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의 휴가를 어디에 쓸 것인가 잠시 고민을 했다. 한때는 전기도 없다는 남태평양 어디에 처박혀 있다고 올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네온사인과 인터넷에 길들여진 나는 보나마나 심심해 죽을 게 빤했다. 그래서 한 번은 가봐야 한다는 뉘르부르크링을 다녀오기로 했다. 그냥 가면 재미없으니까 파리에서 차 빌려서 다녀오기로. 이러면 시승도 하고 뉘르부르크링도 가게 되는 것. 

글, 사진 / 한상기 (프리랜서 자동차 칼럼니스트) 

원래 계획은 예약을 해서 파리에서 차를 받는 것인데 푸조가 혹시 차를 내줄 수 있을지 모르니 기다려보라고 했다. 대기 타다가 결국 결렬돼 예약도 안 하고 차를 빌리게 됐다. 여기서 예약 안 하면 힘들 것인데.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가르트 드 리옹 역으로 가니 우려가 현실이 됐다. 일단 고를 수 있는 차가 매우 제한적이었다.

렌트카 회사는 허츠와 에이비스, 유롭카 3군데였다. 업체가 다 조건이 달랐다. 유롭카는 포투 뿐이 없다고 하고 허츠는 맘에 드는 차는 있었는데 GPS(내비게이션)가 없었다. 초행길을 GPS 없이 가는 건 말도 안 되고, 스마트 포투 타고 가거나 뉘르부르크링을 타는 것도 답 안 나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보다 차가 많을 것 같은 드골 공항으로 잽싸게 이동했다.

드골 공항 역시 3업체가 있는 건 같았지만 차는 훨씬 많았다. 일단 허츠에는 알파로메오 미토도 있고 GPS도 있었다. 이거다 싶었다. 가격이 2박 3일 하면 450유로지만 동반자랑 반땅 하면 뭐 감수할 만 했다. 그런데 마일리지 제한이 있다. 하루에 300km로 제한이라 3일 하면 900km이다. 1km마다 0.76유로가 추가되니 어느 정도 거리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망설여졌다. 이래서 차가 남아 있었던 건가.

미토가 금방 나갈거 같지는 않아서 에이비스에서 물어보니 차가 너무 제한적이었고 GPS가 하나도 없단다. 여기 유롭카는 리옹이랑 똑같이 포투만 가능하단다. GPS만 빌려달라고도 했는데 당연히 거절. 부랴부랴 다시 허츠로 오니 미토 나갔단다. 대신 308cc(800유로가 넘음)를 권했다는. 눈앞이 캄캄했다. 일단 비싸기도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308cc 탈 수는 없는 일. 차를 빌리는 조건은 당연히 안 타본 차여야 했고 이왕이면 한국에는 없는 차여야 했다. 그래야 무슨 얘기가 되지. 

우리의 난감한 표정을 보더니 직원은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그러더니 바로 미토가 있다네. 비싼 거 팔아 먹을려고 했던 모양이다. 주차장에 가니 우리가 빌릴 차 말고 미토가 2대나 더 있었다. 결론적으로 총 렌트 비용은 2박 3일에 차만 450유로, GPS 60유로였다. 다른 업체는 GPS 대여 비용이 하루 10유로였는데 허츠는 20유로다. 그래도 GPS는 한글 서비스가 되니 고맙더라.

주차장에서 만난 미토는 기막히게 예쁘다. 시승기에 썼다시피 미토의 비주얼은 최고다. 섹시하면서도 겁나 잘 달리게 생겼다. 물론 1.3 JTDM 모델이라 달리기 성능에 대한 기대는 접어야겠지만.

트렁크는 꽤 깊어 보이는데 여행용 가방이 하나만 들어간다. 만약 일행이 3명이었다면 미토를 못 빌렸을거다.

GPS로 뉘르부르크를 검색하면 쉽게 찾아진다. 일단 뉘르부르크와 뉘르부르크링은 검색이 되는데 가고자 하는 노르트슐라이페는 안 나온다. 가서 찾아야 한단 얘기. 차를 받았을 때 시간은 1시가 조금 넘었는데 도착 시간은 5시 43분이다. 음, 생각보다 가깝다. 그래봐야 서울-부산 가는 시간이다. 이거 뭐 껌이구만. 지도를 보면 파리는 독일 국경 쪽에, 뉘르부르크는 독일 서쪽에 붙어 있다. 즉, 독일 반대편 보다 파리에서 가는 게 거리상 더 가깝다.

GPS의 세팅을 마치고 곧장 출발했다. 일단 운전대는 내가 먼저 잡고 가면서 1시간마다 교대하기로 했다. 다행히 드골 공항에서는 파리 시내를 거치지 않는다. 얼핏 본 파리 시내는 운전하기 힘들어 보였다. 드골 공항 2층으로 올라와 곧장 국도를 거쳐 고속도로로 접어든다. 국도는 편도 1차선으로 라운드어바웃을 대략 6개 지나면 고속도로가 나온다. 국도를 지나는데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먼 길을 가야하니 첫 주유소에서 음료수를 샀다. 미토는 가운데 컵홀더가 하나 뿐이라 할 수 없이 마개가 있는 병을 샀다. 평소엔 몰랐는데 장거리를 갈 생각 하니 컵홀더도 중요해지긴 한다.

파리에서 독일로 가는 고속도로는 한산하다. 맘껏 달릴 조건은 되지만 초행길이고 제한속도(130km/h)가 있어 자제했다. 무엇보다도 기름도 아껴야 하니. 거기다 GPS는 과속 카메라 있다고 자주 경고한다. 렌트한 미토는 와이퍼에서 뿌드득 소리 나는 거 빼고는 상태는 좋았다. 프랑스의 노면 상태는 별로 좋지 못하고 이거 국도 아냐라고 생각되는 구간도 상당수다. 아우토반과는 차이를 보인다.

