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커드는 모터스포츠에서도 활약하여 좋은 기록을 남겼다. 미국이 제1차 대전에 참전하기 직전인 1917년, 패커드는 2대의 레이싱카를 제작했다.

패커드의 주임엔지니어인 제프 빈센트가 설계한 항동기용 V12엔진을 레이싱 카에 탑재한 모델로서 1대는 4900cc, 또 1대는 4832cc였다. 두 대 모두 새로운 리버티형 항공기엔진의 시험을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었다. 이중의 소형 모델은 1919년‘랠프 드 팔마’의 운전으로 6시간 논스톱 주행해서 평균 165.5km/h의 기록을 수립, 이 해의 인디아나 폴리스 500에서 6위에 입상했다.

대형 모델은 더욱 훌륭한 성적을 올렸다. 이 차 역시 같은 해인 1919년에 데이토나에서 241.21km/h라는 육상 최고속도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공인되지는 않았지만 당시의 공인 지상 최고속도 기록은 독일 블리첸 벤츠(Blitzen Benz; 번개 벤츠’)의 기록이 199.68km/h였던 것을 비하면 패커드의 기록은 얼마나 뛰어 났던가를 알 수 있다. 또 패커드사에서 설계한 리버티 항공엔진은 1926년 바브스에 장착 275.17km/h를, 1928년 화이트 트리플랙스에 얹어 333.95km/h라는 세계 육상최고속도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패커드의 영광이기도 했다.

제1차 대전 후 1923년 최초로 나온 새 모델이 싱글 식스(직렬 6기통 차)였다. 이어 1920년대 패커드의 고급차종을 대표하는 싱글 에이트(직렬 8기통 차)도 1924년에 등장했다. 그 중 싱글 에이트의 성공으로 패커드 사는 V12엔진의 생산을 중단하고 직렬 8기통 엔진을 탑재한 모델에 주력했다. 보어✕ 스토로크는 85.7✕ 127mm로 배기량은 5860c, 출력은 V12형 보다 약간 적은 84마력이었다. SV헤드형의 짧은 로커 암(rocker arm)으로 밸브를 개폐했고 알루미늄 크랭크케이스 속의 긴 크랭크샤프트는 9개의 메인 배어링으로 구성돼 있다. 패커드의 싱글 에이트가 나오기 전 까지는 미국 자동차 거의가 뒷바퀴 두 개에만 기계식 브레이크를 다는 것이 통상적이었는데 미국의 대 메이커로서는 처음으로 사륜 모두 기계식 브레이크를 장착했으며, 싱글 에이트의 특징으로는 4단 기어박스를 달았다는 것이다.

패커드의 6/8기통 차는 미국의 호화판 차로 매우 높은 인기를 얻어 매상도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났다. 1923년의 생산대수는 2,200대로 캐딜락을 조금 웃도는 정도였지만 26년에는 3만 4,000대로 늘어나 캐딜락의 2만 8,000대를 훨씬 앞질렀다. 캐딜락은 당시 도저히 패커드에는 질적으로 쫓아가지 못하는 차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또 패커드의 싱글8 엔진은 캐딜락이나 링컨의 V8엔진보다 우수한 것도 패커드의 평가를 높이는데 한 몫을 했다. 1928년에는 생산량이 연간 5만대를 넘어 이 해부터 8기통 차만 생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