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스포츠의 최고봉으로 일컬어지는 F1도 다운사이징의 트렌드를 비켜가긴 어려울 것 같다. FIA의 강력한 의지대로라면 F1도 2013년부터 4기통 터보로 엔진 규정이 바뀌게 된다. F1에 터보가 쓰인 것은 1988년이 마지막이다. 당시에는 과도한 출력을 방지하기 위해 터보를 금지했지만 지금은 연비를 높이기 위해 도입한다.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지난주 FIA는 2013년 시즌부터 도입될 새 엔진 규정을 제안했다. 이전에 익히 알려진 것처럼 현재의 2.4리터 V8을 1.6리터 4기통 터보로 다운사이징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서 1.6리터는 큰 의미가 있다. 일단 2.4리터 V8은 양산차와 거의 상관이 없는 형식이지만 1.6리터 터보는 그렇지 않다. 많은 메이커들이 1.6리터 터보를 내놓고 있다. 제조사 팀들의 참여를 끌어낼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연비를 좋게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FIA는 현재의 V8 보다 연비가 50% 좋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새로 도입되는 1.6리터 터보는 회전수는 1만 rpm으로 제한하는 대신 KERS를 더한다. 출력은 600~750마력 사이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4기통 터보가 도입되면 지금처럼 1만 8천 rpm을 넘나드는 자연흡기 엔진의 소리는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된다. 

FIA의 엔진 제안에는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페라리와 메르세데스 같은 일부 팀들은 이 제안에 반발하고 있다. 두 회사는, 특히 페라리는 1.6리터라는 배기량과는 거리가 멀다. 자신들의 기술을 홍보할 수 있는 무대가 F1인데 1.6 터보 엔진을 사용하면 참여하는 의미가 크게 퇴색된다는 입장이다. 거기다 FOM의 회장 버니 에클레스턴조차도 이미 검증된 엔진이 있는데 굳이 규정을 또 바꾸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완전히 새 엔진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가 따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현재의 자연흡기 2.4리터 V8은 2006년 도입됐으며 최소 2014년까지 동결된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환경 문제가 부각되면서 순간적으로 다운사이징 터보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FIA는 배기량과 기통수는 줄어도 터보와 KERS 때문에 출력은 현재의 V8과 거의 동일할 것이라고 밝혔다. 

새로 도입되는 KERS는 2011년에는 81마력, 2013년에는 163마력으로 출력이 상승한다. 즉, 드라이버가 사용할 수 있는 여분의 출력이 더 늘어난다는 설명이다. F1에는 1977~1988년 사이 터보 엔진이 쓰였고 이때가 가장 고출력을 자랑하던 시기였다. 당시 1.5리터 터보의 출력은 1천 마력을 넘었고 머신의 속도도 대단히 빨랐다. 하지만 에어로다이내믹의 발전이 더해지면서 속도가 점점 빨라지자 1989년에는 터보의 사용이 금지됐다. 

몇몇 제조사 팀들은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하는 것도 문제라고 밝혔다. FIA는 팀의 예산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규정을 계속 고치지만 이런 규정 변화가 더 많은 비용을 발생시킨다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형식적인 절차만 남았을 뿐 1.6리터 터보로의 규정 변화는 확정적이라는 의견도 많다. F1에 도입될 새 엔진 규정은 12월 10일 확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