프랑스를 지나 벨기에를 거쳐 독일로 가는 동안 톨게이트가 3번 정도 나온다. 요금은 곧장 지불에 2~4유로 정도 했던 것 같다. 톨게이트 없는 아우토반은 얼마나 좋은가.


미토 1.3 JTDM은 5단에서 힘이 없다. 처음에 가속 페달을 살살 밟은 것도 있긴 하지만 5단의 기어비가 너무 낮은 탓이 크다. 5단 100km/h에서는 회전수가 2,200 rpm 정도인데 출력을 생각하면 기어비가 상당히 낮은 것이다. 지금은 자동이 많아져 모르겠지만 10년 전 국산 준중형을 기억해보면 5단 100km/h에서 회전수가 대략 3천 rpm이었다. 이런 걸 생각하면 1.3리터 디젤의 미토는 확실히 5단 기어비가 낮다. 아무래도 유럽의 속도 제한(130km/h)에 기어비를 맞춘 것 같다. 130km/h이면 회전수가 3천 rpm 정도 되니 어느 정도는 힘이 생긴다.

어느 정도의 원활한 가속을 위해서는 기어를 내려 회전수를 적극적으로 써야 한다. 제원상 최고 속도는 180km/h인데 평지에서 도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5단에서의 가속은 크게 기대를 할 수는 없다. 아주 긴 내리막에서는 레드 존을 넘기면서 200km/h도 찍긴 했다. 이 정도 내리막이면 무슨 차든 제원 이상의 최고 속도가 나올 거다.

대부분의 승용차들은 속도 제한에 꽉 맞춰 운전한다. 그래서 100~110km/h으로 달리니 수도 없이 추월 당했다. 피아트 500 같은 차(할머니)도 신나게 옆을 지나간다. 물론 추월하면 칼 같이 2차선으로 차선을 바꾼다. 고속도로에 진입한 후 1시간 동안 내 생애 가장 많은 추월을 당했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안 살았는데..

노면은 안 좋지만 운전 매너는 다른 유럽과 비슷하다. 추월할 때는 1차선으로, 그 후에는 빠르게 2차선으로 차선을 바꾼다. 굳이 차선을 안 바꿔도 될 거 같은데 2차선으로 들어갔다가 추월하는 모습도 흔하게 봤다. 이러다 보면 차선 변경이 많아지고 원터치 깜박이가 유럽에서 나온 이유를 알 것 같다. 우리는 기름값의 압박이 있기 때문에 조신하게 2차선으로 달렸다. 기름 가득 채워 세차까지 해서 주는 시승차가 그립다.

톨게이트에서 만난 골프 TDI. 한국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탔는데 미토 타면서 보니 부럽다.

수시로 운전자 바꾸고 밥도 먹고 하다 보니 도착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독일로 가기까지 약 5번 정도 고속도로를 갈아 탄다. GPS가 길을 정확하게 가리켜줘 한 번도 길을 잃지 않았다.

갈 때는 벨기에를 거쳐서 갔는데 여기 풍경이 장난 아니게 좋다. 여기에 오니 영어가 전혀 안 통하고 생전 첨 들어본 말을 한다.

독일로 접어들고 도착 예정 시간이 다가오는데 뉘르부르크라는 표지판은 나올 생각을 않는다. 살짝 불안해진다. 퀼른이나 아헨은 일치감치 표지판이 나오건만. 뉘르부르크는 약 10km 정도는 근접해야 비로써 표지판이 나온다. 뉘르부르크는 얼마나 촌동네인건가.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가면 마침내 뉘르부르크링이 나온다. 최근 새 단장 했다는 뉘르부르크링은 겉에서 보이는 건물부터 새 것의 냄새가 마구 풍긴다. 이제는 노르트슐라이페를 찾을 차례. 뉘르부르크링을 지나 조금만 직진하면 오른편에 노르트슐라이페라고 적힌 작은 표지판이 딱 하나 있다. 여기서 우회전해 굴다리를 지나서 5분 정도 올라가면 바로 노르트슐라이페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노르트슐라이페를 한 방에 찾았다.

도착했을 때는 시간이 6시 20분 정도 됐었고 노르트슐라이페는 파장 분위기였다. 노르트슐라이페는 생각보다 정문이 작았고 주차장도 크지 않았다. 주차장에는 주행을 마친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대고 있다. 파리에서 노르트슐라이페까지 거리는 약 480km였고 연비는 19.8km/L가 나왔다. 연료 게이지는 절반 조금 밑으로 떨어진 상태.

음식을 생각해 1시간 거리라는 쾰른의 민박집 가서 잘까도 생각했지만 내일 일정을 생각해 뉘르부르크에서 자기로 했다. 저 멀리 보이는 마을이 뉘브부르크이며 노르트슐라이페 정문에서 2분 거리다. 뉘르부르크의 모터스포트 호텔은 손님이 없는 관계로 주인이 사라져버려 밥만 먹었다. 전형적인 독일 음식(궁극의 짠 맛)을 견딜 수 없다면 모터스포트 호텔은 절대 비추천이다. 아, 이렇게 소금물에 절인 듯한 고기와 샐러드를 10유로나 주고 먹다니. 참, 촌동네라 그런지 독일 사람들도 음주 운전하드라. 옆자리에서 밥 먹은 아저씨들 분명히 맥주 신나게 먹는 거 봤는데 스쿠터랑 차 몰고 집에 가더라. 

뉘르부르크는 저녁에 할 것도 없고 나가봐야 하도 인적이 드물어 무섭기까지 하다. 그래서 내일을 위해 일찍 취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