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가 됐던 영화 ‘007 더 어나더 데이(The another day)를 보면 이전과 달라진 점이 눈에 들어온다. 자동차 마니아라면 쉽게 본드 카가 독일의 BMW에서 미국의 포드차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포드 계열사인 에스턴마틴의 ’뱅퀴시‘가 본드카로 종횡무진하던 중 잠깐이지만 복고 이미지를 지닌 선더버드가 스크린에 등장해 세계인의 시선을 끌었다. 

2차 대전이 끝났을 당시 미국 자동차업계의 과제는 유럽의 소형 스포츠카를 본떠 작지만 성능이 뛰어난 차를 만드는 것과 자동차 경주에 쏟아지는 관심을 스포츠카로 승화시키는 일이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로 태어난 차가 1953년의 시보레 ‘코르벳’과 1955년의 포드 ‘선더버드’이다. 

반세기 넘은 역사를 가진 선드버드는 1954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컨셉트카로 선보였다. 이듬해 양산․판매된 선드버드 스포츠 쿠페 2인승은 지금도 퍼스널 럭셔리 스포츠카의 진수로 평가받는다. 미국의 저명한 자동차잡지 모터트렌드의 한 기자는 선드버드를 보고 “미국적인 안정감과 유럽식 스포츠카의 만남으로 편안함과 힘이 넘치는 차”라고 평했다. 그래서 인지 생산 첫해부터 주문이 밀려 55년에만 1만6천대가 팔렸고 60년엔 9만2천대라는 기록적인 판매를 달성했다. 

50년대 중엽부터 60년대 중엽까지 선드버드에 장착된 편의장비를 보면 재미있는 게 많다. 57년부터 속도가 향상되면서 라디오 볼륨 또한 더 커졌고, 운전석 자동조절장치가 적용되기도 했다. 61년에는 운전자가 타고 내리기 쉽도록 핸들대가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스윙-어웨이 방식과 밤낮의 밝기에 따라 룸미러의 조도가 변하는 데이-나이트 미러도 달려 나왔다. 

첫해에 소개된 선드버드의 엔진은 V8기통 4.8ℓ 머큐리 엔진으로 198마력을 발휘했다. 이후 엔진 배기량은 미국의 일반적 추세에 따라 70년대 초까지 계속 늘어나 74년에는 7.5ℓ까지 배기량이 커졌다. 그러나 석유파동과 일본차의 미국진출로 미국형 스포츠카 자리가 위협받자 포드는 77년 선더버드의 섀시와 휠베이스를 줄이는 과감한 시도를 한다. 이어 81년 처음으로 6기통 엔진을 얹었고 83년에는 2.3ℓ 터보엔진 탑재와 에어로다이내믹 스타일을 도입했다. 

90년대로 들어 SUV를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세차들이 등장하면서 선더버드의 설 자리가 좁아지자 급기야 97년 포드는 이 차를 단종 시켰다. 그러자 선더버드 애호가들의 항의가 잇달았다. 미국 스포츠카의 전통을 말살하려는 횡포라는 비난까지 받았다. 지난 99년 디트로이트 모터쇼 때 포드 부스에 ‘선더버드’라는 이름의 컨셉트커가 전시됐다. 미국의 아이콘으로 전성기를 누리던 초창기 선더버드를 꼭 닮은 현대적인 디자인에 각종 첨단 기술을 적용한 복고풍 선더버드는 2001년 6월부터 판매에 들어가는 곡절을 겪었다. 지금은 할아버지, 할머니로 변한 사람들이 50년 전 선더버드를 타고 거리를 누비던 것처럼 오늘날 미국 젊은이들 또한 선드버드에 열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