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수님의 애마 포르쉐 964 카레라2의 시승느낌을 적습니다.

964와 993은 공통점이 많은차다.
마지막 공냉식의 타이틀이 붙은 993은 프리미엄이 붙고 있는 추세이지만 실제로 964에서 993으로 넘어오던 90년대 초반 포르쉐는 극심한 자금난에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좀 더 모던해진 디자인과 후륜 서스펜션을 세미 트레일링암 방식을 버리고 멀티링크로 새로 짜고 6속 변속기를 넣는등의 변화를 가했지만 기본적으로 964와 993은 공유하는 부품이 상당히 많다.

파트번호에도 964 993이 동시에 적혀있는 부품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보면 993은 결국 964의 뿌리를 무시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964 993은 항상 동일선상에서 동경해왔지만 964가 공냉식 포르쉐의 매력이 좀 더 강함을 부정할 수 없다.

그 이유의 첫번째는 사운드이고, 두번째는 앞이 가벼운 약간은 불안한 직진안정성에서 기인한다.

964 993이후의 모델들과 달리 우측 3기통의 배기가 좌측으로 옮겨와 좌측 배기와 합쳐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즉 우측 배기의 길이가 좌측보다 훨씬 길게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공회전시 두둥, 두둥하는 엇박자의 배기음은 이처럼 좌우 길이가 다른 배기관에서 연출되는 사운드 특성이다.

부등간격으로 폭발하는 할리 데이비슨 엔진의 느낌과 비슷하지만 킹핀각도를 통해 연출되는 실제의 부등간격이 아니기 때문에 고속회전 밸런스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상태가 아주 좋은 964를 시승하는 것은 쉽지 않을뿐더라 여간 기쁜 일이 아니다.

장인수님께서 가꾼 심장은 방금 공장에서 나온 새엔진보다 오히려 더 숙성된 듯 회전이 여간 부드러운 것이 아니었다.


3.6
리터 수평대향 엔진은 250마력이라는 겸손하기 짝이 없는 숫자를 생산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 포르쉐가 보여주는 주행성은 250마력 이상으로 느껴진다.

3.6리터의 작지 않은 배기량과 무겁지 않은 차체 입장에서 펀치가 상당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하지만 실제로 몰아보면 토크감이나 펀치력이 크지 않다.


 

993 6단으로 단수가 늘어나면서 1,2,3단을 길게, 4,5,6단을 짧게 구성한 변속기를 가지고 있다.

단 이것도 북미형과 유러피언의 세팅이 달라서 유러피언의 경우 1,2,3단이 북미형보다 훨씬 짧게 구성되어 있다.

964 5단 변속기는 초기반응을 높이는 세팅을 허락하기에는 단수가 부족했고, 전반적으로 롱기어 세팅을 가지고 있다.


1
단에서 거의 80km/h까지 갈 수 있고, 2단으로 130km/h를 넘어간다.

회전수가 4500rpm을 넘어가면서 토크에 살이 붙기 시작해 6800rpm까지 밀어붙이는데, 6800rpm에서 작동하는 리미터가 얄미울 정도로 날이 바짝 선 상태로 날카롭게 상승한다.


속도계가 바쁘게 올라가는 것도 그렇지만 5단에 들어가서 200km/h가 넘어가는 영역에서 무척 찰지고 가볍게 뻗어나간다.

250마력을 이보다 알차고 실속있게 돌릴 수 있는 스포츠 엔진은 상당히 드물 것이다.

수동변속기의 재미가 극대화되기 위해서는 손과 발이 재빠른 변속에 박자를 맞출 수 있어야하는데,

가속패달을 놓았을 때 964의 회전하강은 그야말로 고공낙하 수준이다.


평상시 주행때는 너무 떨어진 회전수를 변속때마다 가속패달을 쳐서 살짝 끌어올린 후 클러치를 미트시켜야할 정도이다.

스포츠카로서 너무도 즐거운 동작이 아닐 수 없다.

손과 발, 특히 발이 공냉 포르쉐의 회전특성에 맞춰서 좀 부지런할 수만 있다면 964는 최고의 시프팅 즐거움을 선사한다.


993
과 비교하면 고속에서 앞이 가벼운 특성이 더 커서 불안하게도 느껴지고 고속에선 스티어링의 민감도 같은 것은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지만 그래도 확실한 제동이 받치고 있으니 든든하다.

묵직한 쇠덩어리를 조정하면서 뒤에서 들려오는 건조한 공냉음색은 완벽한 컴비네이션이고 단 10마력의 출력도 욕심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모든 것이 적당하면서 조화롭다.


964
터보의 거친 몸짓과 비교하면 카레라는 젠틀하고 발끝으로 엔진을 어루만지는 듯한 섬세한 조작이 일품이다.

신형차를 타면 항상 신차가 나오는 것이 신경이 많이 쓰인다.

얼마나 좋아졌을까? 내것보다 많이 좋아졌나?하는 쓸데없는 상념에 빠져있는 동안 자신의 애마에 대한 열정이 식는 경우가 허다하다.



연식을 가늠하기 쉽지 않은 구형모델들을 타다보면 이런면에서 너무나 자유롭다.

진정 애마와 깊은 사랑에 빠질 수 있을 정도로 주변 시대의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자신이 직접 만지지 않아도 새로운 생명과 삶을 불어넣는 restore의 매력은 빠져들면 헤어나오기 어려운 중독성이 있고, 독일차는, 소위 복원빨을 참 잘 받는다.


우리나라에 964993 혹은 930과 같은 차가 숫자적으로 적은 것이 너무 아쉽다.

세상에 좋은 차는 많다. 하지만 자신의 가슴이 향하는 좋은차의 숫자는 극히 제한적이다.

남들이 말하는 좋은차보다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좋은차가 훨씬 더 값지고 소중한 법이다.

자신의 가슴속에서 각광받는 차를 얻는 바로 그 순간 마력과 토크 최고속도와 같은 숫자에서 벗어나 진정 차와 교감을 나누는 법을 깨우치게 된다.


지금 이시간에도 머리속에서 자신의 차를 구원하기 위해 애쓰고 고민하는 분들께 잘 복원된 훌륭한 애마는 거대한 등대 역할을 할 것이다.

-test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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