자동차다. 필자에게 와 닿는 것은 ‘슬로우 디자인’이다. 그러면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삽입해 유저에게 차를 탈 때마다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재미를 제공하고 있다. 미니가 대형차가 중심인 미국시장에서 ‘이 차는 당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작을 수 있다.’라는 광고 문구로 역 마케팅을 해 성공한 적이 있다. 큐브는 눈코 뜰 새 없이 첨단을 향해 달려 가는 시대에 자동차에 대해 다시 한 번 그 본질을 생각하게 해 주는 모델이다. 그것에 대한 평가는 소비자가 하겠지만 ‘디자인’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 주는 것은 분명하다.
(닛산큐브 1.8S 시승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